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한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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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역사 속 오늘 : 1986년 12월 16~18일] 소련해체의 전조, 알마-아타의 1986년 12월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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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유목민 이야기

2021. 12. 22.



소련해체의 전조, 알마-아타의 1986년 12월 시위

 


<1986년 12월 16-18일, 소련 공산당의 결정에 반대하는 최초의 민족주의 대중시위가 알마-아타에서 일어났다>

  오늘(18일)은 카자흐스탄 독립기념일(16일)을 기념하는 4일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현지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눈에 뜨이는 특별한 뉴스는 올라와 있질 않다. 
  연말연시를 밝힐 신년 트리가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에서 오늘(19일) 저녁 7시에 공식 점등된다는 소식과 코로나19관련 소식이 포털의 메인 뉴스에 올라와 있고, 그 아래에는 잔잔한 뉴스들이 올라와 있다. 카자흐스탄 전 대선후보였던 톨레타이 라함베코프의 재혼소식, 20억 텡게 금융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범인인 무다라반 캐피탈 대표와 공범의 구속소식 정도이다. 
  이런 뉴스들속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토카예프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코멘트.
  토카예프대통령은 "35년 전 우리 청년들은 모스크바 중심주의에 반대했습니다. 1986년 12월 시위는 자유와 주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카자흐스탄 독립의 선구자가 된 12월 시위 참가자들의 영웅심은 우리 건국의 역사에 영원히 새겨집니다”고 썼다.
  이 글은 독립기념일을 맞아 '12월 시위'를 언급하면서 카자흐스탄의 독립국으로써의 국가적 위상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보인다. (최근, 푸틴이 언급한 소비에트 연방(러시아연방 이라고 동일시 여김)의 해체로 인해 영토의 1/4을 상실하였고 러시아인들이 서로 다른 국경선(국가)에 막혀 오갈 수 없는 상태에 놓이는 역사적 비극이 발생했다는 말과 대비된다.)  
  대통령이 언급한 12월 시위는 1986년 12월 17-18일에 알마-아타(지금의 알마티)에서 당시 모스크바 당국이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당서기장이었던 꾸나예프를 부정부패 등의 이유를 들어 해임하고 그 후임으로 유대계 러시아인 콜빈을 카자흐공화국 당서기장으로 임명하자 이에 반대하여 일어난 카자흐인들의 민족적 집단행동이었다.
  주로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그들의 요구사항은 콜빈 임명을 철회하고 카자흐민족의 대표자를 공화국 당서기장에 임명하라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시위는 기존 정부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고, 소련 지도부는 무력으로 대응했다. 평화로운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명령에 따라 비밀 작전 계획 "Blizzard-86"이 만들어졌다.
  1986년 12월 사건 동안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8,500명이 구금되었고 1,72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99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 중 2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3명은 강제 치료를 위해 정신 병원에 보내졌다.
  알마티의 시내 거리중 하나인 젤톡산 거리에는 12월 시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추진 후 일어난 소련 최초의 민족적 저항 시위였던 이날 사건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내 다른 공화국에서 일어난 민족 분규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고르바초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개혁개방 정책의 좌절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대표되는 사회개혁과 경제시스템의 대수술 조치는 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가 싶더니 오히려 소련의 해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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