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말씀이 있는 쉼터/ㆍ글모음·예화

HanSaRang 2022. 5. 22. 00:04
(글모음) [20160207] ● 칼 힐티의 생애와 사상ㆍ[1833∼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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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시간 첼로찬양Cello Hymn 5 hour┃기도와 묵상을 돕는 첼로 찬양 모음 (첼로피아ㆍCellopia)┃(5:39:30)┃

● 칼 힐티의 생애와 사상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야고보서 3:1618)

16 이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 17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그 다음은 화평하며, 친절하고, 양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들로 가득하고, 편견이 없고, 위선이 없나니 18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의 화평 안에 뿌려진 것이니라. 』

『 16 이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 17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그 다음은 화평하며, 친절하고, 양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들로 가득하고, 편견이 없고, 위선이 없나니 18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의 화평 안에 뿌려진 것이니라. 』(야고보서 3:16∼18)

칼 힐티(Carl Hilty18331909)의 생애와 사상 』

    생활의 발견...

 힐티는 자신의 마음을 상세히 살펴 개인적인 수양에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사회문제도 언제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힐티는 그즈음 유럽에서 신장하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결국 사회주의는 질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다음 연세대학교 총장 백낙준 선생이 “공산주의라는 것은 결국 조직화된 질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대학의 철학이나 사회과학계열의 선생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자(Marxist)가 많았고 “사회주의는 질투이다.”라고 한 힐티는 대학과는 맞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힐티가 남긴 영향력이 컸던지라 스위스는 유럽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오늘날까지 거의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이며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풍요로운 국가입니다. 스위스에는 상속세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부모가 계속 세금을 내다가 죽었을 때 재산이 남아 있으면 “그런 건 모두 국가에 징수하여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질투심입니다.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할지라도 결국에는 질투심이라는 것을 힐티는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는 국제법의 중심지로, 힐티는 스위스를 대표해서 이곳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가 가 있었던 때는
일 전쟁(1904.2.81905.9.5)이 끝날 즈음인데 그때 “나라와 나라의 전쟁도 질투이다.”라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그 즈음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
카이저 빌헬름 2’(Wilhelm II, German Emperor1859~1941)라는 독일 황제였습니다. 독일 육군은 세계최강이며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1815~1898)가 만든 제국은 굳건하였지만 황제는 영국 같은 해군도 갖고 싶은 마음에 영국 해군에게 질투심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것이 1차 세계대전(World War I1914.7.281918.11.11)을 일으킨 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정치학자나 역사학자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지만 힐티는 이전부터 계속 “독일 황제의 질투심이 가는 곳에는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 말을 듣고 보면 매우 알기 쉬운 일입니다. 황제가 질투심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독일은 해군을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영국과 사이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점은 역사학자도 사회학자도 국제관계자 역시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 또 자신의 마음을 줄곧 지켜보고 있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힐티만이 잘라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말과 행동이 일치한 힐티의 생애...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는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므로 성경 대신 읽으면 잠이 잘 오리라는 용도로 읽혔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청년 교육의 현장에서 힐티는 거의 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세상에는 참고가 될 만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매우 훌륭한 말을 했지만 자신의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孔子B.C. 551∼B.C. 479)는논어와 같은 최고의 고전을 남겼지만 그 자신은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고 직업을 얻어도 삼일 안에 해고를 당해서 마지막까지 방랑을 하며 살았습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B.C. 470∼B.C. 399)도 매우 훌륭한 인물이지만 최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B.C. 7-2A.D. 30-33)는 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들은 굉장히 훌륭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 가치는 지금까지도 빛나지만 그 말을 한 그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말을 남기고 본인도 죽을 때까지 훌륭한 생활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손자(孫武손무B.C. 545∼B.C. 470손자(孫子)는 경칭이며, 한국에서는 이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음.)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손자의 장점은 전쟁에서 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손자는 전쟁에 대한 고전 중의 고전을 썼습니다. 훌륭한 책을 써도 전쟁에 지면 소용없겠지만 그 자신 역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힐티도 그렇습니다. 대대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풍요로운 중산계급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의사로 꽤 크게 성공해서 그 즈음 낡아서 아무도 사지 않던 성을 사서 꾸미고 그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 성의 산기슭에 저택이 있었지만 성도 사들여 그곳으로 옮겨가 살았습니다.
  힐티는 청년시절 그 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고 책을 읽으며 명상에 빠져 지냈던 것 같습니다. 힐티는 변호사로 성공해 그 후 베른 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스위스 군의 최고재판소 소장이 되었고 스위스를 대표해서 국제회의에 나가는 자격도 갖게 되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매우 평온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채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지냈으며, 만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제네바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를 받고 학자로서 마지막까지 영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만년의 힐티는 딸들과 제네바 호수 별장에서 살았습니다. 어느날 아침,
77세의 힐티는 언제나처럼 일을 마치고 산책을 하고 돌아온 후 딸에게 “조금 피곤하니 따뜻한 우유를 가져다주렴.”하고 말했습니다. 딸이 우유를 데워 가지고 와서 보니 힐티는 잠이 든 것처럼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평화론》이라는 그날 아침에 작성한 원고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힐티는 손자와 같은 인물로 자신이 했던 훌륭한 말과 함께 그 생애 또한 매우 성공적이었던 사람입니다.

    모범적인 어린시절...

 이 책에서 처음으로 힐티를 접한 독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힐티의 생애를 좀더 자세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칼 힐티(Carl Hilty)는 1833228일 스위스의 장크트갈렌(프랑스어로는 생갈이라고 합니다.) 주의 작은 도시 베르덴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요한 울리히 힐티’는 교양 있는 유명한 의사였는데, 안타깝게도 1858년 힐티가 25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칼리아스’는 킬 시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 재능이 풍부하며 신앙심이 깊은 현명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전기를 쓴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투명한 마음의 창문과 같이, 창을 통해 그녀의 고상한 정신이 은은히 비쳐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맑고 푸른 눈동자는 자애와 평화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부모의 인품이나 자질이 힐티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힐티의 신비적인 경향, 고상한 근면성, 순수한 사랑, 역경에 처했을 때 굽힐 줄 모르는 정신력, 쾌활함, 질박함, 풍부한 재능 등 그의 뛰어난 자질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거나 감화 받은 것입니다. 특히 그는 유년 시절 어머니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역시 태어나서 여섯 살이 되던 해까지가 그의 생애를 결정지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14세의 나이에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습니다.
  그는 또한 외할머니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프랑스 군 연대의 군의관이었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프랑스혁명 시대부터 나폴레옹 몰락시대까지의 전란의 고통을 온몸으로 버텨온 현실적이고도 훌륭한 인격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힐티는
6세에 킬의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는 최초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합니다. 즉, 그는 가난한 집 아이들과 사귀면서, 자기 몫에 만족하며 성실하고 근면한 빈곤한 가정의 생활 방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그의 생애를 걸쳐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약소한 계층에 대한 따뜻한 동정과 이해심을 길렀습니다.
  그는
11세에 김나지움(Gymnasium)에 입학해 주로 고전학을 공부하고, 영문학과 불문학도 틈틈이 배웠습니다. 이 무렵부터 힐티는 열렬한 학구파로 마지막 3, 4학년이 되어서는 밤 12시나 1시가 되기 전에는 결코 침대에 눕지 않았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해치지 않았던 것은 뛰어난 두뇌를 타고난 데다가 청년다운 건강함을 지니고 있던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산천의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으며 술과 담배를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전의 위대함과 강건함에 감화 받고, 고상한 독일문학을 연구하면서 정신력을 길렀기 때문이라고 힐티는 말합니다. 또한 이때의 경험으로 힐티는 뒷날 교양에 대해 논했을 때, 청년시절에 너무 일찍부터 신앙 서적의 영향을 받기 보다는 도리어 고전들을 읽고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키우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김나지움
7학년, 나이 18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에 입학해 법률학을 전공하였는데, 철학이나 역사 강의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큰 세력의 헤겔 철학’(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칸트(Immanuel Kant17241804)에 깊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는 훗날 칸트의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1781)을 가리켜 진정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는 단 한 권의 철학서라고 말합니다.(《행복론》1부)
  이 시기에는 그 역시 보통 쾌활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한 생활 속에서 술도 마시고 결투를 하기도 하면서 방학 중에는 국내 도보여행을 즐기며 견문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학생의 향락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고 법률 연구에 전념하면서 오로지 독서에만 파묻혀 지냈습니다. 그리하여
18544월, 22세의 나이로 학업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나아가 런던, 파리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존경받는 법률가ㆍ학자ㆍ정치가로...

 다음해 그는 킬 시로 돌아와 곧바로 변호사(율사律士)를 개업하고 18년간 줄곧 그 직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사회적인 의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어느 국가의 일반적인 도덕 상태는 그 나라 대다수의 법률가의 수준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HanSaRang 주. ━ 힐티의 통찰력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법조계를 본다면 대단히 수준낮은 단계임을 판단할 수 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판사들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뒤죽박죽이며, 형벌의 수준도 굉장히 느슨하고 범죄자들이 무시할 수준이다. 국가에 공권력이 주어진 이유는 질서있고 규모있게 국가를 운영하고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자들로부터 지켜내라고 주어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가가 아니다. 개발도상국가에서 겨우 한 발짝 앞에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도자들과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아직 초등학생 수준이며, 대단히 애통한 상황이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대한민국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직무에서 그가 주안점을 둔 것은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의 권리가 교활하고 부정한 사람들 손에 놀아나다가 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정당히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법의 본질에 대한 보다 높고, 올바른 견해를 가진 법률가, 일반대중보다 높은 도덕적 정신과 교양이 몸에 밴 법률가가 모든 나라에 셀 수 없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바쁜 업무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독서하고 공부에 매달리며 인격을 갈고 닦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첫째로는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또 불쌍한 사람들이나 공익단체를 위해서는 무보수나 아주 적은 보수로만 일하면서도 비도덕적인 사건은 일절 받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갖고 뛰어난 재능과 학식으로 성심성의껏 열심히 자신의 직무를 다한 그는 이윽고 킬 시에서 꽤 유명해졌으며 여러 사람에게서 신임과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매우 유능했으며 이해력과 기억력이 뛰어났으므로 서기나 사자생(寫字生
글씨를 베끼어 써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굼뜬 일처리와는 속도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를 만족시킨 단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때때로 그의 서류에 적힌 수려하고 명료한 필적을 보고 남몰래 그를 부러워했지만, 그 서기를 넘겨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그의 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힐티는
1857‘요한 게르트나’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힐티와 40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다음 남편보다 12년 일찍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이 얼마나 재덕을 겸비한 훌륭한 여성이었는지, 또 힐티가 얼마나 이 부인을 사랑하고 존경하였는지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내세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나의 반쪽이었던 단 한 명의 여성 이외에는 과거 지상에서 알던 그 누구와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절실히 재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가 나의 가장 좋은 본질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녀가 죽음으로서 이 본질은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또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믿는 용기를 얻고 여성 참정권운동에 온 힘을 다했던 것도 이 뛰어난 여성의 생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주원인이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힐티는 스위스 관습에 따라 일찍이 군대에 몸을 담고 죽기 전까지 이 지위에서 활동했습니다.
1856년 보병장교로 법에 관한 업무를 맡았고, 점차 승진하여 1892년에는 스위스 육군 재판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17년간 모범적인 용의주도함, 성실함으로 육군사법의 지도자로서 바쁘게 일에 몰두하여 모든 재판관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재직 중에는 마지막 3주를 제외하고는 단 한 시간의 휴가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바쁜 생활을 보내는 가운데에서도 독서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868년에는민주정치의 이론가와 이상가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스위스 민주정치의 개선에 대해 논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이 학계의 이목을 끌어 1873년에 수도 베른 대학의 정교수로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위스 국법을 강의했지만 나중에는 일반 국법학이나 국제법 강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의 학문의 불씨가 그 시대 상황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지 않는, 항상 은근히 타오르는 아궁이어야 하며, 그 불씨는 단순히 성장해 나가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비춰주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과학이나 기술, 직업상의 지식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본래의 존재의의에 따라 실제로 유익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학생들에게 대학(大學)적인 광범한 교양을 물려주고 시대의 문화 전체와 정신적 접촉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그 자신의 임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의 흔해 빠진 강의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학자라는 직업은 하늘이 주신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천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양심에서 생기는 용기가 필요하며, 원대한 근면과 강한 극기심을 갖고 스토아주의적인 또는 종교적인 인생관을 기본으로 삼아 세속적인 향락과 사회생활로부터 자기를 분리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더구나 학자다운 학자는 자기의 전문분야에만 외곬으로 파묻혀 다른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또 세속적인 마음에 학문을 장식용으로 과시하거나 단순히 화려한 강의로 지식의 부족함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학자는 반드시 한 시대의 스승의 표본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HanSaRang 주. ━ 대한민국의 대통령, 정치가들, 판사들, 군장교들, 대기업 수장들, 언론사들, 교수들, 선생들, 종교 지도자들, 인간 문화재들, 각 도시의 시장들,,, 지도자의 자리에 서 있는 자들의 수준들이 굉장히 저급하다. 첫번째 원인은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다면 당연히 지도자들의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대학 및 학자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그의 의견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의 행동의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교수의 직분과 교육가의 직분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미건조한 법률학적 재료조차 청년들에게 고상한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교재였습니다. 그는 타고난 총명함과 오랜 세월의 실무경험에서 얻은 풍부한 인간지식, 거기에 시대와 세속에서 초연함으로써 얻은 우수한 견식과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세상을 이끌었습니다. 또 깊은 학식, 동서고금의 문학에 걸친 박식한 지식, 어학에 대한 조예, 이 모든 것으로 청강자들을 경탄하게 만들었습니다. 본래의 법률가적인 명석한 이론에 천성적인 웅변력이 더해져 학생들은 넋을 잃고 강의에 빠져들었으며, 강의실은 언제나 만원이었다고 합니다.
  
1890년 힐티는 고향 선거구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09년에는 국제법의 대가로서 헤이그 국제중재재판소 스위스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이 평화회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회의는 굉장히 규모가 커서 둔중하므로 민활한 활동이 불가능하다. 영국과 독일 사이의 경제경쟁이나 일본과 미국 사이의 야심이나 세력의식의 대립에서 오는 깊은 틈새는 어떤 평화회의를 개최한다 해도 도저히 제거할 수 없다. 평화는 우선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개개인들 사이에서 성립되어야만 한다. 그러면서 점차 국민 사이에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절대 평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19091012일 힐티는 향년 7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베른으로 옮겨지고 국민들의 애도를 받으며 사랑하는 부인 곁에 묻혔습니다. 힐티의 묘비에는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구절이 라틴어로 새겨졌습니다.

    실천하는 자세로 쓴 힐티의 저작들...

 힐티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력을 유지했고 매우 부지런했습니다. 대학 강의도 아침 시간을 택해 겨울에는 8시, 여름에는 7시에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그의 75세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좋은 시간을 묻자 “아침 7시가 가장 좋다.”고 대답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극기심이 강하고 성실하며 규칙적으로 생활했으며 무익한 오락행위는 일절 삼가고 시간을 절약해 끊임없이 독서에 매달렸습니다. “오늘날처럼 양서를 싼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시대에,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이 최상의 쾌락을 제쳐두고, 생애의 단 한 시간이라 하더라도 헛되게 써버리고 정신적으로 무가치한 기분전환만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그는 양서를 골랐고 그것의 원전을 일정하게 정독해 나갔습니다. 특히 그리스
로마 고전을 좋아하고 스토아 철학 최고의 대표자로서 에픽테토스(Epictetus55135)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121180)를 애독했습니다. 특히 에픽테토스의 어록은 스스로 새롭게 번역하고 세상에 널리 추천했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행복론》1부, 에픽테토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가장 열심히 정독하고 깊은 감화를 받은 책은성경The Holy Bible이며, 그 다음으로 단테’, ‘타울러’, ‘스펄젼의 저작 등이었습니다. 프랑스어로는 많은 백과사전과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영어로는 칼라일이나 테니슨을 애독했습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과 정신적 교제를 했으며 현재 생존하는 사람보다도 수백 년 전에 살던 인물들을 더 깊이 이해했다. 내가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요한, 단테, 토마스 아 캠피스, 타울러, 크롬웰, 또 최근 사람은 칼라일, 블룸하르트, 부스 부인, 똘스또이다.”(《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1부) 그가 그토록 다방면에 걸친 활동과 봉사를 한 것도, 첫째는 이러한 다양한 독서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론 서재 안에 틀어박혀있기는커녕 오히려 실천가였습니다. 학자일 뿐 아니라 정치가였으며 역사가이기도 했습니다.
《스위스 연방정치에 관한 강의》(1875)에서는 스위스 건국 이래 이 나라를 지배해 온 다양한 정치사상을 소개하고, 가장 마지막에 장래의 올바른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1878년에 공개된《스위스에 관한 공개강연》은 스위스 연방성립의 특수적인 시기(1798년 프랑스 신공화국의 무력간섭시대부터 스위스국민의 저항에 대해 1803나폴레옹이 조정적 헌법을 공포하기에 이르는 시기)에 관한 획기적이며 새로운 연구였습니다. 그는 이 정치적 조건이야말로 과거의 스위스 정치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 국가는 그 이상을 외국에서 빌려와서는 안 된다는 것, 또 추상적인 사변으로 그것을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의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 연구는 역사가로서의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만든 명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저술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위스 연방공화국 정치연감》입니다. 1886년 이후 매년 그의 편집 아래 규칙적으로 발행된 6700쪽 가량의 광범위하고도 정밀한 연보입니다. 이것은 국가에서 어떠한 원조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의 국민적 사업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정치, 법률, 사회문제는 물론 종교, 철학, 문학, 예술 등 사회 및 문화 각 부문에 걸친 연구보고이자 독특한 비평이었으며 대부분의 집필이 그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또 대학교수와 육군법무관의 공직 외에 여러 종류의 공익사업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성 참정권운동에 참가하여 일반 여성문제에도 관여하고, 나아가 부녀자매매방지를 위해 싸우고 논문을 쓰면서(
《백인노예매매》)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였습니다. 또 자주 금연의 필요성을 설파해 (《금연운동에 대한 대학생의 사명》,《금연운동에서의 주된 장애에 대하여》), 1908년 스위스 국회 대다수의 압생트(absinth(e), absentee) 금주령을 가결한 것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는 또 구세군에 깊은 애정을 품었으며, 이 운동에 대한 세상의 조롱과 박해에 대항해 공공연히 이것을 변호하고 (《최선의 길》), 이를 위해 여러 모로 애썼습니다.
  힐티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스위스 성자, 현대의 예언자로 널리 추앙받게 된 것은 주로 그의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저작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힌 것은
《행복론》(제3권, 18911899)이었으며, 이것은 일찍이 프러시아, 프랑스, 영국 외 수개 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외《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제2권, 19011919),《서간집》(1903),《신(新) 서간집》(1906┃교육의 기술, 우정, 단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도래하는가 ─ 정의인가 동정인가, 불행에 있어서의 행복, 부인의 찬부론, 보다 강한 기독교, 낙원 등의 주제를 다룬 논문집),《독서와 연설》(1895),《신경쇠약에 대하여》(1897),《병든 혼》(1907) ─ [모두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의한 영(spirit)과 혼(soul)의 평화와 강건함을 장려하고 있으며, 그것과 병행하여 주로 섭생적인 생활법을 설명한 특색 있는 요양서],《영원한 생명》(1908),《힘의 비밀》(1909),《그리스도의 복음》(1910) 등이 주요저서입니다.
  그 외에도 정치적, 법률적 또는 사회적 문제를 매우 다방면에 걸쳐 다루고 있는 서적이나 논문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근본은 모두 일관적으로 기독교의 신앙에 바탕을 둔 이상주의적, 도덕주의적, 사회개선주의적인 색채가 깊이 흐르고 있습니다.

    힐티의 깨달음...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저술을 쓴 것은 비교적 말년의 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매진해온 독서로 기른 깊은 학식, 풍부한 인간지식, 점점 깊고 확고해진 신앙, 그 깊고도 높은, 그리고 건전하고 원숙한 사상을 힐티는 일절 학문적으로 연결 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필식으로 자유롭고 간결하며 시원스러운 필치로 힘차게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힐티 저서의 어느 부분, 어떤 책,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우리는 명석하고 단순하게 결연한 논의를 하고 있는 탁월한 사상가와 만나게 된다.”고 케벨 박사는《속 소품집》에서 말합니다. 그의 사상은 물론 단순한 연구나 사색의 성과가 아니라 타고난 지혜로움과 성실한 체험에 의해 그의 전인격이 직접 분출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설명과 주장은 그대로 그의 행위이며, 생활이고 그 사이에는 한 치의 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저서는 모두 확신과 진실로 가득차 강렬하게 독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사교나 오락 등은 모두 단념하고
시간을 얻는 기술을 연구했으며, 전공 공부 이외에는 독서와 사색에 열중하고 내적 생활의 타개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리하여 그의 진리를 향한 열성과 노력이 드디어 열매를 맺을 때가 찾아왔습니다. F. 제바스’의 저서《칼 힐티》에 따르면 힐티는 1863년 무렵 중대한 신앙심의 깨달음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866년의 일기에서 힐티는 예수 그리스도(Lord Jesus Christ)와 그의 가르침에서 반가운 믿음을 발견했다.”고 했으며, 이윽고 새 생명으로 소생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의 정신적 발전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듭니다.
  힐티는 그의 전문분야보다도 그의 인생론적
종교적 저술에 의해 많은 독자에게 친숙해졌습니다. 그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서 그의 저서 곳곳에 풍부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혜는 날카롭지만, 냉철하지만은 않으며 도리어 사랑과 선의에 차 있습니다. 세속적인 얕은 현명함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고상한 혼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그의 말은 얼핏 보기에 일상적인 비근한 지혜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확고한 신앙의 깊이에서 솟아나온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젊은 시절의 그는 그 왕성한 진리 탐구심으로 많은 책을 탐독했습니다. 철학
문학종교역사, 나중에는 특히 기독교 신학이나 신앙서 등 많은 것들을 읽었으나 그의 혼의 목마름을 축여 주지는 못했습니다. 얼핏 보기에 심원하고 위대한 것 같은 철학이론도 “생(삶)과 사(죽음)의 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하는 저울에 얹어 놓으면 허무하게 흔들려 떨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이렇게 먼 길을 찾아다닌 끝에 힐티는 30여 세가 된 무렵 진리의 샘에 당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사는 기쁨이었습니다. 이 옛 가르침은 극히 간명하고 한없는 생명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힐티는 그 자신이 신앙을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옳은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공연한 헛수고를 하지 않고 옆길로 잘못 들거나, 막다른 골목에 들지 않도록 어떻게 조언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등에서는 예로부터의 교리, 그것도 이성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를 처음부터 다짜고짜로 믿게 하려고 하므로 고지식한 많은 신자를 좌절시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진리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들은 깊은 신학 속으로 들어가 헤매기도 합니다. 이것에 대해 힐티는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솔직히 받아들여 실행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 진실을 시험하고 그것에 의해 마음에 기쁨이 주어지는 것을 경험하거든 그 가르침을 믿으라고 힐티는 권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에 대해 경험이나 사실을 중요시하는 힐티의 태도는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실제로 힐티 자신의 정신생활
종교생활을 보면 그는 처음부터 늘 생활과 실행에 의한 경험을 쌓은 다음 점차 내적 진보의 단계를 밟고 올라간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생활이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 말은 조금도 공리공론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아주 실제적이며 간명하고 정확한 것입니다. 진실되고 살아 있는 신앙을 파악한 힐티는 주위의 그리스도 교회나 많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실체를 살펴볼 때 그들에게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가 과거에 이룩한 역할과 그 큰 공적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재의 상황은 너무도 당연히 있어야 할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힐티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가 다시금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그것에 대해 제언을 합니다.

    힐티와《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1909년 힐티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던《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2권 초고를 끝맺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조금 부족했던 부분은 딸 ‘멘타 힐티’가 아버지의 저서 가운데에서 보충하여 이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혼란 때문에 이 명작은 1919년에야 빛을 보게 됩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2권은《행복론》3권이나, 힐티가 죽은 뒤 발표된《그리스도의 복음》의 상세한 주와 마찬가지로 만년의 힐티가 마지막에 도달한 사상을 아는 데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힐티가 여기에서 사랑(charity)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힐티는 사랑(
charity)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흔히 남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피하고, 도리어 선을 행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던 힐티가 이 책에서는 이전까지의 조심성을 버리고 사랑의 문제에 대해 되풀이해서 말합니다. 참사랑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릇된 행동도 그것이 사랑에서 생긴 것이라면 창조주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주장에 그의 깊은 통찰이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사랑의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체적인 조언을 할 뿐입니다.
  또 하나 제
2권에서 그가 다룬 테마는 죽음과 죽음 후의 문제입니다. 힐티 자신도 많은 나이가 든 이상 마음 깊이 이 문제를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사색을 거듭하다가 얻은 확신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내세에 관한 장밋빛 미래를 그린 동화가 아니라,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온당한 사상입니다. 누구나 직면하고 있는 죽음의 문제를 회피만 하고 있어서는 불만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어떤 해결책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힐티의 사상은 우리가 검허하게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늘 성경을 옆에 놓고 저자의 인용부분을 참고하기를 권합니다.

    일이란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지는’ 것...

 힐티가 주장하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힐티가 하고 있는 말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노동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것은일하는 기술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힐티는 우선
‘일과 일이 아닌 것과의 구별’을 간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열심히 하다보면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이 일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참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이란 오래 해도 질리지 않는 것입니다. 영화도 보면 즐겁습니다. 하지만 세 편 정도 보면 더 이상 당분간은 보고 싶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전문서적은 한 권 읽으면 또 보고 싶고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더더욱 보고 싶어지고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과연 이것이 일의 본질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빨리 착수하면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음은 “일을 시작할 때는 너무 세세하게 준비만 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준비했으면 일단 착수해 보라. 착수하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책을 쓸 때의 요령이므로 모든 경우에 맞아떨어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에게는 뼈저린 충고입니다.
  결국 준비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농사의 예를 들어 싫어도 가래로 한 번 밭을 갈지 않으면 안 되며 어찌 되었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쓰고 있습니다.
  힐티는
“준비에만 너무 힘을 들이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도 서문만 정성들여 쓰면 내용이 부실하다.”는 등 재미난 예도 여러 가지 들고 있습니다.

    ‘계속해 나가다’ 보면 결과가 나온다...

 힐티는 또 “실제로 일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라는 것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천사가 나타나 여러 가지 좋은 말을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 좋은 말을 해주는 장면에 나오는 사람은 전부 일하고 있는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생각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꿈속에서 꾸는 아이디어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생기는 아이디어는 바로 현실화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공상가와 실무가가 다른 점은 이런 부분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에디슨은 연달아 여러 가지 발명을 했지만 그것은 생각을 하고 발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등의 경우 거듭해서 무엇을 써야 필라멘트가 타서 끊어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을 실험해본 결과 일본에서 선물로 받은 부채인지 뭔지에 있는 대나무를 사용하면 좋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도 수십 개의 대나무를 시험해 보고 나서야 아이디어가 나온 것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분들도 일단 언제나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머리만으로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이므로 계속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특히 이공계열 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연구발표라는 것은 정리된 이론이 나오지 않아도
“실험해 보았습니다.”라는 보고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실험에서 뭔가 대단한 결과가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는 우선 논외로 하고 “이러이러한 실험을 해 보았더니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나라로 논문 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대학교수도 논문 수로 결정됩니다. 논문을 내지 않으면 교수도 될 수 없고 교수가 된 사람이라도 계속 논문을 내지 않으면 해고당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위대한 교수들도
5년간 새로운 실험 데이터를 계속해서 발표하지 않으면 그 뒤로는 연구비가 아무 곳에서도 나오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투철합니다. 아무튼 계속 해나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 논문은 시시한 것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시시한 논문이라도 계속 내지 않으면 좋은 논문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덕에 미국에서는 매년 꾸준히 노벨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수로 하여금 끊임없이 논문을 쓰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워질수록 ‘좋은 습관’이 중요해진다....

 “인간은 원래 나태한 존재이므로 내버려두면 끝도 없이 나태해진다.”고 힐티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일어나도 안 됩니다. 해가 뜨기 전이 아니라 해가 뜰 때 해와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은 반드시 쉬도록 합니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엿새 일하고 하루 쉬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지혜이며 그 이상 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서유럽이 급속히 번영한 것도 이 가르침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습관”이라고 합니다. 습관론은 요즈음 그다지 활발히 논해지지는 않지만, 이것은 힐티만이 아니라 18세기경부터 19세기, 20세기 첫무렵까지 영국과 미국, 스위스와 독일 어디에서나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어떤 습관을 붙이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말처럼 교육의 목적은 좋은 습관을 어떻게 붙여주는냐는 것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즈음 유럽에 중산계급을 포함해 풍요로운 계급이 출현했다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풍요로운 계급이 출현하자 아이들 교육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몹시 가난해서 일해도 먹고 살기 어려울 때는 의외로 아이들 교육에 골치를 썩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고생을 지켜봄으로 그다지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됩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KBS에서 1970년 강원도 도계의 산속 숯 만드는 마을에 있는 분교 모습을 방영해주었습니다. 분교였으므로 아무것도 없고 물론 텔레비전도 들어오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 아이들이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모두 예의바르게 듣고 있었던 점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점 자체에, 아니면 가난한 사회 환경 자체에 교육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워지면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힘이 사회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부모가 일로 집을 비웁니다. 아이들에게는 돈을 주고 편의점에서 사 먹으라고 말합니다. 사회가 가난할 때는 편의점도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먹으라고 해도 주변에 있는 떫은 감이라도 따든가, 아니면 밤이라도 주어오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가난해도 아이들은 부모와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풍요로워지면 굶어죽지는 않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도 헤이해지고 아이들도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비행청소년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는
“어차피 굶어죽지는 않는다.”라는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유럽에서는 한국보다
200년 정도 앞서 일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지식을 가르치기 이전에 먼저 좋은 습관을 붙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기숙학교가 필요하다...

 습관론의 결론은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부모 곁에 두면 제대로 길들이지 못한다.”입니다. 그리하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계급은 아이들을 기숙사학교에 입학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숙학교는 공부도 시키면서 좋은 습관을 길들이는 것 또한 중요시합니다. 영국에서는 퍼블릭 스쿨이 그것입니다.
  힐티 역시 기숙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기숙학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는 좋은 습관을 들이게 합니다. 이러한 습관이 없을 때는 사는 게 괴롭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그렇습니다.
  앞으로 자녀 교육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윤택해지면 아무래도 좋은 기숙사를 갖춘 학교가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밥을 굶을 걱정이 없으니 부모는 좋은 생활 습관을 길러줄 수 없게 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죄의식이 들어 아이들에게 용돈을 조금 많이 줍니다. 이것은
“불량아가 되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HanSaRang 주. ━ 여와 야당에서 실행하려는 ‘무직청년지원금’ 같은 정책은 지극히 사악한, 인기영합주의적인 시도일 뿐이며,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이기적 목적만 담겨 있는 정책일 뿐이다.

    교육의 본질은 좋은 습관을 붙이는 데에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특히 청년에게 매우 중요한 미덕입니다.
  습관의 힘은 무서운 것입니다. 교육이란 습관임을 다같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가난한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풍요로워졌기 때문에 습관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를 갖고 아버지 어머니께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말하는 습관, 다 같이 모여 아침식사를 하며 “잘 먹겠습니다.”고 말하는 습관, 이것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개운치 않아 하루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정도가 되지 않으면 습관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집에 돌아오면 공부할 시간을 어떻게 할까 하는 것도 습관의 문제입니다. 습관이 되면 편하겠지만 습관이 되지 않으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 귀찮아서 그만두어 버립니다. 그래서 해이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남달리 뛰어난 사람은 그 직업에 맞는 습관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습관이 무엇인가,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떤 습관이 중요한가를 생각해 그 습관을 길러주는 학교를 다 같이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풍조가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면 유럽에서는 그 역할을 맡은 것은 개신교나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숙학교를 경영하는 교회나 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합니다. 종교인이 기숙학교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 젊은 청년들 보기에 부끄러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기에는 부족합니다.
  풍요로운 시절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 좋은 점이 남아 있어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은 특수한 습관을 교육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의도 바르고 신체도 튼튼하고 공부도 잘합니다. 이
“좋은 습관”이라는 것에 대한 통찰은 힐티가 계속 반복해 말하고 있는 요점입니다.

    에너지를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지 마라...

 힐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에너지를 쓸데없는 일에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과 집안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에너지를 다른 일에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예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인터넷도 있겠다, 책도 비교적 싸겠다, 연구 설비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대하는 만큼의 걸출한 인물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문계열 젊은 세대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공계열 사람은 집에서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연구실에 갑니다. 따라서 집안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문계열 사람은 많은 시간을 집에 있게 됩니다. 책만 읽고 있으니까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이것 좀 해 주세요.”하고 말하면 나가서 하게 됩니다.
  이공계 사람들이 점점 업적을 쌓아가는 것도 집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 사람이 업적을 올리는 것은 회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있으면 일에만 열중할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이 잡일까지 한다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됩니다. 그러니 회사라는 조직에 있는 사람은 매우 덕을 보는 셈입니다. 조직에 들어가 있지 않는 사람의 잡무 정리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지만 비서나 조수가 있다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등주의의 밑바닥에는 질투심이 있다...

 평등주의의 근본에는 질투가 있다고 생각하며 높은 사람은 평등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낮은 사람만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흔한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미녀와 추녀의 불평등은 매우 심합니다.
  그러면 한국인은 평등을 추구해 모든 한국 여성을 미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여성을 추녀로 만들 수 있느냐? 그것은 법률 하나만 만들면 가능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제부터 태어나는 여자 아이를 사흘 안에 뜨거운 인두로 코를 짓눌러야 한다고 법률로 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낮은 쪽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맞춰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평등주의입니다. 모두를 깨우치게 하려면 모르는 학생에게 수준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달리기 시작해 결승점 바로 앞에서 멈추어 기다리다가 뒤에 오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이 들어가는 학교조차 있습니다. 느린 아이가 발 빠른 아이에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평등하게 맞추려면 빠른 아이를 제자리걸음을 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노동의 질에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차이는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차별을 받는 쪽이 비인간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사회나 국가가 보호해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어 버리면 뛰어난 학자나 위대한 예술가도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업가의 경우 회사가 있음으로 해서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도 차를 가져다 주지 않지만 회사에서는
“차 한 잔”을 부탁하면 가져다 줍니다. 집에 있으면 앉아 있을 곳도 마땅하지 않지만 회사에 가면 기분 좋은 의자와 책상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통해 노동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힐티의 충고에 따라 무조건 자기일 이외의 것은 전부 전문적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간있는 사람은 대성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재간있는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합니다.
  공자라는 사람은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제자가
“어째서 스승님은 모든 일을 그렇게 잘하십니까.”라고 묻자 “나는 젊은 시절 신분이 비천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은 너희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된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근대적으로 말하면 힐티와 똑같은 충고가 되지 않을까요?

    지치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다...

 힐티 가르침의 중요한 하나의 기둥은 일하는 기술, 습관론입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깊은 통찰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은 피곤한 것이다. 피곤할 때는 쉬는 것보다 더 빨리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른 노동을 하는 것이다.”
  즉, 노동의 종류를 바꾸어 보는 것,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보는 것입니다. 화가는 하나의 그림만을 줄곧 그려 작품을 완성시키지는 않습니다. 캔버스를 여러 개 세워놓고 한쪽에는 풍경화를 그리다 지치면 다른 쪽에 누드화를 그립니다. 그러면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갈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도 그렇지만 ‘티치아노’도 여든이 넘어서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피곤해지면 다른 소재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일을 할 때 약간 시선을 바꾸어 보는 것은 완전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더 빨리 피로를 회복시켜 줍니다.
  그래서
“노동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식사를 하려는 것과 같으며 전혀 즐거울 리가 없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힐티는 노동에 대한 통찰이 굉장히 깊었던 것 같습니다.《성지순례》라는 책을 읽고 과연 그렇다고 동감했습니다. 순례라는 것은 90%는 유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창조주에 대한 경배심이 들어 있으면 더욱 즐거워집니다. 그래서 그곳은 모두 유람지입니다. 단순히 놀기 위한 장소라고 하면 섭섭하게 여길 사람이 많을지 모르지만, 고생하며 걸어가 경배를 드린 다음 즐기는 오락은 더욱 재미있습니다. 중세시대의 순례는 그러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힐티 가르침의 커다란 기둥은 습관을 중심으로 한 노동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힐티는 “열심히 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일은 모두 재미있어진다. 이것이 일의 본질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일과 자유로워질 수 없는 일을 구별한다...

 또 하나 힐티가 크게 영향력을 준 것은 ‘에픽테토스’의 재발견입니다. 에픽테토스라는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지만 노예였습니다. 주인은 매우 난폭한 남자로 에픽테토스의 팔을 비틀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그런 짓을 하면 팔이 부러집니다. 보세요, 부러졌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에픽테토스는 철저한 스토아학파였던지라 “이것은 나의 팔이지, 나 자신은 아니다.”라고 태연히 말했다고 합니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일을 끊임없이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해도 남이 칭찬해 주느냐 안 해주느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칭찬을 받으려고 또는 받지 않으려고 머리를 써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일을 어떻게 하면 보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가 하는 궁리는 자기 힘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낸 결과 칭찬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고, 칭찬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이것을 확실히 구별하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고민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자유로이 할 수 없는 일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구분하면 구체적인 삶의 방식들에 화가 나게 되더라도 해결책을 제대로 발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요컨대 자신의 자유대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해서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철저하게 실천한 사람은 미국의
‘웨인 다이어’라는 심리분석자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심리분석의 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정신분석으로 수많은 환자를 다루는 가운데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책은 미국에서〈뉴욕 타임스〉에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체념한다.”는 것은 “도리를 깨닫는” 것이므로 상황을 분명히 분별하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꽃은 붉고 버드나무는 푸르다.”라는 명제는 참입니다. 그러므로 버드나무가 빨갛게 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벚꽃에게 “파랗게 되라.”고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것을 이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계속 물어보는 마음의 자세와, 그렇지 않고 발끈 화를 내거나 고민하는 것에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제 자신도 언제나 그런 것을 잊고 살지만 가끔 생각해 내서 실천해 보았을 때는 매우 좋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가능할까?”를 물어보고 불가능한 것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일에나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확히 판별하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자기가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애인에게 차였다면 그녀를 되돌리는 것은 자기 힘으로는 안 됩니다.그러면
“아아, 이것은 내 힘이 미치지 않는 일이다. 괴로워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또는 그전에 사랑이 식은 애인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방책을 생각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울며 매달리기 전에 무엇을 하면 효과가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효과적인 수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궁극적으로 “소용없다.”고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명확히 판별하는” 일입니다.
  힐티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늘 윤택한 환경에서 풍성하게 살았기 때문에 자선사업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자선사업에 손을 대면 본업인 베를린 대학 법률학 교수나 정부 일, 스위스 육군의 업무를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특정한 나라에 대해 자선사업을 실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르메니아를 도우기로 했습니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고아원에 사는 고아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원했습니다. 그 아이가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취직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했습니다. 한 사람뿐입니다. 그 아이가 취직하면 이번에는 다른 고아 한 명을 지원했습니다. 한 사람당 십 몇 년 동안 돈이 나가게 되어 있지만 그는 그것을 죽을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사람 수는 적었지만 개인이 한 자선이니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자기의 일을 계속하면서 자선을 한다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하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됩니다.
  
‘로버트 오언’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00년쯤 전에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업가로 섬유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꽤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공장 직원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여러 가지 복지시설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공장은 교통이 불편한 스코틀랜드 시골에 있었음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온 세계에서 왕족이나 귀족, 학자들이 견학을 하러 찾아와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그즈음 빈민계급은 모두, 공장 및 그 주변 마을 사람은 모두 로버트 오언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로버트 오언의 병원에 다녀서 혈색이 좋았습니다. 무례하고 교양이 없다는 통념이 있었던 노동자의 아이들도 모두 반듯한 모습으로 인사도 예의 바르게 잘하고 말도 곱게 썼습니다.
“영국의 명문학교 학생과 똑같다.”고 다들 경탄을 하고 스코틀랜드의 시골까지 온 세계에 사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견학을 하러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버트 오언은 이어서 사업 성공에서 번 돈으로 미국에서 큰 대지를 사들여 자신이 생각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이주민을 모집했습니다. 그는 농장을 하거나 공동작업을 하리라는 이상에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곧바로 실패로 돌아가 모든 것이 끝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오언이 자신의 공장을 번성케 하면서 그 수익으로 그러한 사업을 실시했으니 그렇게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팔고 이상을 좇아가자마자 더 이상 이상은 이상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결국
3년 안에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좋은 일을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하나의 교훈입니다. 힐티의 방법은 자신의 생활을 망가뜨리지 않고 조금이나마 좋은 일을 한다는 점에 있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재산 용도는 개인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좋다...

 다시 한번 세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째서 세금을 내려야만 하느냐 하면 돈을 개개인의 호주머니에 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힐티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야 합니다.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그것이 발달된 나라입니다. 미국은 세금은 비싸지만 한국보다 훨씬 세금을 면제받기 쉽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알다시피
‘빌 게이츠’는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신이 쓰고 싶은 일에 기부를 하는 데 쓴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특별하다고 치고, 미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작은 부자들이 뭔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조금(장학금, 연구 보조금 등)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조금이라도 고등학교 성적이 좋았거나 운동에 소질이 있으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후원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이러한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한 달에 백 달러 정도 보태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권력으로(즉 세금으로) 돈을 모아 함부로 쓰는 것은 좋을 것 같기는 해도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아마 그런 조직을 생각한 사람은 스스로 좋은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스스로 좋은 일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관료들이 모아 관료 손으로 마구 써 버리는 것이 얼마나 낭비가 많은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만큼 거둔 세금을 내가 생각하는대로 쓰게 해주면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되도록 국민의 재산은 국민이 갖고 국민이 쓰게 한다면 좋은 일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힐티처럼 언제나 한 명의 고아만을 도와준다거나 자이르에 여행가서 우연히 비참한 광경에 마음이 움직여 자이르 아이 한 명을, 아니면 태국이 좋아서 태국 학생을 한 사람 유학시켜 석사가 될 때까지 보조해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쓰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졸업해서 돌아가면 또 한 사람을 도와줍니다. 그런 사람이 한국에서 십만 명, 이십만 명, 오십만 명 나오면 단기적인 외교정책보다 훨씬 외국과 한국과의 연대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방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노병사(生老病死)란 ‘하늘이 주는 충격’...

 마지막으로 힐티의《병 치료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따로 의학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은 그 시대 전문가도 주목했습니다.
  이것에도 매우 상식적인 것이 쓰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에 대해선
“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은 금주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잠이 안 올 때 술을 마시면 반드시 잠이 옵니다.”라는 태어나서 살며 늙으며 병들어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저녁에도 너무 늦게 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지키세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따뜻한 우유에 꿀을 조금 타서 마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힐티는 쓸데없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해주는 생활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병이 났을 경우의 마음 자세도 가르쳐줍니다.
 
 병(病)이라는 것은 이런 바쁜 세상에서 조용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가치 등을 다시 생각해 보는 데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병이라는 것은 하늘이 주는 충격과도 같은 것으로 그것을 원망하거나 당황하면 끝이 없지만, 받아들이는 방법을 통해 평소에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조용한 반성이나 안정하는 시간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응답하라.”고 구체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죽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도 수명 연장책이 있었던 것 같지만 힐티는 이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죽을 때 무리하게 한 달이나 두 달을 연장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손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으며 존엄한 죽음을 권유하였습니다. 하지만 존엄한 죽음도 모든 근대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에 있지 않습니다. 보통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이 효과가 없어지는 시기가 옵니다. 그때는 분명히 무리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구체적인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이 평생 성공을 거듭한 사람이며 매우 반성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적인 반성도 합니다.
  이러한 책이 읽혀지지 않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읽어보면 사람에 따라 와 닿는 부분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반드시 도움이 되는 부분을 발견할 것입니다.
  힐티는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기독교 신학서는 수없이 많지만 그러한 것은 현실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것은 매우 간단하며 신약성경은 쉽다. 덧붙여 말하자면 신약성경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고 있는 부분만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
  힐티는 매우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일반 독자는 그냥 넘겨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부분은 모두 빼고 정수만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잠깐이라도 좋습니다. 힐티 자신도
“책이라는 것은 읽기 시작해서 맨 처음 30분 정도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비었을 때 십 분이나 오 분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훌륭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칼 힐티 지음곽복록 옮김
    초판 발행2005115
    발행인고정일
    발행처동서문화사
    창업1956. 12. 12. 등록 16-345(윤)
    서울 강남구 신사동 540-22 546-03316 (FAX) 54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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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곽복록(郭福祿) ─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독문학 석사학위,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에서 독문과 교수를 지냈고, 서강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저서로
《독일 문학의 사상과 배경》이 있고, 옮긴책으로는 리하르트 프리덴탈《괴테, 생애와 시대》, 토마스 만《마의 산》, 하인리히 뵐《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 루이제 린저《옥중일기》, 슈바이처《나의 생활과 사색에서》등이 있다.

【  생각하기.... Thinking... 】

『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이 있었으니
That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요한복음 1:9)

성경은 인간의 모든 역사와 모든 세대들을 바르게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준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바르게 조명해 줄 수 있는 진리의 지식이다. 성경의 기록들은 모든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절대유일한 진리이다.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칙을 변경시킬 수 없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던지, 거부하던지 인간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권리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삶의 자세와 모습.
  그런데 힐티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왜 그럴까? 생각도 안하고, 사색도 안하고, 묵상도 안하고, 자기의 존재의의도 모르니까 단순한 삶
─ 육체의 생명만 연장시키는 삶 ─ 의 모습만을 보여 줄 뿐이다.
  “단순히 육체의 생명만을 연장시키는 삶도 버겁고 힘든데, 어떻게 저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고 사색하고 묵상하고 자기 삶
(존재)을 깊게 돌아보는 사람에게만 다른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훌륭한 위인들의 삶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선한 길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길이 무엇인지 듣지만 않고 실제적으로 행하며 살아갔기 때문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진짜 의인이다. 어리석은 군상들의 모함을 받아 두 번의 백의종군을 하고 난 후(두 번째 백의종군 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다시 복귀 명령을 받았을 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남아있는 12척의 배를 이끌고 자기의 전장으로 묵묵히 나아간 것이다. 오로지 백성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자식을 잘 기르고 싶은 누구든지, 지금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누구든지 좋은 습관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깨닫게 된다. 칼 힐티도 스스로 좋은 습관을 유지하려고 몹시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The Holy Bible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 악한 세대에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훌륭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좋은 습관을 유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물질적인 풍족함에 빠져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가지 말고, 후손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대한민국이 바르게 성장하는 유일하고 건강한 방법인 것이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대한민국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2016. 2 ....
HanSaRang ...

(시 편 75:110)  
    ─ 악장에게, 알타스킷, 아삽의 시 또는 노래. ─

1 ○ 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드리고 감사드리오니 이는 주의 경이로운 일들이 주의 이름이 가까움을 선포함이니이다. 2 내가 회중을 받아들이면 바르게 판단하리라. 3 땅과 그곳의 모든 거민들은 해체되었으나 나는 땅의 기둥들을 붙들고 있느니라. 셀라. 4 내가 어리석은 자들에게 말하기를 “어리석게 행하지 말라.” 하였고 악인들에게는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고 굳은 목으로 말하지 말라. 6 ○ 이는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7 오직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시니 그가 한 사람은 낮추시고 다른 사람은 세우시는도다. 8 의 손에 한 잔이 있으니 그 포도주는 붉고 완전히 혼합되어 있도다. 그가 그것을 쏟으시니 지상의 모든 악인들이 그것의 찌끼를 짜 마시리로다. 9 그러나 나는 영원히 선포하리니 내가 야곱의 하나님께 찬송하리로다. 10 내가 또 악인들의 뿔들을 모두 꺾을 것이나 의인들의 뿔들은 높이 들려지리로다.

(시 편 76:112)  
    ─ 느기놋에 맞추어 악장에게, 아삽의 시 또는 노래. ─

1하나님께서는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위대하시도다. 2 또한 살렘에는 그의 성막이 있고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서 그가 화살들과 방패와 칼과 싸움을 부수셨도다. 셀라. 4 너는 전리품의 산들보다 더 영화롭고 존귀하도다. 5 용맹한 사람들이 약탈당하였으나 그들이 잠을 잤으며 힘센 사람들 중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하였도다. 6 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의 꾸짖으심에 병거와 말이 다 죽음의 잠에 빠졌나이다. 7, 곧 주는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시면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므로 땅이 두려워서 잠잠했으니 9 그때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온유한 자들을 판단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일어나셨나이다. 셀라. 10 진실로 사람의 진노가 주를 찬양할 것이요, 진노의 나머지는 주께서 억제하시리이다. 11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께 예물을 가져오라. 12 그가 통치자들의 영을 잘라 내시리니 그는 땅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라.

(시 편 77:120)  ─ 악장 여두둔에게, 아삽의 시. ─
1 ○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도다.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었더니, 그가 내게 귀를 기울이셨도다. 2 내가 내 고난의 날에 를 찾았도다. 밤에 내 헌데가 흘러나와 멈추지 아니하였으니 내 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불평하였더니 내 영이 슬픔으로 뒤덮였도다. 셀라. 4 주께서 내 눈을 깨어 있게 붙드시니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 말을 할 수가 없나이다. 5 내가 지난날들, 옛 시절의 여러 해를 생각하였나이다. 6 밤에 내가 내 노래를 회상하고 내 마음에 묵상하며 내 영이 열심히 찾았나이다. 7 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자비가 영원히 그쳤는가? 그의 약속이 영원무궁토록 이루어지지 못할까? 9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그는 노하심으로 온유한 자비들을 닫으셨는가? 셀라.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것이 나의 나약함이라.” 하였으나 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손의 연수들을 기억하리이다. 11 ○ 내가 의 일들을 기억하리니 반드시 내가 옛날의 주의 이적들을 기억하리이다. 12 또 내가 주의 모든 역사를 묵상하고 주께서 하신 일들을 말하리이다. 13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으니 누가 우리 하나님처럼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이리이까? 14 주께서는 이적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주께서 백성들 가운데서 주의 능력을 선포하셨나이다. 15 주께서는 주의 팔로 주의 백성들인 야곱과 요셉의 아들들을 구속하셨나이다. 셀라. 16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물들이 두려워하였으며 깊은 곳들도 떨었나이다. 17 구름들이 물을 쏟아 내고, 하늘들도 소리를 보내니 주의 화살들도 멀리 나갔나이다. 18 주의 천둥 소리가 하늘에 있고 번개가 세상을 비추니 땅이 떨며 진동했나이다. 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고 주의 첩경이 큰 물들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는 알려지지 않았나이다. 20 주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을 통하여 주의 백성을 양떼와 같이 인도하셨나이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이사야 14:24아모스 4:12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천부여 의지 없어서 ∼♪∼♬
[1121]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 Jesus saith unto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man cometh unto the Father, but by me. 』(요한복음 14:6ㆍJOHN 14:6)

 아래 성경은 <한글킹제임스성경>(KKJB 1994)입니다.

            ┃5시간 첼로찬양Cello Hymn 5 hour┃기도와 묵상을 돕는 첼로 찬양 모음 (첼로피아ㆍCellopia)┃(5:39:30)┃

신약 성경 (New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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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King James Bible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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