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디의 말보다 한 송이 장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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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시창작교실

2020. 2. 25.

                    

                 백마디의 말보다 한 송이 장미가  / 정호승

      한번은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가다가 어떤 젊은 남녀를 보았습니다.
      여학생이 개찰구 표를 넣은 다음 남학생을 쳐다보면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남학생이 "선영아!" 하고 불렀어요.
      그러자 여학생은 "서로 인사해놓고 왜 불러?"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그녀는 남학생 쪽으로 갔습니다.
      이윽고 그 남학생은 감추어 놓았던 한 송이의 장미꽃을 내밀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눈만 쳐다보면서 주었더니,
      갑자기 선영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막 피어나면서 아무 말 없이 장미꽃을 받아든 채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남학생은 기분이 좋은지 입이 벌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남자가 선영이한테 장미꽃을 전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했을 때와 말 없이 장미꽃을 건네줬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을 했을 때는 산문의 세계고 말없이 장미꽃을 건네줬을 때는 운문의 세계, 즉 시의 세계입니다.
      그 장미꽃을 건네주는 행위 자체는 은유(隱喩)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것에 대한 은유죠.
      그리고 그 장미는 하나의 은유물입니다. 그런 은유의 행위를 여러분들의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유의 세계이고 시의 바탕이 되는 세계입니다. 건물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와 같은 것이 시입니다.
      여름날에 쏟아지는 소나기가 바로 시입니다. 만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창이 하나도 없는 곳에 있으면서,
      바닷가에 있는 건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바닷가에 있을 때,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여러분 모두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십시오.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사물이 말을 하게 할 때 시심은 무르익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의 꽃은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