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일상에 지친 친구들 쉬어 가는 곳, 시와 그림이 있는 곳 푸른 언덕에 누워보세요. 파란 하늘같이 쳐다봐요.

길 위에서 / 나 희 덕

댓글 27

문학이야기/명시

2021. 5. 18.

그림 : 정 진 경

길 위에서 / 나 희 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나희덕 시집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 비평사>

 

인천 강화군 교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