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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마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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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 1. 1.

   나는 1982년에 태어났다. 내 나이 올해 마흔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과학 교과서나 과학 문제집보다는 과학 이야기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나는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저술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과학철학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고,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논리경험주의자들이 쓴 글들을 번역하여 연구할 생각이다. 내가 중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는 학자는 한스 라이헨바흐다.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나 아닌 누군가가 라이헨바흐가 아닌 모리츠 슐리크, 에른스트 카시러, 루돌프 카르납과 같은 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목표한 일들을 겨우겨우,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가고 있다. 과학철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나는 전혀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나를 생각하고 비교하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개인적인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어간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내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무관심해지고 그보다 내 고유의 작업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내가 하고 싶은 주된 작업은 과학 이론에 대한 섬세한 담론을 만들어내서, 이 이론이 세계와 인간에 대해 갖는 의미가 풍부하고 깊이 있으며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런 담론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다. 그건 내가 과학 이론에 대한 기존의 담론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라는 물리학 이론들에 대한 담론이 있다. 이 이론들의 경험적 성공과는 별도로, 이 이론들의 의미에 대해 해석하는 다채로운 담론들이 펼쳐질 수 있고, 이 담론들을 통해 우리는 이 이론의 의미를 이해한다. 경험적 성공이라는 것은 잘 작동하는 도구 혹은 기계의 성공과도 같다. 물론 경험적 성공은 매우 중요하지만 인간의 이해는 결코 경험적 성공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은 그러한 성공을 가능하게끔 만든 이론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은 등장한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물리학 이론들이다. 이 이론들에 대한 철학적 담론은 무엇이었는가? 이 이론들이 어떤 의미에서 문제가 되었고, 이 문제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씨름했나? 아인슈타인, 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과 같이 이론들을 만든 물리학자들이 이 이론들에 대한 담론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이 담론이 만족스러운 것이었나? 과학철학자들은 이들과는 어떤 측면에서 차별화되는 담론을 생산해냈나? 어떤 담론이 더 합리적이고 신뢰할만한가?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이론의 발견에 있어서는 단연 물리학자들 자신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이론의 의미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물리학자들이 과학철학자들을 능가하지 못한다.

 

   파인만은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이미 탐사해 놓은 영역을 사후적으로 둘러보는 관광객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을지 모르나, 이런 평가는 결코 옳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이 천부적인 계산 능력을 갖고 있어 아주 복잡한 계산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낼 수 있고 그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과연 과학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새로운 과학자들은 과학 교육을 통해 학습하고, 과학 교육에서의 담론은 과학 이론에 대한 이해와 해석으로부터 시작한다. 과학 이론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새로운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고, 바로 그렇기에 예전에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과학 이론에 대한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과학 이론에 대한 좀 더 정교한 해석을 제시하면, 기존에 과학 이론에 대해 갖고 있었던 환상들을 걷어내는 효과를 얻게 된다. 나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에 대해서도 이러한 효과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를 위해 과학철학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류의 과학철학이 이와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작업은 정확히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담론을 비판, 검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알기로 이와 같은 과학철학적 사고가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에게도 중요했다. 다만 이후 이들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다량으로 생산되어, 기존의 편견을 극복했던 이러한 학자들에 대한 또 다른 신화와 편견들이 양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나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까닭에 나는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면서 그저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갈 뿐이다. 올해 나의 목표는 논문 투고를 한 편 더 하고 박사학위 논문 초고를 쓰는 일이다. 투고하는 논문이나 박사학위 논문 초고는 모두 한국어로 작성될 것이다. 이는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영어로 된 논문보다는 한국어로 된 논문을 쓰는 것에 더 만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명백한 기준은 하나 있다. 결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쓰겠다는 것이다. 공을 들여 몇 번이나 다시 손질하여,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과 꼼꼼함이 배어 있는 논문을 쓸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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