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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일, 육아, 논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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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 7. 18.

   이번에 발행될 [과학철학]지에 나의 논문이 게재되기로 결정되었다. 제목은 “상대성 이론에 대한 슐리크, 카시러의 철학적 분석 비교 연구”이다. 초고에는 카르납의 박사학위 논문 [공간]에 대한 논의도 들어 있었는데, 수정 과정에서 이 논의를 완전히 삭제했다. 대신 최근에 집중적으로 카르납이 1926년 이전까지 썼던 물리철학 논문들을 읽고 있다. 카르납의 초기 물리철학에 대한 별도의 논문을 쓰는 것이 필요하고, 이때 카르납과 라이헨바흐를 비교할 것이다.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과 같은 학자들이 활동할 당시에는 “과학철학”이라는 전문적인 분과 학문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철학”이라는 학문의 위상은 비교적 높았고,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모두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철학자”는 단순히 전문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좀 더 심층적인 관점에서 과학적 지식의 의의와 역할에 대해 사색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앙리 푸앵카레, 에른스트 마흐, 하인리히 헤르츠 등과 같은 사람들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자연철학자”들은 그 당시 “자연철학”이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논하거나, “과학의 임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 논했다. 실제로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이 제각각 “자연철학”과 “과학의 임무”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마도 서양에서 자연과학자와 자연철학자가 20세기 초반까지도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아직까지 해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위대한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물리철학자를 가져 본 적이 없고, 위대한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수리철학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학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을 뿐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철학자-과학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과학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 동안 책 번역을 하면서 일과 육아를 공부와 병행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필요한 문서를 출력해서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고 펜으로 밑줄 긋고 여백에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매일 조금씩 진전이 있다. 카르납의 논문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읽고 있다. 카르납의 논문들을 읽고, 라이헨바흐의 1920년대 초반 논문들을 다시 읽고, 에딩턴의 책을 읽고, 바일의 책을 읽고, 비교적 최근의 저자인 마르고 지오바넬리(Marco Giovanelli)의 논문들을 읽을 예정이다.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글들, 아인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돈 하워드의 글들도 읽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공부란 건 끝이 없다.

 

   내가 이렇게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핵노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라도 악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내가 연구하는 이 분야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 연구 전통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연구 전통을 자리 잡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나의 연구가 일조한다면 나 또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거듭 말하지만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고 자신의 운명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나도 나이 40이 되니까 나의 천명을 알겠다. 나는 과학철학의 역사를 연구할 운명을 타고 난 것 같다. 운명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그냥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꾸준하게 해야 하는 일이 운명이다.

 

   이렇게 계속 연구를 하다 보면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학위가 아니라 연구를 목적에 두면 학위는 연구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논문을 쓰는 일은 즐겁다. 논문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은 그냥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이 분야의 다른 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갖춘 글을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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