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리

    하늘과 땅 2007. 6. 20. 06:37

     

     

    경건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Moravian이라는

    분파가 독일에 있었습니다. 이들 중 조셉 스미스라는 분이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곳에서 열정을 가지고 선교를 했으나

    단 한 사람을 전도한지 얼마 안되어 풍토병에 걸려 순교하게 됩니다.

     

     

    그 많은 열정과 자원을 쓰고도 겨우 한 사람을 전도했으니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0년 뒤에는 그 흑인 여인 한 사람에 의하여

    그 곳에 13,000명의 그리스도인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몇 마디 전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생명력이 있기에 언젠가는 열매를 맺고야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 이하에서,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 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면서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시면서 자라남의 원리를

    한 예로 드셨습니다. 시작은 미미하나 나중은 창대 하게 되는

    원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큰 거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보다 수십 배가 더 큰 나라도 가운데 '중'자를 써서

    중국이라고 하는 데 그 밑에 달랑 붙어 있는 작은 반도를

    가리켜 큰 '대'자를 써서 대한민국입니다.

    다리 하나를 건설하고도 성산대교, 마포대교, 한강대교, 포장마차를

    하면서도 '왕대포 집'라는 간판을 붙입니다.

     

    그런 우리 민족에게 천국은 마치 겨자씨 같다는 말이

    잘 이해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겨자씨란 입김에도

    멀리 날아갈 만큼 작고 가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필 이처럼 작은 씨에다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하신

    주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 씨 자체로 보면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가 자라서 많은 새들이 깃들 일만큼

    커진다는 사실과 자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생명력을

    가진 씨는 땅에 떨어지고 수분과 산소가 여건을 만들어

    주기만 하면 반드시 싹이 나고 자라서

    새들의 안식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비록 작은 골고다 언덕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마침내 온 세상을 구원하고 모든 영혼을 품게 되는

    하나님의 큰사랑으로 비약됨을 예고하신 비유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씨가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에 뿌려 져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땅은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씨를 땅에 가져다 뿌려야 열매를 맺듯이,

    말씀을 받았으면 반드시 이 세상에 가지고 나가

    삶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는 반드시 삶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싹이 나지 못하는 말씀의

    은혜는 영혼이 병들지 않는 한  없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받은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삶으로 나타날뿐만 아니라,

    나침판으로서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빛이요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의 씨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 살려고

    할 때에 성령님은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자라도록 도우십니다.

    내가 그것을 인지하고 못하고를 떠나 주의 영은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도록 늘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까지라도 기도하고

    구할 때 주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도록 하십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 큰 가뭄이 온 적이 있습니다.

    온 국토가 갈라지고 국민의 마음이 타들어 가 한계선상에

    다달았을 때 전국의 교회들은 특별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약 한 시간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전 국토를 해갈 시켰습니다.

    다음날 신문에는 이렇게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어제 내린 비는 5조원 어치였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정하시면 단숨에 하늘에서

    50조원을 쏟아 부으실 수도 있으시고 뒤집어서

    5백 조원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베 지진 때 딱 3분 흔들었는데 좌우로 흔드신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흔드시는 바람에 천문학적 손실을 입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이보다 더 확실한 사실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39장 이하에 요셉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보 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왔는데,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이 나오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엘 갔는 데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노예로 팔리고 감옥엘 갔는데 형통하다니...

     

    그러나 요셉의 각론을 보면 분명 불통인데

    총론을 보면 형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런 과정들이 요셉에게는 성숙으로 가기 위한

    필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총리를 아무나 하겠습니까? 

    세상 저 밑바닥부터 체험케 합니다.  간수가 아닌

    같은 죄수 입장에서 다른 죄수들을 다스릴 수

    없으면 총리는 물 건너간 것이라는 것이죠..

     

    작은 바람에도 날리고 마는 겨자씨 한 알일지라도

    그 씨가 이 땅에 떨어질 때 거기서 큰 나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곧 신앙입니다.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자라고 성장해서

    주님처럼 모두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거목이

    된다는 진리에 익숙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성숙한 신앙이 승리를 낳습니다.

     

     

     

    마가복음 4:26-34  

    성장의승리! / Sieg der Re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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