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 정맥/금남 금북

조은산 2012. 1. 23. 15:54

 

 

 

 

금북정맥  17구간


2008.03.15 (토)

산길 : 아홉골~일월산~홍동산~수덕산~나본들

거리 : 22.2km (누계  353.9km)

사람 : 산개미 장산 제이제이 조은산




(구간거리)

아홉골~5.8~꽃조개고개~0.8~남산(222)~2.6~하고개~2.9~일월산(394.3)~1.3~까치고개~3.5~홍동산(309.8)~3.9~수덕산(495.2)~1.4~나본들고개......22.2km

Cartographic Length = 24.38km / 총소요시간: 07:48


 

17(아홉골~나본들).gpx

 

 

 

[산경표] ....보개산(寶盖山) 월산(月山) 수덕산(修德山) 가야산(伽倻山) 성국산(聖國山) 팔봉산(八峰山) 백화산(白華山) 지령산(知靈山) 안흥진(安興鎭)


 

 

 


아홉골은 홍성군 홍동면과 광천읍의 경계이고, 북으로 진행하면서 우측은 홍성읍과 홍북면, 좌측은 구항면을 지나다가 까치고개에서 예산군계를 접한다. 산행 마치는 나본들은 예산시 덕산면 광천리다. 따로 마을 이름까지 챙겨봐야 하는 이유는 들, 날머리 접근시 네비게이션 검색을 위해서다. 고개 이름이사 우리같은 산꾼들이나 알지 일반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홍동산을 내려서면서 온전히 예산으로 들지만 오늘 대부분을 홍성에서 논다. 홍성은 옛날 홍주성(洪州城)의 줄임말이라 하고,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보면 모두 홍주로 기재되어 있다. 또, 호서지방의 주요 읍성이었고 이 고을을 중심으로 발전한 홍주는 서쪽에 일월산, 북쪽에 용봉산이 홍주를 호위하는 형국이란다. 어쨌든 서해바닷가의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금북정맥에, 더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에서 장쾌하게 펼쳐지는 서해바다 조망을 기대했는데, 오늘도 황사의 훼방으로 바닷물은 보지 못했다.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은 마루금 타는 일에도 여지없이 적용이 된다. 릴레이식 택배법에 이은 두 번째 개혁안인데, 전날 저녁에 출발해서 현지 땅박이나 여관박 하던 것을 새벽에 출발해서 노박으로 출발한다. 결과적으로 이틀 연속 진행시 투박하던 것을 원박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첫날은 일찍 마쳐봐야 아무 할 일 없을 바에야, 산행 시작시간이 늦어도 상관없으니 당일 새벽에 집을 나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막상 적용을 시켜보니 경비는 물론이고, 아무 일없이 허공에 날린 시간이 꽤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혁신분과위원장 장산님의 예리한 칼날에 객지 여관방 매상 또 떨어지게 생겼다. 그렇긴 한데, 갱제를 살리자는 박통(博統)의 의도와는 어째 따로가는 것 같으다...


금북도 거의 마무리단계다. 오늘의 덕숭산과 내일의 가야산을 끝으로 이름있는(?) 산은 더 이상 없고 태안반도 끝점, 바다를 향해 내려앉는다. 우리식으로 진행하면 한번반이 남았을 뿐이다.





3.15(토)


08:30 아홉골

08:52 갈마고개

09:42 신성역

10:07 꽃조개고개

10:22 남산

11:13 하고개

12:10 일월산

13:04 까치고개

14:15 홍동산

14:57 수덕고개

15:43 덕숭산

16:20 나본들고개






04시 서면을 출발해서 08시 훨씬 넘어 광천읍 식당에 앉았으니 멀기는 멀다. 거리도 거리지만 길이 수월치 않다. 고속도로만 남해, 대전-통영, 장수-익산, 호남에 잠깐 올랐다가 전주에서 국도로 내리고, 다시 서해안고속도로... 독도법을 이 만큼이라도 배웠으니 그나마 어문데로 안 빠지고 찾아왔지 싶다. 


생각과 달리 아침밥 하는데가 없어 이리저리 돌다가 겨우 버스터미널 앞에 한 집을 찾았다. 갈비탕을 시켰는데 고향맛 같지는 않다. 청양고추 아니랄까봐 맵기는 또 어찌나 매운지.


08:30 아홉골 (85m)

여느 때 같았으면 산길을 달리다가 두 번째쯤 쉴 시각에 첫출발을 하는, 근래 접해보지 않은 풍경이라 다소 어색한 기분도 든다. 그만큼 습관은 생각을 붙잡아 메게 된다. 역시 전과 마찬가지로 두 패로 쪼개져, 산개미님과 나를 내려주고 장산님과 제이제이는 나본들로 간다.


이미 아침 일을 다 시작할 시각이라, 들머리 외딴집 아저씨도 분주하던 가운데 낯선 객을 흘끔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집 마당을 스쳐가는 산꾼들을 향해 개는 튀어 나올듯이 으르렁대지만 아저씨는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다. 집 뒤로 돌아나가니 왼편에서 올라온 수렛길과 만난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수렛길에서 시작을 하는게 나았다. 고갯마루 서편 30m쯤에 있는 수렛길이다. 지난구간 장곡면에서 이어 온 밭길의 연속이다. 밭둑에서 돌아본 오서산은 동그란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08:45 열녀 난향의묘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묘비 양 옆면과 뒷면을 돌아가며 빼꼭히 새겨놓은 글을 봤다. 춘향이와 비슷한 사연인데 춘향이는 말년에 빛을 봤지만 난향이는 죽어서도 그러지 못했다.


열녀는 평양기생으로 황규하의 애인.... 황규하의 부친이 평양감사 재직시 책방도령으로 평양에 유할 때 사귀던 기생이었다... 부친이 내직에 등용되어 상경하자 부득이 작별하여 슬픈 나날을 보냈다...그러던 중 신관감사가 수청을 들것을 요구하자 우물에 투신하였으나 우물물이 말라버려 죽지 아니하여.... 다시는 수청요구가 없었다.... 남군을 찾아 한양으로 가니 이미 남군은 사임하여 홍주로 귀향한 뒤였다... 발꿈치가 터지도록 홍주로 달려갔으나 남군은 이미 죽어 장사를 지낸 뒤였다... 남군의 묘 옆에서 시묘살이를 하다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 후 남군의 묘를 자손들이 고양군으로 이장을 하는데 난향의 묘에서 남군의 묘를 향해 무지개가 한참동안 뻣쳐 비쳤는데, 그 후 규하의 직계는 절손무후되니... 후세 사람들은 이 묘를 열녀묘라 부르며 이 언덕을 무지개 언덕이라 부르고 있다.

 

 


08:52 갈마고개

수계를 구분짓는 막중 차대한 임무를 한 뼘 높이의 밭둑이 지켜내고 있다. 겨우 한사람 지나다닐 폭이고 양 옆은 농작물이 있어 정맥꾼이라면 여지없이 이 밭둑을 밟게 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정맥꾼들의 발길이 이어졌을까. 이 밭주인은 책상하나 놓고 지나는 사람에게 100원씩만 받아도 밥은 먹지 않겠냐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밭이 끝나고 시멘트 포장길로 내려선다. 역시 광천읍과 홍동면의 경계인 갈마고개다.


한 때 조류독감, 광우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설치된 방역시설이 남아있는 마을길로 들고 잠시 후 예상못한 아스팔트길을 건너간다. 지도에는 그냥 점선 표기뿐 이다만, 왼쪽이 구항면으로 바뀌어 있다. 건너편 시멘트 방벽을 올라서면서 비로소 산길을 밟는다.


09:15 161.9m (△홍성304)

나지막한 동네 뒷능선이다만 올라서니 안들리던 기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번호가 겨우 보이는 삼각점을 만나고, 오솔길 수준의 길이 열린다. 능선너머 마을인 구항면 농공단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커다란 글씨의 ‘아세아시멘트’ 싸이로가 보인다.


09:42 신성역

천안에서 익산까지 연결된 장항선의 역으로 현재 여객은 취급하지 않는 화물전용으로 되어 있다. 철길과 나란히 길을 내고 있는데, 장항선 복선화 공사란다. 완공이 되면 또 정맥을 잇는 산꾼들에게 어떤 장애가 될런지 모를 일이다.


사실 신성역으로 떨어지기전, ×107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아리송했다. 선명하게 보이는 산책로를 따르다보면 마루금을 놓치게 된다. 나름대로 길을 찾으려 애쓴 몇몇 리본도 보이기는 한다만, 신성역 또한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철길 건너기가 마땅찮아 다들 역사를 통과했는지는 모를 일이다만 지금 형편으로는 굳이 역사를 거치지 않고 직선으로 건너갈 만도 하다. 후에 도로가 완공이 되면 또 모를 일이다.


꽃조개고개는 작은 봉우리(×135)를 하나 더 넘어야 된다. 마을길로 들어가 봉우리를 넘으면 바로 아파트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절개지를 따라간다. 우측으로 틀어 길을 따르면 공사 마무리 단계인 홍성남부순환도로와 21번 국도가 교차하는 꽃조개고개다.


10:07 꽃조개고개 (21번 국도)

교차로를 내려다보면서 절개지 좌측으로 내려왔다. 21번 국도는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지나는데 무리는 없다. 건너편에 휴게소가 보인다만 바쁜걸음 잠깐 멈출 거리는 아니다. 꽃조개란 고개 이름을 찾아보니 정작 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고시지명 : 꽃조개)


풍수설에 의하면 홍성남방에 풍친야대의 지형이 있어 이곳이 고름을 맨 형국이라 하여 고쪼개라 칭한바 발음의 변화로 꽃조개라 한다.


남산 오르는 길은 ‘그리메’ 식당 우측으로 한용운선생의 동상이 있고, 널찍하게 닦인 산책로가 있다. (만해의 생가지는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 있다) 우리는 조은길이 있는줄도 모르고 ‘그리메’ 왼쪽 비탈로 올랐다. 걸리적거리는 가시줄기를 헤치며 다 올라서니 우측 아래에서 올라온 넓은길에 합류한다.


10:22 남산 (南山 ×222m)

정맥은 다 오르기 전에 왼쪽으로 꺾인다만 아니 들러볼 수 있나. 홍성읍 남쪽에 있다고 남산인가 보다. 원래 남산은 수도의 남쪽에 있는 산을 칭하는데, 산 이름 하나 지을 때 나랏님께 허가를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짓는 사람과 불러주는 사람 마음 일게다. 팔각정에 올라서면 홍성읍내가 다 보이는듯하고, 멀리 일월산이 희미하다

 


 

 
(남산)

 

 


 

남산에서 되돌아 내려오고, 우측으로 꺾어간다. 공사중인 홍성남부순환도로가 발아래 터널로 지나간다. 도로를 따라 멀리 일월산을 보는데, 생강나무가 가지마다 노란싹을 밀어내고 있다. 혹시나 봄꽃을 만나려나 기대했지만 지난주에 본 ‘개불알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리고개는 희미한 흔적만 남았고 연이어 나오는 맞고개는 시멘트로 덮혀 있다.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탱자나무 가시도 한몫한다만, 울타리의 용도가 없어 보인다. 맞고개에서 올라선 봉우리(×177)에서 왼쪽(남서)으로 꺾어가는 산줄기에 보개산(273.9m : 5만지형도)이 보이는데,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보개산(寶蓋山)이 아닐까 싶다.


11:13 하고개 (29번 국도)

거의 고속도로 수준의 새로뚫린 4차선도로다. 지하통로는 서쪽 100m쯤에 보이는데 아직은 건너뛸 만하다. 한남의 하고개는 학(鶴)과 관련이 있었는데 금북 하고개는 아래下 고개다. (고시지명 : 하고개)


홍성장으로 가는 고개가 장고개였는데, 이 장고개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 지역에 있는 고개라 하여 하고개라한다.


건너편 밭둑을 올라서면 옛 국도가 지나간다. 건너편에 기념비가 있다. “충절의 혼이 살아있는 홍성”으로 소개를 하듯이 홍성에는 인물이 많다. 려말의 최영장군,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장군을 배출한 지역이다. 하우령고개라 표기한 이곳 역시 병오년에 나라를 찾으려는 의병들이 모인 곳이다.


홍주병오의병주둔지 ‘하우령고개’

홍주의병은 1906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에 결성되었으며, 당시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의 봉화가 홍주의 하우고개에서 맨 처음 올라, 의병들이 홍산, 서천, 남포, 보령을 거쳐 광천에 와서 대부대가 되었으며, 이 주력부대가 광천에서 구항 마을과 신당곡을 거쳐 하우고개에 당도하였고, 천북, 결성, 서부에서 궐기한 의병들도 서산도로로 따라 하우고개로 집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홍주성 탈환의 진군나팔이 울리어 1906년의 병오의병 거사가 발족되었다...



11:41 살포쟁이고개

올라선 봉우리에는 시멘트에 녹이 쓴 듯 누렇게 변한 삼각점(△136.2) 이 있다. 전방으로 멀리 일월산 봉우리가 있다. 똑딱이 카메라지만  줌으로 최대한 당겨보니 돌탑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햇살이 쪼이는 산길은 푸근하다. 어느듯 겨울바지가 갑갑함을 느끼니 이제 행장도 봄모드로 바꿔야 될 시절이다. 지도상 살포쟁이고개라 표기된 곳은 묘터이고, 4분 더 진행한 후 만나는 비포장 임도가 살포쟁이고개다. 당산나무 두 그루와 성황당 흔적도 있다.


11:56 주암 (舟岩)

지도에 주암으로 표기가 된 곳은 맞는데 “일월산 중간에 위치한 바위, 30명 정도 앉아 놀 수 있는 바위로 배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주암이라 한다”는 내용과는 맞지 않는다. 너른 바위가 아니라 여러조각이 함께 모인 바위군으로 나 혼자 올라서니 딱 맞다. 어쨌든 돌아보는 조망은 시원하다. 걸어온 길이 다 보이는 듯 하다. 산 너머 조망은 어떨까 기대를 갖고 남은 걸음 제촉한다.


[백월산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우측에서 올라온 시멘트길과도 만난다. 정상부에 차가 여러대 보이더니 아마 이 길로 올라온 모양이다. 헬기장을 지나고 5분 더 올라야 정상이다.

 


 

(일월산)

 

 

 

 

 

(일월산 지킴이)

 

 

 

 

 

12:10 일월산 (日月山, 白月山 393.6m)

홍성군에서 소개하기를, 이조 말엽 홍주 이방으로 있던 이종근(李鍾根)이란 사람이 명필이며 문장가였는데 이 분의 시에 ‘백월산하(白月山下)’라는 구절을 따서 백월산이라 하였다...고 나온다만 지리원의 고시지명은 일월산이다. 또,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日도 白도 아닌 그냥 월산(月山)이다.


어쨌거나 일월산(백월산)은 홍주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산이다. 돌탑에서 내려선 안부에는 흡사 강아지 머리모양 같기도 한 거대한 바위가 있고, 다음봉우리에는 홍주청난사중수비와 사당이 있는데 사당 안에는 정면에 백월산신, 우측에 洪可臣의 위패를 모셨다. 마지막 팔각정이 있는 봉에도 역시 특이하게 생긴 큰 바위가 있다. 바위마다 치성을 올린 흔적이 있다. 예전에는 새로 부임하는 군수는 반드시 백월산에 올라 기원을 올리곤 했다는 얘기도 있다.


홍가신(洪可臣) : 임진왜란 이후 계속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동요된 틈을 타 이몽학이 선조 30년에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쳐들어 왔다. 당시 홍주목사 홍가신은 난을 평정하였고, 그 공으로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에 봉해졌다.


이렇듯 일월산은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조망 또한 뛰어나다. 홍성읍은 물론 합덕평야와 서해바다까지 한눈에 펼쳐진단다(오늘은 황사관계로 조망이 생략된다). 북동쪽으로 정맥에서 동으로 나앉은 용봉산도 눈여겨 볼만하다. 팔각정 뒷봉 바위벽에 붙어 앉아 점심을 먹었다.


북으로 내려서는 들머리에 서면 가야할 능선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까치고개로 바닥까지 내려앉았다가 홍동산에서 우측 용봉산으로 이어지고, 정맥은 곧장 뻗어 덕숭산, 가야산까지 아련하다. 장쾌한 조망도 조망이지만 솔직히, 애써 올린 고도를 고스란히 반납할 생각을 하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신나게 떨어진다. 급비탈이 다하니 길도 좋아진다. 예전 예배당에서 줄을 당기면 시계불알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댕댕 소리를 내던 쇠종이 있다. 혹시나 싶어 당겨봤지만 녹이 쓴 채로 굳어버렸다.


13:04 까치고개

고개쉼터는 보신탕 전문식당이다. 미리 알기는 했다만 파트너인 산개미님이 보신에는 관심이 없는 바라 이 식당 이용을 포기했다. 오늘 객꾼이 붙었더라면 필시 걸쭉하게 한 그릇씩 해치웠을 끼라. 메뉴판을 보니 오리탕, 소머리국밥도 보인다. 잘 이용하면 정맥길에서 보신도 해가며 갈만하다. (041-633-9309) 마당에 있는 손님용 자판기에 커피한잔 공짜로 빼먹고, 사이다 한 병은 돈 주고 샀다.


이어지는 길은 건너편 홍성환경사업소(쓰레기매립장) 들어 가는길로 가다가 사업소 정문에서 왼쪽 울타리를 따른다. 울타리가 끝나고 30여분동안 호젓하고 청정한 산길이 이어진다. 여지껏 이어오던 표지리본들이 자취를 감췄다. 리본이 없어도 오직 외길이라 잘못 갈 염려는 없는데, 한 곳에서는 두 사람의 GPS가 동시에 수신불량 상태가 되어 잠시 주춤거렸다. 위성신호를 방해하는 뭔가가 있는 모양인가.


13:52 산불지역

중계리 안부부터 시커멓게 타고남은 산불지역이 넓게 펼쳐진다. 해발 200m 정도인 야산이 마치 지리산처럼 고사목이 즐비하다. 빼앗긴 숲에도 새싹은 돋아나고 벌써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뒤돌아보니 일월산은 하마 저만치 역광 속에 있고 공리저수지 물이 번뜩인다.


14:15 홍동산 (弘東山 308.9m)

홍성군의 안내를 보면, “서쪽으로는 산이 첩첩 쌓여있고 이 산으로부터는 동편이 열려져 있다는 의미로 홍동산” 이라 한단다. 지도에 표기된 삼각점은 없다. 어느새 지도 왼쪽은 예산군이 되어 있다.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용봉산으로 가는 줄기를 보내고는 온전히 예산 땅으로 들어간다. 차동고개를 지난 장학산에서 잠깐 접했던 예산을 휘휘돌아 다시 만났다.


용봉산 (龍鳳山 381m)

충남 홍성군 홍북면 용봉산은 큰 산은 아니며 험하지도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주변의 모습이 수백장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이다. 이 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鳳凰)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인 데서 유래했다.


수덕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지루할 만치 길다만, 지루하다는 말은 그만큼 길이 순탄하다는 얘기가 된다. 가시덤불 잡목이 끌어당기는 길에서야 어디 지루할 틈이나 있나. 서서히 내려앉는 내 몸과 반대로 그만큼 솟아오르는 덕숭산이 걱정이다. 오른쪽 용봉산으로 눈길이 자주간다. 기암들이 뾰쪽솟은 능선이 날카로와 보인다.


14:57 수덕고개 (132m)

지도에 표기된 육괴정(六槐亭)은 느티나무 여섯그루를 말함이다. 정자는 보이지 않고 식당이 일렬로 이어지는데  유난히 한곳에만 사람들이 북적인다. “관광버스 두 대를 받았으니 저 집 오늘 노났구나...” 그 틈에 우리도 끼어앉아 아이스크림 하나씩 빼물었다.


건너편 비탈로 붙는다. 산행 막바지에 흔히 외는 ‘마지막 봉우리’ 보다도, 진작부터 손에 꼽던 수덕산을 이제 오른다는 설렘에 피곤함도 잊는다. 정맥이 아니라 일부러라도 한번쯤 왔어야할 산이고 절이다. 오름길 중간 황금색 암릉에 올라서면 수덕사가 서쪽 아래로 빤히 보인다.


수덕사하면, 우선 ‘수덕사의 여승’ 노래를 떠올리고 수덕사에 여승이 있을까, 수덕사는 비구니 도량인가 하는 의문이 일지만 수덕사는 비구니 도량이 아니다.


수덕사 (修德寺)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사찰.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때 고승 지명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문화재로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18호인 영주 부석사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부속 암자로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과 비구니 김일엽이 기거했던 환희대가 있으며, 선수암 극락암 등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선 정진하는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다.

 

 

만공스님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법력이 서린 정혜사까지 오르는 길은 1,020단의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이 만만치 않는 계단길을 오르기 힘겹다면 만공의 비결을 흉내내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만공이 다른 스님과 더불어 산길을 가는데, 그 스님이 지쳐 더는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만공은 마침 밭을 일구는 화전(火田) 부부를 발견하고는 다짜고짜 그 부인네를 껴안고 입을 맞춰버렸다. 당연히 노발대발한 남편이 쇠스랑을 들고 죽여라 덤벼들었고, 스님과 만공은 죽어라 달음질을 쳐 험한 산길을 훌쩍 넘을 수 있었다. 일곱 여자의 허벅다리를 베고 깔고 자면서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을 외쳤다는 만공다운 일화이지만 그 흉내를 냈다가 뺨을 맞고 안 맞고는 순전히 당신 다리힘에 달려 있으니 부디 잘 판단하시기를...

 


수덕사 창건설화는,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말미에, 절은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산 이름(德崇)과 절 이름(修德), 동네 이름(德山)의 3德이 모인 곳이라 덕이 넘친단다.


일제시대 때, 김일엽(1896~1971)이란 신여성이 있었다.

이화학당 출신에 일본 유학파로 `여성해방` `자유연애`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그가 만공스님(1871~1946)을 만난 후 돌연 출가했다. 만공스님은 그때 수덕사 뒤에 `견성암`이란 비구니 선원을 처음 세웠다.

당시로선 엄청난 파격이자 뉴스였다. 이후 `수덕사의 여승`이란 유행가가 나오면서 `수덕사=비구니절`이란 오해가 생겼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견성암에는 비구니 스님이 수행중이다. 본사에는 비구니가 없다


 

수덕고개에서 오름을 시작한지 30분쯤에 수덕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혜사가 왼쪽 어깨높이로 보인다. 내려다본 용봉저수지에는 마치 뱃놀이라도 하는 듯 일엽편주 두 척이 떠있다. 숨 한번 돌리고 잠깐 더 오르면 수덕사에서 올라온 등산로와 만난다.

 

 

 

 


 

 

15:43 수덕산 (修德山 德崇山 495.2m)

산 이름이 이중으로 쓰이고 있다. 옛 문헌부터 보면 산경표에는 수덕산, 대동여지도에는 덕숭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현재 국토지리원 고시지명은 수덕산으로, 예산군의 모든 자료에는 덕숭산으로 나온다. 다른곳 같으면 어쨌거나 공식적인 고시지명이 우선 하겠으나 이곳은 ‘덕숭산’이 대세다. ‘덕숭산정상’이라 새긴 정상석 뒤로 가야봉과 원효봉이 배경으로 나란히 들어온다.


덕숭산 (고시지명=수덕산, 산경표=수덕산, 대동여지도=덕숭산)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수덕산(修德山)이라고도 한다.... 1973년 3월 덕숭산과 인근 가야산(伽倻山) 일대가 덕숭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있다. 높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계곡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호서(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려 왔다


덕숭산에서 내려서는 정맥길을 의외로 많이들 놓친다. 정맥 마루금쪽으로는 철조망을 쳐놓았고, 철조망을 피해 뚜렷한 길을 따르다보면 수덕사행이라. 두 눈 찔끔 감고, 철조망 뒤로 들어가야 된다. 능선따라 내려서다보면, 왼쪽에서 오는길이 두세군데 보인다. 잘못 내려가다 다시 옳은 길을 찾아온 흔적인 모양이다.


능선 끝 조망바위에 서면 나본들고개에서 해미면으로 이어지는 신설 45번국도가 시원하게 뻗어가고 그 뒤로 삼준산 능선이 시커먼 역광으로 하늘금을 그린다. 더 이상 갈림길이 없는 외길따라 25분을 내려오니 45번 국도 절개지 위에 선다. 도로 건너편에 아침에 대놓은 차가 있지만 우측아래 보이는 굴다리로 돌아가야 된다. 내려서는 철계단이 있다.


16:20 나본들고개

한 때는 제법 사람들로 붐볐을 만한 고려부페 식당은 폐업상태다. 새 길이 뚫리니 자연히 찾는 사람도 없는 모양이라. 앞 구간 진행한 장산님과 제이제이도 무르티고개에서 끊었다고 연락이 온다. 무르티고개를 네비게이션에서 찾으니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다. 해미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잠깐 달려 서산IC 내리니 바로 옆이다. 넷이서 홍성읍으로 들어가 홍성천변 대동모텔에 여장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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