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성실한 연구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15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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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생각을 장려하는 사상가, 푸앵카레

어떤 점에서는 비범하게 뛰어나지만 다른 많은 측면에서는 아주 어설퍼서 더 정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푸앵카레다. 푸앵카레의 글을 읽으면 그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사상가임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은 아주 솔직해서 그의 글을 읽으면 그 글이 곧 그의 진실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푸앵카레는 자신의 글 속에서 아주 근본적이고 진지한 사고를 전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푸앵카레의 문체는 ‘탐구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내가 확고하고 명확한 지식을 알고 있고, 그것을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강연이나 기고를 자기 고유의 사고를 전개하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래서 그의 기고문을 읽거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서 한 ..

댓글 과학철학 2022. 5. 15.

30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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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철학을 사랑한다면

내가 아는 과학철학 연구자들의 경우 학부 때부터 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별로 없다. 학부 시절 물리학, 화학,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대학원에 입학한 후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나는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그때부터 세부 전공이 과학철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다수의 과학철학 연구자들과 약간 다르다. 철학이라는 학문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학과 폐지, 학과 통폐합 등등의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한국에서 철학과는 살아남아 있다. 그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을 필요로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전공은 서양현대철학 중 과학철학이고, 나는 내가 전공하는 철학이 여러 철학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 않다. 그러나 ..

댓글 과학철학 2022. 3. 30.

28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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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수학에 대한 단상

이상원 교수님의 책 [객관성과 진리 : 구성적, 다원적, 국소적 관점]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 나는 4월 말까지 수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나에게 수학 공부란, 수학사 책도 읽고 수학 교과서도 읽으며 때때로 수학 문제들을 푸는 것이다. 수학 공부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다. 모름지기 공부란 즐겁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이해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문제를 빨리, 잘 풀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수학에 대한 나의 이해가 증진되면 된다. 박사학위 논문 작성과 관련하여 수학 공부를 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리만(Riemann)과 헬름홀츠(Helmholtz)의 생각을 직접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의 생각에는 수학적 통찰과 인식론적 통찰이 섞여 있고, 독자에 따라 수..

댓글 과학철학 2022. 3. 28.

19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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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과학적 철학과 철학의 자연화

일반적으로 ‘과학적 철학(scientific philosophy)’ 개념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이 제시했고, ‘자연화된 철학(naturalized philosophy)’ 개념은 하버드 대학 출신의 미국 철학자 윌러드 콰인이 제시했으며, 콰인은 논리경험주의에 결정적인 반박을 가한 인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나는 관련 문헌들을 읽으면서 실제로 콰인의 입장은 논리경험주의 전체가 아닌 카르납의 입장에 대한 반박이었으며, 라이헨바흐가 제시한 ‘과학적 철학’ 개념은 콰인의 ‘자연화된 철학’ 개념과 그다지 상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두 개념이 완전히 같지는 않고 세부적인 측면들에서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두 개념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논..

댓글 과학철학 2022. 2. 19.

09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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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1920년대 후반기의 자연철학

상대성 이론의 철학적 의의에 대한 아인슈타인-라이헨바흐 논쟁을 검토한 후, 요즘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주제는 ‘1920년대 후반기에 과학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과학철학 혹은 자연철학의 역할과 기능’이다. 당시 많은 수의 학자들이 이 주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펼쳤는데, 내가 특히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의 견해이다. 1930년대 초반부터 나치즘을 피해 유럽의 과학철학자들이 영국, 미국 등지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 그와 같은 이주 직전까지 이들이 과학철학(자연철학)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를 들여다본다. 디테일(세부사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100년과 같이 긴 시간 간격이 아니라 순차적인 시간 속에서 들여다보면 단절성보다는 연속..

댓글 과학철학 2022. 2. 9.

29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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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논리경험주의 드라마

휴직 후 집안일과 애들 돌보기를 주로 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는 "논리경험주의" 드라마다. 어떻게 그런 드라마가 가능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철학사를 연구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흥미로운 드라마는 없다. 철학사조로서의 논리경험주의를 서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논리경험주의자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기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리크 슐리크는 막스 플랑크 아래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으로 전향했다. 플랑크의 회고에 따르면 슐리크는 매우 뛰어난 제자였다. 필립 프랑크는 어떤가? 프랑크 또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으로 전향했다. 오토 노이라트는 경제학자였고, 한스 한은 수학자였다. 한스 라이헨바흐는 철학으로 박사..

댓글 과학철학 2022. 1. 29.

24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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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카르납, 헴펠, 라이헨바흐의 성격에 대한 단상

내가 한창 과학철학에 대한 열정을 키우고 있던 대학 학부 시절의 일이다.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과 같은 최신의 물리학 이론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기대하고 과학철학 수업을 들었던 나는, 어쩌면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헴펠의 [자연과학철학]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음, 그렇지’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시시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과학철학자는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헴펠의 이 책은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사실들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런데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헴펠은 인격적으로 너무나 훌륭하여, 그가 재직했던 프린스턴 대학에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아마 헴펠은 늘 겸손하고, 친절하고, 한..

댓글 과학철학 2022. 1. 24.

14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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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한국의 올덴버그를 꿈꾼다

나는 블로그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통 채널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들을 긍정하는 편이다. 그러한 다양성을 긍정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다양성을 긍정하기 때문에) 나의 입장은, 소통 채널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알아볼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입장은 나의 실천을 통해 실제로 드러난다. 요즘 내가 놀라움을 느끼는 하나의 사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나는 재작년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한 적이 있다. 왜 아인슈타인 회전 원판 사고 실험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측정 막대는 가만히 있던 측정 막대에 비해 줄어들어 있지 않은가? 이에 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시계는 가..

댓글 과학철학 2022.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