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애호가의 삶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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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1. 8. 15.

   아이들 셋을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부모님, 장모님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줘서 감사하다.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것 같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주된 동기도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나는 올해로 만 10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일을 부지런히 한다. 최근 회사에 어수선한 일이 있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삶을 회사의 일로 채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하면 회사의 일은 잊고 다른 것들로 나를 채운다. 이제는 정말 박사과정 졸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퇴근하면 육아를 하면서 틈틈이 졸업논문을 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라이헨바흐의 1925년 논문 [세계의 인과적 구조와 미래와 과거 사이의 차이]는 절반 정도 번역했다. 8월 말까지는 다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논문을 전체적으로 훑어보았기 때문에 논문의 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라이헨바흐는 “확률 함축의 논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확률의 논리학을 전개하고 있다. 확률의 원리는 라이헨바흐가 박사학위 논문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원리이며, 그는 경험주의자로서 확률의 빈도 해석을 옹호한다. 이 논문을 번역하고 난 다음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시 정리할 예정이다. 그래야만 내 박사학위 논문의 한 장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마흔이 되면서 나 자신이 예전에 비해 사뭇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찾아내어 어느 정도 분명해진 나의 길을 계속 걷는 것이 편하다. 아마도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20세기 전반기 서양 과학철학의 역사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약간의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위논문 이후에도 나는 과학철학의 역사를 계속 연구할 것이고, 이 연구를 토대로 학술논문을 게재할 것이며, 기회가 된다면 연구 결과들을 모아 책을 출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철학 강의를 할 수 있을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출강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불확실한 삶 속에서 확실한 것들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과학철학책들을 읽으며 나도 앞으로 과학철학을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내가 삶 속에서 아주 중요하고 진짜인 무엇인가를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 발견이 나에게 제법 진한 감동을 주었는데, 얼추 그 발견대로 삶이 실현된 지금 나는 이제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내 삶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나에게는 그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을 충실하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나의 평범함을 잘 알게 되고, 내가 학술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소소한지를 잘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 그냥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제 꼰대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내 나름의 성취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나만의 삶을 살며 그 성과를 사회에 조금씩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 일종의 꼰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새로 자라나는 세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제 내가 일종의 극복 대상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 반갑다. 내가 얼마만큼 디딤돌 역할을 훌륭히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대를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되는 것은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좋은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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