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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의 과학철학 연구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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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2021. 11. 28.

   내가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멍하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시절에는 카페에서 성탄절과 관련된 친숙한 음악들이 계속 흘러나온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멍한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며 나에게 이렇게 느긋한 자유가 허락된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감사함을 느낀다. 어쨌든 나는 직장에 있을 때 아주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가. 평소의 격렬한 노동의 대가로 이런 자유를 누린다.

 

   이런 자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나는 과학철학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것도 일종의 병이고, 나로서는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병이다. 라이헨바흐는 나치를 피해 1933년에 터키의 이스탄불 대학으로 갔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라이헨바흐에게 고액의 연봉과 더불어 철학과 학과장 자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터키에 머물던 라이헨바흐는, 과학철학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미국에서 카르납을 비롯한 비엔나 출신 학자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며 일종의 위협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후 라이헨바흐는 영어로 쓴 책 [경험과 예측]을 출판하며 1938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과학철학자로서 라이헨바흐가 하고자 했던 주된 작업은 정밀과학에 대한 일종의 ‘탈신비화’였던 것 같다. 그는 과학의 경험적 성공을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경험적 성공에 불필요하게 덧붙는 의미들을 떨쳐내고자 했다. 이러한 의미들이 과학을 (특히 물리과학을) 신비화하고 우상화하고 과학자들에게 부당한 아우라를 씌우고 권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발견의 맥락’와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한 것 역시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발견의 맥락’에서는 인간의 지적 재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평범한 사람은 감히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을 과학자들이 해내곤 하지만, 제안된 이론을 엄격하게 검토하고 평가하는 과정인 ‘정당화의 맥락’에서는 건전한 이성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이 ‘정당화의 맥락’은 공적이고 공개된 담론의 공간이다.

 

   오해는 창조의 어머니이면서도 뿌리 깊은 편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1922년생인 토머스 쿤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출판한 것이 1957년이고,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판한 것이 1962년이다.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의 철학]이 영문판으로 출판된 것이 1958년이다. 물리학 전공자였던 쿤은 논리경험주의의 과학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그는 유럽에서 쓰인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 저서들(라이헨바흐, 카르납이 쓴)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과학사 연구 결과를 주된 무기로 삼아 논리경험주의 철학을 공격했다. 일종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그 허수아비가 일정 시점에서는 실체로 둔갑했다. 카르납 사후 등장한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논리경험주의가 ‘죽었다’고 서술했다. 논리경험주의는 철학자들의 공공연한 펀치백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라이헨바흐와 카르납 사이에 상당한 스타일의 차이가 있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나는 과학에 대한 ‘계몽’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하겠다. 성경이 사제들의 전유물에서 모든 사람들의 소유물이 되고 모든 사람이 직접 신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의 전유물이던 과학적 지식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의 위험이 있다. 철학적 분석 역시 과학과는 다른 종류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철학 서적 역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학의 신비화와 탈신비화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토대로 얻은 결론을 충분히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가운 것은 논리경험주의를 비판한 장본인들의 후계자들이 다시 논리경험주의를 재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대표하는 학자가 존경하는 마이클 프리드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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