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 정맥/금남 금북

조은산 2012. 1. 23. 15:49

 

 

 

금북정맥  12구간


2007.12.08 (토)

산길 : 압실마을~국사봉~봉수산~곡두재~갈재

거리 : 22.8km (누계  249.9km)

사람 : 장산 제이제이 조은산





(구간거리)

압실마을~4.4~국사봉~5.4~차령고개~0.7~봉수산~3.2~석지골고개~6.0~곡두재~3.1~갈재고개.....22.8km

Cartographic Length = 25.42km / 총소요시간: 09:35

 

 

 

12(압실~갈재).gpx

 

 



 

전의 ‘요셉의집’에서 막혀있는 군부대를 피해, 마루금 6km 가량을 건너뛴 압실마을에서 시작한다. 압실마을에서 산에 오르면 11탄약창의 남쪽끝 울타리와 접하고 국사봉에 오르면 연기군에서 벗어나 천안과 공주의 시계(市界)와 만난다. 이후 천안(공주) 시계는 갈재까지 이어지며 갈재 이후 다음구간은 아산시계에 접한다. 엽돈재에서 천안에 들여놓은 발을, 오늘 갈재에서 빼게되는 것이다. 진행구간 네차례(9~12차)를 천안에서 논 셈이다.


탄약창에 밀려 아스팔트길로 멀리 헛바퀴 돌린 보상이라도 하는 듯, 이번 구간 산길은 청정산길이라 할 만큼 손때가 덜 묻은 지역이었다. 아스팔트 고갯길인 차령고개가 있긴 하지만 아래로 뚫린 터널 탓인지 고갯마루에는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한양에서 삼남지방으로 내려오는 관문역할을 하던 차령을 흉물들로 방치할게 아니라 옛정취가 살아나도록 자연스럽게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꽤나 힘든 구간이었다. 도상거리도 거리지만, 초반도 아닌 막판에 연이어 나오는 까꼬막에 그야말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구간 최고봉이 마지막 갈재로 떨어지기 직전봉이다. 곡두재가 도로에서 가까우므로 곡두재에서 끊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어차피 내 발로 넘어야 할 길, 이번에 미루면 다음판이 고달파지는 법이라.








12/07 (금)

20:00 서면 출발

23:10 목천읍 찜질방


이틀 연속으로 두 구간을 계획했다.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먼저 한구간 앞선 제이제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토요일에 장산님과 한구간을 하고, 일요일엔 제이제이와 합류하여 함께 하기로 했다. 제이제이는 토요일 근무 마치고 저녁에 천안아산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주(11.30) 개통된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김천)을 이용했는데, 민자도로인 신대구고속도로와 비교할 때 도로비가 거의 절반수준이다. 그렇게 요금 내리라고 아우성쳐도 끄떡도 않더니만... 아마도 매상이 절반으로 줄었을게다.(꼬씨다~^^)


잠자리를 물색타가 지난번 쫓겨날 뻔 했던 독립기념관도 그렇고, 적당한데를 찾지 못해 목천읍을 두어번 들락거리며 눈길이 자주가던 찜질방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전에 호남길에서 한번 들었던 찜질방에서는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도 못자고 돈만 날린 아픔(!) 있는지라 그 후 찜질방은 관심밖이었는데, 목천의 이 찜질방은 그런대로 잘만 했다. “5천원에 이리 조은걸 만다꼬 추븐 맨땅에...” 소리가 절로 나오더니, 차제에 겨울철에는 한데서 떨지 말기로 합의를 본다.






12/08 (토)


(시간표)

06:45 압실마을

08:23 국사봉

09:23 382.8m

10:23 차령고개

10:49 △전의429 (망배단)

10:00 봉수산

11:19 인제원고개

13:05 개치고개

14:57 곡두재

16:05 마지막봉

16:20 갈재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찜질방은 후진데가 좋다. 장사 잘되는데는 손님이 많아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기라. 수면실을 둘이서 전세낸 듯 딩굴다가 05:30 혼자 살짜기 빠져나왔다. 장산님은 압실마을까지 구간이 짧아 일찍 일어날 일이 없는 때문이다. 건너편 24시해장국집으로 가 콩나물해장국 한그릇 밀어넣고 압실마을로 차를 몰았다.


06:45 압실마을 (103m)

양곡2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대놓고 [명산사] 가리키는 팻말따라 들어간다. 면장갑 낀 손이 시렵다만 바람이 없어 푸근한 느낌이다. 하늘에 별이 초롱거리는데 시멘트길은 훤하게 드러나 불은 켜지 않아도 될듯하다. 들판에 서리가 내려 허옇게 보인다.


개울따라 난 시멘트길을 끝까지 따르면 길은 왼쪽으로 휘며 개울을 건너간다만, 정면에 리본이 나풀거린다. 리본따라 들어가니 다시 넓은 밭지대가 나오고 저 건너편에 보이는 리본을 따라 가로질러 간다. 공터의 가장자리에서 숲으로 안내를 하는 리본이 달려있어 들어가 보지만 그걸로 그만이다. 어디에도 길은 안보인다. 도리없이 비탈로 치고 올라가는 수 밖에.


07:09 군부대 철조망 (283m)

10분간 잔가지를 헤치며 급비탈을 기어서 능선에 오르니 철책이 가로 막는다. 자연스레 철조망을 따라 좌틀한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혹시 오인이라도 할까봐 일부러 소리내어 노래를 불러대니 초병이 다가오더니 “여기는 군사보호구역이니 돌아가십시요” 한다. 깊게 눌러쓴 방한모 안에 맑은 눈이 반짝인다. “그려~, 조우게서 왼쪽으로 갈것이니 걱정 말어...”


07:18 철조망 끝 봉(320m)

이 봉우리가 군부대로 인해 끊어진 마루금이 다시 이어지는 지점이다. 철조망은 우측으로 휘돌아가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니 안부다. 왼쪽 아래에서 올라온 리본들이 보인다. 명산사 시멘트길 끝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계곡따라 올라온 길인 모양이다.


08:00 ×370봉

이 후 길은 뚜렷하다. 다시 정맥에 복귀한 셈이라. 아쉽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일출을 보며, 잠시 후 우측에서 올라온 임도(시멘트 포장)로 내려선다. 하얗게 잔설이 깔린 임도따라 올라가면 송전철탑이 있는 ×370봉이다. 임도는 그대로 넘어가고 정맥은 우측 산길로 든다.


08:21 국사봉 갈림길 (×388)

호젓한 분위기의 산길을 신바람 내며 걷다보면 문득 우측 아래로 리본들이 안내를 한다. 국사봉 갈림점이다. 지척에 국사봉을 아니 알현할 수 있는가. 2분 거리다.

 

 




08:23 국사봉 (國士峰 402.7m △전의312)

야구장의 투수 마운드처럼 볼록한 정상부다. 지도를 보니 천안시계가 아래쪽으로 V자 형태로 오목하게 국사봉까지 들어와 있다. 공주, 연기, 천안의 꼭지점이 된다. 연기가 끝나면서 공주를 만나게 되고, 천안의 최남단점이 되겠다. 북으로 오목한 골짜기는 곡교천의 발원이 되겠고, 서쪽 아랫마을에는 갑신정변으로 3일간 대권(!)을 잡은 김옥균의 생가가 있다.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남으로 향하던 정맥이 국사봉을 깃점으로 U턴하여 북쪽을 향한다. 국사봉 직전의 갈림길로 되돌아와 내리막을 내려서면 우측 아래로 절이 보인다. 지형도상 표기된 되재(대재)는 어딘지 알지 못하고 지나치고, 갑자기 서너발의 총소리가 정적을 깬다. 다음날 차동고개에 내려서면서 “전국의 수렵인을 환영합니다”는 플랭카드를 보고 공주시가 수렵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07.11.1부터 4개월). 농작물 피해를 막겠다는 부분은 이해가 가지만 애꿎은 산꾼들 다치는 일이나 없어야겠다.


싸락눈이 날린다.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닌만큼 혹 비로 바뀔까봐 염려된다. 돌 축대가 보이는 봉에 올라서니 작은 헬기장이고, 내려서니 하얀 눈이 깔린 임도가 보이더니 잠시 후 임도로 내려선다. 오늘 임도 빨 한번 받아보까?


 

09:23 382.8m △전의427 (국수봉)

우측으로 돌아가는 임도를 버리고, 왼쪽 철탑을 향해 올라간다. 우측 건너편으로 탄약부대 능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수렛길을 건넌 다음봉이 삼각점이 있는 382.8 봉이다. 삼각점은 왼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다. 일부 지도에 국수봉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고시지명은 아니다.


내림길은 줄줄 미끄러지다시피 급경사를 다 내려오면 길은 순해지는데 왼쪽 아래가 시끄럽다. 차령터널로 들어가는 23번 국도에서 들리는 소리다. 마루금을 차지한 밤나무밭에 삼각점도 아닌 것이 삼각점 흉내를 내고 있다. 사각의 시멘트기둥 형대로 박혀있고 No 220, 이어 No219 두개를 지난다.

 

 


09:52 송전탑 118번

118번 송전탑에서 시작되는 수레길은 임도로 바뀌고, 이 임도는 차령고개로 이어진다. 당연히(?) 임도파 본색을 드러낸다. 바로 앞서 진행한 장산님의 정보가 있었다. 이 임도는 차령까지 마루금과 그리 벗어나지 않으며 점잖게 연결이 된다.

 

 

 



 


임도길 20분 후에 마루금과 합류를 하고, 잠시 함께 가다가, 진주강공 집단묘터에서 다시 벌어지는데 계속 임도를 고수해도 되고 산길로 붙어도 된다. 진주강공 뒤편으로 올라서면 다시 송전철탑을 만나고 차령고개로 내려선다.


10:23 차령고개 (212m)

한 때는 사람들의 발길로 풍요로운 시절이 있었음직하게 대형 휴게소 건물과 부대시설들이 남아있다. 마루금상의 여느 고개와 마찬가지로, 아래로 터널이 뚫린 다음 보이는 현상이다. 더 예전으로 돌아가면 차령은 아무데나 있는 흔한 고갯길이 아닌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도 등재된 족보있는 고개로, 한양에서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로 가는 삼남대로상의 관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10조에서 ‘차령고개 이남, 금강 밖은 등배(반역)의 산세이므로 그 지역 인물을 등용하지 마라’고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차령 (車嶺)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광덕면(廣德面) 원덕리(院德里)와 공주시(公州市) 정안면(正安面) 인풍리(仁豊里)의 경계에 있는 고개. 차령산맥을 넘는 고개이며 서북쪽에 봉수산(366m), 남동쪽에 국사봉(403m)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차현(車峴)이라 하였고 예로부터 이 고개를 경계로 기호와 호남지방을 구획해 왔으며, 금강의 지류 정안천(正安川)과 곡교천(曲橋川)이 여기서 발원하며 양 하천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천안과 공주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이며 1982년 국도 확장 및 포장공사가 완료되어 공주와 천안 및 서울간의 교통이 더욱 원활해졌다. 지금은 국도가 따로 나 차들이 드물다. 울창한 숲만이 옛 위용을 알려준다. 차령고개 밑 정안면 인풍리 주민 조주형(67)씨는 “옛날엔 숲이 더 우거졌었다.”면서 “50년 전만 해도 천안 행정리 5일장에 가려면 고개에 도둑떼가 많아 혼자 소를 끌고 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주변에 ‘도둑골’이라는 마을까지 있었다고 한다. 차령고개는 당초 ‘금북정맥’으로 불렸으나 일제가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차령’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찻길고개’가 되는데, 왕조시대에 자동차가 있었을 턱은 없고 수레나 가마가 넘던 ‘관도’였다. 이 고개 옆으로 ‘쌍령고개’가 있는데 부보상이거나 농투성이들이 발품을 팔던 ‘보조도로’였다.



이를 대동여지도를 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공주와 천안의 일직선상에 있는 고개가 차령이요, 예산으로는 차유령(차동고개), 온양으로는 각흘고개를 넘게되어 있다. 삼남대로라 함은, 한양에서 수원 천안 공주 광주를 거쳐 해남까지 연결되는 970리 길을 말한다. 이 밖에 상주 대구 밀양으로 해서 동래로 가는 영남대로와 관동대로, 의주대로 등 10개 대로가 있다.

 

 

 


 

 

 

녹이 쓴채 서 있는 관광안내도에는 짤막하게 언급이 되어 아쉽다. 이 고개를 쌍령고개라 불렀다고도 한다는데 이는 잘못이다. 쌍령은 따로 있다. 어쨌든 우리같은 마루금파와 달리 이런 옛길을 따라 걷는 ‘길파’들의 행적도 만만찮은데, 마루금 걷기를 다하면, 옛길을 따라 떠나 보는것도 해볼만한 일이다.


예전에 카메라빨 좀 받았을만한 폭포가 있는 연못 옆으로 난 대나무 숲 계단으로 올라간다. 씩씩대며 15분을 오르면 310쯤되는 봉우리다. 저편에서 건너온 철탑이 있다. 그냥 임도를 따르려다가 앞 둔덕으로 올라가니 헬기장 저편에 망배단(望拜壇)이 있고 그 뒤에 삼각점이 있다.


10:50 337.0m (△전의429)

헬기장 보도블럭에 덧칠한 흰색페인트로 삼각점까지 칠을 해놨다. 능선너머로 고속도로 차소리가 요란하다. 왼쪽으로 가는 임도를 가로질러 (이 임도를 따르면 봉수산을 생략하고 다시 만난다) 계속 오름길을 가면 거대한 바위가 내려다본다. 망바위라 이름 할만한 바위다. (길이가 십리나 되었다고 십리바위란다).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정상부에 묘가 있다. 묘 뒤쪽에 돌무더기가 보인다.

 

 


11:00 봉수산 (366m)

한 때는 봉수대였던지 돌무더기 흔적이 있을 뿐 특이한건 없다. 그대로 넘어가려다가 문득 낌새를 차리고 되돌아섰다. 다시 묘터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정맥이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안부에서 정면 철탑을 지나 내려가면(봉수산 직전에 갈렸던 임도가 다시 만난다) 우측 계곡에 보이는 거대한 전망대 형태의 시설이 있는 절과 그 뒤편 봉우리가 태봉산(469m)쯤 되겠고, 왼쪽으로는 골프장이 보인다. 그린에 사람들이 놀고 있다.

 

 




  


11:19 인제원고개 (260m)

안부에는 우측에서 올라온 임도가 왼쪽 골프장으로 못 넘어 오도록 철조망 팬스로 막아놨다. 고속도로 차령터널 위쪽이 된다. 인제원(仁濟院)은 대동여지도에도 표기가 있는데 조선시대의 숙박시설로 보인다. 기록에 쌍령(双岺)은 고개 양쪽에 높은 봉우리가 있어 쌍령이라 한다... 고 했는데 고개치고 그렇지 않은데가 어디있나. 또,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고개로 차령은 관로(官路) 쌍령은 민로(民路)라는 설명을 보면 여기가 쌍령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갯길에서 다시 산길로 올라붙어 30분 정도 거의 능선에 이를 무렵, 우측 골에 텐트가 한동 있다. 울타리까지 두르고 제법 견고하게 설치된걸로 봐서 누군가 터를 잡은 모양이다. 앞마당에 간이 테이블까지 둔걸 보니 손님 맞을 차비까지 갖추었다. 그 텐트 뒤로 휘도는데 산너머에서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다.


 

11:57 임도

방향이 남서로 바뀌고, 410쯤 되는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발아래 임도가 나온다. 4~5m 되는 방벽위에서 한 손에 카메라 들고 먼산 보다 그만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360도 앞구르기를 하면서 임도에 나뒹굴어졌다. 쳐박힌 자세 그대로 동작을 멈춘 채 육신사지 마디마디 점검해 보니 별 이상은 없어 보인다. 다행이다 싶어 일어나는데 콧등에서 뭔가 흐른다. 이정도 구불링에 경미한 찰과상은 감지덕지다.


△421.7 삼각점봉은 우측으로 벗어나 있다.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도면에는 임도표시가 있으나 나무가 점령해 버렸다. 임도의 기능은 완전상실되고 흔적만 희미하게 있을 뿐이다. 왼쪽 양지를 차지한 묘터가 있어 배낭 내리고, 상처도 치료하고 점심을 먹고 간다(12:10~12:35)


석지골고개는 지형도상 표기만 있는, 사람의 발길은 사라진 고개다. 지능선이 이리저리 분기된다만 뚜렷한 길과 리본이 안내하므로 헛갈림은 없다.


 

13:05 개치고개 (288m)

우측으로는 내려갈만한 길이다만 왼쪽은 절벽이다. 한 때 채석장이었던지 수직으로 깎인 절개지가 흉측하게 남아있다. 아래에 민가 한 채가 보인다만 왼쪽으로는 도무지 내려설 엄두가 안난다. 다시 건너편 비탈은 급한 까꼬막이다.


13:22 420.9m (△전의314)

거친 숨을 뱉아내며 올라서니 삼각점이 기다린다. 그대로 넘어 내려가면 희미한 소로가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길이다. 삼각점봉보다 더 높은 봉우리다. 우측 골짜기에 십자가의 하얀 건물이 보이는데 앞쪽으로 함께 붙어있는 건물은 절로 보인다... 도면상으로는 절터골에 만호사(태고종)가 표기되어 있다. 먼 산줄기 너머로는 천안시가지 아파트 단지도 보인다. 천안의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산불 흔적이 있는 능선에서 우측아래로 임도가 보이고 누런 고동색 비탈에 유난히 하얗게 빛을 내는건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수피를 태울 때 자작자작 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이름이 지어졌다는 유래가 있고 껍질에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자로는 華(화) 또는 樺(화)로 쓰는데 예전에는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의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화촉을 밝힌다하면 결혼식을 말하는 것이고 자작나무 껍질의 불로 어둠을 밝혀서 행복을 부른다는 뜻이 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이 나무껍질에 부처님의 모습이나 불경을 적어 두는 종이 구실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검단이마을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길에 붙으며 아이젠을 찬다. 아까부터 오름길 비탈에 미끄러지며 헛발질이 잦았다. ×440(H) 오름길은 너무 가팔라 도저히 그냥은 오르지 못하겠다. 낙엽에 미끌리지 않기 위해 준비를 했는데 곡두재를 넘고는 아예 눈길이라 오늘 아이젠을 준비 안했더라면 아마 도중에서 꼬꾸라지고 말았을끼라.


아이젠을 차니 낙엽깔린 비탈이라도 전혀 미끌림이 없다. 보도블럭 깔린 헬기장에 올라서니 두시 방향으로 광덕산 능선이 나타난다. 내림길 역시 맨발 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다. 바닥에 돌만 없으면 4발 아이젠은 전혀 부담이 없다.

 

 


14:57 곡두재 (320m)

아래로 터널이 뚫리고 도로(629번)가 지나가는 모양이다만, 지도로만 보인다. 차령고개부터 연속되는 급비탈에 종아리가 땐땐해졌다만 정작 까꼬막은 이제부터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도 남은 봉우리 높이를 몰랐다. 고개에 앉아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온다. 554에... 645를 넘어야 갈재로 떨어진다. 이런~, 닝길....


30여분 꾸역꾸역 올라서니 다시 떨어진다. 또~, 닝기리...!!  북사면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나마 아이젠을 차고 있으니 헛발질 없이 올라가지... 아이젠 없었으면 필시 곡두재에서 내려가고 말았을 터다.

 

 

 

 

 


15:47 ×635

잠깐 내렸다가 다시 오르기를 30여분. 고도는 635m, 능선분기점이다. 좌우 양쪽 리본이 다 걸려있다만 정맥은 왼쪽이다. 건너편 우측으로 뻗는 광덕산 능선이 햇볕을 받아 환하게 빛난다. 아무도 밟지않은 눈길에 발도장 팍팍 찍으며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16:05 삼면봉

공주시 유구, 정안과 천안시 광덕면의 삼면봉에서 정맥은 우측으로 내려간다. 직진 얼마 안되는 곳에 오늘 최고봉 △646봉이 있다만, 여력이 없다. 눈길만 한번 주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아래쪽 갈재 도로는 그늘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다.


장산님으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광덕사 지나 갈재산장 이후로는 눈 때문에 차를 올릴 수가 없단다. 갈재산장까지 약 2km 걸어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만(마지막으로, 닝기리~~), 내리막 임도길이야 힘들 것도 없고 오늘 귀가할 일도 없으니 천천히 내려가면 되지않겠냐 싶다. 비탈길을 신나게 떨어진다. ‘이쪽으로 올라오는 사람 욕 좀 보겠구나~’ 싶은 것도 입 밖으로는 안 나온다. 소속리산에서 잘못 내려서면서 내가 뱉은 말에 내가 당한적이 있었으니...

 

 


16:20 갈재 (葛峴 460m)

비탈을 다 내려서니 우측에 임도가 보인다. 설마 곡두재에서 우측으로 가던 그 임도는 아니겠지? 임도로 내려서려다가 끝까지 산길을 이어 가니 날머리 도로에 웬걸, 차가 올라와 있다. 억지로 차를 올린 모양이구나 싶어 고개에 내려서니 저쪽에 차가 한대 더 보인다.


해후(邂逅)

환한 미소로 다가오는 백곰 아우님.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다. 보온병을 열고 따라주는 따뜻한 차 색깔만큼 진한 감동을 준다. 내려서는 길은 백곰님이 끄는대로 유구쪽으로 내려 각흘고개 넘어 천안아산역으로, 부산에서 올라 온 제이제이를 만나고, 계속해 천안시내 쌍용회센타까지 순방을 마치고 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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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압실~갈재).gpx  
   
요즘 금북 마루금을 오르고 있습니다..
좋은 정보와 자료(~)감사히 무단으로 보고 갑니다(~)(~)(^^)
어서오이소(~)(~)(~),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