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대한 생각/페북

하늘별 2014. 4. 19. 23:59
  • 날나리 개신교도이긴 하지만
    이번주간은 고난 주간이었다.
    한국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이 땅의 아이들이, 어린 생명들이 대신 죽어간다.
    나의 죽음에 당신들은 무엇을 도운거냐고 묻는다.
    어린 생명들이 대신 진 고난....
    미안하다....
    이런 못난 나라에 태어나 온갖 경쟁에 시달리게만 했던 것에 대해서 정말 많이 미안하다...

    새벽3시에 일어나 더 이상 잠들수 없어
    안보던 공중파 뉴스를 틀어보았더니
    아주 쌩쑈를 하고 있다
    종편은 자기들이 선장이 제일먼저 구조선에 탔던 현장을 잡았다며
    자랑질을 늘어놓기에 바쁘고
    수치를 모르는 공중파들
    지들이 쏟아놓은 오보는 반성하지 않고
    무능한 정권이 우왕좌왕하는 것만 약간 꼬집는척을 한다
    참 지랄을 한다.

    시간이 이렇게 갔으면
    왜 그리 낡은 배가 여객선인것인지
    누가 그런 배를 운항하게 했는지 보도를 해도 좋을 만큼 시간이 갔다.
    여전히 나는 무죄입니다 하는 기자와 앵커 나부랭이들이 아주 징글징글하다
    정권을 바꾸면 제일 먼저 저들의 죄를 물어야 할것이다
    선출받지 않은 권력으로 국민을 물먹인 죄!
    국민들에게 거짓을 선포한죄!

    자영업자라 먹고 살기 위해 출근을했지만
    이런 마음 머리속으로 실수나 하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명박근혜정권이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아주 잘하는구나...끔찍하다 니들
    그 좋아하는 정권 잡고 고작 하는 것이 국민들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엄포나 놓고 거짓말이나 하고 가족들을 우롱하는 거니?
    진도 체육관에 모여있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은 공급하고 있는거니?
    상담해줄 사람들은 보냈고?
    뭐하러 니들이 존재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 잡것들아!!
  • 산하의 가전사  
     
    죽음 앞에서의 사랑  
     
    매년 추수감사절, 뉴욕에서는 축하 퍼레이드가 열린단다. 그런데 그 개최 장소는 메이시스 백화점이야. 오랫 동안 세계 최대의 백화점으로 불리운 이 백화점은 (부산의 신세계 센텀에게 그 자리를 뺏기지만) 영화 <34번가의 기적>의 무대이기도 했고 1924년 이래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벌여 왔지. 이 백화점의 창업주는 로랜드 허세이 메이시라는 사람이고 자그마치 1829년에 이 백화점의 원조가 되는 작은 가게를 차린다. 하지만 이 ‘메이시’s'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건 유럽에서 이민 온 스트라우스 가문이었어.  
     
    1852년 독일에서 이민 온 유태인 라자루스 스트라우스는 글자 그대로 빈털터리였지. 이 사람이 선택한 호구지책은 행상이었어. 바느질 도구부터 도자기, 거울, 화장품 등 온갖 잡동사니들을 그득 지고 다니면서 드넓은 미국 곳곳의 마을들을 찾아다녔던 거지. 즉 옛날 우리 말로 장똘뱅이라고 할까. 돈을 좀 번 라자루스는 장남 이시도르와 함께 색다른 사업 하나를 기획한다. 잡다한 물건들을 이고 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그 물건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파는 만물상. 즉 백화점이었지.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스트라우스 가문은 ‘메이시스’ 백화점 재벌로 부상한다.  
     
    이시도르 스트라우스는 그 가문 최고의 어른이 되지. 스트라우스는 아이다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고 평생을 해로하는데 둘은 지독한 잉꼬 부부였다고 하는군. 어디 출장이라도 가면 꼭 편지를 쓰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언제 돌아오는지 확인하고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느끼는 건데 천생연분이란 건 있더라고. 권태도 없고 지루함도 없는, 항상 둘 간에 설렘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 말이야. 이 부부도 그랬던 것 같아.  
     
    이 부부는 아버지의 고향 독일을 방문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대재벌에 걸맞는 호화여객선의 1등석을 이용하게 되지. 그런데 그 배의 이름이 타이타닉이었어. 며칠 전 얘기했던 영화 <타이타닉>의 월레스 하틀리의 감동의 연주 장면을 떠올려 보렴. 타이타닉 악단 단장과 그 동료들이 연주하던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말이야. 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이미 급류가 되어 선실로 쏟아지는 바닷물 위에서 한 노부부가 꼭 끌어안고 최후를 기다리던 모습이 기억날 거다. 아마도 이 부부는 이시도르 스트라우스 부부를 모델로 한 걸 거야.  
     
    스트라우스는 1등석 손님으로서 보트에 탈 수 있었지만 보트가 여자와 아이들 태우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젓고 물러서. 그리고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그러자 아이다는 구명정에서 벌떡 일어서서 다시 갑판 위에 발을 디딘다. 그때 아이다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 “수십년을 함께 여행해 왔어요. 나도 당신이 어디로 가든 함께 가겠어요. 우리의 운명은 하나예요.”  
     
    1등석 손님 하나가 자리가 빈 셈이지. 그때 아이다는 하녀 엘렌버드를 불러. 어서 타라. 그리고는 자신의 밍크 코트를 벗어 줘. ”사랑하는 내 딸아. 밤바다가 추울 거다. 입어라.“ 엘렌버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냐고 손사래를 치며 옷을 받지 않지만 아이다는 이렇게 엘렌버드를 다독인다. ”얘야 이젠 내게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 엘렌버드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주인의 유품이 될 밍크 코트를 든 하녀 엘렌버드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주인은 바닷물이 들이닥칠 때까지 벤치에 다정히 앉아 있던 부부의 모습이었어.  
     
    이 이야기는 앨버트 하버드라는 사람의 <철학자의 스크랩북>이라는 책에 실려 더욱 유명해졌어. 여기서 하버드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우스 부부는 3가지 위대한 일을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삶을 사는 방법과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죽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죽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고령으로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로 죽는 것입니다. 병으로 죽는 것은 추잡하고, 자살은 잔학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분처럼 세상을 떠나는 것은 영광스럽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두 분 다 행복한 연인이었습니다. 살아서도 갈라선 적이 결코 없었고, 죽어서도 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타이타닉이 침몰한 몇 년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1915년 하버드는 유럽행 여객선을 탄다. 1차대전을 취재하고 독일 황제를 만나 인터뷰할 계획이었어. 하지만 이 여객선에 독일 잠수함의 어뢰가 날아든다.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게 하는 계기가 됐던 루시타니아 호 사건이지. 여기서 하버드는 그 자신 스트라우스 부부에게 배웠던 일을 실천해. 후일 그의 아들은 어니스트 쿠퍼라는 이름의 생존자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거든 .  
     
    “배가 어뢰에 맞았을 당시 당신 부모님이 어디에 계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어요. 두 분은 구명보트가 있는 곳으로 왔어요. 두 분 다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내가 아버님 옆을 지나칠 때, 아버지께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군.”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뛰어내릴 때를 봐가며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는 머리를 흔드셨고, 사모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군요.”라고 말했어요. 그 다음 아버님의 행동은 너무나 극적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사모님과 함께 돌아서서 맨 위층의 열린 방으로 들어가시고는 문을 닫았어요. 바다로 뛰어내려 헤어질 위험을 안느니 차라리 함께 죽기로 작정하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죽음의 사신을 그렇게 정면으로 직시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잘 사는 건 어려운 일이고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하물며 죽음 앞에서 아름답기는 어지간히 힘겨운 일일 거야. 하지만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보람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콧날을 시큰하게 할 만큼, 눈이 퉁퉁 붓게 할 만큼 감동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죽음의 어둠 앞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으며 죽음의 차가움마저 녹여 버리는 뜨거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지. 분명히 있지. 그 반대로 역겹고 더럽고 분통 터지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일순 잊어버리게 할 만큼 오롯하게 빛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 요 며칠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됐지 다시금.  
     
    스트라우스 부부는 한 사람에게 생명을 선사하며 북대서양에서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고 그들의 죽음을 통해 잘 죽는 법에 대해 얘기하던 하버드 역시 아내와 함께 여유로운 죽음을 맞았다.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최근 며칠의 슬픔을 생각하면서 역시 떠오르는 생각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일 거야. 잘 살지 못한 사람은 잘 죽지 못한다는 거지.  
     
    하녀에게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내 딸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건 아이다가 그만큼 평소에 하녀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아끼고 사랑한 때문이었을 것이고, 하버드가 찌질한 삶을 살았다면 그렇게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 없었을 것이고,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 기쁘지 않았다면 그 두 부부의 아름다운 최후는 있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세 가지는 연결된 것일 거 같다. 잘 사는 거, 잘 사랑하는 거, 잘 죽는 거.  
     
    삶을 잘 살아낸 사람이 당당하게 죽는다. 기억하고 살아야지. 잘은 못살아도 열심히는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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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할수 있는 뻘짓은 정부가 다 했구나...니들이 살인자다! 이것들아!
    news.kukmin.tv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가 일어났지만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전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고 직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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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의심이 확인된다면 끔찍하구나....
    c.hani.co.kr  
    세월호 침몰 과정에 대한 의문점과 사고 재구성 가상 시나리오 ​ 1. 알려지지 않은 사고가 있었다! 세월호는 최초 사고 시간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8시 48분보다 훨씬 이전인 오전 7시 경을 전후하여 충돌,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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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stapa.tistory.com  
    세월호의 사고 발생이 목포해경에 신고된 것보다 30분 이상 앞섰다고 기록된 상황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 니가 인간이냐! 이 잡것아
    With 강도리 and 박병선. 
  • 외국서 회사다니시는 후배님이 이번 침몰사고에 대해서 외국인 동료들이 물어볼때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지로 고민중이신데... 마침 생각이나는 제 일화를 적어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8년 이맘때, 아이슬란드가 금융위기를 맞기 바로직전 호황기의 피크인 시점이었죠. 
    중년에 발복할거라는 점쟁이들의 예언(온라인+오프라인+부흥회 목사) 이 들어맞았나? 하고 생각했던 아이스란드 전력회사가 주최한 새로운 송신탑 설계 국제 공모전에서 당선됬을때 일입니다 (비록 2등이었지만 1등안과 나란히 실현시킬 계획 이었음). 
     
    1등이 아닌것에 적잖히 실망했었지만, 호텔제공과 주최측의 간곡한 부탁으로 시상식 행사 참여를위해 지구반대편에있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빅 으로 날아갔습니다.  
     
    당시, 주요 수상자가 아닌 '가작'을 받은 미국 보스턴에서 온 팀이 있었는데, 부부건축가로 여자는 한국인 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깝긴 하겠지만 굳이 올필요가 있나? 의아해 했지만 그거야 그들사정인거고... 아무튼 사달은 시상식 후에 있은 만찬에서 벌어졌습니다. 
     
    당시 MB가 당선된 시기라 옆에앉은 북유럽 심사위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내가 한국은 지금 전과가 16범 (더있나?) 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됬다는 것과 한국에서의 공모전의 공정성에대한 문제등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부패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갑자기 이 아주머니가 무례하게 우리들의 대화를 중단시키면서 저보고 "당신은 왜 외국에 나와서 조국에대한 험담을 하는냐" 라고 매우 흥분한채로 언성을 높이더라구요. 어이가 없었던 나는 "내가 왜 국뽕환자(Jingoist) 가 되야하지?" 라고 대답해 줬습니다. 참고로 Jingoism 은 '국가주의' 또는 '파시스트' 에 가까운 맹목적인 '애국병'을 말합니다. 
     
    이 흥분한 아줌마는 자기분을 이기지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더군요. 
    그이후에 남은 체류기간동안 본인이든 그남편이 그 무례한 행동에대해 사과한적도 없구요. 덕분에 식사분위기는 다운되고... 참석자들은 황당해하고 저는 졸지에 참석자들과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는 오류와 사회비판을 왜 비애국적인 행동으로 보는지에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됬죠. 하필이면 그중에 독일/오스트리아 인이 두명이나 있었으니... 그 아줌마의 행동에 그들이 적잖히 충격을 받았을거라 짐작합니다. 
     
    아무튼 지금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건축바닥도 워낙좁아서 아마 한두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들이 수두룩 할겁니다. 미국인과 결혼해서 보스턴에서 건축하는 한국여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줌마~ 언젠가라도 이글을 보시겠죠? 
    그렇게 조국을 사랑하시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셔서 당신의 재능을 조국을위해 바치세요! 
    왜 그 먼곳에서 애국을 하실려고 그러십니까? 조국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이승만 입니꽈? 햇살따신 와이키키 해변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그리고....... 
    어릴적에 쭈쭈바 준다고 누나따라간 어느 교회 부흥회에서 갑자기 미친듯이 내머릴 쥐흔들면서 
    "이 아이는 큰 인물이 될것입니다" 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외치던 목사양반!  
    책임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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