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기

조은산 2015. 2. 9. 16:18

 

운문북릉 코스는 호거대를 들머리로 잡아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야 된다

운문사에서 등산객을 통제하므로, 문수선원쪽을 들머리로 할 수는 없다

 

 

 

 

운문산

 

2015. 2. 8 ()

산길 : 호거대~운문산

사람 : 이희중 정상호 박기수 정진권 조은산

거리 : 19.6km

 

 

구간거리

운문사주차장~호거대~억산~딱밭재~운문산~운문북릉~독수리바위~사리암주차장~문수선원 / 19.6km

 

호거대-운문북릉.gpx

 

 

천문사~사리암~금은광이~배넘이재

  천문사-금은광이.gpx

 

 

 

 

주차장에서 보는 호거대

 

 

 

 

예전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호거대(虎踞臺)라는 이름을 막상 검색해 보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호거산(虎踞山)이란 명칭은 고문서 운문사 관련자료에 여럿 보이는데 지도가 아닌 문서(雲門寺在 淸道郡 虎踞山)로 기재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고, 대동여지도에는 운문산 옆으로 호거산이 두 개가 따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 지도는 어디에도 호거산이 없다.

 

운문사에서도 범종루에 걸린 현판에 운문산 대신 [호거산 운문사]로 적고, 운문승가대학의 교가에도 운문산은 없고 호거산이 등장한다. 옛 문헌 몇 곳에는 "운문산의 모산인 호거산", 또는 "운문산의 옛 이름이 호거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절 이름은 왜 호거사가 아닌 운문사인가. 나름의 생각으로는 신라시대에는 호거산이었다가 고려시대에 운문산으로 바뀐거고 운문사라는 명칭 역시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흔한 논쟁꺼리로 절 이름이 먼저냐 산 이름이 먼저냐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어느 누가 단언 하겠나. 물론 '천년고찰'은 신라 대부터 있어왔지만 운문사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때 부터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청도군의 호거산을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오갑사) 창건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566(진흥왕 27)에 한 신승(神僧)이 세우고 600(진평왕 22)에 원광 법사(圓光法師)가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동쪽에 가슬갑사(嘉瑟岬寺-폐사),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폐사), 서쪽에 대비갑사(大悲岬寺-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폐사), 중앙에 대작갑사(大鵲岬寺-현 운문사)를 창건하였다. 이때 왕이 승지에 절이 창건되었다는 말을 듣고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산에 있는 운문사의 옛 이름. 일명 대작갑사(大鵲岬寺).

고려의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다섯 갑사의 밭 500결을 합해서 이 절에 시주하였다. 또한 937(태조 20)에는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렸다.

 

 

 

종합해 보면 , 대동여지도에는 운문산과 호거산이 따로 존재하지만 운문산의 옛 이름이 호거산으로 추정이 된다. 지룡산 유래에도 견훤이 쌓았다는 '호거산성'이 등장하는걸로 봐서, 삼국시대에는 호거산이었던 것이라. 그 후 대작갑사가 운문사로 바뀌면서 산 이름도 따라서 운문산이 된게 아니겠나.

 

호랑이(虎)가 웅크리고(踞) 있다고 호거산이 인데, 고시된 지명은 아니지만 복호산이나 호거대 역시 호거산에서 따 온 이름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엎드린 호랑이(伏虎)나, 웅크린 호랑이(虎踞)나 산 봉우리가 생긴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쉽게 수긍을 할 수밖에 없는데, 혹은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수가 있으므로 당국에서 교통정리를 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특히, 운문산 가지산을 연결하는 능선 북쪽은 행정구역이 청도군에 속하는데 이 일대의 봉우리마다 민간에서 임의로 설치한 정상석이 보인다. 마치 서로 정상석 세우기 경쟁이라도 하는듯 밑도 끝도 없는 이름들을 마구잡이(!)로 갖다 붙이고 있는 실태는 심히 우려스럽다.

 

신원봉, 학대산, 복호산, 내원봉, 삼계봉, 장군봉, 호거산, 방음산, 까치산, 귀천봉, 서래봉, 와호산, 삼지봉... 심지어 방음산은 방음앞산, 작은방음산까지 새끼를 쳤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있나....

 

 

정체 불명의 정상석들

 

무거운 돌덩이 메고 산에 올라갈 정성이면, 청도군청에 가서 절차에 따라 산이름 지정하라고 독촉할 일이다.

그럴자신 없다면 산봉우리에 돌판 함부로 올리지 마시라.

 

 

 

운문천

 

운문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인공암벽장으로 가는 화랑교는 저 아래고 장군평교는 더 윗쪽이라. 어디든 돌아가는거 보다는 도랑을 보니 물이 건널만해 보여 가깝게 직선으로 질러 건넜다.

 

호거대로 곧장 오르려면 장군평교 다리를 건너면 호거대 바로 아래 능선이 되는데, 옆으로 돌면서 보는 그림도 괜찮을거 같아 호거대 건너편 능선인 북쪽 능선으로 오르기로 한다. 도랑을 건너면  들머리가 바로 앞에 보인다. 어서 들어 오라는듯 리본들도 나풀거리고,

 

 

 

들머리

호거대로 바로 올라가려면 산자락 옆길로 난 길로 더 따라가 장군평교 건너편에서 오르면 된다.

이 들머리는 북쪽 능선인 '방음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가게 된다.

 

 

 

 

너덜지대를 지나면 주차장이 아래로 보인다

 

 

 

 

호거대로 내려앉는 능선

 

 

장군평교에서 호거대로 곧장 오르면 1km에 30분이고, 방음산이라 하는 590m쪽으로 돌아 오르면 3km에 1시간이 더 걸린다. 방음산은 직전에서 왼쪽 사면길이 잘 나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고, 금천면계에 접한 해들깨봉이라는 △614.6봉 역시 직전 봉에서 왼쪽 사면으로 질러가는 길이 잘 나있다. 두 봉우리 모두 올라가 봐야 별볼일이 없고 정체불명의 정상석만 있다.

 

'방음산'은 북쪽 아랫마을 방음리 이름을 따 방음산이라 했다면, '해들깨봉'은 또 어디서 온 이름인고? 부산일보 등산안내지도에도 까치산, 해들깨봉이라는 이름을 볼 수가 있는데, 소위 찌라시도 아닌 공인받은 언론기관에서까지 근거도 유래도 명확치 않은 이름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억산 능선 / 박곡리

 

△614.6봉(해들깨봉) 아래에서 왼쪽으로 틀어 호거대쪽으로 내려가면서 능선너머 박곡리 대비저수지가 보이고 멀리 억산까지 보인다. 호거대까지 100m를 순탄하게 내려 앉는다.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대비사는 신라 시대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인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고, 대비사 아래 대비저수지가 있다.

 

 

호거대

 

호거대 (×515.8m)

산길은 운문사 주차장을 향해 도로 내려가듯 U자로 휘돌아 내려간다. △614.6봉(해들깨봉)에서 길게 내려가다가 고개를 들고 솟구치면서 거대한 바위 두 개가 대(臺)를 형성한 봉우리가 호거대다. 쇠사슬이 메여 있는데 바위 위에 고정할데가  없어  반대편 바위 아래로 늘어뜨려 강철 와이어로 묶어놓았다. 바위 윗쪽은 편편하고 넓어 열댓명은 충분히 올라 앉을수 있는 넓이다.

 

 

 

호거대

 

 

 

 

복호산, 지룡산

 

 

지룡산(池龍山 659.2m)은 산 정상부에 있는 지룡산성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지룡산성은 지룡의 아들인 후백제의 견훤이 성을 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운문산성, 호거산성으로도 불린다. 1917년 조선지형도에는 암봉을 지룡산(地龍山)으로 표기했으나 현재 지형도에는 우측 뒤편 육산 봉우리를 지룡산(池龍山 △659.2m)으로 표기하면서  한자 표기도 달라졌다. 정면 암봉(×678m)에는 '복호산' 정상석이 있다. 삼각점을 설치하면서 산 이름도 가져갔나보다.

 

 

 

억산으로 올라 갈 능선

 

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보니 오늘 해 중에 내려오겠나 싶다. 저 왼쪽 운문산으로 오르고, 또 미답의 운문북릉이라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지라 갈등이 생기는데, 옆에 지나가는 두 분은 가지산을 넘어 석남사로 내려간다 하니 내가 나약해진건지 그 분들이 과감한건지 헷갈린다. 

 

 

배낭 벗어놓고 오른다

 

 

 

최상급 조망대

 

 

 

 

대동여지도의 '호거산'

 

 

용이 돌아가는 곳은 용왕의 아들인 이목(璃目)의 전설이 서린 운문사 옆 이목소(璃目沼)를 가리키고, 범이 울부짖을 때 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는 운문사의 모산(母山)인 호거산(虎踞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대비사는 557년(신라 진흥왕 18)년에 신승이 운문산[당시는 호거산]에 들어와 3년 후인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걸려 오갑사를 완성하였다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대비사(大悲寺)에 전해지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꽝철이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꽝철이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하는데, 지역에 따라 강처리, 깡처리이라고도 부른다)

 

호거산 북편 대비사골에 위치한 대비사에... 승천하려던 용은 사람의 인기척에 그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꽝철이가 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일이 무산이 되자 원통하고 화가 치밀어 꼬리로 바위들을 세게 내리쳐서 깨버렸다. 이것이 대비사 뒤쪽 호거산 봉우리 사이에 깨져 있는 듯한 형상의 ‘깨진 바위’이다. 심통을 실컷 부리고 난 뒤 꽝철이는 운문산 능선을 넘어 경상북도 밀양시 산내면으로 달아났다. 이때 꽝철이가 새로 터를 잡은 곳이 ‘시례 호박소(실이 호박소)’라고 전한다.

한편 상좌가 승천하기 위해 만든 못 근처에 있는 마을은 ‘못골’이라 하였다. 지금의 대비사골에서 호거산 능선을 너머에 위치한 마을이다.

 

운문승가대학 교가

천년의 정기 어린 호거산 깊은 골에 보살의 뜻을 모아 대원을 내세우니

그 슬기 빛이 되어 무명을 씻었도다. 운문의 도량이여 진리의 자리어라

이목소 맑은 물은 억겁을 이어가고 정진불퇴 굳은 의지 하늘도 흔드노니

불타의 바른 법이 바다를 이뤘도다 운문의 도량이여 구도의 자리어라

 

운문승가대학

1958년 근대 한국 불교사의 최초 비구니 전문 강원으로 개설되었고, 1987년 운문승가대학으로 개칭. 4년 교육 과정, 2014년 50회 졸업식으로 2,000여명 졸업생을 배출했다.

 

 

 

자세가 중요하다

 

 

 

호거대에서 내려오면 길은 순하다

 

 

 

 

485.9m (△동곡443)

 

 

 

 

박곡 안부

 

 

 

 

운문사

 

운문사 건물배치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고 지룡산 기슭에 북대암과 내원암, 더 우측으로 사리암까지 보인다. 산 너머로는 옹강산(831.8m)과 서담골봉(835.7m)이다

 

 

 

멋진사람들

 

 

 

 

 

운문산 생태 경관보전지역이란다

 

 

 

 

대비치 (박곡안부)

 

 

왼쪽을 가리키는 명태봉은 또 어디를 말하는고? 지도에 보전지역을 붉은선으로 표시를 해놓고, 귀퉁이에는 휴식소 전망대 대피소를 표시했다. 흰색은 등산로 표시인데 운문사 뒤로는 등산객 입장을 불허한다. 십여년 전에는 머리깎은 중이 지키고 앉았더니 요새는 사람을 고용하여 환경단속이라는 완장을 차고 지키고 있다. 윗쪽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어쩌지를 못하고 들어가는 사람은 막는다. 생태나 환경보전 보다는 운문사 절의 입김이 작용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운문북릉코스는 호거대에서 올라갔다가 운문사로 내려올 수는 있어도, 반대로 들머리를 운문사 안쪽 문수선원쪽으로 잡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대비저수지(박곡지)

 

 

 

658.5m (△동곡318)

 

 

 

헬기장 ( 점심)

 

 

 

서래봉?

 

서쪽에서 왔다는 西來인가? 운문지맥에서 북쪽으로 내려앉는 산줄기에 西來라니. 우리말 써래와도 전혀 연관이 안되는 봉우리다. 다른데로 메고 가다가 무거워서 대충 꽂아놓고 간건지. 만든사람 표시도 없는 생뚱맞은 표석. 조은말 할 때 뽑아가기 바란다.

 

조망바위

 

단체로 앉아있다가 지나가는 나를 보더니 사진 한방 찍어 달랜다.

 

 

억산(깨진바위)

 

 

 

 

630m

 

 

 

 

 

범봉에서 북으로 흘러내린 계곡

 

 

 

 

억산

 

 

 

 

운문지맥 능선에 올라섰다

 

 

 

 

삼지봉?

 

운문지맥에서 방금 올라 온 북으로 한줄기가 갈라지니 三枝가 맞긴 하다만, 산 이름 생각나는대로 지맘대로 정하는건 아니다.

 

 

 

범봉 (962.0m)

 

 

 

2014 국토지리원 지형도

 

현재지형도의 '억산' 표기오류

'깨진바위'가 억산이고, 억산표기지점은  범봉이다.

 

 

1917년 조선지형도

현재 지형도의 '깨진바위'에  '億山 960' 표기가 있다.

운문산은 어느 한 봉우리가 아닌,  능선에 걸쳐 표기했다.  

운문사 사리암 대비사 석골사가 보인다.

 

 

 

 

 

 

딱밭재

 

 

 

 

 

 

 

 

 

대비골로 내려가까... 하다가

 

 

 

 

운문산으로 올라간다.

 

 

 

 

 

 

 

잠시 후 내려 갈  운문북릉

 

 

 

 

대비골

 

 

 

 

상운암 갈림

 

 

운문북릉 들머리는, 상운암 갈림(위 사진)에서 200m (6분) 더 올라가면  왼쪽 능선너머로 가는 입구가 보인다. 운문산까지 울라갔다면 200m 도로 내려와야 된다.  그러니까 상운암 갈림과 운문산 정상까지의 중간지점이 되겠다. 위 사진 갈림길에서도 상운암의 반대방향인 왼쪽으로 길이 보이긴 하지만 그 길은 능선이 아닌 계곡으로 떨어지게 된다.

 

 

운문북릉 들머리

 

 

 

 

 

 

 

 

 

운문산

 

 

 

 

천황산

 

 

 

 

가지산

 

 

 

 

 

북릉초입

 

 

운문산에서 올라온 길을 도로 내려가다가 우측 능선 너머로 산죽밭 사이 길이 보여 그길로 내려갔더니 자꾸 우측으로 벌어지고 급기야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임을 알고는, 왼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산죽밭을 헤치느라 10분가량 계획에도 없는 빨치산 산행을 했다. 주능선에서 조금만 (10여m) 더 내려갔더라면 고생없이 북릉길로 들 수가 있었는데... 다소 성급했다.

 

북릉길 들어서자 말자 급강하 하는 내리막이다. 아무래도 북사면이라 눈은 거의 없어도 바닥이 꽁꽁 얼었다. 아이젠도 없이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엉거주춤 앉은 자세로 한발 한발 힘겹게 디디며 내려간다. 양팔로 매달리며 온갖 자세가 다 나오면서 평소 안쓰던 근육을 썼더니 하루 지난 지금도 팔다리에 근육통이 남았다.

 

 

 

 

 

 

 

 

 

험난한 비탈 다 내려와 겨우 한숨 돌린다

 

 

 

 

줄이 달려 있긴 하나 충분치 못하고, 바닥은 얼어붙어 상당히 조심스럽다.

 

 

 

 

독수리바위

 

 

 

 

공룡등짝 같은 암릉길 내려온다고 씨껍한다

 

 

 

 

바위를 넘어가진 못하고,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와야 된다

왼쪽 아래로 크게 우회하여 암봉을 통과

 

 

 

 

 

893.7m

 

 

←이쪽으로 가야된다

 

운문사에서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그런지 왼쪽 길은 줄을 쳐 막아놓고 우측으로 유도를 한다마는

우측은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문수선원은 왼쪽으로 능선을 계속 타야된다.

 

 

사리암

 

 

 

 

 

시간이 모자라 끝까지는 못가겠다.

×637.1봉 직전 안부에서 우측으로 내려간 흔적이 있어 그만 내려가기로 한다

마구잡이로 쏟아붓는 비탈길이다. 가만 서 있어도 저절로 내려간다.

 

 

저 왼쪽 능선을 끝까지 탔더라면 불 켜고 내려왔겠다.

 

 

 

 

사리암주차장

 

여기 주차된 차들은 전부 사리암 신도들 차다. 운문사 입구에서 신도증을 확인하고 넣어준다.

먼저 내려 온 상호행님, 퇴근하는 환경감시원 차를 히치해 주차장까지 내려갔고

차를 몰고 올라 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통제를 않더라는....

 

 

 

 

언양 불고기집 (원조진불고기)

 

 

 

 

 

 

 

언양불고기

 

 

 

눈,다리,심장,폐,뇌,코,피부,마지막 입까지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지난 가을에 운문지맥으로 지나가던 길이 약간 겹쳐서요~~~깨진 바위 근처에서 궁금하던,능선과 주변이네요.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님이 걸었던 코스를 길안내를 할 일이 생겨서 복습하듯이 검색하다가 들렀습니다.
님의 상세한 산행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지명 하나 하나를 고증하듯이 고지도와 고문서 등을 확인하는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안전산행과 더불어 건강과 행복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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