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애호가의 삶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느긋하게 나의 삶을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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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 5. 8.

   나는 세상만사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일들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중요한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날 때 나의 능력은 미미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이고 주변의 다른 요소들이 운 좋게 작용해서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라는 인간의 역사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갖는 우연성의 깊이를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사람은 외부적인 요소들의 각종 변화와 부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목표를 세워 일관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 주어진 선천적인 재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 자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자연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를 궁금해 했다. 나는 이러한 궁금함이 나 개인의 지적인 재능과는 별도로 대다수의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학생 시절 이래로 지금껏 오랜 여행을 하고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처럼 나 또한 그저 나의 삶을 살 뿐이다.

 

   현재 내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박사학위 논문 작성이다. 처음에는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심적 압박감을 가졌다. 그런데 박사학위 논문에 매달려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어찌되었든 나는 한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연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라이헨바흐의 철학을 연구하면 20세기 전반기에 등장한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통계역학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자연스럽게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헨바흐가 비교적 오래된 철학자라는 사실은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굳이 동시대의 철학자들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오늘날에도 훌륭한 과학철학자들은 많고, 이들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라이헨바흐는 제대로 이해하고 꼭꼭 씹어 소화하고 넘어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과학철학자이고, 잘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철학이 아직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나는 라이헨바흐 연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룰 수 있는 학술적 성취의 수준에 대해 나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학문적 능력이 부족한 내가 뛰어난 학자들의 기준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할 것은 사뭇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다른 학자들의 기준에 맞도록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할 생각은 없다. 나는 조금씩 발전하고 섬세해지는 나의 이해를 적절한 시기에 글이라는 형태로 표현을 하고 이를 다수의 학술지들에 투고한다. 투고를 하면 다른 학자들의 검토의견들을 얻을 수 있고, 그러한 의견들을 참작하여 내가 쓴 글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한 후 다시 투고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원고의 질은 조금씩 향상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서 수정을 해도 게재가 안 되는 논문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나 스스로 이해하여 깨달은 바를 공식적으로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 학위논문의 서론과 결론 부분을 제외한 모든 장들을 학술지에 투고하여 게재하는 것이 현재 내가 세운 목표다. 아마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시간도 제법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급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학위와는 관계없이 나는 나의 연구를 계속 진행해 나갈 것이고, 학위는 나의 연구를 위해 활용하는 중요한 하나의 수단 혹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훗날 나의 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려는 목표도 세웠다. 당연히 메이저 출판사는 꿈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출판사가 없으면 자비로라도 출판하면 되니까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나의 길을 걸을 뿐이다. 그 길이 중심가에 있든 주변부에 있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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