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유머 3(밥을 먹듯 책을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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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간 책(冊)

2014. 4. 12.

한국인의 유머 3 / 임유진 엮음 / 미래문화사

    

              

서양의 샘이 정수가 된 수돗물이라면 동양의 것은 맑은 시냇물로 서양의 것보다 훨씬 깊고 순수한 것입니다. 동양의 고전은 번뇌의 티끌을 털어 버리는 한 방식으로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어내는 철학서로서 우리의 삶을 움직여 왔습니다.

 

밥을 먹듯 책을 읽어야

 

조선 인조 때 학자 조위한이 홍문관에서 숙직할 때의 일이다. 한 유생이 책을 읽다가 마저 마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책을 내던지며 푸념을 했다. “책을 덮기만 하면 방금 읽은 것도 머리 속에서 달아나 버리니, 이래가지고서야 책을 읽어 뭣 한담.”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조위한이 말했다. “그것은 사람이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밥이 항상 뱃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삭아서 똥이 되어 빠져 나가고 그 정기만 남아서 신체를 윤택하게 하는 이치와 마찬가지지.

 

따라서 책을 읽고 당장은 그 내용을 잊어버린다 해도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세. 책을 읽음으로써 무엇인가 저절로 진전되는 것이 있는 법이야. 그러니 잘 잊어버린다고 해서 스스로 책 읽기를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책도 마음의 양식이니 그치지 말고 읽어야 하는 것이라네.”

 

예술가의 아들 딸들

 

예술가의 친한 친구가 찾아와서 그림을 구경하면서 그 집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다. “여보게 이 사람, 그림은 이렇게 아름답게 그릴 줄 알면서 왜 아들 딸들은 저 모양으로 밉게 낳았나?” 그러자 예술가가 말했다. “그림은 돈을 낳는 것이니까 아름답게 만들지마는 애들은 돈을 까먹는 것들이니까 밉게 낳을 수밖에!”

 

두만강 호랑이 김종서

 

“아니 이런 괘씸한 놈을 봤나. 손을 싹싹 빌어도 될까말까 한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하다니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이놈, 어디서 말대꾸를 하느냐? 냉큼 나가서 회초리를 꺾어가지고 오너라.”

 

김종서는 입을 꾹 다문 채 밖으로 나가 팔뚝만한 몽둥이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자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녀석아 회초리를 가져오랬지 누가 몽둥일 가져오랬냐?” “회초리로 때리면 아버지의 화가 안 풀리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김종서는 몽둥이를 내려놓고 얼른 엉덩이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몽둥이로 종아리를 때리지는 못하실 것이니까 엉덩이를 내민 것입니다.”

 

홍서봉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영의정을 지낸 홍서봉 어머님 유씨는 어려서 오빠가 공부하는 어깨 너머로 글을 배워 아는 것이 많았다. 일찍이 남편을 여윈 유씨는 아들의 교육 때문에 무척 고심스러웠다.

 

유씨는 아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자식이지만 외간 남자를 대하듯 앉은 사이에 병풍을 치고 따로 앉아 가르쳤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유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미는 아버지처럼 아이를 대할 때 엄격할 수 없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아이가 글을 잘 읽으면 나도 모르게 기쁜 얼굴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가 자칫하면 아이에게 자만심을 길러 줄 염려가 있으므로 내 얼굴을 못 보도록 가리는 것이랍니다.”

 

복 많은 막내딸

 

옛날에 한 부자가 딸만 일곱을 두었다. 그는 딸들에게 좋은 옷과 음식으로 정성들여 잘 길렀다. 그러던 어느날 부자가 딸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너희들은 지금 누구 복에 잘 먹고 잘 입는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막내딸은 “자기 복은 자기가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 복에 잘 지내는 것이지요. 돈 많은 아버지를 만난 것도 제 복이니까요.” 그 말에 화가 난 아버지 막내딸을 쫓아냈다.

 

막내딸을 울면서 쫓겨났지만 부지런히 일을 했으며 좋은 남편을 만나 잘살았다. 그래서 막내딸은 잔치를 하고 그 잔치에 아버지를 모셨다. 아버지는 막내딸을 보자 기뻐했다. 막내딸도 아버지를 만나 원망하는 기색 없이 한 없이 기뻐했다.

 

“네 말이 맞다. 제 복은 제가 타고난다는 네 말이 맞다. 거지 남편을 만나도 잘 되는 너를 보니 말이야.”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버지, 그렇지 않았어요.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복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예요. 부지런히 일하면 복이 오고 게으르면 복이 달아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집안 살림이 나라 살림

 

“잘못이 있는데 바로잡지 않으면 몸을 버리는 것이 나무가 썩어 못 쓰는 것보다 심한 것이나 같을 것이고, 잘못을 알고 빨리 고치면 재목을 다시 쓸 수 있는 것 같이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 말일세.

 

그 이치는 나라의 정사도 마찬가지야. 나라 일을 함에 있어 백성에게 피해 줄 줄을 알면서 차일피일 개혁을 늦추면 결국 백성이 못 살게 되고, 나아가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고치려고 한다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니 집안일이나 큰 나라 살림에 있어서나 어찌 때를 맞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암행어사 박문수

 

영조가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학문을 즐기고 슬기로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박문수와 같은 뛰어난 신하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어느 날 영조가 박문수를 보고 나무랐다. “그대는 다 좋은데 행동이 정숙하지 못한 게 흠이오.”

 

그러자 박문수가 놀라며 물었다. “그렇습니까? 어떤 점이 그러한지 예를 들어 주십시오.” “그대는 임금에게 이야기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데, 그게 정숙치 못한 행동이지 않소?” 그러자 박문수가 얼굴을 꼿꼿이 든 채 말했다.

 

그것은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전하께 말씀을 올릴 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아첨하는 간신배들이나 하는 짓입니다.”하고 되받자 영조가 큰소리로 웃으며 그의 말이 옳다고 했다.

 

토끼의 눈(동아일보 논설위원 오상원 우화집에서)

 

힘센 짐승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토끼들이 동물 임금을 찾아갔다. 너무 억울하여 매번 임금님을 찾아 갔지만 그러나 수문장이 임금님이 바쁘다고 만날 수 없다고 하였다. 수문장에게 동정이 어려 있었으나 역시 임금을 될 기회는 주지 않았다.

 

“그러면 저희들은 밤낮을 이토록 억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십니까?” “자고로 권세란 약한 자를 돌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자와만 결탁하고 어울리도록 되어 있다. 불쌍한 것들, 너희들이 그것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죄일 뿐이다.”

 

불쌍한 토끼들은 엉엉 울면서 물러 나왔다. 힘없고, 가엾은 토끼들의 눈은 그래서 오늘도 눈물이 마를 길이 없고 늘 눈물에 젖어 붉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