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이야기

YOUNGSUB KWON 2007. 12. 14. 15:51

 권영섭

미국 임상 운동 생리학자 (ACSM)

운동생리학 실험실

University of New Mexico, Albuquerque

 

저는 뉴멕시코 주립대학교 실내 체육관인 Johnson Center  운동 생리학 실험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 아래 복도에는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했던 운동선수들의 사진이 일렬로 붙어 있는데 1963년 440 yard dash에서 세계 기록을 세운 Adolph Plummer 사진 옆에 운동선수로는 약간 빈약해 보이는 John Baker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에 가장 유명한 mile runner였지만, 그 보다 그는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교육자로서 추앙 받는 사람입니다.

 

  

 

 Baker는 어렸을 때는 주목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또래 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아서 그는 학교 트랙 팀에 소속되에는 코치의 눈에 들지 않았다.

당시 Manzano 고등학교의 Bill Wolffarth 트랙 팀 코치는 Baker의 가장 친한 친구인 우수한 체격 조건을 가진 John Haaland를 팀에 소속시키고 싶어했지만, Haaland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Baker는 자신을 팀에 소속시켜 준다면 Haaland를 트랙 팀에 들어올 것이라고 제안했고 비로소 John Baker는 트랙팀의 일원이 되었다.

 

1960년 1.7마일 크로스 컨트리 경기가 알버커키 동쪽 언덕에서 개최되었는데 John Baker의 첫 출전이었다. 알버커키 지역 챔피언 Lloyd Goff에게 관심이 집중되었고 출발 신호 후 예상대로 그가 선두 였으며 바로 뒤를 Baker의 친구인 John Haaland가 뒤따르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결과는 Baker는 기존의 기록을 깨고 우승을 했으며, 훗날 Baker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경기 중반에 그는 그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는 바로 그 앞에 있는 주자의 등을 응시하고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한가지 “이 주자를 따라 잡아 앞선다. 그리고 다음 주자를 따라 잡고 앞선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다”. 이후 Baker는 6번의 주 트랙 기록을 경신했고, Senior 때는 주에서 가장 잘 달리는 선수였고 이때 18세도 되지 않았었다.

 

1962년 Baker는 그가 살던 알버커키에 있는 University of New Mexico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고 그의 트레이닝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매일 새벽 거리, 공원, 골프 코스로 25마일을 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것은 그가 하루에 실시하는 트레이닝에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런 그의 트레이닝은 뉴멕시코 Lobo (뉴멕시코 주립대학교의 마스코트, 운동 팀을 부를 때도 사용된다.)와 같은 리그의 학교 팀들에게 유명해졌다.

 

1965년 당시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SC)의 트랙 팀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였다. 마일 경기에서 USC의 Big Three, Chris Johnson, Doug Calhoun, Bruce Bess가 1,2,3위로 들어올 것이라고 스포츠 캐스터들은 예상했었다. 모두 Baker보다 빠른 기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Baker는 먼저 선두로 리드를 하다가 곧 고의로 4위로 뒤 떨어졌다. 그리고는 마지막 330야드를 남겨두고 Johnson을 젖히고 3초 차이로 결승테이프를 끊게 된다.

양손을 V자로 올리고 테이프를 끊어서 유명한 사진이다.

 

다른 Lobo선수들도 Baker의 승리에 영향을 받아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하여 당시 최강팀이었던 USC Trojan을 패배시켰다.

졸업 후 여러 대학에서 코치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Baker는 이전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했고 올림픽 역시 준비해야 했다. 결국 그는 Aspen 초등 학교에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으며 1972년 올림픽을 위한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Aspen 초등학교에서 Baker의 스타 운동 선수로서가 아닌 다른 면모가 난다. 그에게 있어서 학생들을 대할 때 스타도 없고, 능력이 적은 것에 대한 비평도 없었다. 오로지 각 학생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만을 요구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해주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문제 거리는 언제나 코치 Baker에게 먼저 가져왔다. 

 

그가 25세가 되던 1969년, Baker는 운동 중 몸이 매우 피로한 것을 느꼈다. 이 주 후 가슴통증, 한달 후에는 사타구니의 매우 심한 통증을 느껴 잠을 깨었다. 그는 고환 암이었고 이미 다른 신체 부위로 퍼져나가고 있어서 즉시 수술이 필요했다. 두 번의 수술 후에도 Baker는 6개월의 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의사는 예상했다. 그에게는 이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고, 달리는 것 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코치 계약도 만기되었다.

 

수술 전 주일날 Baker는 Sandia Crest (알버커키 동쪽에 있는 산 정상)로 차를 향했다. 절벽 바로 위에 차를 세우고, 그 때문에 앞으로 더욱더 힘들어할 가족들을 생각했다.  그는 바로 이 순간에 그 괴로움을 그리고 그 원인인 자신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잠간의 기도 후에 그는 차를 벼랑으로 몰랐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시야에는 Aspen 학교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내가 지금 자살함으로써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 영혼 깊은 곳에서 매우 수치스러워 운전대에 엎드려 울고 말았다. 잠시 후 그는 더 이상 두렵거나 괴롭지 않았고, 그에게는 오직 평온한 마음만이 있었다.  “내가 생을 다 하는 날 까지, 나의 아이들에게 헌신하겠다.” 늦은 밤에야 집에 돌아온 Baker의 얼굴에는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뛰고 있었으면 가족들에게 앞으로의 자신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복부 수술과 항암치료 후, 그는 Aspen 학교와 제 계약을 하면서 자신의 교육방법에 새로운 것을 추가했다. 그것은 바로 핸디캡 학생들을 스포츠 활동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전에 한가하게 경기장 밖에서만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그들은 “코치의 계시원”, “장비관리자”, “부심” 같은 스탭들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Aspen 유니폼을 입고, 코치 Baker 리본을 달았는데, 리본은 Baker가 자신의 비용으로 집에서 저녁마다 만든 것들이었다.

Thanksgiving에 가까워져 Baker에게는 학부모로부터 수많은 감사의 편지들이 도착했다.

 “내 아들은 아침에 깨워 학교 보내는 게 너무 어려워 아침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입니다. 그는 ”필드정리(땅 등을 고르는) 최고 책임자”입니다.”
“우리아이가 Aspen 학교에 수퍼맨이 있다는 주장을 나는 믿지 않았는데, 코치 Baker가 학생들과 있는 것을 봤을 때 비로서 우리 아이가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학교에 있을 때 우리 손녀는 너무나 철이 없었습니다. Aspen으로 전학을 오고 나서 코치 Baker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 “A” 주었습니다. 우리 손녀 같은 소심한 아이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이 청년에게 신의 축복을”.

 

그 해 12월 정기 진료를 받은 Baker는 의사에게 목의 통증과 두통을 호소했다.  이미 종양이 그의 목과 뇌까지 퍼져있었다. Baker는 매우 힘든 고통을 자신의 시합 시 오로지 상대방의 등만을 보고 뛰며 피로를 무시했듯이 참아내고 있었다. 의사는 무통증 주사를 맞을 것을 제안했지만, Baker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진통 주사는 내가 아이들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을 무디게 할 것입니다”.

그의 의사 Johnson은 이렇게 회고 한다. “그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1970년 초반 Baker는 알버커키 소재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연령의 소녀들로 구성된 작은 트랙 클럽 일명 Duke City Dasher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Aspen 학생들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대했으며 소녀들은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코치를 맞이하였다.

하루는 Baker가 신발상자에 무엇을 가져왔다. “자 이 박스에는 두 개의 상이 있는데, 하나의 상은 오늘 연습해서 가장 잘한 선수에게 줄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에게 주겠다”. 박스를 열었을 때 소녀들은 모두 놀랐다. 그 안에는 광이 나는 황금색 트로피가 두 개가 들어있었다. 몇 달 후 Baker 가족은 그 트로피가 Baker 자신이 획득한 것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여름, Duke City Dasher는 해당 주인 뉴 멕시코와 그 주변 주의 기록을 깨었고, Baker는 힘있게 예언했다. “Dasher 너희들은 AAU(미국아마추어연합) 트랙 결승에 진출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와 계속 되는 화학 주사요법에 매우 심한 구역질을 유발해 Baker는 더 이상 음식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체력이 심하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Dasher를 감독하고 있었고, 작은 언덕에 앉아서 언제나 소녀들을 격려했다.

 

10월 어느 날 그 작은 언덕에 앉아 있을 때 한 소녀가 뛰어와 소리쳤다.

“헤이, 코치! 당신의 예언이 실현됐어요. 우리는 St. Louis에 AAU 결승에 초대 받았다고요.” 

Baker의 친구들은 그 당시 고무된 Baker가 친구들에게 현재 자신의 하나의 소망은 오로지 그 시합에 소녀들과 참석할 수 있을 때가지만 사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항상 모든 것이 Happy ending이 아닌 듯이 10월 28일 아침 Aspen에서 복부를 움켜쥐고 운동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암이 퍼지고 파열 되어 쇽을 일으킨 것이다. Baker는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학교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는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walking tall로 기억되고 싶었다.

 

많은 양의 수혈과 진정제 치료 후 Baker는 세인트 루이스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Dasher들에게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 그들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하였다.

 

11월 23일 아침 Baker는 다시 쓰러졌다. 희미한 의식에서 앰블런스에 타면서 부모에게 속삭였다. “앰블런스 라이트를 켜게 하세요. 이웃들에게 당당하게 떠나고 싶습니다. “ 11월 26일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너무 많은 일을 만들어서 미안해요” 라며 Baker는 눈을 감았다. 의사가 예상한 6개월보다 그는 12개월을 더 살았다.

 

이틀 후 AAU 결승경기에서 우승한 그의 Dasher들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코치 Baker를 위하여”

Aspen의 학생들은 그들의 학교를 John Baker school로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 명 이었지만, 많은 학생들이 부르게 되었고, 학교의 이름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산불처럼 빨리 퍼졌다.

“우리는 우리 학교 이름을 John Baker로 부르고 싶다”.

Aspen 학교는 이 일을 알버커키 학교 위원회에 의뢰하였고 위원회는 학교 가족 투표를 하도록 제안하였다. 1971년 이른 봄 모든 520 Aspen의 가족들은 투표하였다.

 “520표의 찬성 그리고 0표의 반대”
 

그 해 5월, Baker의 친구들과 그의 모든 아이들은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Aspen School은 공식적으로 John Baker Elementary가 되었다.  

 

다음은 Baker가 좋아했고 그의 장례식에서 읽혀진 디모데 후서 4장의 성경 구절이다.

 

The time of my departure has come,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도다.

 

교보문고 아름다운 청년 존베이커의 마지막 질주 링크

미디어 기사
연합뉴스 링크
중앙일보 링크

 

참고문헌:

John Baker's Last Race" Reader's Digest, 1975

"A Shining Season" by William J. Buchanan. the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1978.

John Baker's Collections, Unversity of New Mexico Library

 

          

 

John Baker Elementrary School과 학교 운동장

 

 

 

 

 

비밀댓글입니다
메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지원 선생님.
안녕하세요..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혹시 중앙대학교 역도부실에 계셨던 영섭이 형님이신지?? 형님은 절 잘 기억 못하시겟지만 전 기억합니다.^^
95년쯤에 자이언트코트에서 농구하다가 역도부실 앞에서 서성 거렸을때 형님들이 운동 하고 싶으면 들어와서 운동 하라 하셔서 역도부실에서 운동 했었던 고등학생중 한명입니다. 그때 형님들이 자상하게 잘해 주셔서 성함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형님 같다는 생각이... 운동과 트레이닝에 관한 자료검색하다가 너무 반가워서 댓글 길게 남겨요..
95년도면 제가 한창 역도부실에서 운동할 때고 아마 내가 역도부 부장이었을 때니 아마도 제가 허락하지 않으면 운동을 못했을 테니 김상현님이 운동을 했다면 바로 그 영섭이 바로 저 권영섭인것 같습니다.
너무 반갑네. 거의 15년전이니 잘 기억하지 못해도 용서해 주겠지? 그러면 가끔씩 들려서 안부도 전해주고 그리고 운동과 트레이닝자료가 왜 필요하지? 혹 전공이 운동분야? 내 홈페이지에 (health-diet.co.kr)언제 한번 자기 소개도 좀 해주고 가끔식 들려요.
아이구 용서는요. 반겨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 해요^^ 제가 열심히 가서 운동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T.T
예.. 자질을 갖춘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형님이 너무 훌륭하게 되셔서 좋네요^^
감사해요. 자주자주 들리겠습니다~~
좋은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너무너무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정말 감동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원하면서 차분함으로 최고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도와줍니다._광고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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