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 정맥/금남 금북

조은산 2012. 1. 23. 15:44

 

 

 

 

 

금북정맥  8구간


2007.09.16 (일)

산길 : 당목리~칠장산~칠현산~덕성산~옥정현

거리 : 17.1km (누계  168.5km/440.5)  38.2%

사람 : 장산 제이제이 조은산

 

 

 

(구간거리)

당목리~2.1~바카프미산(332/-0.3)~0.7~걸미고개~3.9~칠장산분기점~2.1~칠현산(516.2)~1.6~덕성산(519)~4.6~무이산(462.7)~2.1~옥정현........17.1km

Cartographic Length = 19.7km / 총소요시간: 06:45

 

 

08(당목리~옥정현).gpx

 

 

 

 

 

산경표에 따른 한남금북정맥을 마무리한다.

산경표를 보면, 26頁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分二歧 한 후에, 73頁로 넘어와 74頁까지 한남금북정맥을 표기하고, 연이어 76頁 문수산까지 한남정맥을 마무리하고, 금북정맥은 80頁 칠현산에서 다시 시작하여 84頁 안흥진까지 기재되어 있다. 산경표 순서대로라면, 한남금북을 끝낸 다음에는 한남으로 들어가야 맞겠다만 한남은 이미 첫구간을 끊어 놓기도 했지만, 보다 긴 줄기를 먼저 마무리한다는 의도로 금북으로 방향을 잡는다.

 

 


3정맥 분기점에서,

산줄기가 둘로 나누어지면서 가르는 물줄기가 달라진다. 한강은 한남정맥 너머로 보내고, 금북정맥은 안성천, 곡교천, 무한천, 삽교천 등을 서해로 흘려보낸다. 정맥의 남쪽은 출발부터 마찬가지로 금강의 울타리로 줄곧 이어지듯이, 교과서상으로 한 과목을 마무리짓는 과정일 뿐, 산줄기가 끊어졌다가 새로 시작되는 부분도 아니므로 간단한 증명사진 한 장 남기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산경표상 금북정맥에 표기된 이름들을 보면, 현재까지 쓰이는 이름들도 상당부분 있고, 나머지 옛 이름들은 어디쯤 되는지, 걸어가면서 천천히 알아보도록 한다.


칠현산(七賢山) 청룡산(靑龍山) 성거산(聖居山) 망일치(望日峙) 월조산(月照山) 의랑치(義郞峙) 차령(車嶺) 쌍령(雙嶺) 광덕산(廣德山) 각흘치(角屹峙) 송악(松岳) 납운치(納雲峙) 차유령(車踰嶺) 사자산(獅子山) 우산(牛山) 구봉산(九峯山) 백월산(白月山) 성태산(星台山) 오서산(烏栖山) 보개산(寶盖山) 월산(月山) 수덕산(修德山) 가야산(伽倻山) 성국산(聖國山) 팔봉산(八峰山) 백화산(白華山) 지령산(知靈山) 안흥진(安興鎭) (밑줄 부분이 현재 쓰이는 이름)







9/15 (토)

19:00 서면 출발

22:50 칠장사 도착



11호 태풍 나리(NA-RI)가 올라온다는데, 시시각각 발표되는 예보를 심도있게(!) 분석한 결과, 잘하면 정통으로 맞기 전에 한바리 하겠다는 통빡을 구불린다. 태풍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방송사마다 떠들어 대는데, 그 정보를 역이용(?) 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앉았으니...미친놈 소리야 대간할 때부터 익숙하게 듣던 터라, 게의할 바 전혀 없이 “정맥 한 구간”에 오만 심과 혈을 기울인다.


토요일 정오쯤, 비가 줄줄 오는 가운데 장산님으로부터 다시한번 고려해 봄이 어떻겠냐는 전화가 오는데, 마침 등산화에 방수액 신나게 문지르고 있던 참인지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로 강행하기로 하는데 결과적으로, 마치기전 두시간 가량 비에 젖었을 뿐 그런대로 양호한 날씨였다.


부산 출발할 때만 해도 줄줄 내리던 비가, 북으로 갈수록 잦아들더니 대구를 지날 즈음에는 오히려 말갛다. 북대구 부근을 지나는데 왼쪽 Expo 건물쪽에 불이 났는지 씨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이럴 때는 비라도 내려주면 불길 잡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사람의 뜻과 하늘의 뜻은 좀처럼 일치가 안된다.

 

 


칠장사

특별히 잠자리를 정해 놓은것도 아니라, 정맥 분기점의 의미나 남기고자 칠장사로 향한다. 안성 17번 국도에서도 구불구불 한참을 돌며 올라간다. 혹시나 비가 올지도 몰라 어디 처마 아래를 찾는데, 다른 절과 달리 칠장사 일주문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문이 아니라 한켠으로 밀린 채 풍채만 자랑하고 있는 형상이라, 그 지붕아래쪽에 텐트 한동 치기에 딱맞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주문 아래 텐트친 사람 있으까?)


 


(칠장사 일주문)





9/16 (일)


(시간표)

05:35 당목리고개

06:31 바카프미산 갈림길

06:45 걸미고개

08:22 삼정맥분기점

08:30 칠장산

09:18 칠현산

10:00 덕성산

10:45 △470.8m

11:30 무이산 갈림길

12:16 옥정현






04:30 기상

그것도 지붕이라고(!), 이슬 한방울 안맞았다. 산행 후 젖은 텐트 말리는 일도 귀찮은 일과이기 때문이다. 밤새 아무일도 없었던 양 말끔하게 접어넣고 들머리인 당목리로 이동한 후, 국물데워 아침을 먹고 배낭을 챙기고 있는 중에 차 한대 올라오더니 사람 둘 내린다.


어제부터 핸드폰 문짜가 오고갔던 “1대간9정맥 강성원우유와 함께...” 표지기의 주인 백곰부부다. 마치고 택배나 해줬으면 했던 바인데 이런 깜깜밤중에 부부함께 출동을 하다니. 내리자 말자 따뜻한 차한잔씩 돌리고, 이쁘게 포장한 과일과 떡통을 내민다. 그게 다가 아니라, 마칠 시간과 장소를 묻는 바가 이따가 또 보자는 소리다. 나중에 잡아먹힐망정 일단은 출발을 하고 본다. 마빡에 불은 그대로 켜진 채로다.


오늘 구간은,

안성시 죽산면에서 시작을 하고, 칠장산에 올라서면 금광면과의 면계로 이어지다가. 덕성산부터 왼쪽이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이 되었다가 옥정현에 떨어지면 이월면이다. 지난구간 겨티고개에서 헤어졌던 경기와 충북 도계를 덕성산에서 다시 접한다.


“배티고개까지” 욕심도 내본다. 도상 25km가 조금 더 되는 거리로 그렇게 무리는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만 늘 그랬듯이, 산길은 언제나 확정적일 수 없다. 일단은 옥정현을 목표로 하고 나중에 결정을 하기로 한다만, 결과는 옥정현에서 마감을 했다. 시간상으로는 충분 했지만 덕성산에서부터 맞은 비로 옷이 다 젖었고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바로 태풍으로 이어질 모양이라. 손님도 있으니 오늘은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05:35 당목리고개 (165m)

고개 우측으로 나있는 임도따라 끝까지 오르면 산길로 든다. 한 비탈 넘으면 또 임도가 나오고, 왼쪽 내리막으로 가다가 다시 왼쪽 산길로 올라서고 또 한번 왼쪽으로 튼다. 도면상 계산한 바로는 우측이 아닌가 싶은데 길은 몇 번이나 왼쪽으로 틀어 의아스럽다만 옳게 진행이 된다.


05:43 No.14 삼각점

왼쪽으로 숲이 터지면서 발 아래로 사각형의 묘 8기 나온다. 묘 상단부에 No.14라 새긴 삼각점처럼 생겨먹은 물건이 있다만 삼각점은 아니다. 조망이 트이는 지점이다만 온통 허옇기만 한 안개속이라 보이는게 없다. 


06:10 △278.7 (5만 지형도= 281.2m)

번호 식별이 애매한 삼각점과 함께 [도솔산 비로봉입니다. 보현봉 반야봉]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있는데, 이는 아마도 바카프미산 뒤편 용설리에 있는 도피안사에서 설치한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산행 마치고 죽산으로 가는길에 [도솔산 도피안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정작 일반적으로 알려진 피안에 이른다는 곳, 도피안사는 철원에 있다.

 

 


도피안사 (到彼岸寺)

철원의 민통선 안에 있는 절로, 신라 경문왕(865년) 때 만들어졌다는 국보63호 철조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이 철불상은 6-25 전쟁 때 재난을 우려한 주지스님이 땅속에 묻었다가 전쟁 후 다시 원래 자리로 모셨다는 얘기, 한 때 금으로 도금을 입혀 금불상이 되었다가 비난이 일자 다시 금을 벗겼다는 얘기가 전한다. 국보63호이면 숫자상으로 상당히 고참(?)에 속한다 하겠는데, 현재 국보 번호가 400번이 넘게 나가있고, 경복궁경회루가 313호이다. 반드시 숫자 빠른게 가치가 높다는 얘기는 아니고, 말하자만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던, 지형도에 나오지 않는 산 이름을 임의로 갖다 거는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만, 비 오는날 자꾸 구시렁거리지 말고 우리 갈 길이나 가자. 길은 걷는데 지장이 전혀 없을만큼 좋다. 잠시 후 안부를 지나 다시 나오는 [도솔산 보현봉입니다] 팻말 아래쪽에는 누군가 매직으로 “←한남금북정맥” 표기를 해놔서 주저함 없이 화살표대로 좌틀한다. 표기가 없으면 잠깐이나마 멈칫할 지점이다.

 

 


06:31 바카프미산 갈림길 (260m) 

다시 오름길로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이 바카프미산이고 왼쪽 내림길이 정맥이다. 팔공산의 치키봉 만큼이나 이름이 특이한 봉우리라, 이 또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데 기대한 만큼의 답은 안나온다.


[국립지리정보원 지명상세보기] - 바카프미산 (×332m)

행정구역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계리   지명종류 : 산

고시지명 : 바카프미산   표기지명 : 바카프미산

 

 


안성시의 담당부서(문화체육관광과)에 문의한 바, 이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고 지역 주민들(용설리 거곡마을 이장) 또한 예로부터 그렇게 불려 왔고, 지금도 마을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억지 추측이긴 하지만, 아랫마을이 ‘바깥걸미’ 마을이라 언뜻 읽으면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는 것도 같아 그런게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아님 말고~,  내림길에는 향긋하지 못한 시골냄새가 깔려있다. 왼쪽 아래로 창고 건물이 보이는데 양계장이나 되는 모양이다.


06:45 걸미고개 (170m)

절개지 왼쪽으로 내려서면 급비탈이라 철조망을 부여잡고 내려서야 되겠다. 지난 구간 자칭 “한 산맥 하시는” 택시기사님이 얘기하던 그 17번 국도다. “17번 국도가 어디까지 가는지 아느냐” 묻고는 여수까지 간단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과연 여수하고도 돌산읍까지 이어지는, 대단한 17번 국도다.


광장처럼 널찍한 고갯마루 건너편의 불켜진 식당을 보고는 이구동성이다. “여기와서 아침 먹을걸...”

정보가 바로 돈인 세상에 알면 아는만큼 수월해 진다. 안성청국장(청국장 된장찌개 생삼겹 674-8427) 마주본 이쪽 편에도 식당이 하나 있긴 한데 불은 켜지지 않았다.


행정구역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당목리

고시지명, 표기지명 : 걸미고개 / 유래 : 옛날 이 고개 근처에는 농사가 안되어서 주민들이 거지가 되다시피하고 또한 곡식으로 음식을 하면 맛도 없다 하여 걸미고개라 한다.

 

 


농사가 안되는건 마루금이라 물이 귀해서 일테지만, 거지니 맛이 없니 하는 이야기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상당히 기분나쁜 유래로 들리겠다. 골프장 정문, 널찍한 광장을 바라보고 앉으니 백곰표 과일통이 나오는데 가지런히 썰고 넣기도 참 예쁘게 넣었다.

 

 


 


(걸미고개 - 안성컨트리클럽)


 


06:58 안성컨트리클럽

하늘에는 아직은 진하긴 하지만 새털구름이 덮혀있다. 태풍은 내일 아침에나 남해안에 상륙한다 했는데, 제발 오더라도 오후에나 내려라... 정문 우측 비탈에 리본이 하나 팔랑거리지만 무시하고, 골프장 진입로 따라 올라간다. 어차피 왼쪽 능선으로 이어지므로 도로 내려와야 할 장면인기라. 정문에 경비실이 없는게 다행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클럽하우스] 팻말이 있고 왼편 잔디밭에 꽃시계가 있는데 바늘이 없다. 왼쪽으로 틀어 주차장을 가로지른다. 11시방향의 코너가 건너편 들머리다. 물봉선 무리가 물방울에 젖어 새초롬하게 보인다.

 

 


07:23 △269

25지형도상 ×292봉을 지나고 안부고개 떨어지기 직전봉. 지형도에는 아무런 표기가 없는데 난데없는 삼각점을 만난다. 번호는 없다.


07:26 안부 고개

우측은 바로 골프장이고 왼쪽으로는 희미한 묵은길이 나있는 안부다. 나무사이로 언뜻 골프장 그린이 보이고 “딱~!!” 하니,  “나이 샷~” 한다.


07:40 산불초소

녹쓴 구조물의 타워형 산불초소다. 백곰표 떡사발을 내놨다. 금새 허기가 졌겠냐만, 얼른 처리를 하지 않으면 그대로 들고 내려 가야하지 않을까. 그럴 수는 없다 싶어서였는데, 내놓기 무섭게 말끔히 팔린다. 발목 정리를 새로 한다. 출발 때 염려스러워 스패츠를 감았는데 막상 예상한 험로구간을 다 지날 때까지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다. 괜히 쓸데없이 다리에 땀만 났다.


07:57 벤취 쉼터

고도 370m 지나고, 칠장산이 한 700 되나... 하면서 아직 300을 더 올려야 되겠다고 푸념을 하니,

장산님, “칠장산이 무신 칠백이나 되노? 오백도 안되구만는...”

그거 참, 칠장산이라 칠백이라 지레짐작 했나... 오백이면 다왔구만. 사격장이 있는지 총소리가 뻥뻥 들린다.

 

 


08:22 삼정맥분기점

한 차례 급한 오름을 구불거리며 올라서니 세방향을 가리키는 스텐이정표가 나온다. 2000.07. 건건산악회 작품이다. 준희선배님의 노고를 진하게 느끼며, 기둥아래 3J 모여앉아 단체사진 한방 박는다. 이번구간 빠진 산개미님이 못내 아쉬운 장면이다.


08:30 칠장산 (七長山 491.2m H)

한남 첫구간 하면서 올라왔던 곳이지만, 다시 또 언제 오겠냐 싶어 배낭은 그대로 두고 올라섰다. 수풀이 웃자라 목을 길게 빼야 먼 조망이 보인다. 서해쪽과, 가야할 금북쪽이 안개구름속에 희미하게 드러난다. 제대로 짚을 수는 없고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안성시의 삼죽 죽산 금광 삼면봉이 된다.

 


 




 


08:36 금북정맥 출발

다시 분기점으로 내려왔다. 속리산에서 여기까지 158km를 걸어왔고, 안흥진까지 남은 거리는 282km가 된다. 20km씩 나누면 열 네번이고, 한달에 두 번이면 일곱달이다. 계산상으로는 내년 4월이면 안흥진에 도착이 되겠다만, 이 또한 가 봐야 알 일이라.


5분 내려오니 칠장사 하산로가 갈라지고, 10분 더나가니 헬기장에 올라선다(420m). 지도상으로 우측 아래에 골프장이 있다만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다. 널찍한 길이지만 숲이 우거졌고 그나마 안개가 자욱하게 흐른다. 칠현산까지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고, 이후 덕성산까지는 국도쯤 된다할까. 걸리적거리는게 없고 보이는 것 또한 없으니 사정없이 밟아댄다.


08:58 돌탑

안부에는 제법 거대하다 할만한 돌탑이 있고 [칠순비 부부탑] 비석이 있다. 뒷면에는 부부의 이름과 2002년이라 적혀있다. 5년 전이었으니 현재로 계산하면 일흔다섯인가. 돌탑에 낀 이끼를 보면 최소 2~30년은 되어 보인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부탑 치고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진행하면서 같은 형상의 돌탑이 두어개 더 있었는데, 칠순과 연결하기에는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09:18 칠현산  (七賢山 515.7m △24재설)

한무리의 등산객들로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웬 정맥꾼들인가 싶었더만, 알고보니 칠장리 신대마을에서 올라온 동네산악회다. 이정표에도 [신대마을] 방향이 걸려있는데 신대마을 '복조리'는 400년 전통을 자랑한단다. 안성은 ‘안성맞춤’ 유기로도 유명하지만, 일죽면 삼죽면 죽산면에서 보듯이 대나무(竹)로 한 이름하는 지방이다. 그들이 다 떠들고 내려갈 동안 죽은 곰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칠장사 창건유래에,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일곱 도적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제도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일곱현인이 칠현산 이름을 만들고, 또 그 현인들이 오래 머물렀다고 길長자를 붙여 칠장사가 되었단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칠장사에서 기도를 올린 후 과거급제 했다는 설이 있어 수능급제를 기원하는 엄마들의 발길이 잦단다. 2등삼각점과 돌무더기가 있고 그 돌무더기 위에 정상석이 얹혀있다.

 

 


09:36 곰림정상 (×513m)

칠현산 다음봉에 정상석을 놓고 ‘곰림정상’이라 적어놨다. 정맥은 우측으로 약간 꺾이고 정면으로 넘어가면 곰내미 마을이다. 백두대간 차갓재 지나 ‘흙목정상’처럼 마을에서 올라선 봉우리란 뜻일게다.


곰림정상에서 신나게 달려 20분이면 덕성산 갈림길에 닿는다. [무술마을2.2 병무관3.5] 무술마을이나 병무관 모두 마루금 왼쪽(동)이나, 내려가는 길은 반대쪽을 가리킨다. 배낭 벗어놓고 덕성산으로 간다.

 

 


병무관(兵武館)

구암리에 병무관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신라시대의 김유신 장군이 화랑도를 훈련시키기 위해 지었던 집이 있다하여 병무관이라 한다. 신라시대의 낭도들은 이곳에 숙식을 해가며 이곳에서 십리 떨어진 화랑벌에 매일 같이 달려가 무예를 익혔다 하는데 지금은 유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무수(無愁)마을

무수마을을 무술이라 한다. 무술 뒷산을 넘어서면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옥정리(玉井里)에 이른다. 이 고개를 무치(武峙)라 하고 무위치(無爲峙)라고도 한다. 무수동(無愁洞)에 대하여 상산지(常山誌)에 있는 말을 인용하면 산이름은 요순산(堯舜山)이며 고개 이름은 무위치(無爲峙)며 동명은 무수동이라 하였다. 무수동이란 없을 무(無) 자와 근심 수(愁) 자를 쓴것을 보면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이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아무 근심없이 피란하였다 한다. 또 한 설은 무술이란 동명이 붙은 것은 호반 무(武) 자와 재주 술(術) 자를 써서 무술이라 하며 옛날 이곳에서 무예(武藝)를 닦던 곳이라는 설도 있다. 40여호에 감이 많이 나온다.

 


 



 



10:00 덕성산 (德城山 519m)

정맥에서 왼쪽으로 50m 가량 나 앉았는데, 갈림봉에서 그리 멀지 않고 조망도 좋다. 역시 돌탑과 정상석이 있고 등산로 안내판도 있다. 이정표 기둥에 생거진천이란 글이 보인다.

 

 


생거진천 사거용인

生居鎭川 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이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풍수지리에서 산 사람이 살기에는 충북 진천이 좋고, 죽은 사람의 묘를 쓰기에는 경기 용인이 좋다는 속설에 기인한 말이다.


이 말을 두고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용인에 살던 여자가 남편과 사별한 뒤 진천의 남자와 재혼했다. 전 남편에게서 아들 하나를 두고 있던 여자는 새 남편에게서도 아들을 한명 두었다. 문제는 여자가 죽으면서 발생했다. 두 아들이 서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나온 것이다. 결국 두 아들은 양쪽 현감에게 해결을 탄원했고, 고민하던 두 현감의 답이 바로 '生居 진천, 死居 용인’이었다. 망자가 살아 있을 때는 진천에서 살았으니 죽은 이후에는 첫 아들이 사는 용인에 묻히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었다. 두 아들이 그 결정을 따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고사에 -정확하진 않지만- “생재소주 사거항주(또는 생거양주 사거북망산)” 표현을 빌어서 만든 말로 추정이 된다. ‘생거진천 사거용인’이 정확히 어느대에 생긴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경기도 지방에 예로부터 널리 전하는 말임에는 분명하다. 진천에서는 군의 브랜드명으로 삼을 만한 문구이나, 용인쪽에서는 그리 달갑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만한 명당이라는 얘기이긴 하나 죽은자를 위한 터라는데야. 어쨌던 공인명당임에는 틀림없어,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선에 나가기 전 조상 묘터를 용인으로 옮긴 예도 있다.


 

덕성산 오니 스멀스멀 흐르던 안개비가 제법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퍼뜩 무장을 새로 한다. 옷은 그대로 두고, 발목스패츠 새로 하고, 보이스펜과 카메라는 비닐봉지로 싼다. 여기서 다시 경기와 충북의 도계를 만나는데, 진천군 광혜원면이라. 남쪽지방 사람들로는 광혜원이란 이름도 생소하게 들린다.

 

 


광혜원(廣惠院)

조선 성종(1469∼1494) 때부터 충청도 지방과 수도 한양을 통하는 요충지로 이곳을 지나는 여행자들에게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였고 충청도 신,구관찰사 관인 인수인계 장소로 광혜원을 설치한 이후 고장의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시간을 보니, 이 정도 속도면 12시정도면 옥정현에 도착이 되겠다 싶어, 백곰님께 무전을 날린다. 내리는 비를 보니 배티고개는 물건너갔고, 옥정현 도착시간까지 정해놓고 보니 신나게 달려 뺄 일만 남았다.


덕성산에서 20분(10:20). 여기까지 길은 그런대로 좋다가 조은 길은 정면으로 가고, 정맥은 우측 비탈길로 내려서면서 본연의 정맥길로 변한다. 바짓가랭이에 풀이 걸리면서 물방울이 그대로 옮겨 붙는다. 앞서가는 제이제이는 안개속에 숨었다.


10:45 △470.8m (5만= 454.9m)

덕성산에서 남서로 향하던 방향이 남동으로 바뀌는 지점. 올라선 초입에 삼각점이 있다. 배낭 내리고 잠시 호흡을 조절한다. 이제 덕성산 거리만큼 더 가면 무이산이고 우측으로 틀어 내리면 옥정현으로, 두시간도 안걸릴 듯 하다.

 


 

 


 


 

 

11:02 돌탑 안부 (310m)

왼쪽 구암리에서 옥정리로 너어가는 고갯길 안부. 돌탑이 있다. 여기가 무술마을에서 말하는 무치(武峙)쯤 되지 않을까 싶다.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소위 ‘잔펀치 구간’이다. 카메라까지 비닐봉지에 싸넣고보니 냅다 달리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다.

 

 


11:30 무이산 (△462.2) 갈림길

오르내림이 반복되다보니 숨이 가빠지고 발길도 둔해져 무이산 오름이 걱정되던 터에, 의외로 중턱에서 사면으로 바로 질러간다. 물론 봉우리로 곧장 오르는 길도 뚜렷하다만 누구하나 올라설 생각없이 자연스레 우측 사면길로 튼다. 곧장 봉우리 올라서도 무이산이 아니라, 덕성산보다 배 이상 옆으로 빠져 앉았기 때문에 더욱 관심 밖이다. 비가 조금씩 멎는듯도 하며, 안개가 걷히며 시야가 깨끗해진다.


우측 사면으로 돌아 안부로 내려서면 다시 처음 본 부부탑 만한 크기의 돌탑이 있다. 맨 윗부분 돌에 뭐라 적어놨는데 낡아 식별이 안된다. 지도를 보면, 이 안부 아래쪽으로 고속도로 금광3터널이 뚫리는 모양이다.

 

 


12:01 벤치봉 (450m)

옥정현 직전 마지막봉이다. 옥정현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릴지라도 나무둥치로 앉을자리까지 만들어져 있어 그냥 지날 수가 없다. 배낭 내리고 마지막 휴식을 갖는다. 점심은 먹을 시간도 필요도 느끼지 않아 도시락은 그대로 집에 가져가게 생겼다.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곧장 나가면 될 것 같은데, 정면으로는 나무둥치로 막아놓고 우측 비탈로 모든 리본이 안내를 한다. 의심없이 미끄러져 내리고 보니 골짜기로 떨어지고 다시 골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니 옥정현으로 이어진다. 짐작컨대, 땅주인인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길을 돌린 것 같다. 곧장 진행하면 잠깐만에 고갯마루로 내려설 일을 골짜기로 떨어지게 하고 물길마저 건너게 하는 의도가 뭔지, 산삼이라도 심어 놓은건지, 사뭇 궁금하다.

 

 


12:16 옥정현(玉井峴 314m)

산에서 고개로 내려서는 장면이 아니라 골짜기에서 고개로 올라선 꼴이다. 우측 마을이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라. 몇발 되진 않지만 고갯마루로 올라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으로 넘어오니 백곰택배가 기다리고 있다.


이후 백곰님이 제공하는 택배를 이용해 당목리에 차를 회수하고, 연이어 곰들의 아지트인 죽산 “본가장수촌”으로 연행되어 오리백숙 닭백숙에, 맥주 소주 등 다양한 메뉴로 고문을 당한 후에야 방면이 된다. 짜달씨리 남에게 배푼것도 없는 마당에 이런 호사를 당하는게 못내 부끄럽고 아쉽기만 한데, 일단은 후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옥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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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당목리~옥정현).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