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진료실 이야기

민욱아빠 2015. 11. 21. 23:10

  60대의 날씬한 체격의 남자가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진료실로 들어옵니다.  그의 오른손은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네요.  보아하니 오른손이 감싼 부위로 통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틀 전, 공사장에서 일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왼쪽 옆구리를 쇠파이프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아파와서 참아보려던 것을 포기하고 병원에 왔다고 하네요.  외상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상의를 벗어보라 했습니다.  환자는 아픈 옆구리때문에 어렵게 상의를 벗어올립니다.  순간 저는 멈칫했습니다.  완전히 탈의한 아저씨의 상체는 말 그대로 몸짱의 모습이었습니다.  탄탄한 대흉근과 아프다는 옆구리로 흐르는 전거근 말단의 선명한 톱날같은 모습, 그리고 식스팩이 선명한 복근과 양 어깨의 삼각근과 승모근의 조화, 잘 발달된 이두근과 삼두근.. 헬스를 하는 사람들처럼 근육 하나하나가 두툼한 볼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근육량에 비해 피하지방이나 체지방이 적어보이니 몸은 날씬하면서도 탄탄해보였습니다.  다만, 습관적으로 마시는 술의 양이 좀 되다보니 피부는 약간 창백하면서 푸석해 보인다는 것이 아쉬웠는데, 어쨌든 저는 속으로 환자의 상체모습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엔, 다이어트에 몰입하며 체중조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환자의 옆구리엔 외상은 없었고 아프다는 부위를 촉진한 다음 기본 방사선 검사를 통해 늑골의 골절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명확한 골절은 없어 검사결과와 경과를 설명하고 진통제를 처방해 주는 걸로 진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환자는 공사장에서 힘쓰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했습니다.  힘이 들다보니 술도 자주 마신다 했구요.  진료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나름의 관상도 볼 줄 알게 되는데, 그런 ‘나름의 관상’으로 판단하기에 환자는 공사장 막노동을 오랫동안 하느라 찌든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는, 따로 근육을 키우는 운동같은 걸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일이 있는 날이면 무거운 것을 들고 메며 살았을 그의 몸은 당연하게도 근육질일 수 밖에 없었겠지요.  저는 그런 그의 몸에 잠시 놀라고 부러워했던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 저도 살을 빼고 있었던 데다 몸의 선을 살려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때여서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환자의 몸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순간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연민, 이런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힘쓸 일 거의 없이 지내다가 일주일에 두어번 힘쓰고 땀빼며 일부러 운동하는 저의 사는 모습을 생각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며 계획하는 목표 중 하나는 아마도 살빼기 또는 소위 몸짱되기 일 것입니다.  연예인들을 위시해서 형성된 몸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과 똑같아지거나 비슷해지려는 욕망을 품게 만듭니다.  사실 그런 이미지는 과하게 마르거나 또는 특수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몸이지만, 저마다의 욕망이 모여 따라야 할 표준이 되어버리죠.  사람들은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자신의 몸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합니다.  편리와 먹거리가 넘쳐나고, 비만이 사회적이고 의학적인 의제가 되어버린 요즘 세상에서 자기몸 관리는 굳이 이미지 과잉의 폐해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필요하긴 합니다.  따라서, 과잉된 이미지를 쫓기 위한 몸부림을 떠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몸을 관리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인정할만 합니다.  문제는 몸을 관리하려는 노력이 일상에서 하나의 다른 부분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는 삶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은 왜,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하나 분리된 채 따로 버겁게 챙겨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일상은 점점 먹고사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만 합니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져서 힘 쓸 일은 줄어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일은 점점 더 많이 해야만 합니다.  일하는 것과 몸을 관리하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기분을 전환할 만한 여가는 원래 일상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세상에서는 이런 조화를 만들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루 낮시간의 대부분을 실내 진료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먹는 건 누군가의 일거리로 만들어진 것을 식당에서 먹게 됩니다.  몸을 관리하는 일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저는 일부러 일주일에 두세번 저녁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몸을 관리하고 기분전환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일에 찌든 몸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일을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기분전환이나 여가는 피로감에 물든 몸을 집에서 뒹굴거리는 일로 대체하게 됩니다.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의 균형이 깨어지니 사람들의 몸에선 신경증의 증후들이 나타납니다.  몸은 아파지고 표정은 어두우며 표현에는 날카로움이 묻어납니다.  인간을 위해 발전을 거듭하며 이루었다는 문명사회의 이면엔 균형이 깨어져버린 개개인의 일상이 존재합니다. 

  몸은 탄탄해보이지만 푸석한 피부와 찌든 인상의 그 환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된 일상이 그의 몸을 탄탄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로 그가 우리보다 균형된 일상을 지내고 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고된 일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삶과 그에 비해 턱없이 적었을 보수, 그리고 시선들은 일상의 균형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아파서 병원을 찾은 날은 하루 일당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통증이 며칠 지속된다면 아픈 날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일을 온전히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기에 마음은 심히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몸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술과 스트레스로 인해 이미 많이 상해 있었을 지도 모르죠.  그는 타인들이 원하는 그런 근육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건강의 상징이나 관리의 결과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근육은 없지만, 비만이거나 심하게 메마른 몸과 신경증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된 흉터인지 모릅니다. 이미지의 과잉을 따르더라도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몸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요즘 세상에선 어쩌면 행복한 입장일 것입니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형태로든 불균형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 환자가 진료실을 나간 후 잠시 환자가 없었던 시간에, 조금은 줄어든 내 자신의 뱃살을 바라보며 살을 빼고 근육을 늘리려 발버둥치는 내 모습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환자의 탄탄한 근육들을 잠시나마 부러워했던 내 자신이 서서히 부끄러워지고 있었습니다.      

쌀쌀한 날씨가
몸을 차갑게할지라도
마음만은 따뜻한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