달빛 이야기

달빛천사 2018. 10. 4. 08:54


    저곳에서 우륵문화재가 열렸던 기억이 난다.



    꼼꼼하신 아버지덕분에 그떄의 상장이 있다.^^

    가야금 열두줄에...♬...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중 하나인 우륵이 충주가 낳은 예술가..^^

    덕분에 청주콩쿨까지 대표(?)로 나갔던 기억이 난다.(뭐 실력은 그닥이어서 충주로 만족) 



    저 야외 음악당은 그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타는 것으로 소일했다고 한다.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들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부락을 이루고 그곳을 탄금대라 명명했다고....



    갈곳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소풍하면 늘 탄금대였다.

    목행에서 탄금대까지 강변으로 제법걸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충주 출신 전몰 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2838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충혼탑



    1968년 세워졌다는권태응 선생님의 '감자꽃 노래비'

    일제치하의 울분과 항일 정신이 깃든 동요이다

    노래 의미도 모른채 이 근처에서 소풍 도시락 먹던 기억도 난다.



    감자 꽃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순국의 현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맞아 탄금대는 치열한 격전지로 변모한다



    선조 25년(1592) 왜군이 거침없이 서울을 향해 쳐들어가자 신립장군은 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방면을 지키게 된다.

    신립장군은 지형을 정찰한 뒤 조령에 진지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우리 군사들의 훈련이 부족해 사지에 몰아넣지 않으면

    투지를 드높일 수 없다고 판단, 28일 새벽 8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천추의 한을 품고 남한강에 투신자살, 패장의 불명예를 쓰고 만다




    왜군과의 격전 당시 장군이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히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해서 '열두대'라는 것이다



    지금은 탄금대의 멋진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있다.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가고 물새만이 슬피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 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 진 남한강에 임 부르는 탄금 아가씨


    (주현미가 불렀다는 '탄금대 사연' 가사)



    짧지만 알차게 유년시절을 담고 왔다.


    38996



    알뜰한 작은 아들왈 '자신을 위해 10만원 정도 투자하지 못할꺼면 일할 이유가 없다'^^

    엄마는 많이도 걸으며 가을을 느꼈고, 버스비, 햄버거등등해서 3만원의 행복정도^^



좋은 추억 여행 다녀오셨네요.
아드님 생각에 완전 공감해요.
ㅎㅎㅎ


ㅎㅎㅎ
네 좋은 여행이었어요
아들이 돈쓸줄을 알아요^^
사라져 가고는 있지만 추억을 더듬으며 짠한 그리움과 행복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추억더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제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지나온 장소들을 주기별로 둘러보았을 것 같아요.
문제는 어릴때 추억의 장소가 남아있는 곳이 없더라구요.
모두 변해버렸더라구요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요.ㅠㅠ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드님이 참 스마트해요.^^
충주도 몇년에 한번씩 가네요
가족들과도 가봤는데, 본인들과 상관없는(?) 곳이다보니...
친구들과 가끔 가요
그래도 60년 잘 버텨왔는데...
당연한건데 아쉽더라구요

아들요? ㅎㅎㅎ재밌게 살아요
아직도 추억의 장소들이 그나마 남아 있네요.
서울이 고향인 내게는 그냥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가끔씩 가보면서 사진으로 남기면 그대로 역사가 되겠어요.
남편도 거의 서울서 자랐거든요
초등학교도 15반까지 있고 2부 수업했대요
그러니 동창도 잘 모르고..^^
갈때마다 점점 사라져가니 아쉬워요
저 유년 시절의 학교, 교회와 비슷하네요.
가끔 초등학교 저학년때 다녔던 곳, 자란 곳, 다시 천천히 걸어 보고
싶어 진답니다.
지금도 있나 싶은 독립문 옆 동명여중도 다시 가보고 싶고요.
운동장이 작아 100m 달리기를 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체력장은
동명여고로 가서 했었는데 거기도 가보고 싶어지네요.
사진 보면서 저도 어릴적 시간을 거슬러 보네요.
하은엄마
어릴때는 넓어 보였던
운동장이..사택집들이...
참 작게 느껴져도 정겹더라구요
어쩔수없이 헐리겠지만 아쉬워요
고향을 떠나서도 가끔씩 여행길에 오르네요.
나이가 더해 갈수록 추억은 더욱 아름다워져요.
우린 아직 연고가 있어서 1년에도 여러 번씩 다녀오고는 하지만요.
이제 친정엄마가 근접해 있으니 조금 줄어들겠지만요.

전 아무도 안살고 있거든요
가을 운동회 가끔 갔었는데
그나마도 안간지 10년이 넘었네요
가끔 가면 흐뭇해요^^
와 상장이 아직도 있어요?
대단히 꼼꼼하신 아버지시네요.
저는 아이들 것 잘 간직하지 못했는데 정말 정성이시네요.
아버지가 자상하고 굉장히 꼼꼼하셨어요
중요한 상장들을 다 보관하셨다가 주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