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대한 생각/책 이야기

하늘별 2006. 8. 25. 11:47
오랫만에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말들었던 책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끔찍한 여름을 지내며 책과 지내는 것보다 좋은 피서가 있으랴... 그것도 이렇게 유쾌한 책읽기가 가능한 책과 함께 말이다.

1. 이 책의 미덕은 이시대의 빼어난 감독들의 이야기를 깊이있는 울림으로 들려준다는데 있다.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영화관에서 헐리웃의 뻔한 영화보다는 한국영화를 택하는 즐거움 정도는 갖고 있었지만 감독들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나였다. 감독을 따라 영화를 고른다기 보다는 배우를 따라 영화를 고르는 수준 정도의 관객인 나에게 이 책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을 하나더 마련해 주었다.

최소한 이 책에 등장하는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라면 기꺼이 영화관에 가서 돈을 지불할 마음이 확실히 생겼다. 누가 무어라고 평을 하던 상관없이 이들이 만드는 영화를 열심히 보러갈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을 통해서 감독들의 사고를 이해하고,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어떻게 표현해 갈 것이지 무척이나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도 진지하게 자신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펼쳐보여주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기쁨이 아니겠는가?

이 시끄럽고 웃기는 세상에 한심해서 웃는 비웃음이 아니라 유쾌해서 웃는 웃음을 웃기가 어디 그리 쉬운일인가? 그 일을 가능케 해주었다. 이 책은.

2. 이책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고를 만날 수 있다

인터뷰어인 지승호는 7명의 감독에 대하여 아주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고, 비슷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런데 이야기가 다 다르다. 감독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한 것 가운데 자신이 준비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자칫 방만하고 별로 유익하지 않은 사고의 단편들을 나열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한데 이 책에서는 그런 일이 전혀없다. 얼마나 열심히 인터뷰를 준비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크린 쿼터에 대하여, 한국 영화에 대하여, 자신들의 영화에 대하여, 외국 특히 헐리웃 영화판에 대하여, 자신이 몸담고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감독들은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마 지승호에게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에 인터뷰에 응했던 감독들은 자신들이 단편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얼핏 스칠만큼 감독들의 사고, 비슷한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들이 만들어내는 그래서 거대한 벽화, 한국영화라는 벽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의 유쾌하고 진지한 사고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이들의 감수성과 표현법, 그리고 그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 이 모든 것들의 너무나 흐믓했다. 영화판에서 감독들과 배우들에 관한 황당한 가쉽성 루머에 익숙해진 내게 이 감독들의 진지한 대답들은 모든 편견을 한번에 날려주는 효과를 부수적으로 주었다. 이 책에 대하여 고마워 하는 또하나의 이유이다.

3.우리나라에 아직 남아있는 신명나는 판, 그 판이 영화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노쇠해져서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리 사회... 그 가운데서 이렇게 활력있고, 스스로를 고쳐가며 성장해 가는 한국영화 판. 이 판을 확인하면서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동맥경화에 걸린 듯한 우리사회를 통쾌하게 날려버리고 다시 건강한 어떤 판을 이 영화판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벌과 지연이 통하지 않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다양성이 인정되면서 객관성을 일정정도 유지하는 사회.. 그런 아름다운 판이 지금 뜨겁게 펼쳐지고 있고, 그것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