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랑의 ·詩

홍 사랑 2021. 10. 20. 15:22

제목/ 다시 한번 사랑을

글/ 홍 사랑 [ 메라니 ]

이유 모르게 토라진
그대
서로가 틈 없이 좋아했는데
갑자기 돌아 서
말없이 떠나 버리다니

푸른빛 스며든 양지처럼
그림자 남겨 놓은 채
멀어져 간 그대 모습
넉을 잃은 채
하늘 향해 불러보는
그대 이름 사랑했다고
변치 않는다고
새끼손가락 걸었는데

그믐달처럼
어둡게 다가 온
싸늘한 기운 지쳐버리고

잔잔한 물소리처럼
들렸다 사라지는 그대 음성
허전한 가슴
가득 채워  울어버리고 싶네


사랑 가득 다정한 대화
정겨운 눈 빛으로 재회하고 싶은 맘

달빛에 걸어 두고
별 빛 속 사연 적어
하얀 은하 속 깊이 숨겨놓고
천년이 흘러도
우리 사랑 영원히 잠재우고 싶네

존경하는 블친님.안녕하세요,
한주의 반절 수요일 자알보내셨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습니다.
환절기에 감기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가을내내 행복넘치고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구요 행복하세요~^^.♥♥
살아 숨 쉬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으뜸인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을 맞아가네요

좋은 시간 되십시오
칭구님 방긋방긋여~~

가을하늘이 참 이뻐요~!!!
정말 너무 높고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여요~

정초한 가을하늘~♡
싱긋한 가을 풀내음 처럼
항상 행복하게
잘 보내시고요~♡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일만
㉮득㉮득㉻였으면 합니다~

칭구님~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솜털처럼 포근한
수욜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 가닥 물줄기 쏟아지듯
우리 일상도 매우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님께 보내드려요



안녕하세요?

요즘 중개 수수료 문제로 시끄러운데요
조선 시대에는 중개수수료를 얼마나 받았을까요?

조선 시대에는 부동산 중개업자를 ‘집주름(家쾌·가쾌)’이라 불렀답니다.
이들이 직업으로 자리를 잡은 건 18세기 중반으로 추정됩니다.

신택권은 ‘성시전도시’에서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라고 언급했습니다.
김형규의 일기 ‘청우일록(靑又日錄)’ 1880년 2월 14일 기록에도 350냥짜리 집에 대한
거래로 받은 수수료가 40냥이었다고 썼으니. 18세기 후반∼19세기 후반 집주름의
중개수수료는 거래가의 10%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22년 1월 2일 동아일보에는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집주름 600명 중 123명이
1921년에 새로 창설된 가옥중개인조합의 활동을 반대한다는 진정서를 종로경찰서와
경기도 경찰부 경무국에 제출했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새로운 조합이 수수료를
너무 많이 받도록 규정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럼 얼마로 정착됐을까요?
집주름은 거래가의 0.8%를 조합에 내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에게 각각 거래가의
1.5%씩 받아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1만 원짜리 집의 거래를 성사시킨 집주름은
중개수수료로 300원을 받아 그중 80원을 조합비로 제출하고 나면 220원을 챙길 수
있었지요.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문화재를 기억에 담아두려
애쓰기도 합니다 만

되 돌아서면 바로
마음에서 멀어지듯 하지요
안녕 하시지요
고운시 잘 봤습니다
고운밤 되십시오 홍 사랑 님 !
긴 긴 가을 밤 고운 꿈꾸어봐도 님의 모습은
아련하기만 합니다
먼 거리지만 우리에게는
이렇듯 좋은 둥지 안으로
들어와 서로를
나눔의 이야기들로 환한
미소를 짓게 하지요
고요한 새벽입니다,
가을에 찾아온
반갑지않는 한파가
몸도 마음도
산과 들의 모든것들을 움츠리게하고있네요

사랑이있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행복을 나누는 하루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농부들에 애환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부족함을 이어가는
삶이 되지요
활기찬 목요일 되시고
좋은일만 가득하세요
수고 하신 덕분에 잘 보고
건강과 행운을빕니다~~*
첫날이라는 글 올리고 나서
벌써라는
목요날 한 주도 이제
또 다른 시간을 만들게 하네요

반가운 님에 소식 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