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애호가의 삶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사람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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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 3. 20.

   나는 학술적인 나의 역량을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평가하고 정리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애호가다. 나는 진지하고 노력파이기는 하지만 결코 뛰어나지 않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어떤 사람은 나에게 “제발 그 이야기는 이제 좀 그만해라”고 불만을 표할지 모른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나는 거듭해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애호가이기는 하지만 그저 애호가의 수준에만 남아 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학위를 받고 학술논문도 쓰고자 애쓰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쉽지 않다. 아마추어인 사람이 전문가의 영역에 진출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논문을 투고해서 한 번에 게재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 대개 처음에 논문을 투고하면 당연히 게재 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엄청난 강도의 비판이 담겨 있는 심사의견서를 받게 된다. 심사의견서를 읽은 첫 번째 날에는 “에이, 그냥 학문을 포기해야겠다!”며 울부짖으며 잠 못 이루다, 다음날 새벽에야 겨우 잠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신기하게 또 괜찮아진다. 살면서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심사위원들이 버린 나의 소중한 원고를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학술지의 다음 호에 다시 투고하거나, 다른 학술지에 수정해서 다시 투고한다. 만약 또 게재불가 판정을 받으면, 원고를 수정해서 다시 투고한다. 그렇게 수정에 수정이 거듭됨으로써 겨우 겨우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된다. 이게 바로 아마추어 연구자가 겪는 일이다. 내가 이런 일을 과학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천문학 박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니 KCI 등재 학술지에서 게재 불가 판정을 받으셨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라는 대답을 들었다. 내가 역량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하나!

 

   세상에는 SCI급 학술지에 논문 게재를 쉽게 잘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KCI 등재지에 논문 게재를 겨우겨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잘 하는 사람들 부러워 할 것 하나 없다. 어차피 내 삶을 사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충실한 삶을 살면 된다. 수정하라고 하면 고치면 되지 않는가. A 학술지에서 안 받아주면 B 학술지에 투고하면 되지 않는가. 사람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사는 법이다. 괜히 내가 넘볼 수 없는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기분 나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를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한다는 데 대체 누가 말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해도 하고 싶으면 해라. 아마추어 연구자로서 연구를 하면 된다. 물론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논문 읽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논문을 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며, 한 번에 논문이 게재되는 것을 바라면 안 되고, 다른 학자들로부터 쉽게 그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해라.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럴 거면 진짜 하고 싶은 주제를 연구해라. 그게 어렵고 연구 성과가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스스로가 정말 알고 싶은 주제를 연구해라. 그렇게 10년 동안 계속 연구하면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읊듯 그 주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틈만 나면 그것을 연구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하지 마라. 가끔씩 취미삼아 찔끔찔끔 읽고 생각할 요량이라면 아마추어 연구자 하지 말고 그냥 아마추어로 남아라. 틈날 때마다 읽고 생각하고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고 더 알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낀다면, 그때부터 아마추어 연구자로 살아라. 죽을 때까지 논문을 10편도 채 못 쓴다고 하더라도, 너의 심장이 이끄는 대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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