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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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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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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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김경희 사다리집 풍경 / 임승훈 허공에 걸린 밧줄에 여덟 개의 발이 꺼꾸로 매달려 수없는 곡예를 반복하는 무공해 건축 기법 수학 공식은 잊지 않았는지 팔각형 모서리마다 줄을 걸고 자로 잰 듯 가지런하게 집을 짓는 건축사 모진 태풍에도 까딱없는 사다리 집 짓고 외줄타기하는 곡예사 작은 녀석이 맹랑하다 이슬 내린 보금자리에 아침 햇살이 내려왔다가 하얀 궁전 위에 핀 이슬 꽃이 되었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 숨어있는 모습이 밉지만 성실하게 사는 징그럽지만 귀여운 아이 임승훈 시집 / 꼭, 지켜야 할 일
23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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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이영애 타이탄 아룸 / 박순 칠 년에 한 번씩 꽃피우는 타이탄 아룸 몸에서는 36도 열을 발산한다 동물 썪는 냄새가 난다 저 꽃, 칠 년 기다림으로 단 이틀을 견디다 점 하나로 스러져 갈 뿐이다 꽃잎보다 더 큰 기둥만 한 중심을 세우기 위해 시체 냄새를 피웠으리라 어찌 좋은 냄새만 갖고 살 수 있을까 당신과 타협하지 못한 가슴은 썩어 문드러진다 가슴앓이는 악취를 내며 입과 코를 움켜쥐게 한다 누군가는 나의 냄새를 좋아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튕겨져 나오려는 시간 속에 중심을 세우려 애를 쓴다 *타이탄 아룸 : 적도 부근의 열대우림에 자생, 시체꽃으로 불림 박순 시집 / 페이드 인 (fade-in)
22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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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심은구 여승 / 백석 여승은 합장(合掌)을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공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집 / 백석 시집 *일제 강점기 어려운 현실 배경으로 한 여인이 여승이 되기까지의 삶, 민족의 비극적 현실 반영 *가지취의 내음새 (속세와의 단절 / 후각적 심상) *금덤판 (금광/ 평안도 방언)
21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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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손기옥 서글픈 바람 / 원태연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그덕 문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두 잔의 차를 시켜놓고 막연히 앞 잔을 쳐다본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속 깊이 인사말을 준비하고 그 말을 반복한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며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서는 발길 초라한 망설임으로 추억만이 남아 있는 그 찻집의 문을 돌아다본다. 원태연시집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20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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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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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김향희 가끔씩은 흔들려보는 거야 / 박성철 가끔씩은 흔들려보는 거야 흐르는 눈물을 애써 막을 필요는 없어 그냥 내 슬픔을 보여주는 거야 자신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어 물이 고이면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작은 상심이 절망이 될 때까지 쌓아둘 필요는 없어 상심이 커져가 그것이 넘쳐날 땐 스스로 비울 수 있는 힘도 필요한 거야 삶이 흔들리는 건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다는 건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가끔씩 흔들려보는 거야 하지만 허물어지면 안 돼 지금 내게 기쁨이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어 늦게 찾아온 기쁨은 그만큼 늦게 떠나니까 시집 / 눈물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