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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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말씀 묵상

2020. 5. 1.

 

겸손과 관용의 교훈

(누가 크니이까?)

 

막 9:33~9:50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 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막 9: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 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막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 9:36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막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막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막 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막 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막 9:41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막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해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던지 움이 나으리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4 (없음)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6 (없음)

막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마침내 한 제자가 감히 예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여쭈었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주위에 모으시고 그들에게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는 제자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숙성과 감명적인 것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식별하신 바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 무지가 그들의 다툼의 표면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참된 원인은 더 깊숙한 곳에 있었다. 왕국의 성질을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얼마 동안은 저희의 분쟁을 진정시킬 수는 있었을 것이나 근본적 원인을 움직이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완전한 지식을 얻은 후였을지라도 우월성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그 다툼은 재연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후에 교회에는 재난이 닥쳐왔을 것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를 탐내는 분쟁은 하늘에서 대 쟁투를 발발시키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오시게 하여 죽게 한 바로 그 정신의 발로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사 66:1, 2) 리라.

구주의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그 대답 중에 특별히 지적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요한은 한 경우를 들어서 자기의 행동이 옳았었는지 그 여부를 질문하게 되었다. 그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예수께 그 일을 공개하였다. 그는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사람을 제지함으로써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주님의 명예를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것을 위하여 시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저희 잘못을 시인하고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신 예수의 책망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저희는 그리스도와 친숙하다는 것을 보이는 자들은 아무도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업에 깊은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마음 문을 연 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동기를 파악할 수 없었던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낙심시키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였다. 예수께서 친히 육체로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고 저희 수중에 사업이 맡겨졌을 때 그들은 편협하고 배타적인 정신에 빠지지 말고 저희 주께서 보이신 바와 같은 원대한 동정을 나타내야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성공에 저들이 필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때 주께서는 그들을 제쳐 놓으신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그들이 사업에서 제거된다고 하여 그 사업이 중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큰 권능을 가지고 진전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끌고 계셨던 한 사람에 대하여 한 제자가 보인 가혹함과 냉정함-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던 자를 요한이 금한 것과 같은 행동은 그 발을 돌이키게 하여 원수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그 영혼을 잃어버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던지 움이 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45)고 부언하셨다.

왜 그 이상 더 강렬할 수 없는 이토록 중대한 말씀을 하셨을까? 그 까닭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해”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저희의 동료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하늘의 엄위(嚴威) 하신 분께서 보이신 것보다 관심을 덜 보여서야 되겠는가? 영혼마다 무한한 값을 치르고 산 바 되었으므로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게 하여 그를 위한 구주의 사랑과 치욕과 고뇌가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죄를 범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실족 캐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해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마 18:7)다. 사단의 충동을 받은 세상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반대하고, 그들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취하고도 여전히 이 일을 행하는 것이 드러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을 섬기노라 하면서 당신의 품성을 그릇 나타내는 자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신다. 따라서 무리들은 기만을 당하고 거짓된 길로 인도된다.

 

 

의문(儀文)의 제사에서는 제물마다에 소금을 쳤다. 향을 피우는 것과 같이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만이 그제사를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관습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롬 12:1)고 자 하는 자들은 다 구원하시는 소금인 우리 구주의 의를 받아야 한다. 그때에야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소금이 방부(防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 중에서 죄악을 방지한다(마 5:13). 그러나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즉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 경건의 모양만 있다면 선을 위한 능력은 조금도 없게 된다. 그런 생애는 세상에 구원하는 감화를 끼칠 수 없다. 예수께서는 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그대의 정력과 능력은 그대가 나의 영을 받는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다.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려면 그대는 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경쟁심, 이기심, 높은 지위에 대한 욕심 등이 사라질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부를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부를 구하는 그런 사랑을 가질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에 그 눈을 고정시키도록 하라. 그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를 받게 된다. 그의 공포는 기쁨으로, 의심은 소망으로 변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신다.

 

*35 첫째가 되고자 하면 :

여기서 예수는 문제의 핵심 -열두 제자가 저마다 주님이 머지않아 건설하리라고 기대하는 왕국에서 첫째 되길 바랐다.(마 18:1)

진정한 위대함은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는 데 있다. 사람이 위대하게 대려고 하는 순간 그 인물의 작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섬기는 자 :헬라어 디아코노스(diakonos) 이 단어에서 deacon "집사"(집사)이란 영어가 유래한다. (빌 1:1, 딤 전 3:8,12) 디아코노스는 다른 사람의 필요와 결핍을 보살펴 주는 사람으로서 단어는 자발적으로 봉사를 의미하나 "종"일 수도 자유인일 수도 있다.

 

*불로서 소금을 치듯

고대 성소 봉사에서 모든 제물에 소금을 뿌렸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라는 말은 만일

제자들이 언약의 소금(레 2:13)을 가졌더라면, 그것이 하늘 왕국에서 누가 크냐라는 토론을 하도록 한심스러운 성향을 제지했을 것이다.

 

*화목하라

강론의 적절한 절정

그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의 논쟁을 삼가라는 훈계이다.

시기와 경쟁의식에 대한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