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맥 * 지맥/백두대간-지맥

조은산 2014. 4. 13. 10:59

 

 

 

 

 

각호지맥 3구간

 

 

 

 

 

2014. 4. 12(토)

산길 : 선화치~솔치

사람 : 이희중 조은산

거리 : 18.4km

 

 

 

 

 

 

 

구간거리

선화치~8.3~가리재~3.6~백마산(534)~6.5~솔치재 / 18.4km

(전원교회 접근 1.7km)

 

 

 

Cartographic Length = 19.6km Total Time: 08:00

 

 

03(전원교회~솔티).gpx

 

 

 

토, 일 이틀해서 마감을 하려 했으나 희중선수 일정이 토요일만 비고, 날씨도 수상스럽다마는 벌려 놓으거 마감은 해야 할거 아닌가. 수시로 바뀌는 예보를 주시한 결과 토요일은 괜찮겠다는 판단을 하고 올라 갔는데 아침나절 부슬비 좀 맞았고 오후 들어서는 햇볕이 나왔다. 특별히 조망이 나올 능선도 아니지만 날씨가 잔뜩 흐려 먼 조망은 본것도 없이 한 구간 정리했다.

 

05시 사상에서 만나 고속도로를 달려 김천을 지날 때쯤 유리창에 빗물이 묻어나더니 황간에 들어가니 제법 유리창을 적신다. 영동역에 차를 대놓고 택시를 불러 전원교회 안쪽 접근 가능한데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니 선뜻 나설 생각이 없어진다.

 

지난번 하산했던 상촌면 선화치로 접근하는게 정석이겠지만, 차량회수시 택시비를 고려해서 반대편 영동읍쪽에서 들머리를 찾았다. 선화치 마을에 차를 대놓을 경우 영동읍에서 황간으로 돌아가면 택시비가 3만원으로도 모자라지 싶어서다.

 

영동역 앞 주곡천 용두교 아래 주차장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가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도 없고 무작정 나서기도 망설여지고, 하다가 궁리 끝에 차를 끌고 임계리 전원교회로 갔다. 비가 더 내리면 철수하고 갤듯 하면 올라가볼 심산이었는데 비가 더 내릴 조짐은 없어 보인다.

 

 

마치고 황간으로 넘어 오면서 노근리 평화공원에 들렀다. 전쟁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몇 안되는 현장 중의 한 곳이라 일부러 들러봤는데 제주, 거창, 함평에서의 그것과 달리 여기는 미군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당한 양민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진상이 밝혀지고 추모공원까지 조성이 되었지만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들의 한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마지못해 인정하는 가해자인 미국의 태도와 이에 적극적으로 해결할 노력을 보이지 않는 우리 정부. 전쟁의 상흔으로만 덮기에는 너무나 큰 아픔이 남아있다.

 

 

 

08:26 전원교회

09:16 지맥 능선

10:00 ×681.4

10:09 삼면봉

11:04 △303.3

11:30 가리재

12:20 △537.7m

13:35 백마산 534.4m

14:23 성황당고개

14:53 무량산 (△425.9m)

15:30 절터

16:25 솔티재

17:30 노근리 평화공원

 

 

 

 

전원교회(280m)

영동읍 임계리 안점마을. 마지막 갈림길에서 왼쪽은 전원교회가 있고, 우측으로는 지도상 임도가 한참 더 올라간다. 우측 임도로 차량으로 접근 가능한 지점까지 올라가 지맥에 오르려 했으나, 우측길은 입구부터 탄탄한 철문이 설치되었고 굳게 잠겼다. 나중에 알아보니 마을에서 송이와 장뇌삼을 재배한다는 것이다.

 

 

교회로 들어가니 좁은 길이고 다리건너 안쪽은 전부 교회영역이다. 아줌마 한 사람 내다보더니 조은말 할 때 차를 빼란다. 돌아나와 삼거리에 차를 대놓고 교회쪽으로 들어갔다. 다리 건너 교회로 오르기 전 정면 계곡으로 들어가고, 우측 둑 위로 올라서니 교회 안쪽 과수원이다. 맨 위로 들어가니 골짜기 따라 길이 있다.

 

 

안점마을 갈림길

 

임계리 안점마을 도로 끝에 좌우로 갈라진다. 왼쪽은 전원교회, 우측 길은 지도상으로는 1km 가량 더 표시가 되어 있으나 입구에서 바로 막힌다. 넘을 수없는 철책 문이 설치되어 있고 야무지게 잠겼다.

 

 

 

전원교회

 

 

임계리 골짜기 맨 안쪽에 깊숙이 자리잡은 전원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팻말이 걸렸지만 일반적인 마을에 있는 교회로는 보이지 않고 넓은 터에 과수를 재배하며 기도, 치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글자 그대로 전원교회다. 입구에는 캠핑장 팻말도 걸려있는데 운영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약 30분 가량은 물길 왼쪽으로 사람이 다닌 길이 보이다가 지맥능선 바로 아래에 와서는 길 흔적이 흐지부지해지고 땅바닥이 코앞에 닿는 경사다. 더구나 벌목 잔해가 널부러져 있어 이리저리 피해 오르면서 20분간 진을 뺀다.

 

 

지맥 능선에 올라서고 보니 ×649.5봉 직전 안부다. 전원교회에서 50분 정도 걸렸고 1.7km 된다. 지난번 하산했던 서낭당고개에서는 약 2km 가량 지나고 이 구간 가장 높은 730봉도 건너 뛴 지점이라, 그런대로 고생한 보람(?)은 있는 셈이라며 땡글땡글해진 종아리를 달래본다.

 

서낭당고개로 운해가 넘어온다

우측봉은 상촌산이라 하는 △794.5봉이다.

 

 

지맥 능선

 

 

비는 거의 멎은거 같아 우의를 걷어 넣고 본격적인 지맥 산행을 시작하는데 빽빽한 나무도 그렇지만 안개가 짙게 깔려 보이는게 없다. 능선따라 빨래줄이 이어진다. 너덜거리는 현수막이 간간이 보이는걸 보니 약초재배, 출입금지 경고문을 걸었던 모양이다.

 

 

지맥 빨랫줄

 

 

×649.5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마루금이 수상하다. 함몰지대처럼 움푹꺼진 지형을 보고 우측이 마루금인거 같아 내려가면서 보니 왼쪽 건너편 역시 마루금이 되는 묘한 형태다. 고성남공과 철원최씨 합묘가 그쪽을 향하고 앉았는데 비가 많이 오면 못처럼 물이 고일 지형이라 마루금이 둘이 나오는 지형이다. 뒤쪽 너머로 이와 같은 지대가 한곳 더 보인다.

 

 

함몰지대

 

고성남공묘에서 돌아 본 그림. 물이 그대로 고이게 되므로 좌우측 둑 둘 다 마루금이 된다

 

 

 

 

×681.4

평탄한데도 없이 굴곡은 꾸준히 반복되나 능선은 뚜렷하고 무엇보다 가시넝쿨이 없어 좋다. 왼쪽 임계리로 하산할 만한데가 있나 유심히 봤으나 갈림길은 보지 못했다. 물 먹은 진달래 꽃잎을 따먹기도 하면서 681.4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린다. 오늘구간 최고봉이지만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어라.

 

 

자빠진 전봇대

 

 

×681.4봉을 지나 10분 후 영동읍 상촌면 황간면 삼면봉이나 별 특징없이 참나무 숲속이다. 간혹 기차소리가 들리길래 가리재에 거의 다왔나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한참 멀었다.  볼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산길에 전봇대 두 개가 자빠져 있다. 왼쪽 상가리에서 황간 서송원으로 전기 공급이 되었던가.

 

 

 

 

 

△303.3

철조망 울타리가 정면을 막는 지점. 삼각점이 밟힌다.  오랜 세월에 닳고 녹았는지 씨커멓게 변했고  기반도 뭉개졌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철조망 울타리는 왼쪽  아래 중생사가 있는 골짜기 전체가 과수원인 모양이라. 철조망 바깥으로는 진행이 어려워 티넘어 들어갔다.  울타리는 700m에 15분간 계속가다가 중생사 안부 고갯길에서 철조망이 끝나는데 다시 울타리를 넘어 바깥으로 나왔다.

 

 

△303.3m

 

 

 

 

과수원 (농원)

 

 

 

 

과수원 너머로 가리마을이 희미하다

 

 

 

 

철조망 울타리 끝나는 안부. 타넘고 나간다

 

 

 

 

면계는 좌측이고, 지맥은 플랭카드 아래로 통과

 

 

가리재로 내려가는 능선이 두 개로 갈라지는데, 면계는 왼쪽으로, 지맥은 우측 능선으로 갈라지는 봉이다. 지맥쪽으로 [출입금지] 플랭카드가 막는다만 살짝 수구리고 들어갔다. 우측 아래로 푸른색 지붕이 보인다

 

 

산주 아니면 손대지 말자. 제발 쫌...

 

 

 

 

백마산 능선

 

 

숲에서 빠져 나오면서 건너편이 훤하게 트인다. 맨 우측은 △537.7m봉, 왼쪽 둥그스럼한 봉우리가 백마산이고, 맨 왼쪽 끝은 무량산인가... 국도4호선을 새로 만들고 있다. 아까부터 보이던 우측의 푸른지붕은 닭똥인지 소똥인지 가득 든 창고였고 건물은 아마도 퇴비공장쯤으로 보인다. 내려가는 바로 옆에 산처럼 쌓아놓은게 흙인지 똥인지 분간이 안된다. 냄새가 지독하다.

 

 

4번국도 가리재

 

경부선 가리터널이 있고 아랫마을이 영동읍 가리(加里)라 가리재라 했는데, 마을 유래비에는 삽재고개라 했다.

 

 

명륜동

 

명륜동은 황간면 서송원리의 자연부락이다. 신탄이나 탄막 역시 서송원리에 속한 마을인데,고속도로는 노근리에서 북쪽 옥천으로 올라갔지만 경부선 철도와 국도 4호선이 지나는 이곳이 예전 조선시대부터 주요 길목이었던 모양이라.

 

 

 

삽재고개

 

경부선 철도의 중간지점이고, 오늘 우리 구간의 중간지점이기도 하다.

원님이 쉬어 갔으니 우리도 쉬어 가야겠는데, 주막이 없어요~

 

 

 

민둥봉

 

 

명륜동 마을자랑비를 읽어보고 길 따라 오르다가 마루금은 왼쪽 능선인거 같으나 우측에 보이는 [산불조심] 플랭카드 뒤로 길이 보여 그리로 올랐더니 옳은 길은 아니고, 산불로 나무는 없고 잡초만 무성한 민둥봉에 올라선다.

 

400m쯤 되는 민둥봉에서 내려서면 갈라졌던 영동읍경계선과 만나고, 산불 잔해인 고사목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오르다가, 537.7봉은 우측으로 빙글 돌아 오르게 된다. 수렛길 같은게 우측비탈로 돌아 오르다가 북쪽으로 넘어가는데 그 쪽으로 영동읍과 황간면 경계가 갈라지고, 봉에 오르면 온전히 영동읍으로 들어간다.  

 

 

△537.7m

 

537.7m (△영동410)

아래 민둥봉에서 이봉우리 넘어까지 광범위하게 산불 흔적이 남아있다. 삼각점 찍고 내려와 비탈에 앉아 점심상을 폈다. 젖은채로 말아 넣었던 비옷을 펼쳐놓으니 금새 마른다.  (점심 12:20~12:55)

 

 

 

 

 구슬붕이

 

 

 

 

능선 왼쪽은 산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리재쪽. 공사중인 4번국도

 

 

 

 

 

 

 

 

 

백마산

 

 

백마산 534.4m

지도상에 표시된 정점(×)보다 서쪽으로 100m  더 나간 지점이 정확한 정점이다. 둥그스럼한 정상부에 나무가 들어차 조망은 없고 주위에 군용참호와 교통호가 파져 있고 정상부를 지나면 깨끗하게 관리된 헬기장이 있다.

 

하가리 마을 유래에 "백마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한 고성으로서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했으나, 그냥 세월과 자연속에 묻혀갈 뿐이라...

 

백마산 헬기장

 

 

 

 

 

 

 

헬기장을 지난 내리막 길에는 특이한 형상의 바위 여럿 지난다. 얇은 구들장을 여럿 포개놓은 듯한 형상이다. 산벚나무 하얀 꽃잎이 바닥에 깔려 마치 눈이 내린듯 하다.

 

 

분꽃나무

 

 

 

 

성황당고개

 

성황당고개 (270m)

주곡리와 봉현리를 잇는 고개 성황당 흔적인 돌무더기가 뚜렷이 남아있다. 올라서는 비탈에 있는 묫등에 할미꽃이 피었다. 문패는 없지만 할머니 묘소인가.

 

 

 

 

 

 

산벚나무

 

산벚나무 꽃이 만개해 바람에 하얀 꽃잎이 날린다.  옻나무가 막  순을 내밀고 있어 희중씨는 아예 봉다리 하나 꺼내더니 "먼저 올라가소" 한다. 산주한테 물어보고 따라니까...

 

갈퀴현호색

 

 

  

 

 

무량산

 

 

무량산 (425.9m △영동303)

둥글게 울타리를 두른  묘가 정상을 차지했고, 지형도에 지명은 없으나 정상석이 있다. 동쪽 사면으로는 축대가 남아있고 [봉화대터] 팻말이 보인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영동그릴] 팻말이 보이는데, 영동읍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줌마 혼자서 올라와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뒤돌아 내려가네. 사람 보기를 산돼지 보듯하네...

 

무량산 정상부는 등로에서 왼쪽(남)으로 비켜있어 지맥은 북으로 되돌아나와 진행한다. 계단까지 설치된 더 뚜렷해진 등산로다. 정상석만 '무량산'이고 이 후 설치된 이정표는 무량산 대신 '정상'이나 '낭근당골' 표시만 있다.

 

 

 

 

[절터 샘] 팻말 정면은 암봉이고 우측으로 돌아가라는 표시대로 돌아가니,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며 백마산에서 휘돌며 내려오는 능선이 다 보여진다. 

 

 

 

백마산에서 S코스로 내려오는 능선

 

 

 

 

절터

 

 

절터

[절터 샘 0.1km] 팻말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가니 돌무덤이 보이고 샘터가 있다. 부부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 앉아 아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산에 올라와 저렇게 떠들고 나면 집에 가서는 할 말도 없을텐데,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모양이여...

 

지붕을 덮은 옹달샘인데 물속에 개구리 알인지 둥근 띠 뭉치가 여럿있어 먹기엔 부적당해 보인다. [절터]라는 팻말 외에 어떤 절이 언제 있었던지 설명이 필요한데 좌우를 가리키는 이정표만 있다. [영동대1.7km 정상0.9km]

 

 

 

먹지는 못하겠더라

 

 

샘터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뒤쪽으로 가리키는 이정표 [소류지(어미실못] 1.0km]가 있고 길도 뚜렷하게 나있다. 사실 다음구간 거리가 너무 짧아 오늘은 어미실로 내려가 향엄사 절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현재 고도가 380m나 되고 거리도 멀어 보인다. 이럴 바에는 솔티재까지 가는게 나을듯하다. 계속 간다.

 

 

영동대 봉현리 갈림길

 

영돋대 갈림길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왼쪽은 영동대학교 0.5km, 오른쪽은 봉현리 3.5km인데 봉현리는 능선 우측 아랫마을이다. 여기서는 봉현리 방향이고 10분 더 가면 뚜렷한 길은 우측 사면으로 돌아간다.

 

봉현리 갈림

뾰족 솟은 370봉 앞에서 뚜렷하게 우측으로 가는 길은 봉현리로 가는 길이고 지맥은 정면 희미한 흔적을 따라 370으로 오른다. 소뿔처럼 솟구친 370봉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왼쪽 사면으로 질러가는 길이 있다.

 

 

 

 

 

×291.9봉 암반에는 바위손이 지천으로 붙었다. 이것도 약에 쓴다더라마는 여기는 아무도 손을 안대 바위 전체를 뒤덮다시피 했다. 내려가는 길 한가운데가 도랑처럼 움푹 파져 자전거 자국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택시기사가 산악 오토바이 자국이라 했다.

 

내려선 안부 정면은 깊은 절개지라 왼쪽으로 내려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정면으로 수렛길이 보인다

 

산악 오토바이 코스는 왼쪽으로 내려가고, 지맥은 우측이다

 

 

 

 

 

 

△537.7m봉에서 헤어졌던  용산면계를 다시 만나는 지점에서 곧장 가는 능선이 더 실해보이나 솔티는 왼쪽 내리막이다.

서쪽으로 훤히 트이는 암봉에 앉아 택시를 불렀다. 19번 국도와 왼쪽으로 영동대학교가 보인다.

 

 

솔티재

 

 

 

 

영동대학교

 

 

 

 

택시 호출하는 벽진이공

 

 

 

솔티 - 영동읍

 

 

 

 

솔티재

 

 

솔티재(210m)

영동읍에서 옥천으로 가는 국도다. 우측으로 내려오면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솔티재] 표석에는 영동읍과 용산면의 경계를 표시했다. 신발끈 풀고 앉았으니 택시가 왔다. 임계리 전원교회까지 17,000원 찍힌다.

 

 

 

 

차를 회수해 황간으로 나가는 4번 국도변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있다.

 

노근리 평화공원

 

 

양민학살 현장인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맞은편에 4만 여평의 부지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기념관과 위령탑을 세워 평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 장소가 되었다.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 양민 집단학살 현장

1934년 건립된 이 다리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사건’ 현장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노근리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공군기에 의한 공중폭격과 무차별적 기관총 및 소총난사로 집단학살을 자행하였는데 무고한 양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었다. 그 때의 총탄 흔적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무차별적이고 참혹했던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 표시)

 

 

전쟁이 끝나고 정부수립 이후에도 ‘혈맹’인 미국에 대하여는 노근리사건을 논하는 자체가 금기시 되다가 50년에 걸친 희생자 유족의 끈질긴 진실규명 노력에 의해 2001년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표명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고, 2004년 국회에서 ‘노근리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공식적으로 226명이 희생자로 확인되었고 신문기사에는 400명이 희생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구원군이라 믿었던 미군들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런 기총소사를 받고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던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

 

 

 

기념관을 지키는 근무자가 모처럼 사람이 들어오니 반가워 죽을라 한다. 방명록에 기록을 해달라 하고 영화도 보고 가란다.

 

15분간 상영된 영화에는 당시 상황을 재연한 영상과 우리정부의 무관심 하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부인과 자식의 한을 풀고자 진실을 밝히기 위한 유족의 눈물어린 노력, 당시 미 7기병연대 본부 기록병이었던 맥 힐리어드는 “노근리 학살에 가담했던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고 있다” 했고, 2연대 소총수였던 조 잭먼도 “8살이건 80살이건 눈이 멀었건 다리를 절건 상관없이 마구쐈다”는 증언을 보여주고 있다.

 

 

 

 

 

 

 

산 자여,  죽은 자를 기억하라...

 

 

 

- 첨부파일

03(전원교회~솔티).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