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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철학 강의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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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0. 7. 27.

   2020년 가을학기에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대학원)에 “시공간의 철학” 강의가 개설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철학 전공자로서 나는 시공간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비록 모든 강의에 참여하기는 어렵겠지만, 여건이 닿는 한 많은 강의에 참여해서 이 영역에 관한 나의 생각을 가다듬으며 발전시키고 싶다.

 

   아마도 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논의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에서 최초로 연역적 기하학이 시작된 이후,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당대의 수학 지식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했다. 유클리드는 5개의 공준, 5개의 공리, 23개의 정의를 토대로 465개의 기하학 정리들을 연역해냈는데, 이는 당시에 알려진 기하학 지식을 총 망라하는 것이었다. 공준은 논리적 규칙에 가까우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공리들이었고 특히 5번째 공리인 평행선 공리가 유클리드 시대 때부터 학자들의 속을 썩였다. 학자들은 나머지 네 개의 공리들로부터 평행선 공리를 연역하고자 시도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시간 개념은 고대 천문학에서부터 자연현상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시간을 정의하였으므로, 만약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진행한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뉴턴은 자연현상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수학적인 시간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공간에 대해서도 뉴턴은 마찬가지의 주장을 했다. 물체들의 상대 위치, 상대 운동을 토대로 측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수학적인 공간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뉴턴의 절대적 시간, 공간 개념에 반대하여 관계론적인 시간, 공간 개념을 주장했다.

 

   흄은 개념적, 수학적, 논리적 지식 이외의 타당한 지식은 인간의 감각 인상에 기초해야 하며, 인과성과 귀납원리는 인간의 습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칸트는 시간과 공간 및 인과성은 인간이 외부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선험적 형식이라고 보았다. 정말 인간은 외부세계를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방식으로 지각할까? 수학에서는 19세기 전반기에 유클리드 기하학과 대등한 기하학인 비유클리드 기하학(더 일반적으로 리만 기하학)이 발전했다. 헬름홀츠는 지각 생리학의 논의와 결부시켜 물체의 자유 운동 원리를 충족시키는, 일정한 곡률(양, 음, 0)을 가진 기하학이라면 외부세계에 대한 기하학으로 적합하다고 보았다. 푸앵카레는 더 나아가 물리적 기하학은 참도 거짓도 아닌 규약이며, 물리학적 법칙들을 변경시킬 경우 어떤 종류의 기하학도 물리학의 기본 전제로 약속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지식은 감각 인상에 기초해야 한다는 흄의 인식론, 경험 법칙을 근본 법칙의 수준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만약 이론이 단순하고 정합적이게 된다면)는 푸앵카레의 규약주의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경험주의적이고 관계론적 관점에서 뉴턴의 절대 시간 공간을 비판했던 마흐의 논의도 중요한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성이 관계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수 상대성이든 일반 상대성이든 상대성 이론은 관성계의 개념을 받아들인다. 관성계란 힘이 작용하지 않는 기준계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힘의 작용 여부는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단순히 수학적 좌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은 시공간적 좌표들이 변화하는 양상(에너지-변형력)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이 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몇몇 학자들은 마치 온도의 개념이 통계역학에 의해 환원될 수 있는 것처럼, 시간 역시 다른 더 근본적인 물리적 과정들로 환원될 수 있는 일종의 창발적인 개념으로 본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이 우리가 작업하는 모든 종류의 이론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전제되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라고 본다. 시공간의 형태가 에너지-변형력에 의존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시간의 흐름이 그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하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학자들은 그 무엇보다도 ‘시간’이라는 주제에 관해 서로 격렬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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