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2021년 12월
25
그림 / 임 노 식 원룸 / 김 소 연 창문을 열어두면 앞집 가게 옥외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내 방까지 닿는다 주워 온 돌멩이에서 한 마을의 지도를 읽는다 밑줄 긋지 않고 한 권 책을 통과한다 너무 많은 생각에 가만히 골몰하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엿듣는 느낌이 온다 꿈이 끝나야 슬그머니 잠에서 빠져나오는 날들 꿈과 생의 틈새에 누워 미워하던 것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내 곁에 왔고 내 곁을 떠나간다 가만히 있기만 하여도 용서가 구름처럼 흘러간다 내일의 날씨가 되어간다 빈방에 옥수수처럼 누워서 김소연 시집 / 수학자의 아침
21 2021년 07월
21
그림 / 이 경 선 왜목바다 / 박 영 대 푸른끼라고는 없는 저 갯벌 하나 키우기 위해 파도는 얼마나 많은 기저귀를 빨아댔는지 간간하게 절여진 구름 사이로 나이 든 바다가 힘들어 하는 걸 보면 뜨고 지는 피곤에 몸져 누운 뼈마디 쑤셔 그렁그렁 붉게 앓고 있다 삼백예순날 때 맞춰 끼니상 차려주는 아침해를 오늘 하루만 알아주는 생일날 늙수레한 왜목바다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총장 *아태문인협회 지도위원 *한국신문예문학회 자문위원 *서울미래예술협회 수석이사
14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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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 계 희 어머니 / 오 세 영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네 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저녁 홀로 등불을 켜 드는,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 오세영 시집 / 시는 나에게 살라고 한다
1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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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김 정 수 강물로 그리는 새벽 별 / 이 효 새벽 창가에 앉아 푸른 강물에 그림을 그립니다 흔들리는 나뭇잎으로 시를 쓰듯 절재된 마음을 그립니다 아주 오랜 세월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혼절한 사랑 구름과 눈물방울 비벼서 붉은 나룻배를 그립니다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인연 조용히 떠나보냅니다 어차피 인생이 내가 그리는 한 점에 그림이라면 이제는 슬픈 강물이 되지 않으렵니다 창가에 앉아있는 소녀는 세월을 삼키고 오늘도 푸른 강물에 마음을 그립니다 휑한 마음, 새벽 별 하나 안고 홀로 걸어갑니다. 사진 / 청송 주산지
0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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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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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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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21년 03월
01
그림 : 김 복 동 배를 매며 / 장 석 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개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시집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배를 매는 것에 빗대여서 표현한 작품이다. *장석남 약력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