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오해 / 마 경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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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명시

2021. 4. 22.

그림 : 박 영 숙

 

해바라기의 오해 / 마 경 덕

가을이 해체되었다 이 죽음은 합법적이다

내장이 드러난 콩밭과 목이 잘린 수수밭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 곁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꽃이어서, 해바라기는 다행이었다

 

그림 : 박 영 숙

 

이 작은 오해가 해바라기를 무럭무럭 키웠다

폭염을 삼킨 머리는 칼을 쓴 듯 무거워도,

함께 사진을 찍으며

사람보다 더 해맑게 웃었다 사방을 물들인 노랑노랑노랑

노랑은 유쾌하고 명랑한 색

 

그림 : 박 영 숙

 

까맣게 영근 늦가을 볕이 누런 해바라기 밭을 들락거리고

기름을 줄줄 흘리는 해바라기들

 

그림 : 박 영 숙

 

고개 너머 주인이

목을 칠 날짜를 받아놓고 숫돌에 낯을 가는 동안에도

발목에 차꼬를 매달고 익어가는

죄목도 모르는 수인들

찬 바람이 불면 참수당할 제 머리를 단단히 붙잡고

서 있다

 

마경덕 /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