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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철학 강의를 끝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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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2020. 12. 8.

   어제(2020. 12. 7.) 강의는 2020년 2학기 시공간철학 수업의 공식적인 마지막 강의였다. 이번 수업을 통해 데이비드 흄과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적 시간 공간 이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에른스트 마흐와 앙리 푸앵카레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을 읽었고, 아인슈타인의 자신의 철학적 견해들을 읽었다. 상대성 이론이 제기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에른스트 카시러, 버트런드 러셀, 모리츠 슐리크, 루돌프 카르납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폈고, 최종적으로 한스 라이헨바흐의 시공간철학에 대해 3주에 걸쳐서 검토했다. 다음 주에는 ‘시간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편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시공간철학 수업의 조교로서 강의를 이끌어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번 강의를 계기로 평소에 생각만 했지 제대로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던 여러 글들을 자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1916년 논문을 다시 읽고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왜 아인슈타인의 1916년 논문이 철학적으로 문제가 되었으며 철학자들이 이 논문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응답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판단으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철학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남아 있던 마지막 물리적 객관성이 사라졌다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철학자의 입장에서 그냥 넘겨버릴 주장이 아니었다. 그러한 주장이 무슨 의미인지를 철학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라이헨바흐가 아인슈타인과 평생 우정을 유지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나는 라이헨바흐가 마냥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에 대한 추종자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가 과학자와는 별도로 “과학적 지식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 철학자는 과학자의 “발견의 맥락”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고 과학자가 제시한 이론을 “정당화의 맥락”에서 분석한다는 점, 과학 이론의 철학적 함축을 규명하는 것에서 과학 이론을 제시한 과학자 본인보다 철학자가 더 전문가라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라이헨바흐는 철학적 관점에서 과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라이헨바흐는 상대성 이론과 관련해 아인슈타인과 다른 진단을 내렸다. 공간 질서는 시간 질서로 환원되고, 시간 질서는 인과적 질서로 환원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의 계량적 특성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더라도 시간의 위상적 인과적인 질서는 여전히 유지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전히 시간과 공간은 실재한다.

 

   이번 수업에서는 20세기 전반기까지의 시공간철학만을 다룬 까닭에, 20세기 후반에 전개된 시공간철학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또한 아서 에딩턴과 헤르만 바일의 입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방향”이라는 문제 역시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다. 과연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방향이 존재하는지의 문제는 21세기인 오늘날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주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이번 수업에서 검토하지 못했던 내용들에 대해서는 다음 수업에서 다루어보고 싶다. 이번 수업을 계기로 시공간철학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방대한 주제인지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제대로 된 공부는 혼자 공부할 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할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달변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대학원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다면 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수업을 준비하는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 준 부모님, 장모님, 아내, 아이들에게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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