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 정맥/금남 금북

조은산 2012. 1. 23. 15:52

 

 

 

 

 

금북정맥  15구간


2008.2.17 (일)

산길 : 학당리~여주재~오봉산~백월산~스무재

거리 : 18.8km (누계  312.1km)

사람 : 산개미 장산 제이제이 조은산


 

(구간거리)

학당고개~3.4~오류골~3.8~여주재~3.8~오봉산~2.7~공덕재~2.8~백월산~2.5~스므재....18.8km

Cartographic Length = 20.3km / 총소요시간: 08:16

15(학당~스무재).gpx

 

 

 

 

 

이 구간 산경표를 보면,

....우산(牛山) 구봉산(九峯山) 백월산(白月山) 성태산(星台山) 오서산(烏栖山)... 인데, 우산은 현재 지형도에는 어문곳(청양읍내)에 가있다. 구봉산은 오봉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성태산이 금북정맥에 포함되어 있는데, 대동여지도에도 성태산 줄기가 정맥 산줄기에 포함된걸 볼 수 있다.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산이름이 뒤바뀐 것이거나 당시의 산줄기 파악에 오류가 있었던 건지 알 수는 없으나, 4~500년 전과 현재 지형도의 완전한 일치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것이다.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혹은 충분히 비교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 구간에는 반드시 짚어야할 두 봉우리가 있다. 하나는 금북정맥의 최남단 백월산이고, 또 하나는 정맥의 최고봉 오서산이다. 구간을 적절히 조절하면 하루에 두 봉우리를 모두 짚어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말하자면, 공덕재에서 시작을 한다면 충분히 백월산을 넘고 오서산까지 오를 수가 있다. 또한 이 구간에 금북정맥의 중간지점을 지나게 된다. 칠장산에서 안흥진까지 구간의 절반인 지점이 여주재 1.2km 못미친 319봉이 된다.



29번국도 학당고개는 겨우 해발 110m로 청양읍에서 향하면 고개인지 느끼지도 못할 만큼 평탄한 길이다. 마루금을 차지한 장례식장 옆으로 돌아들면 매일유업 공장이 마루금을 우회하게 한다. 우유공장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돌다가 급기야 물이 흐르는 도랑까지 건너게 된다. 공장지대를 벗어났나 싶을 즈음 머리위로 고압선이 윙윙거린다. 


여주재에서 큰골고개까지는 얼마 안되는 도상거리를 두고 천마봉이 높이 솟아있다. 용을 쓰매 올린 고도를 순식간에 반납하고 허무하게 내려앉는다. 봉우리가 다섯이라는 오봉산은 의외로 수월하다 싶더니 공덕재를 넘어 백월산 오름이 진을 다 빼놓다시피 한다. 칠장산에서 시종 남진하던 정맥은 백월산을 깃점으로 북으로 머리를 튼다. 넓은 들판에 홀로 우뚝 선 오서산이 어여오라 손짓하지만 짧은 다리로는 내쳐 넘지 못하겠다.







02/17 (일)



(시간표)

06:20 학당리

08:05 334.0m

08:39 금북정맥 중간지점

08:54 여주재

09:21 천마봉

10:55 오봉산

12:10 공덕재

13:24 백월산

14:40 스무재




청양 시장통에 있는 식당은 평소에는 이른시각에 문을 열지 않는데 미리 예약을 해놨던지라 불을 켜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점심도시락 싸 넣고 커피한잔씩 걸치고 학당고개로 간다. 아직 캄캄밤중이라 어두운 장례식장 뒷비탈 보다는 수월한 길을 찾아보려 정비공장 앞길로 들어가니 매일유업 정문에서 길이 끝난다. 차를 돌려 나오다가 정비공장 옆으로 산으로 드는 너른 길이 있어 여기를 들머리로 잡는다. 산개미님과 내가 내리고, 장산님과 제이제이가 한팀이 되어 스무재로 간다.


06:20 학당리 출발

정비공장 옆길은 묘터로 오르는 길이다. 여러 단의 묘터 맨 상단부로 올라가니 정맥리본이 걸려있다. 이 길로도 많이들 오르는 모양이라 길은 뚜렷하고 이내 정맥 마루금을 만난다. 빽빽한 잡목 사이로 겨우 한사람 지나다닐 길을 요리조리 틀며 빠져나가니 철조망 울타리가 나온다. 매일유업 공장 울타리를 따라 공장 영역을 우측으로 휘도는 형국이다.


철조망 울타리가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고, 공장에서 흘러나온 작은 지류를 건너간다. 정확한 마루금은 우유공장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철조망을 따라 오르고 어둠속에서 우측으로 향하는 리본들이 출렁인다. 빽빽한 잡목 숲을 빠져나오니 임도가 가로지른다. 정면의 송전탑을 보고 왼쪽으로 이동 후 다시 우측 숲으로 든다. 삼각점이 있는 163.3봉은 좌측으로 벗어나 있다.


길은 임도수준으로 넓어진다. 철망으로 견고하게 구축한 축대 위에는 송전탑이 자리를 잡았다. 먼데까지 조망이 트이고 동쪽 하늘부터 어둠이 걷히고 있다.

 

 


07:15 박정거리

넓은 수렛길 고개는 흙이 물렁물렁하게 밟힌다. 우측 배나무골로 들어가는 지도상 박정거리인데, 청양과 비봉의 면계를 다시 만난다.


고갯길에서 올라서면 흔치않은 공조참의 묘를 만난다. 공조참의(工曹參議)는 정3품 벼슬인데, 공조는 육조(이, 호, 예, 병, 형, 공)의 하나이고, 참의는 판서(정2품) 참판(종2품) 다음(정3품)으로 요즘의 차관(보)쯤 되지않나 싶다. 요즘 방영되는 ‘대왕세종’이나 ‘이산’에 나오는 도승지와 동급이니 당시로는 꽤나 쟁쟁했던 나릿님이다.


07:29 오류골 임도

한봉우리를 넘으면 연이어 넓은 고갯길을 만난다. 청수리에서 용천리로 넘는 비포장길이다. 해발 200m가 채 안되니 학당리 출발 한시간 남짓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었을 뿐 거의 평탄했다는 얘기다. 앞 둔덕에 올라서니 동쪽 울창한 숲사이로 일출의 붉은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남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며 천마산 봉우리가 숲 위로 솟아있다.

 

 


08:05 334.0m (△청양401)

널찍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선 봉우리엔 삼각점이 있고, 아무렇게나 써 갈긴 [방한 용천주민 해맞이]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방한이나 용천이나 모두 비봉면인데, 도무지 해맞이 할만한 봉우리는 아니다. 해뜨는 동쪽이나 지는쪽이나 모두 갑갑하다. 기왕 해맞이 하러 올라왔더라면 조망이 되게 벌목이나 좀 해놓을 일이지. 뚜렷한 직진길은 청수동 하산길이고 정맥은 우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08:39 금북정맥 중간지점

아무런 특징도 볼꺼리도 없는 산길을 무턱대고 나간다. 지금 지나고 나면 언제 지났던지 기억도 나지 않을 그런 길이다. 여주재 차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무렵 GPS로 측정해본 금북정맥 중간지점에 이른다. 학당리 출발 2시간 반이다. 아무 특징없는 능선길이다만 잠시 배낭을 내리고 나름대로 의미를 새겨본다.


금북정맥 중간지점

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내려 온 한남금북정맥이 칠장산에서 북으로 한남정맥을 보내고, 남쪽으로 뻗어내려 안흥진 해안까지 도상거리 282.4km이다. 이를 절반으로 나누면 141.2km인데, 칠장산(안성)에서 141.2km 되는 지점이, 학당리(청양)를 출발하여 여주재 (북쪽) 1.2km 못 미친 지점 319m봉이다. (36° 27' 26.57''N / 126° 45' 23.51''E) (청양군 청양읍 장승리, 비봉면 방한리)



08:54 여주재 (210m)

36번 국도로 청양읍과 화성면의 경계다. 국토지리원의 고시는 여두재로 되어 있으나 2만5천 지형도 표기는 여주재로 되어 있다. 현지의 도로 표지판에도 [여기는 여주재 정상]으로 되어 있으니 여주재가 맞겠다. SK주유소와 구봉휴게소 간판을 보고 반갑게 달려갔으나 휴게소는 “임대” 팻말을 걸어놓은 채 폐점 상태다.

 

 



 

 


09:21 천마봉 (天馬峰 422.1m)

여주재에서 도상거리 0.7km에 고도는 210m. 그야말로 바딱선 비탈이다. 25분을 땅만 보며 씩씩대며 올랐다. 산불초소와 철조망 울타리를 둘러친 산불감시 카메라, 또 TV중계시설이 있다. 봉우리 한가운데 불룩솟은 삼각점은 국방부 소속이다. 그 삼각점을 디디고 뒷꿈치 발딱 세우니 남쪽으로 산줄기가 드러나는데, 오봉산과 백월산, 그 뒤로 왼쪽은 성태산(630m), 오른쪽은 성주산(680m)으로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또 너무 허무하게 떨어진다. 애써 올린고도 한푼의 에누리없이 다 까먹는다. 넓은 길로 내려서다가 이내 우측 숲길로 들어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린다. 같은 고도를 15분만에 원위치 한다.

 

 


09:50 큰골고개 (238m)

정면 절개지를 막고있는 철조망 왼쪽 끝으로 돌아 내려서니 1차선 아스팔트 도로다. 왼쪽 아래 큰골마을이 있어 큰골고개라 한다. 고갯마루로 향하며 건너편 절개지를 올라서니 이내 봉우리다. 남쪽 사면은 관상수 조경단지인 ‘고운식물원’이다. 식물원 상단부에 나있는 임도를 따른다. 왼쪽 아래 계곡 전체가 식물원이라는데 내려다보니 웬만한 휴양림쯤 되는 규모다. 왼쪽 멀리 청양 시가지도 보인다. 임도길 15분 후에 우측 산길로 들어간다.


큰 굴곡없는 능선길을 30여분 진행하니 풍향계였던듯 철사로 된 뼈대만 남은 파이프가 꽂혀있는 헬기장에 오른다. 헬기장에 올라서니 비로소 서쪽 건너편에 오서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 지금쯤 장산님과 제이제이가 오서산에 오른듯도 하다. 1분 더 오르면 오봉산 정상부다.

 

 


10:55 오봉산 (五峰山 498m)

이어지는 연봉이고, 지도에도 두군데나 오봉산을 표기하고 있어 정상부를 찾기가 어렵지 않나 싶었는데 [이곳은 정상입니다] 표지목이 서 있어 의심없이 오봉산임을 확인다.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구봉산(九峰山)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300 여년의 세월에 봉우리 네 개가 없어진건지 모를 일이다.

 





서쪽으로 향하던 마루금과 면계가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437봉에 산불초소가 있다. 망루형으로 높게 솟아 있는데 위로 올라가봐도 조망은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11:20~11:40)


이제 내려서기만 하면 공덕재이려니 했던것이, 가도가도 나오지 않는다. 안부 고갯길에 내려섰다가 다시 오름길까지 있다. 지도를 좀 더 신중히 봤어야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상 2km는 될 거리다. 그래도 오서산이 시야에 들어와 주니 지루함이 들어진다. 보면 볼수록 그 자태가 웅장해 보인다.

 

 


12:10 공덕재 (240m)

화성면과 남양면의 경계다. 왼쪽 면이 오봉산을 지나며 남양면으로 바뀌어 있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이나 차량통행도 거의 없는듯한데 제설 작업한 모래만 수북히 깔려있다. ‘옛부터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만 무사히 넘을 수 있다는 고개라 한다’ (믿거나 말거나... 조은산 作)


이제 백월산 오름이 기다린다. 서쪽으로 조금 치우쳐 [백월산 3.0km] 이정표가 있다. 청양군에서 세운 이정표는 정상까지 꾸준히 안내를 한다. 다시 해발 330m를 올려야 하는 작업이 기다리는데 그나마 거리가 3km라니 다행이다. 천마봉처럼 급비탈은 아니라는 얘기다만, 어쨌거나 각오는 해야된다.

 

 


이정표가 있듯 일반등산로가 넓게 열려있다. ×282봉은 간단하게 오르고, 내려서면서 바라보이는 백월산은  하늘높이 성벽을 두르고 있다. 내려서면 임도수준의 고갯길 지형도상 간티를 지난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바닥에 잔설이 나타난다. 오름길 도중에 평상과 벤치도 나오고, 서쪽으로는 오서산이 조망된다. 꾸준한 오름길, 간티에서 30분만에 너른 안부로 내려선다. 벤치와 [백월산 노선 안내도]가 있고 [백월산 1.2km] 남았음을 알려준다.

 

[백월산 1.0km] 이정표부터 까꼬막이 시작된다. 하얗게 눈이 깔려있어 더욱 힘들게 한다. 어제 산행 후 아이젠이 필요 없다는 판단에, 배낭에서 들어냈기 때문에 맨발로 밟는 눈비탈은 발걸음을 더 더디게 만든다. 다행히 통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어렵사리 올라가다가 계단이 끝난 마지막 비탈 수십미터는 미끌리지 않으려 용을 쓰매 오른다. 안간힘을 쓰며 백월산 주능선에 올라섰다. 왼쪽 건너 봉우리 헬기장쪽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정상은 우측이다.


13:13 주능선 [←헬기장 / 백월산0.4km]

주능선은 암릉이 어우러진 날등이다. [배문] 팻말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바위벽이 양쪽으로 열려 마치 배라도 들어올 만한 문(門)이다. 여름철에는 바람한번 시원하겠다. 바위가 퇴적암으로 마치 자갈을 시멘트와 버무려 놓은 듯, 레미콘으로 갖다 부어놓은 듯한, 마이산에서 본 것과 같은 바위다. [줄바위] 팻말도 있으나 어디쯤인지 찾을 수 없다. 서쪽으로 벼랑을 이룬 조망바위에 서면 오서산 전체가 조망이 된다. 서해바다의 등대역할을 한다더니 과연 그럴만한 자태다. 주위 모든 봉우리를 멀리 물리고 유아독존으로 홀로 솟아있다.

 


 


(오서산)



 

13:24 백월산 (白月山 570m)

이어지는 암릉에 정상부가 나타난다. 정상석이 두 개나 있고 [백월산 성태산 안내도]가 있다. 드디어 금북정맥의 최남단에 이른 것이다. 이제 정맥은 다시 머리를 북으로 돌려 서산의 은봉산까지 북진을 한 다음 서해바다로 향하게 된다. 여기서 북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질적으로 금북정맥의 의미가 퇴색이 되는 바인데, 금강물 가두기를 여기서 끝낸 것이다. 금강의 북쪽 울타리인 ‘錦北’으로써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셈이다.


‘山自分水嶺’ 본연의 역할에 상응하는 산줄기는 백월산에서 곧장 남으로 뻗어 성태산(623.7m)으로 가는 산줄기다. 신산경표에서는 이를 호서정맥으로 명명하고, 금강하구둑이 있는 용당정까지 70km를 이었다.


청양군 : 이 산은 남양면(옛날 사양면)의 서쪽에 있어 달이 지는 곳이라 백월산이라 함.

보령시 : 달이 뜰 때에 산에서 올라오는 것 같다 하여 월산이라 칭하다 백월산이라 불리고 있음.

 

 


양쪽 마을에서 말하는 뜻은 반대이나 달을 소재로 한 점은 같다. 백월산 능선에 걸린 둥근 달은 양쪽 마을 모두에게 이런 유래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정표와 안내도에 나오는 성태산에는 천세봉, 만세봉이라 새긴 두 정상석이 있는데 3-1운동시 이 봉우리에 올라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곳이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는데, 보령시계와 접하면서 북서쪽으로 꺾이는 ‘터닝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정상부에서 수십미터 진행 후 우측으로 내려선 눈길에 찍힌 발자국 몇 개를 보고 ‘여기구나’ 싶어 따라 내려갔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성급했다. 잠시 더 진행 했더라면 뚜렷한 길이 있었는데, 능선이 내림길로 변하길래 “여기가 맞는가벼~” 했는데, 길도 아닌 거의 절벽과 다름없는 비탈을 줄줄 미끌어져 내리고서야 “거기가 아닌가벼~”로 수정한다.


가만있어도 줄줄 미끌리는 급비탈을 도로 올라갈 수도 없어 나름대로 마루금을 가늠하며 더 내려오니 문득 왼쪽에서 내려온 뚜렷한 길과 만난다. 발자국 몇 개를 무작정 믿었던게 아니라 마젤란(GPS) 지도상 트랙을 따라 내려온 것인데. 비록 마루금은 정확했을망정 사람이 디딜곳은 아니다.


예사 경사가 아니다. 사정없이 쏟아 붓는 급비탈을 다 내려왔나 싶어 한숨 돌림도 잠시 ×429봉에서 잠시 평탄하다가 다시 한차례 급비탈이 기다린다. 아이젠도 없이 눈깔린 북사면이라 벌목둥치를 골라 밟으며 겨우겨우 내려가니 내리막임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백월산을 다 내려서고나니 방향이 반대방향인 북으로 바뀌는데 찬바람이 오전에는 오른쪽 볼을 때리더니 이제 왼쪽 볼을 때린다.

 

 


14:23 웃말 마을 안부

하산을 시작한지 40분만에 웃말 마을길에 내려선다. 비포장 임도인데 지도를 살펴보니 백월산 직전 간티로  이어지는 임도다. 그렇다고 백월산을 빼먹고 임도로 질러올 수는 없는 일이다. 앞쪽의 둔덕으로 올라서니 난데없이 빽빽한 대나무 밭으로 들어간다. 대나무 밭속에서 미로찾기 훈련을 하듯이 요리조리 돌며 빠져나오니 다시 임도가 나온다. 이제 한봉우리만 넘으면 스무재다.

 

 


14:40 스무재

여주재에서 넘었던 36번 국도. 보령 청라면과 청양 화성면의 경계로 2차선 아스팔트다. 왼쪽으로 보이는 돌표석이 스무재를 나타내는, 혹시 유래라도 있는가 싶어 가봤지만 양면 모두 ‘萬世保寧’이라 새겨져 있다. 대동여지도에 ‘雁峙’(기러기 안)로 표기된 지점과 비슷한데 현재의 스무재를 말함인지, 스무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따로 유래를 찾아봐도 “옛날 도적들이 많이 출몰하여 장정 스무명이 되어야 넘었다...”는 뻔한(?) 내용이다.


때 맞춰 아홉굴고개에서 산행을 마쳤다는 장산님의 연락이 온다. 아홉굴고개가 있는 홍원리를 검색하니 홍성군 홍동면이다. 다음구간이면 벌써 홍성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귀갓길 차 안에는 백월산 고생담과 오서산에서 서해바다를 본 자랑으로 희비가 교차되지만, 다음구간 바로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니 걱정과 기대를 서로 인수인계 하는 셈이다.

 

 

 

(스무재)

  

 

 

 


 


- 첨부파일

15(학당~스무재).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