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일상에 지친 친구들 쉬어 가는 곳, 시와 그림이 있는 곳 푸른 언덕에 누워보세요. 파란 하늘같이 쳐다봐요.

길상사와 김영한(자야 /子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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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이야기2/걷기 좋은 길

2021. 8. 19.

비가 살짝 내린 날에 길상사를 찾았다.

길상사는 조계종 송광사(전라남도 순천)의 말사다.

 

연꽃잎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꽃은 주로 7-8월에 핀다.

 

백석과 김영한의 애절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유명한 요정

대원각 요정이었다.

 

그 주인의 호는 자야라고 하는 김영한 여사였다.

 

만나지도 못하면서 젊은 날 사랑하던 이를 일생

동안 마음에 안고 살았다.

 

대원각은 그때 시가로 1,000억 원이었으니 지금 계산으로는 상상도 안 가는 금액이다.

법정 스님에게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이후에 사찰이 되었다.

기자가 큰 돈을 기증하며 아깝지 않냐고 묻자

"1,000억이 그사람(시인 백석)시 한 줄만 못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야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을 받았다.

40을 넘어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일생 모은 재산을 모두 내놓고 맨손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내에 그녀의 재가 뿌려졌다.

 

일생 동안 사랑하는 백석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제정하기 위해서 2억을 내놓았다.

 

한 많은 인생, 가난 속에 때어나 16살 때에 팔려가다

싶이 해서 만난 남편은 자살로 세상을 뜨고

마지못해 기생이 되었다.

 

명문가였던 백석 집안의 반대로 인연을 맺을 수 없음을 알고 헤어진다.

백석은 부모가 짝지어준 여자와 결혼을 한다.

 

만주에 가서 함께 살자는 백석의 말을 뿌리친다.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채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한지에 써서 남기고 월북한다.

 

해방된 조국의 기쁨도 잠시 또 나라는 두 동강이나고

애인 백석은 만주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이별

한 평생을 젊었을 때 한번 맺은 인연을 변치 않고

 

죽는 날까지 백석을 사랑한 자야는 많은 사람들

가슴에 감동을 주었다.

 

여기는 법정 스님께서 거처하신 곳이다.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길상사의 이름은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에서 따서 길상사로 명명했다.

 

그래서 대웅전이라고 하지 않고 김영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극락전이라고 부른다.

 

백석이 죽도록 보고 싶었던 그녀는 줄담배를 피우고

마침네 폐암이 발병해서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내 사랑 백석 / 1955년 문학동네>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 창작과 비평>

을 출간했다.

 

죽기 전에 그녀는 목욕을 재개하고 절에서 참배하고

하룻밤을 길상헌에서 자고 임종한다.

 

84살의 나이에 첫사랑을 가슴에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

자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1912-1996)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홀로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을 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 : 오두막집의 방언

 

*출출이 : 뱁새의 방언

 

*고조곤히 : 소리 없이, 고요히

 

정본 백석 시집 (양장본)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길상사 마당에 서니 시가 마음에 울림을 준다.

 

비가 갠 길상사 하늘이 너무 맑아서 슬프다.

길상사를 뒤로하고 고갯길을 쓸쓸히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