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리

    하늘과 땅 2009. 9. 19. 19:18

     

    등이 굽은 젊은 꼽추 한 사람이 돈 많은 상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프롬체라고 하는 그의 딸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아가씨, 부부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그런데 당신도 그걸 믿나요?",

    "당연히 믿으니까 그런 질문을 드린 겁니다.",

    "네에...",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몇 일전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댁처럼 예쁜 여인을 소개시켜

    주시면서, '이 여자는 네 부인이 될 사람이다.., 대신 그녀가 태어날 때 꼽추로 태어날 것이다.

    그래도 너는 이 여자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제가 꼽추가 될 터이니 그 여자는 온전한 여인으로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래 그럼 그렇게 해주마...'해서 제가 이렇게 곱추로 태어난 것입니다."


    프롬체는 다 듣고 난 다음 너무 감동한 나머지, "그 여자는 참으로 행복한 여자군요.

    혹시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아세요?"

    "알다 마다요, 바로 당신입니다"

    프롬체는 더 큰 감동을 받았고 당사자인 아브라함 멘델스죤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독일의

    음악가 멘델스죤의 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는 감미로운 음악이 되어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의 심히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느헤미야서에는 다섯 번에 걸쳐 "즐거워하는 소리"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깨달음과 앎에 대한 즐거운 소리입니다.

    8:12절에, 학사 에스라가 들려준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즐거워하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들은 말씀이 깨달아 졌기 때문입니다. 동양에,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진리에 대한 깨달음 신앙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성경에서 사용하는 비밀이란, 말하면 금방 알수 있는 감춤이 아닙니다. 말해도 잘 알 수 없는

    미스테리 같은 비밀입니다. 성령의 조명 없이는 허락되지 않는 비밀이며 진리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출발은 말씀을 듣고 성령의 조명을 통해 깨닫는 데 있으며 그 깨달음을 주기 위해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와 매체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 메시지를 전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기에 메신저의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즐거운 소리는 8:17절에 나타나는데, 에스라가 초막을 지으라 명하니 무리가

    다 초막을 지었는데, '여호수아 때부터 지금까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곧 불순종 속에 전적인 순종인 것입니다. 사장의 말이나 스승의 말이나 임금의 말을 불순종해도

    그 죄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절대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접한 선지자들이 전해주는

    은혜의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하는 것은 결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일이 특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질병이 이제 치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데 까지가 신앙입니다. 순종과 축복은 정비례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순종은 최우선의 가치입니다.

     

     

    세 번째 즐거운 소리는 12:27절로서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곽과 성전의 문을 새로 수축했다면, 학사

    에스라는 영적 성전을 재건한 인물입니다. 성과 성전만 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그것을 지키고

    유지할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꾸며진 겉만큼 내용이 알차게 채워졌을 때 그들은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은 외적인 충족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영적 충만에 있습니다.  

     

     

    네 번째 즐거운 소리는, 12:43절로서,"이 날에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했습니다. 무리들의 심히 즐거워하게 된 사실과 제사가

    맞물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심히 즐거운 마음을 주시자 그들은 곧이어 큰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가 커져야 삽니다. 커진 예배만큼 즐거운 소리도 커지는 것이 교회

    성장입니다.  

     

     

    좋은 예배가 좋은 성도를 만듭니다. 풍성한 예배가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초대교회가 주위의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주께서 날마다 믿는 자들을 더하게 하신 역사가 있기 전에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교제의 떡을 떼는 일이 넘쳤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즐거운

    소리가 가정과 성전의 담장을 넘었기에 부흥의 역사가 넘쳐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먼저 즐거운 소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밖으로 즐거운 소리가 터져 나가야 합니다.

     

     

    다섯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인하여 즐거워하였더라 했습니다.
    12:44절,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권위주의가 비교적 강했던 구약 시대에 기록한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거제물과 십일조를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을 섬기는...제사장..레위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와 사회가 목회자들로 인해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영적 공동체는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신령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진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공동체를 통하여 세상에 즐거운 소리를 많이 들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은 항상 즐거워합니다. 삶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기에 감사할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즐거워할 수 있는데까지가 신앙입니다.

     

     

    옛날에는 종종 왕궁에서 흘러나오는 풍악 소리가 백성들의 찌든 마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신령한 감사와 찬미와 즐거운 소리는

    세상에게 희망을 주고 영혼을 살리는 은혜의 복음이 됩니다.

    (유럽크리스챤신문 창간 8주년을 맞이하여 이러한 즐거운 소리를 멀리 멀리 전하는

    기독 언론의 최고의 주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설교요약: 금요기도회 (본문: 느헤미야 12 : 43)

    기사출처: 유럽크리스챤신문 : http://www.ekcn.eu/bbs/view.php?pid=&id=messag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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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에나 행위에 있어서 주님이 즐거워하는
    일들을 해야겠습니다.
    예배에 즐거움으로 참예하여야 겠습니다.
    에배를 기대하면서
    주일을 준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