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안주인이 들려주는 고택 살이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12. 22. 15:42

 

 

 

안주인이 들려주는 고택 살이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원고 마감일은 가까워 오는데

아직 이야기를 들려줄 안주인이 결정되지 않았다.

고민고민 하다가, 지난 번 고택나들이를 내앞마을로 갔으니

이런 일에 협조적이신 청계 김진 선생의 셋째 아드님인 운암 김명일 선생 종가

노종부님께 전화를 드렸으나

할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사유를 말씀드릴 여유도 없이

아무도 없다며 전화를 끓으신다.

 

다음날 아침 다시 전화를 드리니 할머니의 아드님이신 종손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사연을 말씀드리니

"어매가 편찮으셔서 어제 퇴원 하셨고, 기력과 기억력이 크게 떨어져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고 하신다.

 

작년 늦가을 잠깐 뵈었을 때,

꼬장꼬장한 모습으로 메주를 써서 처마 밑에 가지런히 달아놓고

무말랭이를 썰어 툇마루에 말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렇게 기력이 떨어지셨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노인의 건강은 밤새 알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빠른 쾌유를 빌며 이곳저곳 고택에 전화를 드렸으나 부재중이시거나 편찮으셨다.

 

 

할 수 없이 이번 고택나들이 코스 사전답사 차 귀래정에 들려서

안어른께 부탁드렸으나 이야기 꺼리가 없으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어른은 평소에도 두드러져 보이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시라 퇴짜 맞으리라 생각은 하였지만 역시였다. 

 

원고 마감은 이제 4일 남았으나 주말에는 시댁에 가서 김장을 해야 되겠기에 실재로는 이틀이 남았다.

퇴근을 하고 귀래정 어른께 전화를 드려 다시 부탁을 드렸으나 역시 거절을 하신다.

 

이런저런 말씀으로 설득을 하였지만 절대로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기나긴 겨울밤이 심심하실텐데 제가 어른들과 두 시간만 놀고 싶다고 했더니

놀러 오는 것은 막지 않는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옷을 주워입고 어른들이 좋아하실 것 같은 과자와 사탕, 음료수를 사들고 귀래정 종가를 찾았다.

 

동네 가운데 있는 집이 아니어서 낮에도 조용하지만 밤에 찾아간 귀래정 종가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살고 있는 주택이 다 그렇듯이 방 한 칸에만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적막하기까지 했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으로 들어서니 문은 꼭꼭 잠겨있고 초인종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누르지. 

무조건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니 할머니께서 내복 바람으로 "참말로 왔니껴?" 하시며 문을 열어주신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루는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썽그런 느낌이 들었으나

어른들이 거쳐하시는 방안은 옛날 군불지핀 방같이 따끈따끈하고 아늑하였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날 어릴 적 귀미에서 사실 때 이야기를 물어보니 즐겁게 이야기를 시작하시며

"아이고 안할라 켔는데 별것도 없는 옛날 일을 이래다가 다 할라." 하시며

귀래정 안주인 구일댁(김승기. 75세)은 이야기보따리를 스스로 푸셨다.

 

 

 

   

귀래정 마루에 한 번 쉬어보지도 못한 귀래정 살이

                                                                                김 승 기 구술

 

귀래정 안주인 구일댁

 

 

나는 안동 일직 귀미에서 귀와 김굉 선조의 후손으로

밭 노친(아버지) 선자 경자 어른과 안 노친(어머니) 진성이씨 사이의 1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어요.

우리 집은 그리 큰 부자는 아이래도 먹고살 걱정은 없었어요.

우리 아부지는 사형제분 중 둘째였는데 사형제분들이 결혼하고도 한 울안에 살았어요.

큰집은 할매 뫼시고 백부님 식구들이 골기와 집에 사시고

우리 지차 집들은 돌레돌레 돌아가며 한 울안 초가집에 살았어요.

  

 

클 때 우리 삼남매도 화목했지만 여남은 넘는 종반간(4촌 지간)이 같이 자랐으니 참 재미있게 살았어요.

 큰집에는 제사도 많고 머슴도 둘이나 있는 부자 집이라서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안 노친이나 숙모님들이 할매도 뵙고 일도 거들어 주러 거의 매일 큰집에 들어가면

우리 종반 간에 어울려 재미있게 놀고 그랬어요.

그 때 같이 큰 사촌들이 모두 잘 됐어요. 계몽사 김원대 사장도 있고.

 

큰집이 사파종가라 일 년에 제사를 열 번 넘게 지냈는데,

과실이나 어물도 잘 차렸지만 귀미가 들판이라 특히 편을 잘 차렸어요.

본편(시루떡)과 웃기떡으로 경단, 인절미, 절편, 잡과편, 전, 조약, 깨구리를 안어른들이 정성껏 만들었어요.

이때쯤 제사를 지내면 그 시루떡을 감홍시에 찍어 먹으면 꿀맛이었제요.

 

 

우리 어렸을 적에 놀음이 드셌어요.

여름에는 일하느라 놀 새가 없어 못 놀다가 겨울이 오면 얼매나 놀았든 동 말도 못해요.

 

동네가 거지반 일가친척이라 동네 처자 총각들이 모이면 한 스무 남씩 됐어요.

 무꾸 구데이 파서 훔쳐 먹고, 감자 구데이 파서 훔쳐 삶아 먹고 그랬어요.

 

그래 훔쳐 먹다 들키면 어른들이 " 야 이놈들아 씨도 다 내먹고 어짤라꼬 카노, 예이 고얀 놈들아!"

하고 소리 질렀지만 크게는 야단 못치제.

 니아 네아 할 것 없이 그 때는 노는 게 그랬는데 뭐.

 

요맘때쯤에는 집집마다 노인들 드릴라꼬 감홍시를 짚동 안에 여 놓은 걸 마이 훔쳐 먹었어요.

정월에는 우리 삼파문중 젊은이들이 다 모이면 이삼십 명은 됐거든

윷 놀아서 비빔밥 해먹고 저녁에는 번호 맞추기 해서 떨어진 사람 노래하고 참 재미나게 놀았어요.

 

 

 

크면서 우리는 천역(힘든 일)을 많이 했어요.

어렵던 시절이라 들일도 하고 길쌈도 하고 그 때는 집에 샘이 없어 어렸을 적부터 물동이로 물을 많이 여다 날랐어요.

머리꼬리 길게 따아서 물이러 가다가 낮선 남자들 만나면 뒷걸음쳐서 돌아오던지 담 모퉁이 옆에 숨어 섰다가

그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갔어요.

 

 여름에 들일 거의 끝나면 삼을 삼는데 맨살 무릎에다 데고 하도 비벼서 피가 나고 그랬어요.

여름밤은 짧지, 잠은 얼매나 오든 동. 그나마 마이 더울 때 들일 안가고 감나무 그늘에서 삼 삼는 것은 할 만했어요.

 삼복더위에 밭을 매면 따이 달아서 숨이 턱턱 맥히거든요.

베도 마이 짰지요.

그렇게 힘든 일 하다가 시집와서는 들일은 안했어요.

 

스무 살에 우리 동네에 사는 타성, 광산김씨 할배가 중매해서

선도 안보고 어른들끼리 좋다고 해서 이집으로 시집오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미약(약혼. 요즈음 상견례와 비슷함)을 먹었는데,

 신랑(이도형. 78세) 측에서 신부집안 어른들께 한턱내고 서로 인사도 하는 것인데

우리 아뱀(시아버님)이 운산 장에 와서 우리집안 어른들과 중매쟁이한테 한 턱 냈어요.

 

나와 신랑은 가지도 안하고 어른들만 미약 먹고 왔다고 하는데도 얼매나 부끄러운 동 횃대 밑에 숨었다카이께네요.

스물두 살, 섣달 스무 여드렛날에 혼례 치르고 요객(상객. 시아버님)은 하룻밤 주무시고 돌아가고,

신랑은 닷새를 묶고 돌아갔는데 나는 신랑 얼굴을 사흘 있다가 처음 봤어요.

 

그 때는 밥도 둘이 한 상에 차려 주는 법도 아니고 남자는 남자들끼리 먹고

여자는 여자들끼리 먹고 그랬으니까 얼굴 볼 틈이 있나.

 저녁에는 깜깜한데 들어가서 자고 하이 언제 볼 여가도 없고, 처음에는 부끄러워 쳐다 볼 수도 없고.

사흘 만에 처음 보이 참 잘 생겼드라꼬요.

 

 그 때는 신방 구경을 얼매나 하는 동 문구멍 뚫고 들바다 보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서로 볼라꼬 문짝을 띠내고 보고 그랬어요.

그 카면 부끄러워서 이불로 문 가리고 자고나면 아침에 어른들이 문을 찾아 달아주고 그랬어요.

 

 

신행을 시월 스무 여드렛날에 왔는데, 그 때 시댁은 여기가 아니고 영천군 화산면 매산동에 있었어요.

 6.25 전쟁 때 귀래정 옆에 있던 집이 불타고 해서 시 삼종숙(9촌 아저씨)이 거기에 살고 계셔서 피난 가서 살았어요.

 

신행 가는 날 눈이 설상가상으로 와서 집에서 운산역까지 걸어서 가는데 발이 푹푹 빠졌어요.

그래서 웃옷을 못 입고 보통 입는 옷을 입고 시집 동네까지 가서 옆집에서 갈아입고 들어갔어요.

 

우리 집에서는 딸 시집 보낸다꼬

엿 한 고리짝, 유과 한 고리짝, 어리(쌀강정) 한 고리짝 소고기 열 근, 명태 한 떼, 이부자리, 내 옷,

예단 등을 바리바리 해서 소바리에 싣고 또 하인(제궁지기)이 지고, 내 대반 들 여자 종(제궁지기 마누라)이 이고,

요객(상객)으로 백부가 함께 갔어요.

 

운산서 기차타고 신령까지 가서 신령서 시댁까지는 가마타고 갔어요.

시댁에 가이 내 큰상 차리고 요객 큰상도 차렸는데 없는 음식이 없이 참말로 상다리가 뿌러지게 차렸어요.

 

백부님이 하룻밤 묶고 가신다고 배별 상에 인사드리러 들어가니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져서 얼매나 울었든 동.

눈이 퉁퉁 부었어요. 원래 밭 노친이 가실려고 그랬는데 날 두고 떠나오려면

백부보다 맘이 더 아프다꼬 백부가 요객으로 오셨다 그래요.

 

 

 

안한다고 하시던 때는 까맣게 잊으시고 이야기에 열중하시는 종부님 

 

 

 

옛날 우리 친정에는 겨울만 되면 큰독에 찹쌀을 삭혀서 엿을 서너 말을 고았어요.

또 유과도 집에서 만들었어요. 유과는 냇가 에 가서 모래를 깨끗한 것으로 골라 얼개미에 내려가지고

가마솥에 넣어 불을 지펴 달궈지면 거기다 마른 차나락을 넣어 저으면 튀밥이 되거든.

 

그것을 다시 얼개미에 내려 모래는 버리고 튀밥은 모양 좋은 건 따로 골라두고,

남은 것은 방망이로 뿌솨가지고 얼개미로 쳐서 유과에 묻힐 고물로 만들어놓고.

 

찹쌀을 깨끗이 씻어서 물을 갈지 말고 이삼 일 담가 놨다가 건져서 호박에 빻아 가루를 만들어 솥에 푹 쪄내.

그 쪄낸 것을 다시 호박에다 꽈리가 나도록 찧어 국시 밀듯이 밀어 네모반듯하게 끊어 뜨뜻한 방에서 바짝 말려야 돼요.

 

 바람 치는 곳에서 말리면 절대로 안되거덩.

 바람 치는 곳에 말리면 갈라져서 유과가 모양 없이 돼.

 

그렇게 바짝 말린 것을 소두배(솥뚜껑)를 한데 걸어놓고

피마자기름이 버글버글 끓을 때 넣어 벙그렇게 튀가서

물엿을 묻혀 만들어 놓은 고물 묻히고 우에 모양내고 해서 큰일 때 마다 썼어요.

 내 시집 갈 때도 그렇게 만들어서 가지고 갔어요.

 

 

시집을 오니 시댁에는 시어른 내외분과 5남매(3남 2녀 중 신랑이 장남)가 살았어요.

어른들이 인품이 훌륭하고 동생들도 좋아서 어려운 것 모르고 살았어요.

 

 화산서 한 이년 살다가 전쟁도 끝나고 해서 이 자리에 집을 지어서 이사를 왔어요.

원래 귀래종 종택은 이 자리에 큰 골기와 집이 있었으나 6.25 때 폭격당해서 없어졌고,

다시 짓는데 돈이 없어 그렇게 크게는 못 짓고 작은 한옥을 지어서 이사를 왔어요.

 

나는 이사 와서 처음 이곳에 왔고 귀래정도 처음 보았어요.

처음 와서 보이 귀래정 경치가 얼매나 좋든 동.

 

 귀래정 밑으로 바위로 된 절벽이 있고

그 밑을 낙동강이 휘돌아 흘러가는데 거기서 소를 이루고 돌아가니 물이 파랗고 깨끗한 게 바위에 철석거리제

주변에는 고목나무들이 있제 경관이 일품이랬어요. 

특히 아침에 안개가 끼었을 때 경치가 제일 좋았어요.

 

그렇게 여름에 시원하고 경치 좋은 귀래정 마루에 나는 한 번도 올라가 쉬어본 적이 없었어.

사느라고 바빴기도 했지만 옛날에는 정자에 여자들이 출입을 하지 못했거든요.

 

 

아뱀이 한학을 하시고 우리 집은 좀 큰집이라서 친구 분들이나 문중어른들이 자주 드나들었어요.

 여름에 하얀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귀래정 마루에 앉아 노시는 걸 보면 참 보기 좋았어요.

 

 우리 집은 불천위 종가가 아니라 4대 봉사만 했어요.

 

들일이나 길쌈은 안했지만 손님접대하고 아아들 키우느라 평생을 바빴어요.

어맴은 쫌 일찍 돌아가시고 아뱀은 회갑잔치 하시고 63세에 돌아가셨어요.

어른들 돌아가시고 흰옷 입고 삼년상 치렀어요.

 

 

나는 스물다섯 살에 첫 아들을 낳았어요. 시어른이 삼대 외동이라

"내가 혼자다 보이 외롭더라. 너는 아를 낳는 대로 낳아라." 라고 해서 그렇게 따른다고 6남매를 낳았어요.

 

아아들 키울 때는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는데 우리가 여기 살다보이 학교 다닐 때 지들이 힘들었제.

위로 아아들은 영호초등학교 다니니 여기서 걸어 다녔는데 겨울에 다리를 건너다니느라 힘들었제요.

 

 밑으로 아아들은 용상초등학교 다녔어요.

그 때는 용정교가 안 놓여서 반구정 부근에서 용상 안동병원 조금 위 부근까지 외나무다리가 있었는데

겨울에는 그걸 건너다녔으니 얼매나 추웠을니껴?

 여름에 비가 오면 나룻배타고 건너다니고

큰물이 지면 영호루 앞 다리 건너서 강둑을 따라 올라가서 법흥교 건너 다녔으니

빤히 보이는 곳을 그렇게 돌아갔으니 힘들었제요.

 

 

10여 년 전에 정상동 택지개발 할 때

 16위를 폐묘했는데 그중에서 일선 문씨 할맴과 응자 태자 할뱀이 미라로 발견됐지요.

 

거서 그 유명한 할맴이 쓴 원이 엄마 편지가 나왔제요.

그 때 그 편지가 너무 애닳파서 세상이 난리가 났제요.

 

 

원이 엄마 편지와 원이 엄마가 남편의 쾌차를 빌며 머리카락과 삼으로 삼은 미투리

 

 

원이 아버지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 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원이 엄마 편지

 

나도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상투가 한 아름이고 기골이 얼매나 장대하든 동

내가 섬뜩 하더니만 그 뒤에 몇 달을 아팠어요.

 

 때 우리 큰 아들이 애를 많이 먹었어요.

직장을 휴가내고 와서 시신을 모두 귀래정에 모셔놓고 밤낮으로 지켰으니까요.

 

 그 때 옷을 새로 갈아입히고 묘는 어담으로 이장했고요.

 벗긴 옷이랑 관, 거기서 나온 모든 것은 안동대학박물관에서 가지고 갔는데 한 트럭이 넘었어요.

 

정상동 택지개발 할 때 산을 판돈으로 문중에서 이집을 지었어요.

 집을 헐었으니 우리 내외는 서울 아들집에 가 있다가 다 지었다고 해서 와보니 이렇게 지어놨어요.

문짝이나 그런 것은 전부 미송을 쓰고 잘 했는데 기둥과 서까래를 시멘트로 지었으이 귀래정과 안 어울리는 것 같제요?

 

 안은 싱크대도 있고 해서 옛날 집보다 살기는 편하고 좋으이더.

이제 집도 새로 지어 편리하고 아아들도 크게 잘살지는 못해도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우리 내외나 건강하게 살아야 될껜데 영감이 만날 몸이 약한 게 걱정이래요.

 

귀래정종택

 

 

 

 

이야기 하며 놀고 싶다고 억지로 찾아뵌 귀래정 종가 어른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올 때는 어느덧 친구가 되어 다음에 또 놀러 오라며 한사코 문 밖까지 배웅해주신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옛날 살아오신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고,

 나도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던 고향의 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안주인이었지만 바라보기만 한 귀래정,

앞으로는 더운 여름 날 귀래정 마루문을 시원하게 열어놓고 낮잠을 주무시는 시간이 많기를 빌어본다.

 

이번 에 섭외를 하면서 안동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실 고택 안주인들이 편찮으신 분들이 너무 많은 것이 걱정되었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 줄 수 있을까?

이제 나마 우리 팀에서 고택나들이란 행사를 하게 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모쪼록 팀원들이 합심하여 좋은 행사로 발전해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글은 몇 년 전에 써놓았던 글을 여러 이웃분들과 함께 즐기자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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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의 생활은 고단한 삶이셨을 것 같네요.
몇 년이 흐른 후에 다시 보는 글도 뭉클하지요.
렌즈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비밀댓글입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시대에 종가의 전통과 고풍을 지키며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아가는 종부가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다.
조상의 명예와 얼과 예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고서는
거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일 수 있는 종가댁 안주인자리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옛 조상님의 뜻을 받들고 전통을 이어가시는 장한 종(효)부님도 많이 계시는데
그 분들이 디지털 시대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가하여 씁쓸한 마음 금할길이 없네요.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늘 활기차게 활동하시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며칠 남지않은 연말 잘 보내시구요.,
다가오는 2012년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렇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 삶의 방법들을 다시 생가해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안동의 종가들의 후손들은 아직 저런 풍속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있긴 합니다만.

산내들님 너무 오랫만입니다.
처음 블로그하고 산내들님 방에서 옛날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는데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절대로 들으실줄없을줄알았는데 정성이
움직였나봅니다,
대단하십니다, 오랜만 에 할머니의 미소를보는거
같네요.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그러게요.
저 때는 지금보다는 젊어서 끈기와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종부댁이라면 그 옛날엔 얼마나 일이 힘들고 고단하신 삶이 셨을지
우리같은 사람들은 상상이 안 갈 정도지요.
한옥의 겨울나기는 인내의 시간이나 다름없구요.
렌즈님은 책을 내셨나요.
안 내셨다면 모두에게 정감있는 렌즈님의 사진과 글들 좋은 자료들을
모아서 나중에라도 꼭 책을 내셔야 할 것 같아요.
소수의 사람들이 눈으로 스치듯 흥미로 보고 넘기기에는 아까운 포스팅이
너무 많아서요. 체감영하20도......오늘은 방콕이 좋을 것 같아요.
외출시에는 눈만 내놓으시고요.....ㅎㅎ.....아니면 꽁꽁 동태되요..ㅎㅎ..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제가 하는 사진이 저런 일을 평생을 하며 살아오신 분들의 인물사진이다보니
이야기도 함께 듣는 중입니다.
전시를 한다고 도록은 두어번 만들었습니다만.....
전국의 어른들을 모두 다 찍으면
제대로 된 사진집을 만들 예정입니다.
지지배배님 염려해주셔서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참으로 안타까운
어머님 인생~~~이네요
멀리서 보면은 그런데
저분들을 직접 만나보면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덕분에~~~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요!!!
고마워요. 여행님.
Merry Chrismas!!!
렌즈로보는 세상님
원이엄마편지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요....
고운 성탄 보내시고 월요일에 뵐게요
저 편질 처음 읽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된답니다.
얼마나 절절하고 애절한지요.
왠지 글도 사진도 이야기도 하나도 낮설지가 않답니다..
제 친정도 안동이고 친정집도 종가집이다 보니
일년에 제사만도 열손가락 안에 꼽을만큼 자주지냈고 친 인척들의 방문으로 어릴적엔 왜그리도 좋았는지요..
시집을 가고 나이가드니 친정 엄마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던가를 그때 깨닫았지요..
요즘은 조매를 많이해서 모시는 제사도 단촐하지만
예전 가을이면 이틀에 한번꼴은 아마도 제사를 지낸거 같어요..
조매란 말 안동의 이름있는 집의 후손들이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단어지요.
안동의 어디신지요?
제가 종가집은 거의다 알고있어서요.
어머님이 고된 삶이었음을 지금이라도 아셨으니 효도하세요.
두 개의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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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저울
우리의 마음에는 두 개의 저울이 있다.
남에게 줄 때 다는 저울과 남으로부터 받을 때
다는 저울, 두 개의 눈금은 서로 다르다.
남에게 줄 때 재는 저울은 실제보다 많이 표시되고,
남으로부터 받을 때 재는 저울은 실제보다 적게 표시된다.
그래서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아도
항상 손해 본 듯한 느낌을 갖는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두 저울의 눈금 차이를 적게 할 수 있다면...
만일 눈금 차이를 줄이는 것이 어렵다면,
남에게 줄 때는 조금 덜 준 듯이 남으로부터 받을 때는
조금 더 많이 받은 듯이 생각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조금은 더 받은 듯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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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늘 고마운 렌즈로 보는 세상님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조심하시고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0^)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좋은글
감사합니다.
푸른생각님도 행복하세요.
이런 종류의 글만 모아서 책내시면 대박일듯 한데~~~ 처음 제가 읽은것도 이런글이였죠^^ 그래서 인연이 되었고~ㅎㅎㅎ
맞아요.
저도 그 때쯤 아재의 글을 접했거든요.
참 글 재미있게 쓴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다음에 더 많은 이야길 모으면 생각해봐야지요.
그때가 벌써 이년이 다 되어가네요~~~
아마 의성 있을때 인듯 합니다.
우연챦게 의성 유적지 관련 글쓰면서 검색하다가 들렀던것 같은데~ 빙계서원 글이였던가! 아무튼 의성 유적지 관련글에서 제가 처음 읽었습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마루에서 한번도 쉬지 못하셨다는 말씀에 가슴이 찡하네요
예전 일만 하시던 할머니 모습도 생각납니다
잠시나마 어렸을때를 돌아본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알객님은 할머니 세대가 저런 모습이었겠지요.
참 좋은 시절이네요.
렌즈님두 대단 하십니다.^^
절대로 인터뷰를 안하시겠다고 하셨던
어르신께서~ㅎㅎ
소중한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좀 끈질긴데가 있지요.
될만한 일에요.
살아온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엮여져 보이는것 같네요~^^
정말 멋진 취재입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구요~^^
메리 크리스마스~^^
감사합니다.
갈매기님도 행복한 나날이시길요.
소중한글 잘 보았읍니다
종부들이 가시고나면 누가 지킬지
걱정 입니다
글쎄요.
몇몇집은 아랫대가 들어온다고 하긴 합니다만....
울어매 고향도 안동 근교라 낮설지가 안심더....^^
연말 바쁘시지예,, 마감 잘하시고 멋진새해도 맞이하세요....
어매 고향이 안동 어데이껴?
안동오거든 미리미리 글로 남기소
어매 고향도 같이 가보그러요.
길지만 좋은 글...절절한 편지까지...
감사히 읽고 갑니다..
길어서 힘들었지요.
짤라 올릴 수도 없고.....
감사합니다.
편지글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정말 지고 지순한 하늘이 내려준 사랑입니다

종부댁의 정성과 사랑의 삶에 감사히 머물러 갑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자주 놀러올께요p
저희 할머님 얘기를 잘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몰랐던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