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 정맥/금남 금북

조은산 2012. 1. 23. 15:57

 

 

 

 

 

금북정맥  20구간


 

2008.05.11 (일)

산길 : 수량재~백화산~유득재~쉰고개

거리 : 22.7km (누계 420km)

사람 : 장산 제이제이 조은산


 

 


(구간거리)

수량재~0.9~물래산(150)~6.8~오석산(168)~4.0~백화산(284.1)~1.6~모래기재~3.1~퇴비산(165)~1.2~구수산(145.2)~0.9~유득재~4.2~쉰고개.............22.7km

Cartographic Length = 24.66km / 총소요시간: 07:25

 

 

20(수량재~쉰고개).gpx

 

 

 

 

...가야산(伽倻山) 성국산(聖國山) 팔봉산(八峰山) 백화산(白華山) 지령산(知靈山) 안흥진(安興鎭)



산경표에는 팔봉산을 포함시켰으나, 정맥 마루금에서는 3km가량 벗어나 있다. 팔봉산이 분기하는 금강산은 옛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그 이름을 갖게된 연유를 알 수 없다. 규모는 두고라도 수려한 산세나 깊은 골짜기를 끼고 있지도 않은것 같으니 더욱 그렇다. 대신 마루금에서는 조금 빠져 있으나 빼어난 자태를 외면할 수 없는 팔봉산을 산경표에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팔봉중학교 뒷문을 나서면 금북정맥의 마지막 행정구역인 태안군으로 들어간다. 어디가 산줄기인지 찾기도 힘든 들판에서 물길을 건너게 되는데, 바로 굴포운하다. 시기적으로 한반도대운하를 파네 마네 하는 시절이라 더욱 더 운하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데, 고려시대부터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수차례 시도를 하다가 결국 ‘실패한 운하’로 마루금만 잘라놓고 말았다. 물론 당시의 기술로는 사전에 땅속지질을 파악 못한채 덤벼들었다가 예상외의 돌바닥이 나오는 바람에 완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정치와 경제를 떠나 순수한 산꾼의 생각에서 제발 바라옵건데, 우리나라 산줄기의 큰 기둥 백두대간을 뚫어 물길을 내겠다는 생각은 접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32번국도에서 시작을 하고, 이 국도를 아래위로 세 번을 건너고 네 번째 다시 만나는 곳이 쉰고개다. 팔봉중학교부터 붉은재까지 4km, 모래기재에서 다시 2km 넘게 마을길을 걷는다. 구간 최고봉 백화산에 오르면 태안읍내는 물론 천수만과 가로림만이 다 보이는 곳이라, 어떻게 지도도 없던 고려시대에 운하를 팔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시간표)

05:55 수량재

06:19 물래산

07:00 팔봉중학교

07:26 굴포운하

08:16 붉은재

08:40 오석산

09:52 △241.7

10:20 백화산

10:52 태을암

12:06 모래기재

13:01 퇴비산갈림길

13:20 유득재




서산시내 한가운데 모텔촌에 그런대로 조금 덜 반짝거리는 쉘부르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3만원에 셋이 잤으니 적정한 요금이었다. 날이 채 밝기 전에 짐을 꾸려 새로 개업한 듯한 선지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도 확보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로치고개에 장산님을 내려주고 제이와 둘이서 수량재로 간다.



05:55 수량재

32번 국도다. 어제 마칠 때는 차들이 질주를 해 어떻게 건너가나 걱정이 되었다만 이른시각이라 차들이 뜸한 편이다. 잽싼 동작으로 중앙분리대를 타넘었다. 비탈을 올라서니 널찍한 밭터이고 숲으로 들면 솔밭공원 같은 분위기다.


06:19 물래산 (145m)

솔밭이 끝날 무렵 굵은 철사줄이 발목에 걸린다. 소나무 둥치를 파고 들어간 형태를 보니 오래전에 설치한 듯하다. 성급하게 지나다가는 자빠지기도 하겠다. 새로 돋아난 가지들이 어수선한 비탈을 잠시 오르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바로 물래산이다. 정면으로는 역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라 봉우리 같지도 않다.


우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울창한 숲속에 비교적 길은 뚜렷하다. 아침 햇살이 비집고 스며드는, 깊고 오진 분위기마저 드는 숲길인데 차소리가 그리 멀지않게 들린다. 안부를 지나고 물래산과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 오르면서 무심히 뚜렷한 길을 따르다가 문득 발길을 되돌린다. 그대로 갔으면 양지편 마을로 내려갈 뻔 했다.

 


 





 

06:56 32번국도

비탈을 다내려서고 밭 갓길을 따라 내려오니 작은 저수지가 있다. 마루금은 저수지 우측이 맞겠고, 국도를 지하차도로 건너려면 저수지 왼쪽으로 내려가야 된다. 아직은 차들이 그리 많지 않아 보여 마루금따라 저수지 우측으로 들어가니 남의집 밭을 지나 도로가에 내려선다.

 

수량재에서 차로 왔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한시간 걸렸다. 우측으로 팔봉산이 우람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침 옆에 서있는 도로 이정표도 팔봉산을 가리킨다. 차가 없는 틈을 타 중앙분리대를 넘고 팔봉중학교 건물을 향해 곧장 밭을 질러간다.


07:00 팔봉중학교 (35m)

학교 앞 매점이 궁금한데, 역시나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유리문 안쪽으로 아이스크림통이 보인다만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도리없는 일이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면 일직선으로 뒷문까지 연결이 된다. 팔봉중학교는 남녀공학 3학급으로, 한 학년에 한반씩 있는 작은 학교다.


학교 뒷문으로 나가니 우측 밭에 스프링쿨라가 힘차게 돌면서 물을 뿌린다. 그 밭 뒤쪽 능선이 마루금으로 보인다만 그냥 길을 따르기로 한다. 학교 뒷문에서 보던 이동통신 철탑까지 진행하고 계속 길을 따르면 [삼원조경] 간판이 걸린 삼거리다. 길이 너무 아래로 꺼지는듯 하지만 별수 없다. 그 답은 곧 나온다.

 

 

(팔봉중학교)



 

 

(굴포운하지)



07:26 굴포운하

굴포의 유래와 안내도가 있다. 마루금은 바로 우측(북)에 보이는 나지막한 능선이나, 그 곳은 운하를 파낸 곳이라 마루금이 끊겨있다. 낙남정맥 유수교에서 잘려나간 마루금을 보던 바로 그 장면이다. 그나마 이곳은 이쪽물이 저쪽으로 흐르지는 않고, 희미하긴해도 분명 분수령이 살아있다. 유적지는 그대로 보존하되, 잡풀에 묻힌 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골을 메워 원래의 마루금을 복구하면 안될까?


굴포운하지(堀捕運河址)

우리나라 운하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명되는 굴포운하는 천수만으로 유입하는 흥인천과 가로림만과의 약 3km에 달하는 지역을 착통하는 운하를 말한다.

굴포운하를 개착하게 된 요인은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서울로 조운함에 있어 조운선단이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안흥량은 서해안상에 돌출한 장봉으로 해중에 암초가 있고, 또한 급격한 조류로 인해 빈번히 조운선이 전복되고 파선으로 인하여 국가적인 재정손실이 컸다. 그리하여 세곡미의 안전수송과 조운에 따른 지리적,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키려고 지금의 굴포운하 개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고려 인종 때(1123~1146)부터 굴포를 개착하여 조선중기 임진왜란 직전까지 비록 단속적이기는 하였지만 실로 400여년간 수천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개착지의 지질이 화강암층이라 당시의 기술로는 암석을 뚫지 못한 사회적 사정과 높은 간조의 차를 극복하지 못한 자연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재원이 세곡미라는 당시의 사회적 사정으로 말미암아 조선 현종때에는 굴포개착지 주변에 많은 조창(漕倉)들을 설치하여 조운의 편의를 도모하였으나 조운행정에서 야기된 문제들로 인해 폐창하고 말았다. 비록 설창육운안(設倉陸運案)의 실행은 실패로 끝났지만 조세창고지와의 관련으로 인해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해로를 따라 많은 창촌락이 발생, 발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굴포)

 
 
 
 




 



07:31 인평3리 다목적회관

커다란 당산나무가 눈길을 끈다. 넓은 들판이라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뛸만한 나무다. 현재도 남아있는 주변의 하창, 상창, 북창이란 마을이름 역시 예전의 굴포운하지와 관련된 창고마을이다. 마늘밭 뒤로 팔봉산이 길게 그늘을 드리운다. 이 마늘이 태안특산물 육쪽마늘이라는 건가.


07:55 사거리수퍼

계속해 마을길을 따라가면 북창 버스정류장 사거리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다. 뭘 파는 곳인지 아니 짚어볼 수가 있나. 밤과자 한 봉지와 사이다 두통을 사서 길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이런 가게에서는 유효기간 확인은 물론이고, 밧데리는 절대로 살 일이 아니다. 예전에 멋모르고 이런 가게에서 밧데리를 샀다가 헛일이 된 적이 있다. 몇 달 아니 몇 년이 된 물건인지도 모르겠더라.


08:16 붉은재

사거리에서 우측 길로 들면 오석산을 바라보면서 붉은재로 향한다. 팔봉중학교에서 4km 가량을 산길이 아닌 마을길로 왔다. 시멘트길에서 벗어나 비로소 본격적인 산길로 들게 된다. 땅이 붉다고 붉은재인가. 고개넘어 내려가면 가로림만이 나온다. 


한동안 마을길 탐방을 끝내고 숲속 그늘길로 올라간다. 그리 높아뵈지 않던 오석산도 전위봉을 하나 가졌다.  수원백공 묘터로 내려서는 길에 나무사이로 가로림만의 푸른물이 보인다. 짤막한 안부를 지난 오름길에는 홀아비꽃대가 만발했다. 삼규는 옥녀꽃대라 했으나 홀아비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


08:40 오석산 (烏石山 △169m)

잡목에 덮힌 봉우리다. 삼각점도 다 뭉그러졌고, 산불감시초소마저 숲속에 버려 놓은듯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그대로 지나쳐 내려오면 백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펑퍼짐한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올랐다 내리면 시멘트길이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09:10 강실고개 (79m)

우측마을 이름따라 강실고개라 불러 보는데, 난데없는 봉고트럭이  “개 삽니다~!”  스피커를 켠 채 넘어간다.  민가라고는 없는 산길에서 웬 개가 풀 뜯어먹는 방송을 하노~?  햇볕을 피하려 얼른 건너편 숲길로 올라선다.  차양막을 친 인삼밭에는 열매 새순이 올라온다. 한 두어달 지나면 빨갛게 익을려나.  '인삼딸'이라는 인삼의 씨다.



 
(팔봉산)
 


 

 

 
(가로림만)



 



 

09:52 벌목지 (239m)

앞서 나간 제이의 꽁무니를 잡으려 쉼없이 달려간다. 아무런 부담없는 산길이다. 이런길만 이어진다면야 무신 걱정이 있으랴 싶더니 갑자기 앞이 훤하게 터지는 벌목지다. 제이는 벌써 그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25000지도에 삼각점봉(△241.7)으로 표기된 흥주사 뒷봉인데 한 때 산불이 났던 모양이다.


상단에 서면 가로림만과 팔봉산까지 파노라마로 한 화면에 다 보이는데, 팔봉산을 여기서 보니 봉우리가 여덟개로 보인다.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니 길이 갑자기 좋아지고 부부산객이 올라온다.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있다. 건너편 백화산은 오똑하니 솟았는데 길은 급한 내림질을 친다. 도중에 돌출한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백화산 그림이 다 들어온다. 우측의 암봉이 더 멋지게 보이는데 그쪽은 군부대 영역이다.


10:05 임도고개 (145m)

백화산 직전의 안부고개로  내려온쪽으로 [흥주사]를, 정면은 [백화산 정상 0.6km], 우측은 산후리를 가리킨다. 침목으로 된 계단길은 이번구간 제일 큰 비탈이지 싶다. 숨이 턱 위로 올라올 무렵, 조은 조망바위가 있어 숨을 달랜다. 조망 또한 일품이다.


10:20 백화산 (白華山 284m)

희게 빛난다는 글자 그대로, 정상부가 한덩어리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그렇게 보이겠다. 특이하게 정상부에 봉우리가 두개인데, 앞봉우리는 [봉화대지] 표석이 있는걸로 봐서 인위적으로 쌓은 봉우리로 보인다. 태안시가지뿐만 아니라 뒤쪽 군부대 방향 빼고는 사방이 막힘없다. 북쪽 가로림만과 남쪽의 천수만을 보고, 그 중간에 있는 들판을 눈대중으로 재어봐도, 운하를 팔만한 계산이 바로 나온다. 그늘을 찾아 앉고, 앉은 김에 밥이나 먹잔다. 아직 밥 때는 멀었지만 잠깐 스치고 지나기엔 아까운 조망이다.


雙槐臺라 새겨진 바위가 있는 태을암쪽이다. 침목계단 따라 내려가면 우측으로 군부대 진입로가 보이는데, 곧장 내려가는게 좋다. 태을암 뒤쪽으로 바로 내려설 수 있다. 서편 멀리 통신시설물이 있는 봉우리는 철마산쯤으로 여겨진다.

 

 


(백화산 정상부)


 

(태안읍과  천수만)


 

 


(태안 마애삼존불)



10:52 태을암

태안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

거대한 바위의 동면에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삼존불입상을 새겼다. 이 마애삼존불은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배치와 달리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좌우의 불상은 크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일보살·이여래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내일이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라 더 의미가 크다 하겠다. 산에 오지 않았어도 마눌님따라 최소 삼사순례는 했을텐데 이런 유서깊은 불교유적지 순례를 겸하게 되었으니 내게는 더없는 행운인 것이다. 전각을 짓고 불상을 모신게 아니라, 원래 있던 불상이 새겨진 암벽에 맞춰 전각(龕室)을 지은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불상의 얼굴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이는 자연적인 손상보다도 불상의 눈과 코 등을 갈아 마시면 효험이 있다는 미신으로 사람들의 손을 탄 인위적인 손상이 더 크단다.


태을암 정문으로 나와 길 따라 내려가면 우측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백조암이다. [백조암]이라는 표석만 있을 뿐 아무런 설명이 없어 아쉽다. 절벽 아래쪽으로도 기암이 즐비하고 남은 정맥줄기가 다 보이는 듯 조망이 막힘이 없다. 백조암에서 내려서면서 보니 아무래도 마루금에서 벗어난듯하다. 황급히 왼쪽 능선으로 올라섰다.


태안여고 건물이 내려다보이는 숲이 훤히 터진 비탈에 앉았다. 이틀간 찍어댄 카메라 필름이 다됐다고 삑삑거려, 메모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안 내려오고 뭐하는 거유~?”

“헉, 엊저녁부터 요란스레 돌아가던 호랭이 레이다에 기어코 걸리고 말았구나...”


모래기재 길목에서 지키고 앉았다가, 은폐물이 없는 터진곳에 무방비 상태로 있었으니 제까닥 걸리고 만 것이라. 그래도 나름대로 순순히 잡혀 먹힐수는 없는 노릇이라 꾸물대고 있으니, 시커먼스 두 사람 올라온다. 홀대모 초창기부터 알고 지낸 서산의 호랭이님 부부다.


12:06 모래기재 (58m)

얼음이 버석버석 씹히는 생맥주 한 모금씩 주입 당하고, 아이스케키 하나씩 입에 물린 채 모래기재로 내려왔다. 그냥 내버려두면 날머리에서 그대로 내빼까봐, 여기서 부터는 동행을 하겠단다. 거의 압송되는 분위기다. 603번 지방도로 태안여고 앞이다. 'ROSE HALL' 우측길로 들고, 계속 길 따라 간다. 마루금은 왼쪽능선(△92.5m)이나, 금새 내려서기 때문이다.


12:35 예비군 교장

태안여고에서 예비군교장까지는 도로행이다. 2km가량 이어지는 시멘트길이 바로 마루금이다. 아래로 꺼지는듯한 지형이 의심스러워 인삼밭 갓길로 들어보지만, 길따라 가는게 맞았다. 30분간 도로행을 한 다음 예비군교장 정문 앞에 이른다.


‘향토방위태세확립’ 이라 쓴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딱 맞겠다만 들어갈 틈은 없고 담벼락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야 된다. 철조망이 왼쪽으로 꺾임에 따라 산길로 들고, 역시 짐작대로 철조망을 밟고 들어간 흔적들이 있다. 철조망 안으로 넘어 들어가니 훈련시설물이 여기저기 있다.


12:51 159.7m (△401복구)

퇴비산(長山)이라 쓴 팻말이 땅에 떨어져 있지만 퇴비산은 아니다. 우측으로 꺾어 내려서고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면 퇴비산 갈림길이다.

 

 


13:01 퇴비산(退飛山 ×165m)

퇴비산은 200m 가량 직진해야 하고, 정맥은 우측이다. 벗어나 있는 셈이다. 내리막은 급하다. 로프도 걸려있다. 줄줄 미끌리다 시피 내려서면 평탄해 지고 이내 왼쪽에 도로에 내려선다 레미콘 공장 [서해산업(주)] 진입로다. 앞으로 나가면 32번국도, 근흥면과 소원면의 경계다.


13:13 32번 국도 (67m)

소원면에서 세운 [노을 그리고 바다] 표석이 멋지게 보인다. 소원면은 태안의 서쪽 끝으로 만리포해수욕장이 있다. 정맥 마루금은 도로 건너편 구수산으로 올랐다가 유득재에서 다시 32본 국도로 내려오는 U자형이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도 계신다는 핑계를 대가며, 품위있게(!) 생략하기로 하고 유득재로 곤장 길따라 간다.

 

 


13:20 유득재 (45m)

주유소 옆 주차장 공터에 호랭이사모님이 기다린다. 여기서 쉰고개까지 4.3km는 대부분 마을길을 따라가는 마루금이다. 마침 장산님도 마쳤다는 연락이 오고, 굳이 길 따라 가면서 구간을 마무리해야할 의욕도 없는지라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호랭이님의 안내로 서산시에 꽤 유명하다는 ‘부석냉면갈비’에서 간단한 뒤풀이 후 해미IC로 차를 올렸다.


 

 

 

 

 

 

쉰고개

 

 

 

 


 


 
 

- 첨부파일

20(수량재~쉰고개).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