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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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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2021. 8. 9.

   내가 번역한 리처드 뮬러의 책 [나우 : 시간의 물리학]의 첫 부분에서 뮬러는 '지금'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카르납 사이의 입장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에게 '지금'이 갖는 독특한 의미를 물리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소 괴로워한 반면, 카르납이 보기에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물리학적 언어에서 말하는 '지금'의 의미가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며,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그와 같은 독특한 의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뮬러는 아인슈타인에게 다소의 공감을 표시하고, 카르납에 대해서는 비교적 강하게 반대하면서, 물리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지금'의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뮬러에 따르면 시간은 실재하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고 있으며, 과거는 결정되어 있는 반면 미래는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다.

 

   시간과 관련하여 뮬러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예를 들어 영국의 줄리언 바버, 이탈리아의 카를로 로벨리는 세계의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에 반해, 미국의 팀 모들린, 캐나다의 리 스몰린은 시간과 그 흐름이 근본적인 수준에서도 실재한다고 본다. 이들은 현대의 학자들이고, 이들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의 의문은 다소 역사적인 것이다. 1922년 파리에서 아인슈타인은 베르그송과 논쟁을 벌였다. 베르그송은 상대성 이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시간의 실재성, 지속으로서의 시간이 갖는 독특하고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철학자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시간의 실재성 논쟁은 '상대성 이론을 잘 이해하는 물리학자'와 '상대성 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철학자' 사이의 논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과연 아인슈타인이 1916년 논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남아 있던 물리적 객관성의 잔여물이 사라진 것일까? 그러면 과연 우리가 경험을 통해 지각하는 시간과 공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물음에 대해 수학자와 물리학자와 철학자 모두 상세하게 탐구했다. 이들 중 몇몇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시간과 공간의 계량적 질서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러 상대적인 것으로 바뀔지 몰라도, 여전히 시간과 공간의 위상적 질서는 기준계와 관계 없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공간적 질서가 시간적 질서로 환원되며, 시간적 질서는 또다시 인과적 질서로 환원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시간의 흐름이 실재하는지, 과연 '지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한 학자들 중의 한 명이 라이헨바흐였다. 라이헨바흐는 자신의 1925년 논문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며 '지금'은 객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금'의 객관적인 의미는 '확률 관계의 이론'을 통해 서술될 수 있다. 우리가 현재를 기초로 과거에 대해 부여하는 확률 추론은 미래에 대해 부여하는 확률 추론과 그 확실성에 있어 객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카르납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물리학의 언어 속에 등장하는 모든 개념들의 의미가 잘 정립되어 있다고 추측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리학 이론의 발명자 자신조차도 그 이론이 갖는 인식적 의의가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혹은 그러한 인식적 의의가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물리학자는 혁신적인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학 이론이 등장한 이후에도 이 이론이 갖는 인식적 의의에 관한 논쟁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물리학 이론의 경험적 성공이 그 이론에 대한 특정한(특히 그 이론의 창시자가 제시한) 철학적 해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뉴턴 이론의 성공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뉴턴의 철학적 해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수의 물리학자들이 '시간'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면서 라이헨바흐의 연구를 인용하지 않는 이유다. 시간의 실재성을 옹호하는 팀 모들린과 리 스몰린도 라이프니츠와 퍼스는 인용하면서도 라이헨바흐는 인용하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라이헨바흐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인과적 시공간 이론으로 나아갔고, 인과적 과정의 물리적 실재성을 받아들였으며, 인과적 과정을 확률적으로 분석하면서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정립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라이헨바흐가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는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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