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맥 * 지맥/기맥 - 4

조은산 2012. 1. 23. 18:48

 

 

 

 

 

 

 

영산기맥 3구간




2009.12.05 (토)

산길 : 문수산~깃재

거리 : 16.2km


 

 

 

구간거리

(괴정~문수산 1.3km)

문수산~1.7~서우치~2.7~살우치~3.1~구황산~3.0~암치재~1.3~고산~2.8~고성산~1.6~깃재 ......16.2km

Cartographic Length = 21.1km / Total Time: 08:45

 

 

03(문수산~깃재).gpx

 

 

 



鷲靈山 南來 一名牛利 高敞北十三里 或靈鷲  (일명우리 고창북십삼리 혹영취)

九王山 西南來 高敞西二十五里

高山 咸平西七里 茂長南二十五里 分二歧

高城山 靈光東三十里





산경표의 취령산(축령산)은 문수산, 구왕산은 구황산, 고산은 그대로 고산이고, 고성산의 높을 高가 옛古로 바뀌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九王山이 나오고 고성산과 고산은 현재의 경수지맥상에 엉뚱하게 표기되어 있다.


문수산에서 깃재까지 거리상으로는 백련마을에서의 접근거리 보태봐야 18km가 안되나 오르내림의 기복이 커 힘이 배로 드는 구간이고, 악명 높은 영산의 가시잡목을 제대로 만나게 된다. 문수산 정상부를 출발하면서 고행길은 바로 시작된다.


오전 중에 갠다는 예보를 믿고 집을 나섰다. 04시 출발,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쏟아지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한다. 출발할 때 이랬다면야 당연히 접었겠지만 이왕 나선거, 일단은 가보자며 계속 밟았다. 다행히 장성IC를 빠져나올 때 비는 멎는 기색이 보인다.


삼계면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는 동안 내내 불안한 눈길은 하늘로 향하지만 더 이상 비는 뿌리지 않는다. 삼계농협 앞에 차를 대놓고 택시로 백련마을로 간다. 괴정마을은 몰라도 ‘해인사’ 하니 바로 알아듣는다. 가야산에만 있는줄 알았던 해인사가 문수산에도 있었네. 역시나 장성사람들에게는 축령산이다. 문수산에 간다하니 축령산 너머에 있는 산으로 알고 있다.


고창사람이 알고 있는 문수산과 장성사람들의 축령산은 다른 산인 모양이다. 문수산이나 축령산이나 같은 산을 다르게 부른다고 얘길해도, 축령산 넘어가야 문수산이란다. 산은 하나인데 지역사람들의 산은 각각 따로 존재한다.






(시간표)
08:18 백련정사

08:50 문수산

09:34 서우재

09:50 두루봉

10:30 살우치

12:36 구황산

13:00 경수지맥 분기점

14:02 암치

14:41 고산

15:15 가릿재

16:16 고성산

17:03 깃재



장성군 삼계면

시골의 작은 면으로 생각한 삼계면은, 상무대가 있어 웬만한 군청소재지 정도 되는거 같다. 택시도 여러 대 있고, 아침식당과 목욕탕 등 우리에게 필요한건 다 있다.


상무대가 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상무대(尙武臺)는 각종 군사교육시설의 집합체다. 육군보병학교 포병학교 공병학교 기계화학교 등등의 교육시설을 다 모아놓은 곳이다. 금남정맥 지나며 본 계룡대는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곳이고 화랑대는 육군사관학교를 말한다.


삼계농협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택시로 추암리 맨 위쪽 백련정사 앞까지 올라갔다(20,000원). 지난번에 내려올 때는 조림기념비 광장까지 차가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은 백련정사 앞에 쇠사슬로 막아놨다. 조림기념비 광장까지 걸어서 15분이다.


이른 시각이기도 하지만 오늘같이 일기불순한 날 누가 올라오겠나. 찬바람 부는 광장은 더욱 썰렁하다. 바람세기가 만만찮다만 급 오름길에 대비해 자켓은 벗어 담고, 지난번 내려왔던 문수산 오름길로 붙어 고도 200m을 바짝 쳐올리니 15분만에 정상이다.



문수산 △621.6m

지형도에는 문수산이나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축령산이다. 고창에서는 문수산으로 장성에서는 축령산으로 부른다. 도(道)를 달리하는 행정구역이라 한 이름으로 합의보기가 원만치 않겠다. 그래서 반듯한 정상석 하나 없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못본 조망이나 보려는 기대를 잔뜩 하고 올랐지만 오늘은 더한 날씨다. 비를 머금고 있는 구름으로 가시거리는 100m나 될까. 비나 내리지 마라는 바램을 갖고 기맥길로 든다. 문수산을 출발하면서부터 잡목이 양어깨를 마구 훑어대는 전형적인 기맥길이다.


바위지대를 이리저리 비켜가며 쏟아지듯 미끄러져 내린 안부에는 당산나무 한그루 있다. 왼쪽으로 추암마을과 백련정사가, 오른쪽으로는 고창-담양 고속도로가 보이고 발 아래로 고속도로 문수산터널이 지나간다 .


550m

문수산 출발 25분 지나 올라선 봉우리에서 길이 갈라진다. 서삼면계인 정면길이 더 뚜렷하고 기맥은 우측으로 꺾이는 곳으로 사고 많이들 친 지점인데, 리본들이 달려있어 금방 알아보겠다.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지는 내리막을 다 내려서면 서우재다. 북쪽 사면은 벌목이 되어 먼데까지 보인다.



서우재 (西牛峙 350m)

왼쪽 아래에서 올라온 임도에 내려서고 잠시 동안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가 마루금으로 441.5봉 직전까지 임도로 간다. 여기서봐도 550봉에서 바로 뻗는 능선이 흡사 기맥능선으로 보인다. 더 실하게 뻗을 뿐만 아니라 안부에 보이는 고갯마루가 흡사 기맥의 그것과 같아 보이고 이쪽 능선은 더 낮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제대로 내려서다가도 왼쪽 능선을 보고는 착각을 일으킬만 하다.


6분 후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산길로 들어서는데 급한 오름과 함께 벌목더미와 잡목이 사정없이 달라든다만 그리 길지않게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441.5봉이다.


441.5m (두루봉 △고창435)

구 2만5천 지형도에 두루봉으로 표기된 봉우리다. 잡목 덤불속에 정상부만 빼꼼하게 벌목이 되어있을 뿐 조망도 없다. 가시덤불을 피해 되돌아 나와야 된다.


잠깐씩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 우측 건너편 비탈은 사태가 났는지 무너진 골짜기가 보인다. 살우치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조산저수지가 보이고,  차단기가 있는 임도로 내려선다.

 


 

살우치 (殺牛峙)

얼룩무늬 초소가 있고 차단기가 닫겨있어 차는 넘지 못하겠다. 차단기 너머에 차 한대 주차되어 있는데 우리같은 산꾼인가 모르겠다. 골바람이 거세어 초소안에 들어가 바람을 피한다. 초소바닥은 둘이 누우면 딱 맞겠다.


지도상의 살우치인데 소한마리 잡았다고 고개이름이 생긴건 아닐테고 이런 고갯만디에 도살장이 있었을리도 만무다. 1918년 발행 지도에 沙泥峙(사니치)로 표기되어 있는걸 보면 아마도 고개이름으로 흔한 싸리치가 와전된게 아닐까 싶다.

 


(문수산)

 


(서우치)

 

 

 

(살우치)

 

 

 


×470 (소두랑봉)

초소에서 올라서면 작은 봉 하나 넘고 다시 오르는데 눈이 펑펑 쏟아진다. 정점으로 오르다가 왼쪽 사면으로 비켜간다. 잡목덤불이 칭칭 얽혀있어 도무지 뚫을 엄두도 안날 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다. 왼쪽으로 비켜 오르면 정상을 지난 지점이고 가시밭길은 계속된다. 펑펑 날리는 눈발에 아무것도 안보인다.


잠깐 내려선 지점 정면으로는 길도 없고 도무지 뚫을 엄두가 안난다. 능선 이쪽저쪽을 기웃거려보지만 달리 길은 없다. 왼쪽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간다. 수북한 잡목더미를 피해 우회하여 올라섰지만 마찬가지다.


전지가위로 자르며 진행한다. 가시만 없으면 힘으로 밀어 붙이겠지만 얼마나 독하고 거센 가시인지 건드릴 수가 없고 칡덩굴은 사정없이 발목을 감아 챈다.


 

515m (황룡면계 갈림봉)

곧장 뻗는 황룡면계 능선에서 우측으로 꺾이는 정확한 지점이 없다. 길 흔적도 불확실해 대충 방향을 맞춰 내려서니 리본들이 하나 둘 보인다. 면계능선상에 장군봉이 보이고 구황산은 우측 건너편에 우뚝하니 서있다.


능선에 그렇게 몰아치던 바람이 안부에 내려서면 소리도 들리지 않고 푸근하다. 도면에는 우측으로 임도가 있으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편백나무 숲지대가 나오고 왼쪽 아래 임도가 보인다만 우리와 상관없는 임도다. 오름길에 녹 쓴 전기 철사줄에 걸려 넘어질뻔 했다. 싸락눈이 타다닥거리며 쏟아진다.


구황산 오름길은 코를 박는 까꼬막이다. 낙엽깔린 비탈이라 줄줄 미끌리며 용을 쓴다. 바위지대를 기어오르기도 하고 마지막 철쭉나무가지를 부여잡고 힘들게 올라서면 구황산이다.

 

 


구황산(九皇山 ×500m)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九王山인데, 설 자리도 없는 좁은 봉우리다. 바위에 올라서면 조망은 좋다. 문수산을 돌아보고 고창시가지와 가야할 고산과 고성산이 보인다. 구황산 내림길 역시 마찬가지다. 빽빽한 철쭉나무 사이로 미끄러져 내린다.


급한 내림길을 다 내려서면 관리안된 묘가 하나 있는데 갓을 씌운 비석은 孺人진주강씨묘다. 원래 갓은 벼슬을 뜻하는데 여자의 묘에 어울리지 않는 비석을 세워놓고 돌보지도 않으니 더 안쓰럽다. 계속하여 올라서면 구황산보다 더 나은 봉우리다.


445m (구황산 서봉)

문패없는 묘 한기 있고 서쪽으로 조망이 훤하게 트이는 곳이다. 성송면 너른 들판이 속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들판 가운데로 이어지는 경수지맥 산줄기를 짚어보지만 너무 바닥으로 내려앉아 어디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조망은 좋은 대신 노출된 능선에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오래 있지도 못하겠다. 카메라를 든 팔이 흔들려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덤불에 갇힌 장산)

 


 

 

(고창-담양 고속도로)

 


 

 

(선운산으로 가는  경수지맥)

 

 


여기서 내려서면서 비로소 길 같은 길이 나온다. 솔갈비가 푹신하게 밟히는 길이다. 밥 때가 지났으나 바람이 불어 앉을만한 자리가 없다.


경수지맥 분기점 (380m)

조망조은 서봉에서 내려서면 억새무성한 안부에 갈림길이 나있다. 우측으로 갈려 내려가는 길이 경수지맥이다. 지난달에 선운산을 한바퀴 돌면서 희어재에서 경수산까지 마지막 구간을 한셈 쳤는데, 서봉에서 내려다본 지맥능선은 너무 희미해 크게 내키지도 않는다. ×375봉 직전 암봉 바위 뒤편에 숨다시피 앉아 점심상을 폈다. (13:37 식사 후 출발)


경수지맥 분기점 이후 길은 다시 사나워지고 이 길은 암치재까지 계속된다. ×375m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갈아타고, 10여 분간 험난한 가시밭길을 휘젓다가 빠져나오면 진주강공 묘터다.


진주강공

여기서 기맥은 묘터 진입로 따라 내려간다. 언뜻 버릇대로 묘터 건너편 산길로 들어가려다가 방향을 확인하니 묘터 앞쪽이다. 수렛길 따라 널널하게 내려간다. 암치 직전에 왼쪽으로 약간 벌어진다마는 대수는 아니다. 조은길 놔두고 고생할 일 없다.



암치(岩峙 200m  암치재 암치고개)

고개북쪽은 전북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암치제(저수지)가 있고 남쪽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이다 바위가 많은 재라고 하여 암치(岩峙)라고 불렀다 한다.


암치에서 고산 들머리는 널찍한 수렛길이다. [고산1.4km] 이정표를 보고 널널하게 올라가면 왼편에 헬기장인 듯한 공터를 지나고, 기맥 마루금은 왼쪽 숲으로 들어가지만 우리는 그대로 확실한 등산로를 따라간다. 큰 차이 없이 첫 능선에서 다시 만난다. 하늘높이 불룩 솟은 정상 봉우리를 쳐다보며 조릿대 군락지를 올라서면 전위봉 격인 490m쯤 되는 봉우리다. 잠시 내렸다가 산죽밭을 지나며 한 차례 더 올려치면 고산이다. 암치에서 35분.



고산 (高山 ×528m)

그야말로 영산기맥 최고의 초특급 조망이지 싶다. 장성쪽으로는 등을 지고 고창 들판을 정면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차라리 고창산이라 불러야 맞은성 싶다.


지나온 문수산과 방장산 그 뒤로 입암산이 구름속에 희미하게 윤곽을 나타낸다. 우측으로 무등산과 광주시가지에, 고성산 뒤로 태청산까지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다. 무등산은 125도 방향 40km의 거리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몰아치는 바람에 뺨이 얼얼해지고야 정신이 든다.


자연석에 高山이라 이쁘게 새겨놓았는데 최근에 설치한 등산안내도를 새긴 정상석이 그 글자를 가린다. 자연석 정상표시를 그대로 살리는게 오히려 좋았겠다. 백토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뽑힌 채 바위에 기대서있다. 기맥 마루금은 되돌아 내려와야 된다. 방금 올라섰던 지점을 지나쳐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해맞이기원제단’이 있다.

 

 


(암치)

 

 

 


(고산)

 

 

 

 

(고산조망 : 암치 건너편 구황산, 맨 뒤쪽은 문수산)

 

 


성벽길을 따라 내렸다가 다시 오르면 촛대봉(4봉) 이정표가 있다. 좌측 [상금고인돌(2.5km)] 방향이 기맥인데 우측으로 고산성이 이어진다. 고산에서 내려다보이던 바위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된 봉우리가 3봉인 띠구리봉, 이어 깃대봉 각씨봉을 거쳐 석현마을로 내려가는데 맨 아래 각씨봉부터 차례로 고산까지 5봉이라 번호를 매겨놨다.


안내문에도 있듯이 고산성은 삼국시대의 성으로 둘레가 4km 가량 된다고 하는데 고산정상에서 보면 북서쪽 골짜기를 둘러싼 성이다. 특이한 이름의 ‘띠구리’가 무슨 말인가 찾아보니 삼이나 칡 따위로 세 가닥을 지어 굵다랗게 꼰, 나뭇짐 따위를 묶는 줄을 참바라 하는데 참바의 전라도 사투리가 띠구리란다.


촛대봉을 지나면서 고창 성송면이 끝나고 아래 가랫재까지 잠깐 대산면을 접하는데 대산면의 둘레경계가 묘하게 이어진다.  1봉부터 4봉까지의 능선 남쪽비탈만 대산면이고 가랫재부터는 전라남도가 되니 대산면계가 길쭉하게 들어온 형상이다.


내려가는 길은 로프가 걸린 조은길인데 한참을 떨어진다. 그만큼 힘들여 올라온 고산인데 그대로 고성산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만 끝도없이 내려앉는다. 우측으로 꺾일 무렵 마루금은 정면 숲길이지만 그대로 조은길을 따른다. 우측으로 다소 많이 벌어지는 감이 들어 왼쪽 숲을 기웃거리니 장산 왈,


“고마하소. 마이 뭇다 아잉교~”

“그려~, 일구에다가 지맥 스무댓개나 했으니 인자 빡빡 길 군번은 아이재~?”


길이 없으면야 기어서라도 가야 하지만 조은길 놔두고 마루금 고집할 일은 없다. 고생도 추억이고 재미라지만 몸 상하면서까지 추억을 남길 필요 있겠나. 확실한 등산로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이정표가 있는 가릿재삼거리다.



가릿재 삼거리 (205m)

고산 너머있는 암치재와 같은 높이만큼 내려앉았다. 200에서 528을 오르고 한푼 에누리없이 반납했다. 지도상에는 고산과 촛대봉 사이 안부를 가래재, 이곳 안부는 가미재(加味峙)로 표기했지만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을 따르는게 낫겠다.


비슷한 높이의 고산과 고성산 사이의 고개 안부인 가릿재에는 전설이 있다.

삼계면 생촌리 추동 마을 뒷편에 고성산(高城山), 546.3m과 고산(高山, 526.7m)이 나란히 솟아있는데, 이 두 산 사이의 낮은 언덕을 넘으면 고창과 영광으로 통한다.

옛날, 기골이 장대하고 마음씨 착한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들은 힘을 겨루어 보기 위하여 이 두산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기간을 정하여 형은 고성산에, 아우는 고산에 성을 쌓은 후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아우와 헤어진 형은 고성산에 올라가 지형에 알맞게 축성계획을 수립 한 후 돌을 옮겨 열심히 성을 쌓았다. 예정된 날짜 안에 성쌓기를 완성하고 약속한 장소에 나와보니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늦게야 도착한 동생을 보고 형은 게으름을 피우다가 약속을 어겼다며 크게 화를 내면서 동생의 목을 베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뒤 형은 자기보다 힘이 세고 부지런했던 동생이 왜 그렇게 늦었었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어 동생이 쌓은 성을 둘러보니 자기가 쌓은 성벽보다 훨씬 견고하게 잘 쌓았고, 훗날을 위하여 '명천수(明天水)'라는 깊은 샘까지 파 놓았던 것이다.

형은 그제서야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동생의 무덤 곁으로 가서 가래(농기구)로 자신의 목을 잘라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고개에다 두 형제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고 고개이름을 가랫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가랫재(235m)

기맥 마루금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위로 올라간다.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우측으로 가면 질러가는 듯하지만 곧장 올라가는게 좋겠다. 장성 추동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가랫재에는 군부대 경고문과 철조망이 둘려져 있다.


여기서 순창새재부터 여지껏 이어오던 전라남도와 북도의 도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남도땅으로 들어간다. 굴비의 고장 영광군이다. 고창벌판을 가로 지르는 전남도계를 지도상으로 잠시 따라가보니 벌판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구불구불 휘돌며 곡선을 그린다. 어느 집은 마당도 갈라지겠다.


고인돌군

서쪽으로 향하면 여러기의 고인돌을 만나는데, 고인돌마다 번호표를 달고 있다. 이정표에도 있듯이 ‘상금고인돌’은 고창군 대산면 상금리인데 도계가 골짜기를 가르다 보니, 이 지점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광군에 속한다.



가릿재를 뒤로하면 편백나무 숲이 시작되고 석축이 쌓여 있는 산성터도 올라선다. 오르막에 벌목된 나무 아래로 기어서 빠져 나가고 소나무가 둥치가 뿌리채 뽑혀 등로를 가로 막는다. 고성산은 숫제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았다. 돌아보는 띠구리봉 능선 아래 흰바위가 눈길을 끈다.


435m에서 잠시 한숨 돌린다. 빽빽한 잡목 덤불속 비탈을 기어오르니 입에서는 더운김이 물씬 나온다. 그나마 이쪽 밀림은 가시줄기가 아니라 견딜만하다만, 코가 박히는 까꼬막이라 까딱하면 고성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한 300m 올릴라니 거의 돌아가실 지경이다. 그것도 18km 이상 진행한 산행 막바지니 더욱 그렇다. 겨우 능선 끝에 올라서니 490 정도이고 북으로 조망이 훤한 바위다. 깃대로 썼던지 굵은 쇠파이프 기둥이 넘어져 있다.  군부대 경고문과 전망조은 바위를 지나고, 직벽 암릉 틈으로 기어오르니 고성산 정상은 저만치 물러앉는다.


조망이 훤히 열리고 능선길은 널찍하게 확보되어 있다. 정상부 능선길은 마치 과수원길 같은 분위기다.  고성산 등산로는 남쪽으로만 열려있다. 깃재에서 오르고 다시 되돌아 내려가는 모양이라 뒤쪽(북)으로는 등로가 없다.  남동쪽 멀리 광주하늘 위쪽의 구름이 뚫려 도시에 서광이 비친다.  빛고을 광주라더니 저걸보고 그랬나.



(고성산)

 


(빛고을 광주)

 

 

 

 

(고성산)

 

 

 

고성산 (古城山  546.7m△고창23)

정상부 주위로는 억새가 둘러 쌌다. 건너편 월랑산 태청산이 어서오라 부르지만  ‘느그들은 다음판~’이다.  지워진 안내판에 매달린 노랑 리본에 적힌 글귀가 재미있다. “산꾼이 계절은 가리지 않지만 고성산은 가을억새가 좋습니다”


고성산 이름과 달리 성(城)은 고산이 더 확실해 보이는데, 고성산의 성은 남쪽 부성리 비탈에 내성과 외성이 남아있단다. 배낭속 먹거리를 마저 비우고 속세로 내려간다.


정상 바로아래 멋진 조망바위가 있다. 날씨가 좋으면 밥상펴기 조은 넓적바위에 올라 건너편의 월랑산 추모공원 뒤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가늠해 본다. 부성농공단지와 삼계면 일대가 훤하다. 내림길로는 등산로가 잘 정비가 되어있으나 급한 비탈은 뒤쪽이나 마찬가지다.  묘지를 연달아 지나면 좌측 나무 계단 아래로 임도가 보인다. 


임도를 외면할 우리가 아니다. 멀쩡한 임도를 두고 가시덤불로 들어갈 일 있나. 뒤따라오던 장산도 내가 어느 길을 택하는지 유심히 봤다나. 지도에도 점선으로 표기된 임도이고, 깃재 가까이에서 S자로 휘돌긴 하지만 길도 없는 덤불보다야 훨씬 낫겠다.

 


깃재 (204m 계재)

도로에 내려서니 건너편으로 들어가는 장성추모공원 입구이고, 고성산쪽을 살펴도봐 고개정점은 절개지 축대를 쌓은 절벽이라 내려선 흔적도 안 보인다. 임도따라 오길 잘했다. 고개너머 영광쪽 깃재산장은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기척이 없다. 영광군에서 세운 표석에는 [계재 해발 200m]이다.


택시를 불러 삼계로 간다(7,300원) 어디서 왔느냐는 기사님 질문에 “문수산에서...” 하니, 기사님 “대략난감한” 표정이다. 목욕탕은 면소재지 인근에 있는 상무아파트 상가단지에 있다. 요금이 2,500원이라. 백양사역 앞의 복지회관 보다 더 싸다.


 


(월랑산, 장성추모공원)

 


 

 

 

 

 

 

(깃재)


- 첨부파일

03(문수산~깃재).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