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큰누리 2020. 10. 15. 23:37

 

 

<수성동(水聲洞)>

수성동은 원래 안평대군의 집터인 비해당이 있던 곳으로 시내와 바위가 아름다워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많은 명소였다.

수성동계곡은 인왕산과 맞닿은 옥인동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데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원류 중 하나이다.

주변에 옥인시범 아파트가 들어서서 계곡의 원형이 파괴된 상태였으나 2012년에 건물을 철거하고

소나무 1만 8천여 그루를 심는 등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골짜기에는 기린교라고 하는 하나의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

기린교는 원 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된 한양 도성 유일의 다리이기도 하다.

겸재의 장동팔경 속에 등장하는 수성동은 비해당의 흔적은 없고 빈터로 그려졌다. 

 

 

<舊 청운각(유진인재개발원) 뒤에서 본 북악산>

 

 

<인왕산 자락길>

 

 

 

 

<인왕산 이빨바위와 목도>

살짝 썩은 이와 정말 닮았다!

 

 

 

<인왕산 자락길에서 조망한 경복궁과 근정전>

사진 중앙의 광화문만 희미하게 보이고 나머지 전각은 나무(숲)에 가려 구분이 어렵다.

서울 도심에 이 정도로 숲이 남아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인왕산 자락길 전망대(고 정주영 현대회장 가옥 뒷산)>

사진에 보이는 전망대로 오르면 정주영 현대회장 가옥이 보였던 것 같다.

전망대 아래에 있는 세 번째 사진의 바위는 뱀, 혹은 거북이의 머리를 닮았다.

 

 

 

 

<인왕산 자락길 구름다리>

인왕산에 이런 구름다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외국인들이 서울 시내와 주변에 큰 산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녀 보면 정말로 수도가 평지인 나라들이 많다. 

아래 사진은 건너서 되돌아본 모습이다.

 

 

 

<인왕산에서 본 경기상고 운동장과 청운중학교>

왼쪽 밖으로 경기상고가 있고, 원경의 파란 지붕은 청운중학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복고는 경기상고 아래쪽에 있는데 어느 부분인지 판단이 안 선다.

 

사진 왼쪽 위의 능선을 따라 조금만 위로 눈을 돌리면 부아암(비둘기바위)이다.

사진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산길, 혹은 얕은 골짜기가 보이는데 파란 지붕 뒤(골짜기)에

취미대, 대은암, 독락정 등이 있고, 가장 아래쪽에 청송당이 있었다.

 

 

<인왕산에서 본 북악산 부아암(비둘기바위)과 그림 속에 나타난 부아암(비둘기바위)>

보라색 연필 끝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북악산의 부아암(비둘기바위)이다.

부아암(비둘기바위) 바로 아래쪽에 장동팔경인 취미대와 대은암이 있었다.

 

부아암(비둘기바위)은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 중 '독락정'  뒤에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사진은 2013년 서촌 웃대 답사 당시 안내를 한 재야 사학자 이순우선생님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 그 중에서 독락정과 부아암에 설명 중이다.

 

 

 

<인왕산 자락길의 안내문(이정표)들과 도끼바위>

 

 

 

 

<인왕산에서 본 광화문, 서울역(남산) 방향>

윗사진은 광화문 방향이라고 판단했는데 확실하지 않고, 아래 사진은 남산이다. 

 

 

 

<인왕산의 전망대>

 

 

<수성동(水聲洞)계곡 입구와 목교(木橋)>

수성동은 지금의 옥인동 일대로 백운동과 더불어 청계천의 발원지이다.

중인 계층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시사(詩社)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가 이 부근에서 자주 시회(詩會)를 열었다고 한다. 

 

관련 글 : <인왕산 아래매국노들의 집, 별장 터> 참조       http://blog.daum.net/hhl610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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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을사오적보다 훨씬 파렴치하고 악랄한 친일파이며,

어떤 이는 'xxxx모자랄 인물'로 지칭할 정도의 매국노 윤덕영이 이 부근에 '벽수산장'이라는 별장을 지었다.

 

윤덕영순종의 제2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백부가 되기 전에 탄탄한 해풍 윤씨 집안을 뒷배로 두고 있었다.

집안 배경과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승승장구하던 중 고종의 후궁 엄비가 순원황귀비로 되는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그 공로로 엄귀비의 환심을 사 자신의 조카를 황태자비로 입궁시켰다.

황태자비의 백부라는 명예와 기존의 지위로도 모자라 1910년의 한일강제 합병 과정에서 왕족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일본과 합병해야 된다고

고종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옥새를 치마폭에 감춘 조카(순정효황후)에게서 탈취했다고 한다.

 

윤덕영은 경술국치에 공헌한 공로로 일제에게서 거액의 하사금과 자작 직위를 받고 닥치는대로 이권에 개입하여 부를 축적했다.

그는 순정효황후의 부친이자 동생인 윤택영이 말년에 빚에 쫓겨 중국으로 도망가서 타국에서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덕영은 송석원 터에 프랑스공사 민영찬이 가져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독일인의 감독하에

1914년부터 10여년의 공사를 거쳐 222평 저택 벽수산장과 한옥 등 14동의 건물 지었다.

송석원 산장은 당시 서울 최고의 호화주택으로 서촌사람들에게 '돌문 안 뾰족집'으로 불렸다.

현재 남산골 한옥마을에 복원된 5채의 한옥 '옥인동 윤씨 가옥' 벽수산장 안에 있던 99칸짜리 한옥이다.

송석원(벽수산장) 바로 밖에서 구름다리로 이어진 양옥은 윤덕영 딸 부부의 집이었다.

화가인 박노수의 집이었다가 작품과 집을 기증하여 최근에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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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이 지역에 옥인시범 아파트가 들어서서 계곡의 원형이 파괴되었으나 2011년 7월에 복원하여 일부나마 옛 모습을 되찾았다.

수성동계곡에서 답사 당시에 목도와 석도를 3개 정도 본 것으로 기억된다.

 

 

 

<수성동(水聲洞)계곡 석교(石橋)>

 

 

<수성동계곡 사모정>

 

 

 

<수성동계곡에서 본 인왕산 치마바위>

인왕산 아래쪽에서 정상을 올려다 본 모습이다.

 

 

<여러 방향에서 본 수성동계곡의 기린교(麒麟橋)>

기린교(麒麟橋)는 돌 1개로 만들어진 다리이며,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돌다리는 한양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 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된 다리라고 한다.

 

 

 

 

 

<'그림 속 풍경, 풍경 속 그림' 안내문>

 

 

<기린교와 수성동계곡 안내문>

 

 

 

<수성동계곡 출구, 혹은 입구 옥인동>

답사를 마친 후 이곳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나왔다.

답사 출발지였던 경복고, 청운동이 조용하고 여유가 있는 동네라면 출구인 옥인동은 서민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