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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있고 깔끔하게 잘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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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 이야기

2020. 11. 7.

   어제는 부산에 있는 모 국립 박물관으로 제안서 평가를 다녀왔다. 기획전시를 위해 자료를 대여, 운송, 설치하는 전문 업체를 선정하는 제안서 평가 자리였다. 나는 대구과학관에 입사한 2017년 이후부터 계속 학예 업무를 하고 있는 3급 정학예사이기에 나를 평가 위원으로 부른 모양이다.

 

   나 스스로가 제안요청서를 써서 조달공고를 올리고 제안서 평가를 여러 번 진행해 보았기 때문에 이번 제안서 평가의 문제점들이 쉽게 보였다. 우선, 담당 학예사가 제안요청서 정보를 평가위원들에게 공유해주지 않았다. 또한 평가위원들이 정성평가를 하기 전에 정량평가 결과를 공지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업체가 제출한 제안서에는 평가위원들이 업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명시적으로 기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인데, 한 제안서에는 업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 이것은 업체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이런 정보를 걸러내지 않은 담당 학예사의 잘못이기도 했다.

 

   이 업계에서 일하는 경력이 조금씩 쌓이면서, 제대로 공을 들여 만든 전시와 그냥 대충대충 구색 맞추기 식으로 만든 전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업무 담당자와 30분 정도만 이야기해도 이 사람이 정말 열정과 애정을 갖고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것에 만족하면서 적당히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이 높은 직위를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학예연구사라고 하더라도 아주 훌륭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 있고, 학예연구관이라고 하더라도 별로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직위가 높은 사람보다는 제대로 멋들어지게 학예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나는 국립과학관에서 학예 업무를 하는 것이 비교적 새로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립박물관에서의 학예 업무는 전통이 퍽 깊고, 선배들이 쌓아놓은 전통 역시 탄탄하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에서 과학기술자료 혹은 과학기술사물을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물관의 학예사들은 대부분 고고학, 미술학, 인류학, 역사학 등을 전공한 인문학도들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자료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탐구한다든지, 이 자료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과학기술의 원리를 구현하는 체험 전시품을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국립과학관의 자연과학 혹은 공학 전공 연구사(연구원)들은 과학기술자료의 인문학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이를 감성적인 전시로 풀어내는 일에 비교적 서툴다.

 

   소장품 관리 및 연구라는 학예 업무의 측면에서 다른 박물관들이 쌓아 높은 깊이를 벤치마킹하면서, 과학기술의 의미 탐구 및 체험 전시품 제작 분야에서 일반 박물관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비교우위를 드러낸다면, 나는 과학관에서의 학예 업무가 그 고유의 독특한 전문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다만 과학관의 학예 업무 수준이 박물관들에 비해서 많이 뒤처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학예 업무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쌓이고 쌓여야 조금씩 변화될 수 있다.

 

   일이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다. 적당히 어려우면서도 점점 욕심이 생겨 조금 더 예쁘고 더 깔끔하고 더 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면 일에 재미가 붙는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에 초점을 맞추고 일 자체의 완전성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그 일에 대한 전문가가 된다. 그렇게 일을 소신 있고 깔끔하게 잘 하는 사람이 되면, 굳이 소문을 내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일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면서 일은 그 사람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남기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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