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곳엔 사랑이 있다.

물건너 작은섬에 종달새 운다 종달새 우짖으니 밭이 있겠지 . 거기엔 또한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사는 곳엔 사랑이 있다.

미 하원의 티베트 법안, 그리고 환생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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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betan Arts

2020. 11. 17.

미 하원의 티베트 법안, 그리고 환생의 자유

다음 달라이 라마로 전생할 자유를

by 북경의 한국인 Dec 22. 2019

 

 

최근 미 하원이 티베트 관련 법안을 이의 없음으로 통과시켰다. 이는 신장 위구르 인권 법에 이어 중국이 실효 지배 중인 티베트 지역 및 티베트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안이다. 중국의 행정 구역 상으로는 '시장 자치구'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티베트 불교의 영향 지역은 시장 자치구는 물론 스촨 성의 일부,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일부, 칭하이 성, 그리고 간쑤 성을 포함한다. 대략 중국 판도의 1/8 ~1/4 정도가 사실 상 티베트 불교의 영향권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중국 정부로서는 도저치 놓칠 수 없는 강역이라고 하겠다.

미 하원이 통과시킨 티베트 법안의 내용을 살표 보면 다음과 같다.

15대 달라이 라마를 포함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의 전생, 또는 승계가 티베트 불교 커뮤니티에 의해서만 순수한 종교적 사안으로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미 정부 정책의 수립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또는 환생을 인정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중국 공무원들에 대한 재정, 경제 및 비자 관련 제재

티베트 지도자와 중국 정부 간의 진정한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미 국무부가 특별 코디네이터의 역할 수행

티베트에서 근무하는 미국 기업의 운영이 투명하고 티베트인의 자급자족을 촉진하며 티베트 고원의 문화와 환경을 존중하도록 미 각 주 정부 및 상무부에 지시

라싸에 미국 영사관을 설립할 때까지 미국 내에 새로운 중국 영사관의 설립을 불허

국무부에 티베트 고원의 환경과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다국적 협력을 시작하도록 지시

티베트 망명자 공동체에서의 민주적 통치를 지지

티베트 및 남아시아에서 티베트인을 지원하는 예산을 승인

이상과 같은 미 의회의 티베트 정책 및 지지 법안은 그 내용이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그것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리아 라마가 중국에 대한 무력 항쟁을 금지하고 있으며 평화로운 방법으로 체제에 저항하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https://www.cecc.gov/media-center/press-releases/tibet-chairs-introduce-bipartisan-legislation-to-address-emerging

Tibet: Chairs Introduce Bipartisan Legislation to Address Emerging Challenges Facing Tibetans | 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

www.cecc.gov

 

티베트는 어째서 중국 정부와 대립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티베트의 역사와 그 고유한 문화 전승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티베트의 기록에 의하면 티베트의 역사는 약 2만 년이다. 정확히 문자로 전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림과 상형 문자 등으로 티베트의 역사가 간략하게나마 전해지고 있다. 티베트의 인류 탄생 전설은 매우 재미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사람은 원래 물고기 알이었으며 그다음에는 물고기가 되었다가 점자 진화를 거급하여 지금의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티베트는 평균 고도 해발 4900미터의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항공기 등을 이용하여 여행할 경우 고산병 등으로 고생할 수 있다. 필자가 티베트를 여행할 때에 같은 호텔에 묶었던 고위직 공무원 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그대로 사망한 경우도 보았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지대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며 저지대는 속세로서 그들이 사는 세계와는 다른 세상으로 생각한다.

티베트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에서 부족 북가가 성립하고 종교적으로는 샤머니즘이나 힌두와 유사한 다신교 문화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송첸캄포(松贊干布, 581 ~ 649년)에 와서 통일 왕조를 이루었다고 본다. 그는 당 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와 결혼하고 티베트의 중앙 집권 국가를 확립하였다. 중국인들은 이때 문성공주가 불료를 티베트에 전파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이전부터 인도로부터 원시 불교는 부단히 티베트 지역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는 티베트의 현지 신앙이던 '번'교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가며 '번'교의 다신들은 불료의 캐릭터들로 융합되더 갔다. 이것은 힌두의 여러 신들이 불교의 캐릭터로 결합된 것과 유사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티베트의 불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불교나 중국 불교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현재 선종인 조계종이 불교를 주도하고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과거 주로 현종이나 선종이 주도하였지만 티베트의 경우는 밀종, 밀교라고도 하는 티베트 불교로서 현종이나 선종과는 많이 다르다. 현종은 주로 합리적, 분석적, 학분적 접근 방법을 통해 불가의 깨우침을 추구한다면 선종은 참선과 문답 등의 방법을 주로 활용하고 밀종의 경우 진언, 법술, 요가, 내공 등을 통한 소위 "출세의 법", 즉 세상의 합리적 일반적 도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폐쇄된 티베트에서의 비일반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티베트 불교는 많은 이들에게 신비감과 함께 사교 또는 마교로서 배척하는 경향도 나타나게 만들었다. 티베트 불교의 "환희불"의 경우 티베트 불교과 성행위를 수련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든가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농락한다는 등의 소문을 낳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티베트 불교가 운회를 곧이곧대로 믿어 달라이 라마와 같은 고위 성작자의 경우 입적에 들면서 다음 출생을 예언하고 다시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아 모셔오는 등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의 유일한 정치적 지도자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티베트 불교에는 5개의 교파가 있다. 티베트어가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라마들이 입는 가사 색깔로 교파를 구분하였는데 달라이 라마가 영도하는 황교, 그리고 홍교, 백교, 흑교, 화화교 등이 있다. 이중 황교의 세력이 가장 크며 그다음은 홍교, 그리고 백교, 흑교, 화화교의 순이라고 한다. 필자는 황교, 홍교, 백교, 흑교의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화화교의 인물은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면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는 어떠할까? 현재와 관련 있는 가장 가까운 과거는 청나라 때이다. 당시 만주 지역에서 일어선 청나라는 중원을 정복하고자 헤서 기마 민족의 전통에 따라 함께 중원을 공략할 맹우를 구한다. 당시 청 나라는 우리 조선에도 명나라를 같이 치자는 문서를 보내왔으나 조선이 거절한 바 있어 결국 청 나라에게 먼저 공격을 당한 바 있다. 하지만 몽고, 신장 위구르, 그리고 티베트는 청 나라에 협력하였다. 청 나라의 주도 세력은 신라 왕실의 후예인 아신쥐러 부족과 그 맹우 7개 부족이어서 소위 만청 8기군으로 불렸었는데 몽고는 15기가 주도 세력으로서 청 나라과 연맹한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청 나라 황실의 황후는 대대로 몽고에서 보내주기로 했던 것이다. 실제 동원한 군사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티베트나 신장 지역이 동맹을 맺은 것은 당시 명나라가 청 나라 군대를 상대함과 동시에 배후를 지켜야 하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티베트는 청 나라의 맹방이었기 때문에 청 나라가 중원을 차지한 후 티베트의 세력은 더 커졌다. 하지만 정권을 둘러싼 싸움이 발생하고 여기에 청 나라 군대를 끌어들임으로써 티베트는 형재의 나라에서 신하의 나라로 강등되고 만다. 그러나 이는 청 나라과 조선 간의 관계보다는 훨씬 높은 단계의 대우로서 지금 많은 중국인들이 생각하듯이 원래부터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였던 것은 아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나서부터 유물론과 공산 혁명을 추구하는 중국 공산당과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처음에는 마오쩌둥 등도 티베트에 대해 유화 정책을 위하였으나 결국 양 측의 갈등은 커져갔다. 그리고 625 전쟁이 종전되고 귀국하던 인민해방군들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를 점령한다. 당시 마오는 한국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지만 승리하지 못했고 당시 국내 정치적 입장이 취약하여 반대파의 공격이 강하여 수많은 중국 병사들의 피를 흘린 대가를 중국 인민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마오는 돌아오는 병력들을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를 소탕하게 하고 승리한 부대로서 개선을 하도록 한 것이다. 티베트 인들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고 1959년의 티베트 봉기로도 이어진다.

이 시기에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한다. 수많은 티베트인들의 죽음을 목도한 달라이 라마는 무척 괴로워하였으며 무력 투쟁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 접경에서 티베트의 광복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 정부에게 티베트이라는 국가의 독립까지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종교의 자유, 티베트인들이 티베트의 문화 전통과 종교 속에서 살 자유를 달라고 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오의 말마따나 "종교는 마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달라이 라마는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인데 연령이 높아지자 전생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티베트의 전통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가 입적을 하면 티베트의 지도 체계에는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 이 시기에 달라이 라마를 대신하여 티베트를 이끄는 사람이 반 찬 라마이다. 반 찬 라마는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며 달라이 라마를 찾아 판정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르 교육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반 찬 라마가 입적하면 달라이 라마가 전생자를 찾고 판별한다. 이렇게 영원히 달라이 라마와 반 찬 라마는 서로가 서로의 전생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반 찬 라마의 경우 문제가 생겼다. 달라이 라마가 찾아 반 찬 라마임을 선언한 인물에 대하여 중국 정부가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친중 라마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전생한 반 찬 라마로 인정하도록 하였다. 물론 티베트 커뮤니티는 이 사람을 반 찬 라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제는 달라이 라마가 인정한 반 찬 라마의 환생자가 중국 정부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그는 5살 때 전생자로 확인되었는데 금년 29세이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중국 정부에 의해 연금되어 세간에 나 타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반 찬 라마에 대한 후속 처리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날 경우 중국 정부가 또다시 중국 정부 버전의 달라이 라마의 전생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달라이 라마는 몇 가지 말씀을 하셨다. 먼저 본인께서는 이번 생은 100세까지 계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절대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두 말씀은 모두 중국 정부를 고려한 정치적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반 찬 라마는 아직 살아 계시며 그것을 느끼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과거 청 나라 때 의례적으로 달라이 라마와 반 찬 라마가 세상을 떠나고 환생을 할 때 청 나라 황제에게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보내왔던 전통을 근거로 달라이 라마에게 환생을 하려면 중국 정부의 승은을 얻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유물론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중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의도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달라이 라마 인정된 3세 때 모습

이렇게 해서 티베트 사회와 중국 정부 간에 "환생"의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이번 미 하원의 티베트 법에 어째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의 전생, 또는 승계가 티베트 불교 커뮤니티에 의해서만 순수한 종교적 사안으로서 이루어지도록"이라는 조문이 가장 먼저 제시되었느지의 배경이다.

다라니 경

우리는 대부분 티베트와 한국은 서로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티베트 불교와 한국은 깊은 관계에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던 북위 시절의 불교는 밀종의 색채가 진했다. 당시 고구려에 전해진 우리 불교도 밀종이다. 잘 생각해 보면 고구려를 이은 고려가 "풍수지리"가 유행하고 "밀법"이 유행했다지 않은가?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나 사명당이 여러 가지 도술을 쓴다는 설정도 당시 우리나라가 밀종을 믿었기 때문이다. 신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다라니경", 다라니는 "진언", 즉 주문이라는 말이다. 삼국 시대 우리의 불교는 밀종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조선이 건국되면서 민중에 깊이 뿌리를 내린 불교를 물리치고자 태조 이성계와 유학자인 정도전이 생각한 방법이 "선종"을 장려하여 현실 개입이 심한 "밀종"을 물리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현실 정치와 민중을 도외시하고 깊은 산속에서 선문답을 주고받는 조계종이 확산된 것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