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리

    하늘과 땅 2007. 4. 8. 07:25

     

     

     

    한평생 학문을 위해 외길을 걸어 온 한 독일 교수를 그의 친구가 초대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 교수가 집에 가야겠다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밖에서는 큰비가 오고
    있었고 집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는 독일 교수에게 방을 내주며 하룻밤을 자고 갈 것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한 밤중에 친구는 친구 교수가 잠자리를 불편
    해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슬그머니 방문을 열어 보니 친구가 없었습니다.

    혹시 화장실을 갔나해서 살펴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은 친구는 교수 친구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의 불을 켜고 친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납니다. 문을 열어 보니 교수 친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를 쫄딱 맞고 젖은 채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깜짝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묻자, 친구 교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난 잠잘 때 내 잠옷을 입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버릇이 있거든.."

    "그래서...??"

    "그래서 잠옷 가지러 집에 갔다 오는 길이지..."

    "이런 이런......"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보면 다른 일들에 관해서는 좀 모자랄 수 있으며 그것은
    용서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가지를
    잘하기 위해서 다른 것은 좀 잘못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오늘 본문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을 넓게 보라는 뜻이기도 하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편견을 버리고 한편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세상을 넓게 보되 결국은 한쪽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편견을 버리되 집중해야 할 한가지에 편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동서남북 중에서 한쪽을 선택하면 무섭도록 그 방향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매일 같은 생각을 10분씩 10년이면 이루지 못할 꿈이 없는 법입니다.

     

     

     

    보이는 땅을 주리라


    사방으로 길이 열려 있다고 다 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행하여 볼 수 있는 땅이
    내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굳이 가나안까지 갈 필요가 있었던 것은 광야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땅,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이게 하신 땅이며 약속의
    땅입니다. 그 땅을 주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내 모셨습니다.

     

     


    거기서 털어야 할 것, 다듬어야 할 것, 체질변화를 시켜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가려서 과거의 이집트만 보이고 저 광야 건너 가나안 땅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묻히도록 하셨고 가나안을 볼 수 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너 있는 곳에서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여기서 “너 있는 곳에서..”가 중요합니다. 청소년기에 한가지 이상 꿈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룬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 있는 곳’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결코 미래의 다른 일에 성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 은사, 내 현실, 그것으로 성공해야 합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다윗은 그와 결전을 각오하고 사울 임금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습니다. 사울은 감동하여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하사했습니다.
    마지못해 사울의 갑옷을 입어 본 다윗은 몸에 맞지 않자 벗어버리고 평소에 입던
    작업복에 평소에 사용하던 물맷돌을 들고 나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것을
    소중히 했기 때문에 성취한 승리입니다.

     

     

     

    한 마을에 빵집이 네 개나 있어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한 사람이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라는 간판을 내 걸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다른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라는 간판을 내 걸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라는 간판을 내 걸었습니다.


    마지막 사람도 큰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우주보다 더 큰 것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라는 간판을 내 걸었답니다.

    결과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이 판전승 했다고 합니다.

     

    현실을 담지 못하는 꿈은 망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라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예배를 드려도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드린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나 제단을 쌓으면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했습니다.

     

    제사는 용서받고자 드리는 의식이었다면 예배는 받은 용서를 감사해서 드리는 의식입니다.

    그런데도 예배를 드리면서 제사를 드리듯 하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배란 제사의 요구를 십자가로 완성하셨기에 그 위대함을 드러내는

    거룩한 행위인데 그것을 훼손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을 칭찬하면서 다른 의도가 있으면 아부가 됩니다.

    남을 칭찬하면서 자기의 자랑을 은근히 집어 넣으면 모독입니다.

    자기를 세우기 위해 남을 세워주는 것은 거래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란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순수함이 있어야 합니다.

     

     

    땅의 문제를 땅의 힘으로 푸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땅의 문제를 하늘의 힘으로 푸는 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예배란 하늘의 영광을 보며 그 감격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풀어 가는

    은혜의 원천입니다.


    '꿈과 현실의 거리'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거리'와 같습니다. 

     

    이번 유럽 유학생, 2세 수양회에서 받은 은혜의 체험들이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하늘의 힘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꿈과 현실의 거리!
    창세기 13: 14-18
    2007'코스테 부다페스트 유럽유학생, 2세를 위한 수양회
    폐강예배 설교요약

     
    뜻대로 되지 않아 교회에 가지 못하고 님의 댁에 찾아와 양식을 얻습니다.
    고맙게도 위안과 도전을 같이 안고 갑니다.감사!!

    부활의 새소망으로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든지 오셔서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주안에서 사랑과 축복을 기도하며...^^

    스크랩해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드리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휴가온 아들이 회개는 하나님 은혜의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사람나무님...만나 반갑습니다..^^
    아드님에게도 큰 꿈 이루는 복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늘과 땅님!
    은혜가 풍성한 주일되시기를 바라옵니다.
    아멘입니다. 어렵고 힘들던 현실을 감사할때
    부터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주심을 체험할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현실을 통해 소중한 미래가
    열려 가는 것을 느끼고 있고 보이진 않지만
    큰 복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섬돌이님...
    감사가 신앙의 끝입니다.
    모든 불행을 끝내고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바로 감사하는 신앙이기에
    감사로 시작되는 님의 신앙이야말로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모습입니다..
    감사는 유일하게 또다른 축복이 없어도
    그 자체로 축복이 되는 큰 복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교수 이야기는 교수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지식하고 균형감이 떨어지는 인성이라는 것을 잘 표현 한 것입니다. 학문에 매진한 결과이지요. 그래서 인정 받고 높이을 받는 것이지요. 이런 교수가 우리대학에는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얍쌉한 것들만...

    두 아들 아빠님...
    님의 말씀대로 존경받는 분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를대로 잘하려는 마음들도 있다고 봅니다...
    또 주변에 보면 훌륭한 교수님들도 꽤 많습니다.
    물론 님의 말씀대로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지만...
    은혜로운 주말이 되시기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