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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盡 人 事 待 天 命 ]] 사람의힘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안되는것은 운명이다

작은 거인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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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1.

♣ 박정희 : 언론은 독재자 V/S 국민은 영웅 ♣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김정은에겐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잘 불러주고, 김대중에게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빼지 않고,

전두환과 박근혜에겐 아예 대통령을 빼는 조선일보가 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은 날에 박정희라면서 그의 공과 과를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닷컴은

 “100년 전 오늘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이 태어났다. 파란만장한 삶을 거친 그는

조국 근대화민족중흥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박정희가 이끈 산업화는 수천년 이어져 온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

박정희가 집권한 19618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91647달러로 급증했다.

수출은 4100만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단 한번 대통령이라고 불러주고,

그 다음부터는 박정희로 부르는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은 자유무역시장의 세계 질서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로 사회 구조도 달라졌다. 1961년 국민의 63%1차 산업에 종사하던 농업사회는 1979

63.4%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산업사회로 탈바꿈했다박정희 시대의 변화는 양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하면 된다’ ‘잘살아 보자는 정신은 무기력해져 있던 국민을 뛰게 만들었다.

더 이상 가난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근대화의 영웅무자비한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박정희 이후의 한국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좌익선동세력이나 붙이는

독재자라는 딱지를 조선일보도 포기하지 않았다.

 

박정희 탄생 100년은 대립과 마찰 속에서 맞았다. 박정희탄생100돌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박정희전집 발간, 시민 강좌, 음악회 등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세우기로 한 박정희 동상은 일부 단체의 반대 운동에

부딪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 여파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비롯한 정부 기관은

아무런 기념행사를 준비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는 박정희는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직후부터 뜨거운 감자가 됐다. 박정희의 품에서 자라난 신군부는 헌법 전문에서 ‘5·16혁명을 삭제하면서

거리 두기를 시도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정부들은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박정희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박정희로 부르면서, 부정적 채색을 해나갔다.

 

“‘박정희 논란은 그의 딸이 아버지의 후광을 자산으로 정치에 뛰어들면서 더욱 심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을 엮어서 박정희 대통령을 논란의 인물로 만들면서, 조선닷컴은 박정희에 대한 정치적 찬반은 학문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경제 발전조차 평가가

날카롭게 대립한다. 박정희 생전에 그의 경제 정책을 비판한 대표적 학자는 고() 박현채 조선대 교수였다. 그는 박정희 체제가 대외 종속의 심화 속에서 파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제기한 중진자본주의론은 박정희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선진국과의 국제 분업 속에서 그들을 추격(catch-up)하는 박정희의 경제 발전 전략이 옳았다는 것이었다며 반 박정희를 주로 소개하고 친 박정희를 부수적으로 소개했다.

 

조선닷컴은 이후 박정희 체제에 대한 비판은 경제는 발전했지만 독재가 문제였다는

개발독재론으로 변형됐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정치를 민주적으로 해도 개발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제는 잘했지만 정치는 잘못했다는 주장을 반박한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의 견해를

덧붙였다. “산업화 초기에 경제와 정치를 함께 발전시킨 나라가 없었다는 김일영의 억지를

다시 소개한 조선닷컴은 박정희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가장 직무를 잘 수행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이런 현상을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박정희의 독재가 대중의 동의에 입각해 있었다는 대중독재론으로

설명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대중은 동원됐을 뿐이라는 반박을 전했다.

조선닷컴은 끝까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다른 편에 속하는 사람이면 아무리 공()이 커도

()만 보는 당파성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박정희는 변명을 달긴 했다.

 

“‘영웅’ ‘독재자어떻게 불리든 대한민국을 바꾼 지도자였다라는 조선닷컴의 기사에

한 네티즌(doc****)“OO들이 폄훼하면 할수록 그분의 위대한 업적은 두드러지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영원히 칭송받을 것이다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tmdrhd0****)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을려면

김대중·노무현 무덤에는 똥물을 끼었는 것이 맞다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q****)앞으로 박정희

대통령만큼 정치하는 인간 대한민국 역사에 있을까. 유신독재 몇년 더 했으면 지금 북한거지들한테

협박 안 당했다. 경부 고속도로 공사할때 대중이 영삼이 악쓰고 반대한 인간들 아니었더냐?

그때 반대한 정치인 후손들도 박정희 동상 앞에서라도 절하고 다녀라.

북한 거지 만든 독재자 추종하는 잡것들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냐?”라고 했다.


♠작은 거인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

===============< 최승달(cho***) 2017-11-14 08:05:02 >===============

모택동의 뒤를이어 실질적인 중국의 제1인자가 된 등소평은 1979년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미국의 발전상을 둘러보고나서 잠자는 조국을 일깨워 경제부흥을 일궈야 한다는 취지에서

주장한 이론이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고양이면 어떤가?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가 아니겠는가 라는 이론이다.

돈 못 버는 공산주의만 고집할게 아니라 돈 잘 버는 자본주의도 도입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면 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능력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 그후에 낙오된 자를 도우면 된다" 라는

저 유명한 先富論 까지 동원하면서 박정희의 경제정책을 롤모델로하는 경제약진정책에 올인하여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지도자로 남게된 것이 등소평이다.


독선적 공산주의 이론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받아드린다거나

수천년동안 종주국 행세로 거드름을 피우던 거대한 중국이 변방국이나 다름없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를 선생님으로 모시는 등의 치욕(?)을 감수하고서라도 가난뱅이 나라의 치욕을 극복해야겠다는 게 작은

거인 등소평의 소원이었고 그의 그러한 소원은 불과 반세기도 되지않아 꽃을 피우고있는 중이다.

따라서 이미 죽고 없어진 등소평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며 자랑스러워하는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내가 구지 박정희의 후발주자에 불과했던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이유는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는데 선도적 역활을 해 왔던 박정희의 前非를 꼬집으며 애써 그가 이룩한 공로를 폄하하려는 短見의 국민들이 너무나 많다는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물론, 우리 모두가 이미 다 알고있다시피 박정희는 일본제국의 꼭두각시였던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서 일본군 장교가 된 인물이다.

뿐만아니라 해방된 조국의 국군장교가 되어서는 북괴의 끄나불인 남로당에 가담하여

여수 순천반란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의 언도까지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명분이야 어찌됐던 군사 쿠테타로 합법정부를 무너트리고 집권했던 인물일뿐 아니라 개헌까지

주도하며 장기집권을 했고 심지어는 친위쿠테타로 유신정치를 펴면서 한국적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보편적 현대민주주의를 제한하는 폭압정치를 지속한 장본인이 박정희다.


이와같은 사실로만 본다면 박정희는 분명히 민족의 반역자였고 독재자이며

국민의 이름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그러나 옷깃을 여미고 다시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자.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였다는 이유로 그리고 남로당의 끄나불인 반역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자숙하는 의미에서 칩거하며 5.16 군부거사를 포기 했다면,

5.16의 혁명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혁명과업을 마치고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부로 회귀했다면,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라는 비난을 두려워해 장기집권을 하지 않았다면,그 많은 언론과 소위 민주투사들이 원하는대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실천하려 했다면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현재와 같은 선진국형 수준의 경제적 풍요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가능 했겠는가?


단군 이래 5천여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수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명멸해 갔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저 지긋지긋하던 가난에서의 탈피를 맛보지 못했던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중국에게 먹히우고 몽고족에게 먹히우고 일본에게 먹히우면서 수 많은 서러움과

치욕을 참아가면서도 감히 복수를 하겠다는 엄두도 못해온 약소민족 이었다.


그러하던 우리는 이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세계 12대 경제대국이 되었고 군사적으로도

세계 6위권에 진입해 있으며, 명실공히 선진 민주주의 국가 행세를 하는 일본을 앞지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더 이상 그 어느나라로 부터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당당한 자주독립국가가 되었는데

그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보시는가?


우리 국민들이 유별나게 잘나서 였는가?

그게 맞다면 5천여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가난에 찌들어 있던 우리 민족이 어찌하여

박정희 통치 18년이란 짧은 기간에 천하가 부러워하는 근면한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같은 민족인 북한은 어찌하여 아직도 세계 최빈국의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는가? 

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꽃피우던 시대상황의 여건에 편승된 덕분 때문 이었던가?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들과 중남미 국가들 및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어째서 아직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가난에 쪼들리던 아시아의 거대공룡 중국은 어찌하여  등소평이라는 작은 거인을 만나고나서야

비로서 세계경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가?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화세력 덕분에 민주화가 될 수 있었다고 믿는가?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는데 굶주림에 허덕이는 민중에게 민주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풀라는 억지와 다름 아니다.

우리의 민주화는 한강의 기적 위에서만 가능했을 뿐이다.

다만 YS를 비롯한 민주화 세력은 차려놓은 밥상위의 밥을 떠먹여준 역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난에 찌든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한 나라가 있었던가?

가난은 모든 것을 뺏앗아 간다. 건강도 가족간의 화목도, 양심도, 도덕심도, 민주주의도,

인간의 수명도 심지어는 국가의 주권 마져도 뺏어가는 무서운 함정이다.


결국 귀착점은 잠자는 민중을 일깨워 근면하고 진취적인 기상에 불을 당긴 지도자가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도 활짝 꽃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박정희가 그러했고 등소평이 그러했으며 멀리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몇 안되는 선각자들의 노력의 댓가에 힘입은 일본이 그러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한강의 기적은 작은 거인 박정희의 지도력을 빼놓을 수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

그가 일본군 장교였다는 이유로, 남로당원이었다는 이유로, 5.16 쿠테타의 주동자였다는 이유로,

장기집권을 했다는 이유로,유신철권정치를 했다는 이유로 그가 일구어낸 업적이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검은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만 잘 잡는다면 고양이의 색깔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박정희에게는 분명히 용서해주기 어려운 前非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한편 생각해 보면

그에게 그러한 허물이 있었기에 前非를 뉘우치고 殺身成仁하려는 의지가 불탔을지도 모른다.

일본을 잘 아는 일본군 장교였었기에 선진국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用日에 박차를 가했을 터이고,

한때 공산주의자 였었기에 공산주의의 폐단을 깨닫고 반공을 국시로 삼는 반공투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며, 어린시절의 가난을 몸소 겪었기에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에 정렬을 쏟았을 것이다.


그가 평범한 전력의 소유자였다면 과연 보통의 인간을 훌쩍 뛰어넘어

초인간적 정렬을 불태우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겠는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비록 입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지난날의 과오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해야 할지를

고뇌했을 터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 라는 일갈로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려다 보니 본의 아닌 독재도 불가피했을 터이고 일부 국민들의

억울한 희생을 강요하는 고통도 참아야하는 쓰라림도 겪으면서 수 많은 비난을 감수했을 터이다.


나는 인간 박정희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날의 과오를 숨기기위해 뒷구녕에 물러나 앉아있기 보다는 그 허물을 용서받기 위해

 조국의 번영만을 향해 신명을 다 바치려던 그의 인간미와 애국심 만은 존경한다.

그의 과오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만은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보다도 한수 위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그의 허물은 비판해도 좋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일구어낸

功 마저 매도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회상조차 하기 싫도록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저 지긋지긋했던 어린 시절의 굶주림,

직장을 따라 해외를 떠돌면서 젊은시절에 겪어야 했던 후진국 국민이 당했던 치욕과 서러움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時宜 적절한 시기에 그를 이땅에 보내준 神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PS ; 탄생 100 주년을 맞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념과 체제가 바뀌고나서

마치 만고의 역적이나 된 듯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수년 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재계함을 밝혀둡니다.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