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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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명시 벽돌 쌓기 / 이수명

그림 / 이고르 베르디쉐프 (러시아) ​ ​ ​ 벽돌 쌓기 / 이수명 ​ ​ ​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벽돌을 쌓는다 한장 한장 눈먼 벽돌을 잠자는 벽돌을 끝없이 높이 쌓는다. 내가 잠들 때까지 내가 고함쳐 벽돌들을 와르르 깨워도 깨진 채 벽돌들이 다시 무거운 잠에 빠지고 나는 그 위에서 고요해질 때까지 벽돌처럼 붉은 침묵의 핏덩이가 될 때까지 그 핏덩이로 굳어버릴 때까지 나는 쌓는다. 비 오는 날이면 죽은 자의 이빨같이 움직이지 않는 벽돌들을 나란히 차곡차곡 가슴속에 쌓는다. 빗물이 스미지 않게 빗물이 나를 맛보지 않게 눈먼 벽돌들을 ​ ​ ​ ​ 이수명 시집 /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 ​ ​ ​

27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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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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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명시 내가 숲에 간다는 것은 / 김율도

그림 / 사영희 ​ ​ ​ 내가 숲에 간다는 것은 / 김율도 ​ ​ 내가 숲에 간다는 것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야생동물을 다 감당하는 것이다 ​ 내가 너에게 간다는 것은 언제 화낼지 모르는 너를 감당하는 것이다 ​ 내가 숲에 간다는 것은 숲의 벌레와 해충이라 여기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 내가 너에게 간다는 것은 너의 허물과 단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사람들이 해충이라 여기는 벌레도 내 몸에 오래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 너의 치명적인 결점도 나에게 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 내가 바다에 간다는 것은 빠질지 모르는 위험을 알지만 물과 내가 하나 되어 내가 물 속 깊이 가라앉아 내가 영원히 물이 되어도 좋다는 것이다 ​ ​ ​ ​ 시집 / 가끔은 위로받..

25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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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명시 현상 수배 / 이수명

그림 / 서정철 ​ ​ ​ ​ 현상 수배 / 이수명 ​ ​ ​ 그는 현상 수배범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넓은 거리의 게시판에 걸려 있다. ​ 사진 속에서 그는 웃고 있다. 전단지가 햇빛에 누렇게 바래고, 빗물에 얼룩이 져도, 이 손이 뜯고 저 손이 찢어도 웃고 있다. 그는 산산조각나고 있다. 어느 날 한 쪽 눈이 없어지고, 또 어느 날 한 쪽 귀가 사라졌다. 남은 형체도 검은 펜으로 뭉개지고 있다. 그래도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위험 인물이다. 그가 저지른 위험한 일들이 어디선가 또 저질러지고 있다. 어디에서? 그는 어디에 있는가? ​ 사진 속에서 그는 웃고 있다. 웃으며 이쪽을 넘보고 있다. 그도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위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현상 수배한다. ​ ​ ​ 이수명 시집 /..

24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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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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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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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명시 ​어느 봄날, 백목련 나무 밑에서 / 이경임

그림 / 이연숙 ​ ​ ​ 어느 봄날, 백목련 나무 밑에서 / 이경임 ​ ​ ​ 꽃들은 허공에서 진다 어떤 꽃들은 허공을 만지지 못하지만 이 백목련은 합장을 하며 기도하듯 핀다 ​ 백목련은 하얀 거품이다 백목련은 하얀 거품이 아니다 백목련은 검은 호수가 아니다 ​ 목련은 높은 은신처에 숨어 있다 목련이 늙으면 땅으로 자꾸만 시선이 간다 ​ 목련은 한숨이거나 도취이거나 저항이다 목련은 허공에서 땅까지 영겁 회귀하는 물질이다 ​ 나는 목련꽃에 담긴 너의 강박관념이다 너는 시들어 땅바닥에 뒹굴기 때문에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 ​ 시집 /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 ​ ​ *꾸준히 철학과 심리학 등의 인문학 전반에 대한 사색을 계속했으며 그 흔적이 녹아든 시집 1998년 이후 두번째 펴낸 펴낸 신작 시집..

21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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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명시 그래서 그랬다 / 임솔아

그림 / 안호범 ​ ​ ​ ​ 그래서 그랬다 / 임솔아 ​ ​ 살구꽃은 무섭다. 하루 아침에 새까매진다. 가로등 아래서 살점처럼 시뻘겠는데.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보다 무섭다. 유리컵 속에 가둔 말벌이 죽지는 않고 죽어만 간다. ​ 잠그지 않은 가스밸브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내가 무섭다. 아무도 없어서 무섭고 누군가 있을까 봐 더 무섭다. ​ 엄마한테 할 말 없니 엄마의 그 말이 내 말문을 닫는다. ​ 할 말이 없어서 무섭고 할 말이 생길까 봐 더 무섭다. ​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질 때와 같이 무서웠던 것들이 시원하게 풀려나간다. 눈물도 안 나던 순간에 눈물이 갑자기 끝나는 순간에 무섭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 한 번도 믿어보질 못해서 쉽게 믿어버릴까 봐서 ​ 술 취한 친구의 눈빛과 술 안 취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