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맥 * 지맥/기맥 - 4

조은산 2014. 4. 7. 10:49

 

 

 

 

 

 

영산기맥 1구간

 

 

2014. 4. 6(일)

산길 : 새재~장성갈재

거리 : 9.7km

 

 

 

구간거리

새재봉분기점~1.3~삼성산(-0.6)~2.7~입암산~5.7~장성갈재 / 9.7km

(대가마을 접근 1.2km)

 

Cartographic Length = 13.4 km Total Time: 05:15

 

01(대가~노령).gpx

 

 

만들어 본 삼남대로 (김재홍저. 옛길을 가다)

삼남대로.gtm

 

 

 

 

 

영산기맥 두 번째 발걸음이다. 지맥을 함께 다니던 ‘멋진사람들’의 일정에 어찌하다보니 얹혔는데 첫 구간만 하고 말는지 두어번 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다만, 바짝 내키지 않는 것이 길이나 좋으면야 두 번 아니라 서너번이면 어떻겠노. 오죽했으면 함평군수한테 등산로 정비 좀 해달라는 민원까지 넣었을까. 그 고생을 재차 사서 하겠나마는 일단은 갓바위 조망을 기대하면서 올라본다.

 

2009년 11월 시작했고 다음해 3월에 마쳤으니 4년전이구나. 장산과 둘이서 만추의 낙엽길로 남창골을 통해 올랐는데 오늘은 들머리를 달리했다. 최단거리로 새재에 오르는 길. 대가저수지에서 들어간다.

 

4년전에는 미세먼지라는것도 없었는데 오늘 조망은 그때보다 더 좋았다. 갓바위에 설치된 경관조망도의 그림 그대로, 그때보다 더 조은카메라로 파노라마 조망을 했다. 사진을 여러장 찍어서 이어 붙이는게 아니라 샷타를 누른채 방향을 돌리면 차라라라락 소리를 내면서 한 장짜리 파노라마 사진이 찍힌다. 세상 좋아졌다.

 

또 달라진거는, 옛길 노령이 복원되었다. 그때 지나가면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옛길이 묻혀가는걸 많이 아쉬워했는데 ‘백양사역에서 입암면사무소까지’ 삼남대로 옛길이 복원된 것이라. 그래서 노령에서 장성갈재로 가지 않고, 옛길을 따라 목란마을로 내려왔다.

 

 

 

11:00 새재 (500m)

11:15 분기봉(×536.0m)

11:50 삼성산 분기봉(520m)

   (11:53~12:12 점심밥)

12:30 장성새재(340m)

13:04 입암산성(×652.1m)

13:17 입암산(笠岩山 ×654.3m)

13:30 북문

13:43 거북바위

13:50 갓바위(×640.6m)

14:45 ×641.9m(시루봉)

15:30 노령(260m)

15:55 1번국도 갈재옛길 들머리 (150m)

 

 

 

 

 

07:00 부산출발

부산서 순창이라 네 시간은 잡아야하지 않나 했는데 기사도 야무지게 밟고 새 도로가 뚫려 세 시간 반만에 들머리 도착했다.

 

감상굴재

담양IC에서 내려 국도를 달리는데, 지도에 15번으로 표기된 지방도로가 4차선으로 고속도로나 다름없어 백양사입구까지 한 순간이고, 추령으로 가는 49번도로는 2차선이다. 호남정맥 하면서 지나간 감상굴재는 고개 같지도 않았던 기억인데, 백양사에서 올라가니 제법 구절양장 스럽게 감아 돌린다. 고개를 다 올라 감상굴재에 이르니 다시 길은 넓어져 예전의 신화회관은 흔적도 없어 여기가 거기가 맞나 싶을 정도다.

 

 

대가마을 임도 끝지점(380m)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대가제 옆길로 올라 대가마을로 가다가 왼쪽에 국립공원 안내판이 있는 임도. 차단기가 있는데 문처럼 생겨 자물통을 채우는 형태가 아니라 들고 옮길 수 있는 차단기라, 용감한 총무가 차단기를 한쪽으로 치우니 무식한(!) 김기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차를 들이 밀어 넣는다.

 

 

임도 끝지점에서 돌려 나가는 뻐스

 

 

사륜구동 짚차도 아닌 명색이 버스인 주제에 임도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될데로 되라는 식인데, 과연 걱정대로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버스를 돌리기가 마땅치 않다. 승용차나 겨우 돌릴 삼거리 형태의 V자 코스에서 김기사는 절묘하게 차를 돌려 나간다. 임도 벗어나는 순간까지 국공파와 마주치지 않길 고대할밖에

 

대가제에서 2.2km 네바퀴 달린 기계가 갈 수 있는, 임도가 끝나는 지점까지 Bus를 올렸다. 걸어서 왔더라면 30분으로 되것나. 여기까지 올라 온 25인승버스는 아마도 전무후무하지 싶다. 돼단한 김기사로 인정~.

 

사람을 통제하는 차단용 울타리는 부셔진지 오래고, 길은 너무 뚜렷하게 나있다. 얼레지, 개별꽃이 만발한 계곡을 7분 올라가니 지계곡 합수부다. 갈림길 바닥에 두 동강난 비석이 누워있는데 [소둥근재통노]라 새겨져 있고 [순창새재0.78km, 까치봉2.22km] 이정표와 뒤에는 [故주도식 추모] 동판이 보인다. 여기서 우측 골짜기[까치봉]로 올라가면 지도상 소죽염재로 가겠고, 정면길은 경사도 거의 없이 새재로 올라간다.

 

 

 

얼레지

 

 

 

 

개별꽃

 

 

 

 

 

통제구역이라도 이정표는 멀쩡하다

 

 

 

 

 

 

소둥근재 통노?  통로

 

 

 

 

 

순창새재로 올라가는 순탄대로

 

 

  

 

 

호남정맥 순창새재 -안내문 뒤로 들어가야...

 

 

순창새재 (500m)

버스 내려 1.2km를 20분 걸려 호남정맥 새재에 올랐으니 아주 경제적인 접근이라 하겠다. 지형도를 보면 여기도 새재이고, 삼성산쪽 능선에도 새재표기가 있으나, 여기는 ‘순창새재’, 삼성산 분기봉은 고개가 아니니 삭제를 하고, 남창골에서 올라 온 지형도의 장성갈재는 ‘장성새재’로 고쳐야 맞다.

 

새재에 올라서면 호남정맥 마루금이고, 전북 순창군과 정읍시 경계가 되는데, 전라남북의 도계가 아주 이상하게 그어졌다. 입암산성에서 내려온 도경계는 장성새재에서 남창골로 내려가 몽계폭포골을 거쳐 상왕봉으로 올라오는데 즉, 골짜기 도랑물 좌우로 남도와 북도가 갈라지는 어처구니 없는 구획이다. 순창새재에서 영산기맥 마루금을 따라 호남정맥으로 연결이 되는게 어느모로 보나 합리적인 구획이 된다. 지형도의 그림으로 보면 장성새재에서 상왕봉까지의 도경계선 ㄴ자 형태를 ㄱ자 형태로 고쳐야 쓰것는디, 내가 떠든다고 전라도 아래위 도지사 어른들이 말을 들어묵을랑가 몰겠당께롱~

 

 

우쨌기나 새재봉(분기봉)까지 250m 가량은 순창 복흥면과 정읍 입암면계를 따라 간다.

4년전 그대로 기맥 분기봉쪽으로는 [탐방로아님] 팻말이고 호남정맥은 까치봉쪽으로 질러가게 되어 있다. 기맥 분기봉쪽으로 향하면 왼편에 뚜렷한 길이 보이고, 봉우리를 피해 사면으로 질러가는 길로 보여 다들 그리로 들어가는데, 그 길(이정표의 입암방향)은 불바래기로 내려가는 길이라. [탐방로안내문] 뒤로 들어갈 일이다.

 

 

 

영산기맥 분기봉

 

 

분기봉(×536.0m)

아무 표지도 없는 봉우리다. 산꾼들이 [영산기맥 분기봉] 표지판을 걸어놔도 국립공원에서 떼어내는 모양이다. 호남정맥은 우측(동)이고 (저 아래 새재에서 지름길을 만들어 놔서 이쪽으로는 발길이 적어 길이 덜 뚜렷하다) 기맥은 왼쪽 산죽 빽빽한 내리막길이다.

 

 

 

 

영산길은 산죽밭에서 시작한다

 

 

 

 

 

조망 조은 봉우리

 

 

  

 

 

정읍시

 

 

 

 

오르지 못하고 왼쪽 우회

 

 

 

삼성산 분기봉(520m)

×565.5는 암봉이라 오르는데를 찾지 못하고 왼쪽 사면으로 돌아갔다. 지난 기록을 보니 어디로 올라갔고, 넓은 마당바위에서 거풍 한판 때린 기억도 있는데 오늘은 찾지를 못했다. 565.5봉 지난 안부에서 다시 마루금을 찾았고, ×535.9봉을 지나 갈림길이다. 지맥은 왼쪽 급내리막이고, 정면으로 곧장 가면 삼성산(547.9)인데 0.8km 거리다. 지도에는 여기에도 '새재' 표기가 있다만, '새'도 없고 '재'도 아니다.

 

 

 

 

 

 

11:53~12:12 점심밥

잠시 내렸다가는 다시 완만하게 ×534.9봉 오름인데, 넓은 묘터가 있어 점심을 먹고 간다. 문패는 없고 봉분은 돼지가 파헤집어 놨다. 두릅이 많이 보인다만 아직은 딸 때가 멀었다. ×534.9봉을 넘어 내려가는 길에서 맥을 못짚고 우왕좌왕이다. 묵은 길이라 흔적을 놓치면 어문데로 가기 십상이라 앞서 가던 선수들도 GPS 뒤를 졸졸 따라온다.

 

 

 

장성새재

 

 

장성새재(340m)

지형도에는 장성갈재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정표에 표시된 대로 장성새재가 맞다. 장성에서 정읍으로 가는 고갯길. 옛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큰노령(큰갈재), 작은노령(작은갈재) 두 개가 있었다는데, 여기가 작은갈재가 아닐까. 그 시절에 장성에서는 몰라도, 담양에서 정읍을 가려면 이 길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었다. 옛길 노령보다는 넓고 완만해 가마는 물론 소달구지도 어렵지 않게 넘어 다녔겠다.

 

 

 

 

 

 

넓은 삼거리길. 정면은 휘돌아서 [남창골]로 내려가고, [내장사] 방향은 호남정맥 순창새재를 넘어 내장사로 간다는 이야기다. 우측(북)으로는 정읍시 입암면 신정동이고,  세 방향 공히 승용차도 다닐만한 조은 길이다. 정면 [남창골]으로 100m 가면 '출입금지'에 로프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차단막이 있는데, [탐방로 아님]이 아니라 [영산기맥 마루금]이다. 애써 막아놓은걸 부술 수는 없고 옆으로 살짝 돌아 올라간다.

 

 

 

 

 

[탐방로 아님] 이라는 길이 이렇게 뺀질뺀질 광이 날 수 있을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다들 콧방귀 한대씩 날려주고 씩씩하게 발길질을 하는데, 350에서 650까지 300m를 올리는 비탈이다. 숨이 터질 무렵 조망바위가 있어 삼성산쪽 조망 한번 내다보고 다시 올라간다. 새재 고개에서 30분 걸려 산성 돌담 위에 퍼져 앉았다.

 

 

조망한번 보고...,  (정읍)

 

 

 

 

5분 더 오르면 산성이다.

 

 

 

 

생강나무가 반겨준다

 

 

 

 

입암산성

 

 

입암산성(×652.1m)

지도에도 표시된 산성 벽을 따라 북으로 올라간다. 좌로는 갓바위 봉우리가, 우로는 삼성산이 언뜻언뜻 보이다가 지형도상 입압산 (笠岩山 ×654.3m)을 지나고 동쪽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지형도의 입암산 정점은 아무 특징없이 산성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호남정맥 고당산까지 조망

 

 

 

 

 

갓바위 너머로 변산까지

 

 

오봉산(×504.2) 갈림길에서 왼쪽 바위슬랩을 타고 내려가니 울타리로 막혔다. 넘어 나오니 [탐방로 아님] 이고 우측 뒤로는 [만화제 1.5km]인데 만화제는 북쪽 만화마을에 있는 저수지다. 1분 더가면 입암산성 북문이다.

 

 

만화제 갈림. 나온쪽으로는 탐방로가 아니란다.

 

 

 

 

입암산성 북문

 

북쪽, 정읍방향으로는 내려가지도 못하겠는데 門이라.

산성길 따라 10분 더 가면 거북바위다.

 

 

 

[임암산성의 수호신 거북바위] 안내문이 있다.

 

 

거북바위란다.

 

 

 

 

 

 

 

 

 

입암산 갓바위

 

 

 

 

 

전망대에서 사방으로 여기저기 카메라 박아 대다가, 아예 파노라마를 작동시켰다.  셔타를 누른 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면 차르르륵 소리를 내면서 자동으로 찍으면서 1컷으로  저장을 한다. 참 편해진 세상이다. 조망안내도 그림과 거의 일치한다.

 

 

 

파노라마

(변산 신선봉 28km, 두승산13km)

 

 

 

 

 

 

 

시루봉

 

 

입암산만 오르면 거의 다왔나 싶었는데, 내려갈 시루봉은 한참이나 멀어 보인다. 특히 내려가는 비탈의 울퉁불퉁한 바위벽은 오금이 저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달라붙지 못하겠고, 혹은 그렇더라도 심장하나 믿고 저기서 목숨 걸 일 있나. 

 

 

장성갈재. 방장산

 

 

아래는 호남고속도로, 산 허리로 난 길이 1번국도 장성갈재다. 1번국도 역시 터널을 뚫고 새로 내고 있어 장성갈재 역시 옛길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그 뒤로 우뚝선 방장산은 다음 구간이고 우측으로 흘러내린 변산지맥, 특히  다음 달에  조고문님과 약속한 두승지맥도 눈여겨 봐 둔다.

 

 

남창골 하산길

 

갓바위에서 급한 비탈을 다 내려오고 뺀질뺀질한 길을 따라 15분 후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주차장 3.8km] 가리키는 이정표는 이쪽 능선에서 남창골로 내려가는 유일한 길이다. 바로 정면으로는 [탐방로 아님] 팻말이 있다.

 

 

탐방로는 아니라도 영산기맥 마루금은 맞다.

 

 

시루봉이라 부르는 ×641.9봉에 앉아 마지막 쉼을 한다. 여기를 어른봉이라 하고 또 옆에 있는 어느봉을 아이봉이라 한다는데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이름이다.  정읍시 입암면과 장성군 북하면, 북이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 된다.

 

멀리서 보이던 그대로 갈재로 뻗어 내리는 마루금 부분은 여러개 뿔이 솟은 형태의 암봉이다. 그대로 암릉을 타고 넘은 듯한 리본도 몇개 보이지만 우리는 맨 첫봉부터 우회했다. 우측 아래로 하강하듯 떨어져 돌아가는 그림인데 곧장 넘어 오는거나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다음봉 역시 우측으로 우회하고, 맨 마지막 암봉은 왼쪽으로 돌아 내렸다.

 

 

시루봉을 내려와서 쳐다보니...

 

 

 

 

북이면 백양사역

 

맨 왼쪽은 새로 뚫는 1번국도, 중간에 호남선 기차길이 지나가고, 우측은 호남고속도로

 

 

 

남평문공돌이지묘 (문돌이)

 

 

 

 

 

갈퀴현호색

 

 

 

 

 

옛길 노령

 

 

 

 

갓바위

 

 

갈재

대동여지도에 蘆岺으로 표기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정읍현 산천편에 갈재를 가리켜 ‘위령(葦岺) 혹 노령(蘆岺)으로 쓴다. 현의 남쪽 30리에 있는데, 장성현의 경계다’라고 돼 있다. 갈재가 정읍과 장성의 경계임을 알 수 있고, 한자 위(葦)와 노(蘆)는 모두 갈대를 가리킨다. 즉 갈대가 많아서 갈재로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길은 그대로이나 이정표와 쉼터를 설치했다.

 

 

 

부사 홍병위 영세불망비

 

 

조선시대 한양에서 전국 각 지방으로 가는 ‘10대 대로’중 하나인 삼남대로. 한양에서 해남까지 이어진 천리길이다. 서울 숭례문에서 출발하여 동작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고, 남태령, 과천, 인덕원, 청호역(수원), 진위, 성환역, 천안에서 차령고개를 넘고, 공주, 노성, 은진, 여산을 거쳐 삼례에 닿는다.  삼례에서 전주, 남원,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길이 나눠지며. 삼례에서 금구를 지나 태인, 정읍, 갈재, 장성, 나주, 영암 그리고 강진의 성전을 거쳐 해남 관두포에서 제주로 가는 뱃길로 이어진다.

 

방백수령들이 임지로 부임하거나 퇴임할 때 이 고개를 이용했고, 남부지방으로 유배를 떠나는 파직자들,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을 오르내리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

 

특히 삼남대로는 역사 속의 수많은 유배객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이다. 기묘사화의 주역, 김정과 동계 정온, 광해군이 이 길을 거쳐 제주로 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세가 우암 송시열은 그 길목의 정읍에서 최후를 맞았고 추사 김정희도 이 길을 따라 제주로 갔다.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유배를 가다가 나주의 율정점에서 이별의 눈물을 흘렸던 곳도 이 길이었다.

 

 

 

옛길 노령에 설치된 쉼터

 

 

 

 

노령 = 갈재

 

 

 

 

갈재 샘터

 

 

 

 

 

 

 

 

갈재 샘

 

 

 

 

 

 

 

 

 

 

 

 

 

 

백양사역에서 입암면사무소까지. 삼남대로

 

 

 

 

1번국도에서 갈재 들머리 (우측)

 

 

 

 

목란마을

 

 

 

 

갈애바위

 

 

 

 

 

갈애바위 (가래바위) 전설

 

지금으로부터 약 오백여년 전 장성땅 목란마을 갈재고개 아래에 주막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 주막에서 묵어갔다.

 

어느날 주모는 태몽을 꾸는데, 오색영롱한 구름이 가래바위를 애워싸더니 바위틈에서 어여쁜 처녀가 나오는 것이었다. 처녀는 부인에게 다가와 넙죽 절을 하며 “저는 가래바위의 정기를 받아 부인의 몸을 빌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하더란다. 이 후 주모는 꿈에 본 처녀와 똑같은 아기를 낳고 가래라 이름 지었다.

 

가래는 커갈수록 아름다움이 더해갔고, 시와 가무에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그러자 주막에 들른 선비들이 가래의 미모에 반해 며칠씩 묵어가기도 하고, 과거도 잊은채 떠날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전라도 관찰사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도중에 목란을 지나다가 가래라는 처녀에게 반해 허송세월을 하는 자가 많아 피해가 막심하다’는 상소를 올리자 왕은 그냥 두었다가는 인재가 모두 절단 나겠다며 가래를 없애라고 장수를 보내나 명을 받은 장수조차 가래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겨 주저앉고 만다.

 

왕은 크게 노하여 선전관에게 친히 어룡도를 내리며 모두를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목란으로 내려온 선전관은 장수의 목을 치고 다시 가래를 내리쳤다. 순간 괴이한 바람소리와 하늘에서 여인의 통곡이 들려오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에 선전관은 때늦은 후회를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 가래는 얼굴에 칼을 맞아 눈이 일그러진 채 죽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산봉우리의 바위가 한쪽이 일그러진 사람얼굴 모습으로 변했고 마을사람들은 가래의 억울한 혼이 바위에 스몄다며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시루봉에서 내려 온 능선

 

 

원덕리 목란마을, 신목란마을에서 갈애바위를 쳐다보며 터벅터벅 내려갔다. 효자 전일귀비석은 공사중인 새도로 옆에서 먼지를 홈빡 덮어썼고, 갈애바위와 얽힌 원덕리 미륵불을 찾고 있는데 버스가 내려온다. 전에 가본적이 있는 북이면 사남마을회관 목욕탕을 찾아갔다.

 

 

 

 

북이면 목욕장

 

백양사역 앞에서 좌회전하여 4~500m 내려가면 목욕탕이 있다.

마을회관에서 운영하는 목욕탕으로 어른 3,000원, 노인은 2,000원

현행법상 65세 이상이 노인이지만,  여기서 6학년은 노인 명함도 못 내민다.

 

 

 

 

승주IC에서 잠깐 내렸다가 저녁 먹고 가는데, 전경버스 3대의 병력이 식사중이라

열 몇명 갖고는 단체 흉내도 못내겠더라.

그 많은 인원이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외쳐대도 생글거리며 즉각 응해준다.

마당에 묶어논 강아지도 잘 얻어 먹었는지 살이 포동포동~

 

 

 

 

묵은지에 삼겹살을 넣은 찌게.  고기와 비계가 적당비율로 들어있어 맛이 괜찮더라

 

 

유일한 메뉴  백반정식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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