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맥 * 지맥/기맥 - 4

조은산 2012. 1. 23. 18:55

 

 

 

 

 

 

 

영산기맥 6구간

 

 

 

2010.02.07 (일)

산길 : 지경재~함평생태공원입구(23번국도)

사람 : 조은산, 장산

거리 : 21.3km

 

 

 

구간거리

지경재~9.1~군유산~3.6~노승산(-0.5)~0.8~건김재~4.6~발봉산~3.2~생태공원입구......21.3km

Cartographic Length = 23.4km / Total Time: 08:30 

 

 

06(지경재~생태공원).gpx

 

 

 

 

 

 

 

 

산경표의 삼각산(三角山 靈光南二十里)은 북으로 한참 벗어나 있고, 군니산(君尼山 咸平北三十里)은 현재 군유산이다. 400을 겨우 넘기는 봉우리지만 함평일대 바닷가쪽으로 이만한 높이가 없으니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나 함평만을 지켜보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겠다.

 

군유산을 넘으면 남은 산줄기는 이제 400되는 봉우리도 없다며 좋아한 것도 잠시고, 산길은 높이만으로 가늠이 안되는 것이다. 특히 영산기맥은 더 그런 것이 호남정맥에서 가시줄기에 학을 뗀다며 혀를 내둘렀는데 호남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호남에는 그 특유의 가시나무 한두가지 였는데, 영산에는 우리나라 식물중에 가시달린 넘은 다 모여 있는거 같다.

 

그래서 나무들이 다 잠든 한겨울을 택했는데, 우라질 넘의(!) 벌목꾼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던지 최근에 앞서 가면서 난도질을 해놓은 바람에 가시에 찔리고 벌목에 걸리고, 어느 일정구간만 그런게 아니라 끝마치는 도로에 내려서기 직전까지 내도록 잠시도 틈을 안내준다. 이름난 산 다 넘었으니 이제 고만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들었는데 만경창파 푸른물이 산꾼의 발목을 잡는다. 함평군수님께 민원을 올려놨으니 결과를 기다려보자.

 

부산에서 함평이니 동해에서 놀던 넘이 서해로 넘어간 셈이다. 오십여년 이 땅에 살아오면서 여지껏 목포 땅에 발을 디딘적이 없는데, 영산기맥 아니면 땅 파고 들어갈 때까지 목포로 갈일은 없지 시프다. 목포는 항구라 했는데, 항구가 맞는지 확인은 하고 끝을 내야않겠나.

 

지경재에서 마루금은 서쪽으로 C자를 그리며 한바퀴 돌아 다시 23번 국도로 내려온다. 신광면 함정리에서 신광면 가덕리까지 함평의 면(面) 하나를 못 벗어난다. 도로를 따라 곧장 가면 6km를, 산길로 20여km 휘돌아가는 그림이다. 대신 차량 회수할 택시비는 얼마들지 않아 좋겠다.

 

 

 

 

(지경재)


 

 

 

 

 

 

07:10 김철기념관

08:08 송림마을 도로

08:50 금산

09:43 칡재

10:07 사간고개

10:47 군유산

11:40 가는고개

12:36 건김재

13:12 옷밥골재

14:30 발봉산

15:40 함평생태공원 앞 23번국도

 

 

 

 

주초에는 일요일에 비가 온다고 했다가 주말이 되니 하루 연기를 해준다. 고마운 구라청이다. 제사 때문에 토요산행이 일요일이 되었고, 두어판 농땡이 부렸다고 반성을 하면서 한 시간 당겨 03시에 출발했다.

 

아침 출근길도 그렇지만 고속도로 역시 한 시간 먼저 나왔더니 가속이 더 붙는다. 도로에 차가 안보인다. 신나게 달려 광주경찰청 근처의 저번 해장국집에서 선지국밥 한 그릇씩 비우고 함평으로 넘어간다. 하얗게 눈이 깔려있던 그림이 말짱해져 있으니 긴가민가 못 알아보겠다.

 

 

23번국도 지경재에 이르러도 아직 깜깜밤중이다. 미리 알아 본 바로, 이번구간은 가시잡목이 대단하단다. 마루금도 좋지만 몸 조져가면서 산 탈일은 아니라는 지론에 따라 서해안고속도로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고속도로를 멀리 돌아지나야 하는것도 그렇고, 고속도로 전후로 산길도 산길 같잖은 가시덤불에서 고생할 일 머있겠노. 조고문님 글을 보면 인삼밭 주인하고 주먹다짐 할 뻔 했단다. 지경재 김철선생 묘소에서, 구봉마을 안쪽에 있는 기념관으로 직행한다.

 

독립운동가 김철선생 기념관

기념관 주차장에 들어가도 아직 7시 전이라 화장을 고치고 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대형버스도 들어 올만한 넓은 주차장에 신식화장실도 갖췄다.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 이 마을에서 태어나신 김철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장, 재무장, 국무원 비서장등 국무위원을 역임 하신 분이란다.

 

어둠속에 선생의 동상이 보이고 그 뒤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였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임시정부청사로 중국 현지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를 중국넘들이 철거 한다하여 이곳에다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한다고 했는데, 당초 약속한 국비지원이 끊겨 사업이 불투명한 상태란다. 우리끼리 말로, 국민정부(김대중) 때 진작 벌리지 않고 늦었구만이라...

 

 

07시10분이 되니 희끗희끗해 진다. 기념관 앞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가니 3분만에 기맥 마루금인 구봉마을에서 목우촌농장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개 우측(동)에 개사육장이 있다. 보초인 듯한 한 넘이 신호를 보내니 수십마리 개가 동시에 짖어댄다. 온 천지가 잠든 시각에 산골짜기가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마루금따라 넘어왔더라면 그 영역을 지나쳐야 하므로 더 난리가 날뻔했다. 순우리말로 "개지랄을 하고 있다".  개들이 하는 지랄이므로 욕도 아니다.

 

215봉까지는 그런대로 오르고, 왼쪽으로 꺾고부터 길이 엉망이다. 산길은 슬슬 본색을 드러내며 양 옆구리를 훑어댄다. 고개도 못들 지경이라 팍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간다.

 

 

×249봉 오르면서 2시방향으로 멀지만 바닷물을 본다. 의미가 새로운 것이 부산넘이 서해바다 볼일이 있나. 감개무량이다. 이어 동편 산 위로 해가 솟는다. 대기는 깨끗한게 조망은 좋을 날씨겠다. ×249봉 오르고는 우측이다.

 

다음의 235봉에서 짧은 헛질을 한다. 우측으로 내려 가야되는데, 벌목으로 리본이 다 떨어지고 길이 가려져 보지를 못하고 곧바로 내려가다보니 뭔가 수상시럽다. 수상하다 싶으면 즉각 챙겨볼 일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는 대형사고 터진다.

 

함평군계와 잠시 벌어지며 우측으로 영광의 불갑면계를 잠시 따르다가 면계를 버리고 왼쪽으로 내려가는데, 면계를 따라 북쪽에 산경표에 나오는 삼각산이 있다. 영광군 군남면이다. 임도 삼거리에 내려서고 왼편의 ×182봉은 빼먹고 임도따라 간다.

 

임도따라 내려가면 송림마을에서 올라 온 시멘트길을 만난다. 왼쪽에 큰 비닐하우스와 민가 한 채있다. 강세이 한 마리 환영하듯 쫒아온다. 우측에 거의 왕릉수준의 묘가 있다. 그대로 시멘트길따라 돌아간다.

 

 

송림마을 2차선 아스팔트 도로

버스정류장 명칭이 ‘상광암’에서 ‘송림’으로 바뀌었다. 고갯마루 왼쪽 아래에 상광암마을이 있고 그 뒤로 금산에서 군유산으로 흐르는 기맥 능선이 보인다.

 

건너편 밭둑에 커다란 풍천임공묘비가 있다. 오늘 이만한 비석을 수도없이 만나게 되는데, 호남 할 때도 느낀 바이지만 이쪽 지방사람들 조상님 섬김이 극진한건지 어쩐건지 좀 유별난걸 알 수 있다. 우리고향마을에도 한 때 유행처럼 이런 일이 있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남의 집(가문) 묘 보다 더 크고 높게 치장하던 일이다. 솔직히, 없는 직위도 써넣고 비석이나 봉분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치장하곤 했다. 조상님 모시는 정성이야 흉 볼일이 아니다만 일반적인 수준은 아닌거 같다.

 

풍천임공 비석 뒤로 올라서고 밭지대가 끝나면 산길인데, 왼쪽으로 편백나무 숲이다. 편백 숲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왼편길이 넓고 수월해보여 왼쪽으로 들어갔다가 얼마안가 길이 끝나고, 돌아 나오려다가 그대로 쳐 올리는데 아침부터 시껍잔치한다. 요령도 시의적절하게 부리는게 또한 요령이다. 땀을 있는대로 짜내고 겨우 능선에 올라서니 조망은 시원하다.

 

바위덩이가 점령한 봉우리 275봉을 오르고 왼쪽으로 꺾인다. 우측 멀리로 바다가 조금씩 더 넓게 보여진다. 잡목은 기세를 더해 가더니 산죽이 나온다. 차라리 산죽밭은 가시나무가 없어 낫다.

 

 

 

(김철선생 기념관)

 

 


 

 

 


 

(상광암 도로) 

 

 

 

 

 

 

 

(금산)

 

 

 

금산 (305.4m △와도417)

기맥은 정상직전에서 왼편사면으로 오르고 정상을 지나친 지점에서 왼편으로 꺾어 내려가므로 우측으로 되올라가야 봉우리이고, 삼각점은 다시 50m 가량 더 가야 있다. 서쪽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인데 바짝마른 줄기와 덩굴이 수북하게 애워쌌는데 정상부 삼각점 주변으로는 둥글게 잡풀제거를 해놓았다.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 조망은 없다.

 

다시 돌아나와 남으로 간다. C자 마루금 중에 서향이 끝나고 아래로 가는 냠향이다. 일직선으로 뻗어 내리다가 바위가 있는 봉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리는데, 그 끝에 명당인 묘터가 있다. 보여리 들판이 다 내려다보이니, 여기서는 "보여리가 다 보여~".  해보면에서는 "해보면 안다" ,  해보리에서는 "나도 한번 해보리~"  재미있는 이름들이다.  길쭉한 저수지는 동정제이고, 앞쪽으로 멀리 군유산이 보인다.

 

 

어지러운 잡목 숲속에 방치된 묘는 여양진공(驪陽)이다. 아무리 잡풀더미 속이라도 비석은 반듯하다. 왼쪽으로 상광암에서 내려온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가고,  멀리 우리가 건너 온 상광암고개도 보이고 동정제는 더 가까워졌다. 가시의 위세는 갈수록 더해진다 옷이 할퀴고 뜯기다 보니 걸래가 되는건 시간문제이겠다.

 

오늘 최고봉 군유산만 넘으면 더 이상 이만한 높이도 없다 했는데 높이가 문제가 아니라  산 높이가 낮을수록 가시는 더한 법이라 고생문만 훤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광암고개)

 

 

 

 

(보여리가 다 보여~)

 

 

 

(칡재)

 

 

칡재 (132m)

내려오면 좌우로 고개 흔적이 뚜렷이 남은 서낭당 돌무덤이 있는 칡재이다.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 언뜻보면 돌무덤인지도 모를 만큼 그 세월의 두께만한 낙엽이 덮혀있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보여리 장전마을이고 상광암 마을 바로 아래쪽이 되겠다.  다음의 ×192봉에 오르면 잠시 헤어졌던  함평군계를 다시 만난다.

 

짧게 내렸다가 올라서면 우측 건너로 감투봉 봉우리가 여러개 이어지는게 보인다.  200봉을 내려서면서 왼쪽 묘터로 나가면 숲에서 벗어나고  일순간 숨통이 트인다. 사간마을이 보인다. 묘터 앞 수렛길을따라 내려가면 사간고개다.

 

 

사간고개(154m)

큰 물탱크는 소나무 조림지에 급수시설인 모양이다. 사거리 안부에 내려서면  넓은밭이 있고 좌우를 넘는 임도다. 군계에서 동으로 살짝 벗어났다.  왼편 아래는 사간마을이고, 우측 골짜기 건너편에 감투봉이 보인다. 앞은 대나무숲이다. 대나무숲 좌우로 길이 있는데 어디로 돌아도 마찬가지다. 

 

대나무 숲을 지나면 다시 잡목숲이고 , 군유산 오름이 시작된다. ×294봉 오름이 다소 부담이 된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오르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죽밭을 만난다. 키보다 높은 산죽숲을 뚫고 올라서면 370m쯤되는 전위봉이고, 능선길을 완전히 덮은 온갖 줄기가 뒤엉킨 지대를 우측으로 피해 올라선다. 바짝마른 덩쿨은 높은 소나무가지를 타고 오르며 나무를 고사시킨다.

 

 


 

(사간고개)

 

 

 

(산죽에 묻히고~)

 


 

(덤불에 걸리고~)

 


 

(군유산)

 

 

 

(섬처럼 보이는 무안군 해제면)

 

 


 

(손불 앞바다)


 

 

군유산 (君遊山 △405.5m)

산경표에는 君尼山이다. 임금(君)이 놀다(遊) 갔다고 군유산이라 했는데, 그 후 조은산이 놀다갔다가 조유산으로 바꿨다는 얼토당토 않는 얘기가 전해진다나 뭐라나... 임금이든 누구든 정상에 서면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겠다. 서해 바다 푸른물이 넓게 펼쳐지는 것은 함평 일대 바닷가에 이만한 높은산이 없음이다.

 

서해 바다가 불과 5km 거리밖에 안된다. 건너편에 섬처럼 보이는 땅은 무안군 해제면이다. 뻘낙지의 참맛을 볼 수 있고, 서해안에서 바다에서 솟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뭍으로는 무안군 현경면에서 끊어질 듯 이어져 겨우 ‘섬’은 면했는데, 다리같이 이어지는 땅의 폭이 짧은데는 400m 정도 되는곳도 있다.

 

 

 

 

 

 

부산의 가덕도에도 최근에 매립을 하여 차 한대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육지와 연결을 했는데  해제면도 혹, 내가 모르긴 해도 원래 섬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신산경표에서는 이 산줄기도 놓치지 않고 표기를 했다. 감방산을 지나 봉대산으로 분기하여 해제면의 대월산까지 36.4km나 되나, 아슬아슬하게 명맥만 유지한 땅이라 산줄기로 이름 짓지는 못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신산경표 수정판에서 봉대지맥이라 명명했음

 

 

남으로는 가야할 기맥줄기가 내려다보인다. 건너편에 기중에 큰산이 노승산이고,  가는고개의 포장도로를 보며 마루금을 짚어본다. 군유산에서 내려서면서 모처럼만에 길다운 길을 만난다. 한무리의 산꾼들이 올라오길래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당연히 우리와 같은 업종으로 알고) “어디까지 가십니까” 물으니 “저쪽으로 가는길 있습니까” 되묻는데 동쪽을 가리킨다. 에궁~ 잘못 짚었구나. 글씨요, 길이 있을겁니다 하고 내려간다.

 

  

몇걸음  내려서면 바로 갈라진다. 벤취와  이정표가 있다. 우측 [주차장1.7km]이 북성리 일반등산로이고 기맥은 직진 [삼천동]이다. 북성리 사기마을에서 올라 정상찍고 연흥사쪽으로 길이 있는 모양이다. 아까 그 사람들도 연흥사로 가는 모양이다.

 

영광군과 이별하고 함평 손불면을 만나는데, 손불면(孫佛面)의 유래를 보니,

“산세가 손자인 스님이 할아버지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자세(孫僧拜祖佛)라는 명당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카는데,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 안되는 자세다. 호남정맥 갑낭재의 ‘보검출갑형’ 역시 아직도 아리쏭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찌되았든간에 손불면은 불교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철탑을 지나고는 가파르게 내려서는데,  [용굴] 스텐팻말이 우측에 있다. 뭔굴인가 살펴봤으나 그쪽으로는 어떤 흔적도 없고 너무 급경사라 찾아 볼 엄두가 안난다.

 

계속 내려가면서 우측을 주시했지만 가시덤불만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우측임을 염두에 두고 잠시 더 내려가니 걱정은 기우가 되고, 길은 자연스레 우측으로 돌아간다. 까딱했으면 조은길 놔두고 무식하게 덤불로 들어갈 뻔 했다.

 

 

북성리 도로

북성리에서 삼천동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다. 우리가 나온 쪽으로 있는 커다란 비석은 [김해김씨감무공파]다. 길을 건너 절개지 비탈을 오르면 의외로 조은길이 계속 이어지는듯 했으나 잠시뿐이다. 조은길은 성묘 가는 길이고, 기맥은 덤불로 들어가야 된다. 다 오르면 ×228이다.

 

 

×228봉을 지나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서면 아래로 푸른색 지붕이 보이고, 산길에 냉장고와 생활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큰길도 아닌 사람도 겨우 다닐 좁은 산길에 이걸 버리러 일부러 지고 올라왔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졌나.

 

 

마늘인지 양파인지 모종을 해놓은 밭으로 나서고, 밭 들머리에 羅州林氏之阡(나주임씨지천) 비석이 있다. 천(阡)은 무덤가는 길을 뜻하는 字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같은 일족인 ‘羅州林公장산’은 반가운 모양이라.

 

 

 

(북성리 도로)


 

 

(나주임공 장산)


 

 

(해안마을 도로)

 


 

 

(183.4봉)

 

 

 

 

가는고개(153m)

더 넓은 밭이 나오고 2차선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선다. 마루금은 도로 건너편 봉우리로 올랐다가 우측으로 떨어지는 그림이라, 우리는 축지법을 쓰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축지법 이거 알고보면 별거 아니다. 그 원조가 바로 피타고라스 선생이신데, 피선생 자신도 산줄기 타기에 이 원리가 응용이 될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삼각형 두 변의 합은 다른 한 변보다 길다"

 

 

다 내려오면 삼거리이고, 왼쪽은 해안마을로 들어간다. [신광해안길] 푯말이 걸린 건너편 둑으로 올라서면 논바닥이 마루금이다. 송사리 해안마을은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하여 "해안(海岸)"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단다.

 

 

2시방향의 ×202은 생략하고 잘 나있는 마을길따라 올라간다. 시멘트길 맨 위쪽에 민가가 있어 -마트나 슈펴를 기대하면서-  밥이나 먹고가자 싶었는데 그 집 개들이 보통 용맹한게 아니다. 끈이라도 풀리면 감당이 안될 기세다, 포기하고 그대로지나쳐 산길 마루금에 복귀했다. △183.4봉 직전 안부에 넓은 묘터가 있어 점삼상을 폈다. (12:00~12:18)

 

 

△183.4

봉우리도 아닌 능선상에 작은 봉분이 있어 묘인줄 알았는데 그곳에 삼각점이 얹혀있다. 번호 식별은 안되는 묵은 삼각점인데 지도상 183.4봉이다. 마루금은 노승산으로 향하다가 노승산 직전의 ×250봉 자락에서 바로 우측사면으로 꺾인다. 또 올라가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오름길의 힘듦 보다 가시덤불이 무서운 까닭이다.

 

기맥은 신광면계를 버리고 온전히 손불면으로 들어간다. 남진하는 능선 끝에서 우측으로 틀고 잡목 빽빽한 산길을 요리조리 돌며 내려오면 밭이다. 파란색 무청이 흩어져 있다.

  

 

건김재(93m)

밭 갓길을 따라 내려서면 신광에서 손불가는 838번 2차선 아스팔트 도로다. 동쪽아래 대전리가 손불면소재지라 그런지  지나는 차량이 빈번하다.

 

건너편에 [고부이씨 세장산] 비가 있는데, 그 뒤로 난 넓은 수렛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부이씨 집단묘터이고, 마지막 묘터 뒤로 잡목사이를 뚫고 올라가면 마루금에 복귀가 된다.

 

 

 

(건김재)

  

 

 

 

 

 

 

 

(수철고개)


  

×172봉에 오르면 다시 함평만 바다가 조망되고, 이 봉에서 내려서면서 조심해야 되겠다. 가늘게 뻗어 내리는 지능선이 여러가닥이라 잘 골라야 고생을 면한다. 왼쪽에서 내려온 수렛길과 만나고 내려가면 시멘트길이 나온다 수철마을이다.

 

 

수철고개

수철마을에서 올라온 시멘트 포장이 바로 아래까지 와있고 우측 용흥쪽은 비포장이다. 건너편에 올라서면 다시 푸른색이 풀이 듬성듬성한 넓은 밭이다. 그 밭 가장자리에 두엄(소똥)으로 울타리를 치다시피 해놓아 그 두엄을 밟고 넘어야 된다. 더 넓은 밭이 펼쳐지는데 수철리의 가축사료용 초지로 보인다. 그 냄새가 진하게 퍼진다. 바다가 더 넓어져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밭을 지나고 116.2봉의 통신시설물을 목표로 하고 간다. 왼쪽 바로 아래로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만 모처럼 삼각점이나 찍을까해서 잡목을 헤치면 나아가 보지만 기맥은 116.2봉 삼각점 만나기 전에 왼편으로 꺾어 내려간다. 벌목 잔해만 어지러이 널려있고 길이 없다

 

 

 

옷밥골재 (95m)

'옷밥골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이곳을 식의동(食衣洞)이라고도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골짜기지만 물이 좋고 땅이 기름져 흉년이 드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옷과 밥은 걱정하지 않는다 하여 '옷밥골'이라 불리었다 한다.

아스팔트 포장의 2차선도로다. 수철마을 민가가 지척이라 물을 얻을 수도 있겠다. 건너편 둔덕으로 뛰어 올랐다가 갑갑한 잡풀더미를 보고 돌아섰다. 지도를 정밀검색하니 넓은길이 보이는기라. 도로따라 남쪽으로 잠깐 내렸다가 왼쪽으로 올라가니 마루금이다. 황토흙이 흘러내리는 비탈을 기어올라서니 역시나 수북한 잡목과 덤불이 어디갔다왔냐 반긴다.

 

해도해도 너무했다. 벌목을 해놓았는긴데, 도데체 벌목을 한 지놈은 우찌 빠져나갔는지 의문이 드는 장면이다. 이런 벌목을 왜 한단 말인가. 모르긴해도 벌목이란 나무가 너무 울창하니 그 사이 공간을 틔워줌으로 나무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거 아닌가. 이런 벌목은 숲을 더 빽빽하게 만들어놓아 산토끼도 들락거리지 못할 지경이다.

 

옷은 이미 포기했고, 맨살이나마 최대한 보호하면서 기중에 빈곳을 골라 진행한다. 그나마 한번씩 돌아보면 군유산이 보이고, 불갑산까지 조망이 된다. 시원한 바닷물도 보이니 그런대로 맛을 찾는다.

 

 

 

  

 

 

 

 

 

 

 

 

 

 

(옷밥골재)


 

 

×153

감적고개는 어딘지 알 수도 없고, 벌목가지를 피해 겨우 올라선 153봉에서 배낭을 내리고 한숨 돌린다. 높이는 얼마 안되지만 주변에서 볼록솟아 봉우리처럼 보인다. 나무시체들을 타 넘는게 여간 고역이 아니고, 길을 찾느라 눈 알 돌아가는 소리 요란할 지경이다

 

 

×153봉을 지나고 기맥마루금은 북동을 향한다. 거꾸로 올라가는 그림이다. 발봉산이 올려다 보인다. 잡목은 여전하고 석령제 뒷봉에는 산불흔적이 남아있다. 씨커먼 나무둥치가 그대로 남아 건드리면 꺼먼 숯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우측 아래로 둥그스런 석령제 저수지와 죽암리 들판 서해고속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 크지않는 석령저수지 물로 저 넓은 들판을 다 먹여 살리기엔 역부족이겠다.

 

석령재(98m)

석령마을 고개라 석령재다. 짤록한 흔적만 있을 뿐 산돼지나 다닐 길이다. 벌목작업이 어떤 기준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 되어있어, 헤치고 나가기가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다.

 

 

발봉산 (鉢峰山 180.8m △와도429)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아도 잡목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오르려니 여삿일이 아니다. 역시나 산봉우리 오름에 힘이 들고 안들고는 그 높이만으로 가늠할 일이 아닌 것이다. 땀을 짜다시피 하면 올라서니 삼각점이 두 개나 있다. 정상부는 듬성듬성 벌목을 해놓았고 발 아래로 고속도로가 훤하다.

 

 

 

 


 

 

 

 

 

(함평천지)

 

 

 

 

 

 (발봉산)

 

 

 

장동마을 도로 (76m)

발봉산에서 내려서면 함평일대의 야산들이 시야에 다 들어오고 멀리 불갑산까지 조망이 된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함평생태공원 진입로까지 남은 산줄기가 다 짚어진다. 장동마을 도로는 최근에 새로 뚫었는지 양쪽으로 높게 절개지를 내고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간다.

 

역시나 이곳에도 광산김씨 세적비가 3개나 있고 정자도 있다. 장동마을이 지척이다. 왼쪽으로 내려서고 길 바닥에서 다시 건너편 절개지로 올라서면 대나무 숲이다. 고갯길 전후로 있는 대나무숲이 유별나다. 100m를 겨우 넘는 봉우리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거의 비행기 수준이다. 서해안 고속도로 함평천지휴게소가 멀지않다.

 

120쯤 되는 봉에서 다시 신광면 영역으로 들어가고, 서해안고속도로 함평터널 위로 지난다. 터널 공사 탓인지 터널 윗쪽은 넓은 수렛길 수준이다. 이동통신 철탑이 있다. 넓은 길은 잠시이고 다시 덤불지대다. 125봉 덤불 사이로 겨우 빠져 내려오면 마지막 145봉이 기다린다.

 

145봉

산불 흔적에다가 온통 가시나무다. 내리막 비탈에서 무심코 나무를 붙잡다가는 피를 보기 십상이다. 나무란 나무는 모두 가시를 달고 있으니 건드리면 다친다. 발 아래로 함평천지가 훤하게 펼쳐지며 시원하게 4차선으로 확장되어 시원하게 달려가는 23번 국도와 그 너머로 함평생태공원 진입로 남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미 고속도로는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 너머로는 바닷물이 보인다. 국도를 내려다보면서 마루금을 가늠하는데 높은 주능선이 아니고 왼쪽 아래 보이는 묘터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되겠다. 23번국도 교차로는 인위적으로 북돋운 터이고 마루금은 왼편이다.

 

묘터까지 내려와서 정면으로는 길이 없어 우측 시멘트길 따라 내려간다.

“이리 조은길 놔두고 미쳤다고...” 절로 나온다

 

 

23번국도 (57m)

함평생태공원 입구라 넓게 조성되고 있는 있으나 현재는 허허벌판이다. 생태공원은 동쪽으로 난 진입로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대동저수지 옆으로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는 파충류공원을 새로 만드는 중이란다. 택시를 불러 보여리로 간다(7,000원). 짧은 시간 이지만 기사님께 이것저것 여쭈어 보는데, 기사님 말문은 온통 “거시기” 뿐이다. “거시기가 거시기혀서 거시기되야 부럿서.....”

택시로 8분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온종일 빙빙돌며 헤집고 다녔으니, 도무지 이문이라고는 없는 장사다.

  


 

 

 


 

 

 

 

 

 

(장동마을 고개)

 

 


 

(서해안고속도로)


 

 

  

(23번 국도)

 

 

 

 

 

 

 

 

(함평생태공원 입구)


 

 

 

 

함평군에 민원접수  http://blog.daum.net/hansemm/81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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