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리

    하늘과 땅 2008. 7. 29. 14:41

     

     

     

     

     졸부 한 사람이 값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명화 한 점을
    구입해서 응접실 벽에 걸어놓았습니다.
    그는 그림을 쳐다 볼 때마다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흐뭇한 눈길은 그림이 아닌 그림 액자 밑에 붙어있는 가격표였습니다.
    그는 예술적 감각은 없으면서도 그것을 과시하기 위해 큰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가끔 청소를 해주기 위해 오는 가난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청소하기 위해 왔던 소녀는 응접실을 청소하다가 벽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소녀는 그후 부터
    청소를 하러 오기보다는 그 명화를 감상하기 위해 온 사람처럼 그림을 볼 때마다
    새롭게 감동을 받곤 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진정한 주인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소유주가 된 부자가 아니라 
    그 그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소유한 가난한 소녀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 뿐 아니라 심지어 믿는 자들까지도
    소유보다 소중한 것은 존재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고 있거나
    그 자체를 모르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기쁨으로 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달라질 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기쁨
    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오늘 본문은 당시의 결혼 문화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는 첫날밤을 치르게 됩니다. 신랑의 친구들은 
    신방 앞에서 보초 아닌 보초를 섭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면 신부는
    첫날 밤 치룬 요를 들고 방문을 나서면 처녀의 흔적을 확인한 신랑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파티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흔적이 없을 때에는 방문을 나오자 마자 돌에 맞아 죽습니다.
    이것을 안  신랑은 종종 자신의 신부에게서 처녀성을 확인할 수 없을 때
    자기의 몸을 찔러 흐르는 피를 요에 뭍혀 신부로 하여금 방문을
    나서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실을 모르는 신랑의 친구들은 피 묻은 요를 보면서
    기쁘게 잔치를 했다고 하는 데 그 장면을 보는 신랑의 몸은 고통스럽지만
    자기의 신부가 구원받은 모습을 보고 남들이 모르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고백한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고 신부는 처녀성을
    잃어버린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싫어버린바 된 신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주님은 몸의 상처 낼
    마음으로 이 세상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옥의 돌 맞아
    죽을 자리에서 건져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비유하면서 남들이 모르는 기쁨이 있다고
    본문에서 밝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영적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우리가 정결한 신부가 되어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게 된 것은 정작 싫어버린 바 되었던 신부 이스라엘을 위해 신랑이
    오셨건만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신랑되신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거역 덕(?) 때문입니다. 

     


    혼인잔치를 베풀어 놓고 초대했지만이런저런 핑게로 혼인잔치에 오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쳐두시고 길거리에 나가 아무나 불러 오라는 
    주인의 진노에 바로 이방인인 우리가 혼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없다고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마태11:11)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과연 세례 요한은 대단한 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런 극찬을 받았으니까요..그렇다면
    그가 어찌해서 그런 칭찬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신을 망가뜨려서라도 주님을 세워드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극치는 나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높이는데 있습니다.
    '그는 흥해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유재석씨는 상대방을 편하고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을 서숨치 않고 잘해 국민 MC라는 칭송을 받는다면서요.

     

    세례 요한은 자신이 잘되는 것보다 주님께서 속죄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구속 사역이 원만히 이루어져 가는 것 보는 것에
    더많은 기쁨의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자기의 기쁨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한 기쁨을 가진 자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은 이러한 기쁨이 충만할 뿐만 아니라 이런 마음으로 사는 일에
    익숙하다는 진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던 그의 제자들이 요한을 충동질을 합니다.
    '선생님, 전에는 그렇게도 열성적으로 우리를 따르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예수님에게로 갑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도 세례 요한은 말합니다. '하늘이 허락지 않으면 그런 일은 없다.
    나는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고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야 라는 것을 증거 해 주어야 할 자들이 바로 너희들이라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그느 인간적인 상실감을 영적인 기쁨으로 채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모든 일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기쁨이 충만했던 세례 요한을 가리켜 주님은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이 낳은 자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이가 없느니라"(마11:11)
     
    우리는 우리의 기쁨이 거듭나야 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쁨이 거듭난 사람!

    요3:22-30

     

     

    잘 보고가용~감사...

    반갑네요..저두 감사...^^

    저두 잘~ 보았슴당~ ^^*

    cherry 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