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엿보기

율려세상 2010. 3. 4. 09:27

 

금오열도 최남단 전남 여수 소리도 등대
100년을 밝혔다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관광객들이 최고로 꼽은 등대 1910년 불 밝혔으니 내년이면 꼬박 100년. 애착이 남다른 등대지기 3명 외롭냐고 했더니 전혀, 전혀 그렇지 않단다.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철부선을 2시간을 타고 가면 맞닿는 섬. 지난 1995년 시프린스호가 모터 이상으로 암벽에 부딪쳤던 섬.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최동단에 위치한 금오열도의 섬들 중 최남단에 자리잡은 섬. 전국 관광객이 꼽은 '다시 찾고 싶은 등대 1위'인 등대가 자리잡고 있는 섬.


여수 연도를 일컫는 표현들이다. 행정구역상 명칭은 연도가 맞지만 아직 지역 주민들은 소리도라 부른다.


섬의 형상이 솔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리는 소리개의 준말로 솔개를 뜻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연도처럼 새의 이름을 따서 섬 이름이 된 경우는 또 있다. 연도 동쪽 9㎞ 지점의 작도(鵲島)는 까치산이란 뜻이며 울릉도의 새끼섬인 관음도(觀音島)는 깍새가 많이 산다고 해서 깍새섬으로도 불린다. 태안의 난도(卵島)와 갈매기의 알로 가득하다 해서 본래 알섬으로 불리는 통영의 홍도(鴻島)는 갈매기섬이라고 불린다.


소리도를 지나는 작은 배도 바닷길을 안내하는 기계를 달고 운항을 한다. 옛 뱃사람들은 오직 선장의 경험과 육감에 목숨을 의지해야 했다. 육지처럼 교통표지판을 달 수 없는 바다에서 가장 큰 의지가 됐던 것이 섬이나 곶, 항만, 좁은 수로 등에 설치된 등대였다.


내년이면 점등 100주년을 맞는 여수 소리도등대를 지난달 찾아 나섰다.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배는 안도(安島)를 지나 역포항에 닿는다. 원래는 섬 중간에 위치한 연도항이 주요 입출항구였다. 배가 출입하는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깊숙이 들어와있어 배들에게는 천혜의 피항처가 되곤했다. 그러나 최근 섬 북단의 역포항에만 배를 댄다. 선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도항의 경우 포구의 수심이 낮아 여객선에서 내려 종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한몫했다.


역포항에서 내려 자동차로 20여 분간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위 외길을 따라 가다보면 시프린스호가 좌초된 돌출암벽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오른다.


여수에서부터 같은 배를 타고 온 정병만 등대지기의 등에는 족히 30㎏은 됨직한 배낭이 땀에 젖은 채 매달려 있다.

 

"다 쌀이고 반찬, 식재료들이에요. 퇴식소(퇴근해서 휴식을 취하는 곳, 일종의 관사)에 취사시설이 있어서 밥 해먹을 것들을 싸옵니다. 무거워도 어쩔 수 없어요. 집에서 가져 온 반찬이라도 있어야 가족 생각도 날테고요."


소리도 등대원은 모두 3명. 이들은 하루 24시간을 3교대 근무 하다보니 남들 쉬는 주말에도 근무를 서야 한다. 이날은 정 소장이 한달에 9일 있는 휴가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돌아오는 날이다.


한낮인데도 사물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선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시 20여 분간 오르니 여수지방해양항만청 소리도항로표지관리소라고 붙여진 현판 뒤로 등대가 보인다.

 


"지금 보이는 등대는 지난해 8월부터 지어서 올 3월에 기본 틀을 잡았어요. 기존에 있던 등대는 지금 퇴식소가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소리도 등대는 1910년 10월4일 처음 불을 밝혀 내년이면 점등 100주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세번 재건축을 했을만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창고를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실 곳곳에는 옛 등대에서 사용됐을 법한 낡고 오래된 각종 계측기와 책상 3개, 책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육지와 뱃길로 2시간 거리에 있음에도 인터넷이 연결돼있었다. 2003년께 개통됐다. 그 전에는 오직 유선전화와 SBS(일종의 무전기)로만 육지와 소통할 수 있었다. 그래도 외로움은 없다.

 

 

"외롭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어와요. 등대지기의 삶, 고독하지 않느냐고.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속도는 느리지만 인터넷도 되고 휴대전화 있으니 언제라도 가족들과 목소리 들을 수 있어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뿐이지, 육지에서 근무하는 거랑 별반 차이 없습니다. 그냥 딱 40㎞ 거리입니다."


사실 휴대전화가 개통된 것도 얼마 안됐다. 옛 해양수산부 시절, 정부차원에서 이동통신 3사와 협조 속에 등대를 지나는 선박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기지국을 세우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무소식이다. 단 이동통신사 한 곳만 5월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유선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1986년 전만 해도 모든 소통은 숫자를 이용한 무전을 통했기 때문에 옛 통신국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육지 해운조합에서 연락이 옵니다. 배를 띄워야 하는데 이 쪽 기상상태가 어떤지, 시거리는 몇m나 되는지 등을 알려달라고요. 그러면 등대원이 밖으로 나가 확인하고 숫자로 응답합니다. 이를테면, 구름이 하나도 없으면 0, 왕창 끼었으면 10,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숫자로 알려줍니다. 또 소리도로 들어오는 배에 실어 보내라고 음식을 시킬 때도 숫자를 이용합니다. 이걸 옛 통신국에서 감청하고는, 암호가 아니냐 해서 광주까지 가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어요."


2013년이면 정년을 맞는 정 소장은 81년 거문도 등대를 시작으로 백야도 등대, 오동도 등대, 현재 소리도까지 30년 가까이 외길 인생을 걸어왔지만 특히 소리도 근무에 애착이 강하다.


"어느 곳 하나 중요하지 않은 등대는 없죠. 하지만 소리도의 경우는 각별합니다. 남해안의 중심지고, 부산과 인천 그리고 광양항을 들고나는 5000톤급 이상 선박이 하루 35척 정도가 지나가요. 한달이면 평균 600여 척이 이 곳을 경유하는 중요한 등대에요. 등대원이 없으면 그 수많은 선박들의 안전운항, 누가 책임지겠어요."


소리도 등대원 모두 사명감 하나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글ㆍ사진=오해준 기자 hjoh@jnilbo.com

  


 

 

■ 소리도 등대는

12초마다 반짝… 41㎞ 뻗어나가는 섬광


등대에서 항해 중인 선박을 향해 보내는 신호는 크게 두가지다. 빛과 소리.


소리도 등대가 사용하는 빛은 12초 1섬광 즉, 12초마다 한번씩 하얀빛이 바다로 나간다. 그래서 소리도를 부를 때 '백광12초1섬광'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해발고도 82m에 위치한 소리도 등대에서 나가는 빛의 거리는 최대 41㎞. 고흥반도(소리도에서 직선거리 약 20㎞)에서도 보인다는 이야기다. 

  

소리도 등대가 1910년 처음 점등했을 때는 후렌넨식 4등급 등명기를 사용했다. 등기구가 생산되기 전 시스템으로 에틸랜 개스를 태워 불을 밝히던 시절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후렌넨식 등명기는 1905년 거문도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돼있다.


잔뜩 낀 안개 때문에 등명기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소리를 이용한다. 소리도 등대는 54초에 1회취명(50초 쉬고 4초 들음)에 음달거리는 약 5㎞에 달한다. 하지만 음파표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정병만 소장은 "선박들이 동력선으로 전환되면서부터 엔진소리에 묻혀 음파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더러 GPS 같은 각종 첨단장치를 장착하고 있어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90년대 초반, 음파표지를 없앨까 했지만, 선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굳이 있는걸 없앨 필요 있느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런 연유로 소리도 등대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은 봄이다. 봄철 안개가 자욱하면 잠도 못자고 54초마다 소리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등대원들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먼저 순찰을 돌아 등대가 꺼지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는지, 안개는 안 끼었는지 등을 살핀다. 간단한 아침운동 후 식사를 하고 9시쯤 사무실에 출근해 무신호기, 양수기, DGPS 장비점검을 한다. 여름철엔 제초작업도 한다. 등대원들은 만능 기술자가 돼야 한다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의 고향에 다녀오셨네요! 저도 잘 모르는 소리도 등대의 역사에 대해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