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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학문에의 헌신이라는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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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0. 11. 30.

   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 학위 논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머리가 비범하게 뛰어난 친구들이 있다. 또한, 이들만큼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지는 않아도 제법 좋은 머리에 어린 시절부터 아주 좋은 교육을 받아 우수함을 유지한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두 부류 모두에 속하지 않았다. 나를 특성화시키는 두 단어는 ‘순진함’과 ‘고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자연을 단일하고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 아름다움을 순진하게 믿은 것이다. 또한 나는 수학과 물리학의 의미를 나 스스로 철저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 나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기준으로도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설령 내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고 해도, 내가 스스로 그 내용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것이라고 간주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생 시절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내 삶에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성적이 더 나오고 덜 나오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했다. 나는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없이 철학과로 진학할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내게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일종의 우연적인 사건이었고 분에 넘치는 과분한 행운이었다. 그랬기에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나의 공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철학 수업이나 물리학 수업을 찾기가 어려웠기에, 나는 그저 도서관에서 책들을 뒤져가며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성공의 여부를 경쟁에서의 승리에서 찾는 분위기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학자들의 경우 SCI급 논문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가 중요하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쓴다. 동물적인 투쟁의 본능이 인간적인 지능과 결합하면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영리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이러한 경쟁의 분위기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오히려 성가시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이라는 학문 분야, 특히 과학철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나의 능력을 바칠 것이라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학술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일 먼저 내가 한 것은 번역이다. 번역을 해서 그 의미가 우리말에 안착해야만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이 그 내용을 거듭해서 정밀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번역을 낮은 수준의 학술적 활동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완강하게 반대한다. 제대로 된 번역이 되어야 그 학문 분야를 온전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사고하지 않고 영어나 중국어로 사고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사고가 영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통되고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면, 과연 그것이 모국어를 사용하는 동포들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조금씩 학위 논문을 준비해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과학의 실질적인 성과들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그 철학적 함의를 도출해내는 과학철학의 성과들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대표하는 학자가 한스 라이헨바흐이기는 하지만, 그가 연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과학철학자인 것은 분명 아니다. 단지 라이헨바흐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국내에 아직 없기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아인슈타인 전집을 번역하는 일, 헤르만 바일과 아서 에딩턴의 책을 번역하는 일, 필립 프랑크(Philipp Frank)의 철학을 연구하는 일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현재의 상황이 열악하다고 해서 이러한 작업을 포기하면 안 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전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상적인 성향(혹은 순진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이후에 나와 유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내가 나 이후의 일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별 볼일 없는 작품을 남긴다면 잊혀질 것이지만, 가치 있는 작품을 남긴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작품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그 다음의 길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 사람이 나와는 개인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나를 만족시킨다. 그것은 내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문의 발전 그 자체를 위해 헌신한다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학문을 위해 보잘 것 없는 개인의 능력을 헌정한다는 이 개념은 나를 깊게 만족시킨다. 이 개념이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이 가진 독립성과 고상함의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삶은, 그 목표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악이 아닌 이상, 충분히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존중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보편성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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