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편지들/계절편지

하늘별 2010. 8. 16. 17:42


                           사랑하는 나의 이웃들에게


온 세상을 태워버릴 듯이 사납게 굴던 여름의 태양이 구름비 속으로 사라진 지금, 세상은 촉촉합니다. 가장 근사한 풍경 가운데 하나가 여름 장마 비 또는 태풍이 몰고 온 폭우가 쏟아지는 세상을 유리창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누군가 유려한 솜씨로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있는 음반이 시디기계나 턴테이블 위에 걸려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이 되겠지요.


 이 무시무시한 폭염 속에서도 건강을 유지하며  지내고 계시는지요?

입추와 말복이 지났지만 처서까지는 한 주일하고 조금 더 있어야 하니까, 또 9월까지 늦더위가 심할 것이라고 하니까, 기억도 더위 속에 말랐는지 가을 풍경이 어떻더라? 이런 상상도 잘 되지 않습니다. 참 유난하게 더운  여름입니다.


이 여름,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이 너무 더워서 반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출근해서는 긴 바지로 바꾸어 입고 일을 하지만, 긴 바지가 척척 달러 붙는 느낌이 어찌나 끔찍하던지 그만 반바지로 바꾸고야 말았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어느 해 엄청나게 더웠는데 그 해에 북한의 김일성이 죽더라고. 올해도 끔찍하게 더우니 독재자가 또 하나 죽을 지도 모르겠다고...

폭염과 독재자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어느 인생인들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며, 아무리 가혹한 폭염이라 한들 시간의 흐름 앞에 꺾이지 않을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전혀 엉뚱한 짝짓기는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아저씨’라는 것에서도 아주 잘생긴 원빈이란 배우가 아주 센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데, 그 둘의 조화가 참 묘하게 잘 어울리더군요. 잘생긴 ‘넘’이 극한의 폭력으로 사회악이라고 불리는 상황들을 제거해가면서 어린아이 한명을 구해내는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서 상한가를 부르고 있는 중인 영화 ‘아저씨’ 저는 그 잘생긴 배우와 범죄자들이 벌이는 사건 배경들 때문에 그만 기가 질려서 오래도록 가위 눌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주 잔인하고 극한의 폭력 속에 벌어지는 장기매매와 마약의 밀거래의 방식이 그 영화의 배경이었기에 그랬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한번 쯤 보셔도 괜찮은 영화라고 추천을 합니다. 결코 제 취향의 영화는 아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정말 지난봄에 본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가장 큰 감동을 준 영화는? 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미션’이라는 영화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본 다음에는 밀양으로 바뀌었었습니다. ‘시’가 ‘밀양’보다 감동이 깊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결코 그에 많이 밀리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저는 추석 연휴 무렵보다 조금 일찍 휴가를 내어 제주도에 가기로 했습니다. 장흥에 가서 2시간이면 제주도에 내려주는 배를 타고 가서 ‘올레’에 참여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17번째까지 올레길이 열렸던데, 이번에는 1번에서 3번까지 걷다 올 생각입니다. 하루에 대략 5시간 정도 걸으면 되는 길들이어서 아침 일찍 또는 새벽 즈음에 걷기 시작해서 걷기를 마치고,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밀린 책들을 읽다 오면 아주 행복할 듯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함평이나 보성을 들러서 느릿느릿 국도로 운전하고 올라올 예정입니다. 행복할 것 같지요? 명절 연휴에 같이 놀아줄 친구도 있고,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싱글이라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제 눈이 궁금하실 터인데, 저도 궁금합니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3달 전에 검진 다녀왔고 1달 더 있어야 검진 받으러 가는 날이라서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급성 녹내장에 걸린 사람들은 대체로 가끔씩 안압이 다시 많이 올라가는 ‘안압폭풍’이란 것이 발생을 하고, 그때마다 응급으로 가서 레이저로 눈물샘을 뚫고 교감신경계 약물을 대량으로 투여하고. 그때마다 시력을 좀 더 잃고 하는 과정을 밟는다는데, 저는 지난 1월6일 날 발병하고 치료를 시작한 이래로 안압이 폭풍처럼 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8개월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약을 먹고 있는데, 그 또한 징글징글합니다. 한약을 먹고 좋아지고 있다는 표시들이 없으면 제가 아무리 한의사라 해도 이렇게 길게 먹지는 못할 터인데 먹고 치료하는 만큼 좋아지고 있다는 표시들이 적당히 있어서 끈질기게 먹는 중입니다.

약을 먹으면 배가 살살 아프고 때로는 심하게 아프곤 합니다. 배가 아플 때는 참 괴롭지만, 그러고 나면 딱딱하게 굳어있던 배가 풀려서 부드러워 지고 따뜻해집니다.

도대체 소화기가 얼마나 고장이 났었기에 8개월째 치료를 하고 있어도 다 풀리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고장이 났었던 것일까? 난 왜 짐작도 못하고 살았던 것일까? 운동이란 것이 병을 고쳐주지는 못하는 것이로구나.......

기타 등등 생각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소화기가 고장 나서 녹내장이란 무서운 병이 생겼다는 것을 양방에서 동의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저는 그렇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중이고, 좋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15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니까요.   물론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3달 전에 안압이 18 정도였는데, 다음 달에 검진을 가면 15 이하의 안압이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이즈음 제 눈의  상태를 따져보면 말입니다. 안압이 15가 넘어가고 21 이하이면 정상 안압 범위라고 해도 고안압이라는 진단이 떨어지는 것이더군요. 21이 넘어가면 녹내장이란 진단명이 붙는 것이고요.  발병했을 때 제 안압이 60 이었다니까 정상범위의 3배, 그러니까 혈압으로 치면 혈압이 300을 훌쩍 넘은 아주 심각한 상태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물론 제가 인식하지는 못할 정도이긴 하지만 검사를 해보면 시야를 약간 상실한 것은 분명합니다.  누구든 세상살이를 시작한지 30년이 넘으면 가끔 안압을 체크해 보아야 할 듯합니다. 저는 급성으로 녹내장이 찾아와서 심각한 통증으로 있었지만, 대부분은 통증 없이 조용히 만성 녹내장으로 진행이 된다고 하더군요. 물론 결과는 같은 실명입니다.


3달 전 안과의사께서 언제든지 안압이 오르면 응급으로라도 급하게 오라고 하면서 4달 후에 검진 날을 잡았던 것을 보면, 제가 좀 특이한 케이스 일 것 같기는 합니다. 보통의 급성 녹내장 환자들이 겪는 일을 겪고 있지 않는 중이니 말입니다. 이래저래 제가 한의사 인 것이 감사한 날들입니다. 아니었음 실명했지...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세상일을 혼자 다하는 사람인 것처럼 한도 끝도 없이 졸리워 하며 잠속으로 빠져들던 일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직 무리하지 않으려고  여전히 근신 중이기는 합니다.


주일학교에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성경을 읽고 문제를 내고 함께 풀고 하는 일도 행복하고, 아픈 척 하면서 딩굴 딩굴 게으름 피우는 것도 즐겁기는 하지만 슬그머니 이래도 되는 것일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50세가 될 때는 설레임이 분명한 느낌과 생각들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51야!’ 이런 생각이 드는 이즈음은 겁이 더럭 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나 무엇하고 산거야?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데? 이런 질문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전자동으로...


눈이 심하게 아팠다가 좋아지는 것도 그렇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렇고, 6년간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해 주시려나? 하는 생각을 슬며시 합니다. 아니면? 아님 그냥 이대로 신나고 재미나게 살고 있게 되겠지요^^;;


반년이 넘게 몸이 불편한 상황 또한 처음 경험하는 일이기에, 덕분에 익숙해져있던 게으름과의 동거와 작별을 고한다고 할지라도 섭섭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일들을 바쁘게 해내는 기쁨이 클 것 같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오늘은 칠석날이랍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오래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9월이 오기 전에 찾아 만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평화가 함께 하시길........


                              2010년 8월16일 날 오후에 편지쓰기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