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큰누리 2021. 11. 12. 09:07

현충사에 들렀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공세리 성당에 들렀다.

오래 전부터 공세리 성당이 역사적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궁금했었다.

막 해가 저물기 시작한 시각에 도착했는데 코로나 19로 성당 내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외부만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성당측 안내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울이나 근교에서 보던 성당에 비해 부지가 확실히 넓었다.

특히 건물 밖을 한 바퀴 둘러 조성한 '십자가의 길'과 彫像들은 지금까지 본 어느 곳보다 규모가 크고 섬세해서 인상적이었다.

건물 외관은 서울의 역사적인 성당이랄 수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이나 원효로의 예수성심성당과 느낌이 비슷했다.

 

 

≪아산 공세곶창지(貢稅串倉址)와 천주교회>

-현지 안내문-

이곳은 조선시대 조세미(租稅米)를 보관하던 창고인 조창(漕倉)이 있던 자리이다.

조창은 수송이 편리한 수로 연변에 설치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아산현 창고조(條)'에는 이곳에 중종 18년(1523년) 80칸의 창고를 짓고

아산, 한산, 연산, 당진 등 인근 40개 고을의 세곡(稅穀)을 거두어 보관하였다가 아산만의 물길을 이용해 60척의 조운선으로 서울 경창(京倉)으로 수송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조창은 영조 38년(1762년)에 충청도 해운판이 폐지되면서 기능이 약화되었다가 19세기에 이르러 없어졌는데 지금도 석축의 일부가 남아있다.

또한 이곳은 편리한 해운교통 때문에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는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는데

천주교 박해 당시 이를 피해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유입, 포교활동을 하였으며 1866년 대원군의 병인박해 때에는

걸매리에 거주하는 박익서, 박원서, 박의서 등 천주교 신자 11명이 수원 감영에 끌려가 참수를 당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천주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1895년 도내에서 최초로 천주교회 본당이 창설되면서 초대 성 일론(에밀리오) 신부가 부임, 포교활동을 하다가 1922년 현 성당을 준공,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아산만은 삼국유사에 동명왕 주몽의 아들 비류가 고구려에서 남하, 최초로 도착하여 정착한 곳(미추홀=밀두리)이고, 

백제의 멸망을 가져온 나당 연합군과의 전투현장이기도 하다.

근대에는 청일전쟁(1894.7.25)의 시발지로 외세에 의해 전쟁터가 되는 등 우리 민족의 과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중간에 몇 곳을 자르기는 했지만 문장이 정~말 길다!)

 

 

≪아산 공세리 성지 · 성당≫

-현지 안내문-

1890년대에 시작된 120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공세리 성지·성당은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144호로, 350년이 넘은 다수의 국가 보호수가 있으며,

높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근대 고딕식 조적조 종교 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수려한 경관과 잘 어우러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명성답게 공세리 성당만의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 

(와, 이렇게 긴 문장은... 숨이 차다!)

공세리 성당의 아름다움은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성종 9년(1478년)부터 영조 38년(1762년)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지인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써 내포지역은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못자리라 불릴 만큼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중심지였다.

공세리 성당에는 1801~1873년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하신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 성지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파스키에 신부님에 의해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어

그 후 5년 뒤에 에밀 드비즈 신부님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드비즈 신부님은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시는데 특이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명래 고약으로 알려진 바로 그 고약의 원 개발자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었는데 그 비법을 당시 드비즈 신부님을 도와주었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기에 공세리 성당은 '이명래 고약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아산 공세리 성지 · 성당 입구>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고, 언덕길을 따라 오르노라면 왼쪽에 피정의 집, 사제관이 있고, 언덕 정상에 성당이 있다.

중턱에 성 에밀리오 일론 신부 공덕비, 김대건순교 백주년기념비, 성가정像이 있다.

성당 왼쪽에 성모상, 순교자 묘지, 박물관과 베네딕토관이 있으며, 성당 건물들을 둘러싸고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당시에 '윤종수(세례자 요한) 신부님 기증 유물 특별전'이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었으나 박물관이 닫혀 볼 수 없었다. 

 

 

<아산 공세리 성당 피정의 집과 사제관>

오른쪽의 사제관은 옆모습만 살짝 보인다.

 

 

 

<아산 공세리 성당으로 오르는 언덕길>

왼쪽에 살짝 보이는 비석머리(이수)는 '김대건 순교 백주년 기념비'이다.

 

 

<아산 공세리 성당 보호수(팽나무)와 촛불>

지정일 : 1982. 11. 10.

이 나무는 높이가 24m, 나무둘레가 약 6m로 '공세리 성당 문지기'로 불린다고 한다.

 

 

 

<아산 공세리 성당 삼십이위 순교자 묘지>

묘지는 따로 없고 위령탑(?) 같은 비석과 붉은 바탕의 커다란 부조 조각상이 있다.

최근에 행사를 했는지 의자들이 놓여있는데 코로나 19에 따른 방역 지침을 잘 지켰다!

 

 

 

<공세리 성당 박물관과 베네딕토관(右)>

박물관, 성당 모두 문이 잠겨 있었다.

왼쪽은 박물관, 오른쪽은 성당 집무실 겸 성물을 판매한다는 베네딕토관이다.

 

 

 

<성모상과 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 좌, 우면과 정면에서 본 외관>

 

 

 

 

 

<공세리 성당 뒤쪽의 성상과 후면에서 본 성당>

 

 

 

<공세리 성당 종탑>

 

 

 

<공세리 성당 정면 외관과 내부>

내부 사진은 당시에 출입이 불가하여 공세리 성당 홈페이지(http://www.gongseri.or.kr/)에서 퍼온 것이다.

공세리 성당의 주보성인은 베네딕토이고,

중앙제대 천장 아치에는 '수고하는 자와 무거운 짐 진 자는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도우리라'고 써 있었다.

 

 

 

<순교자 묘비쪽에서 본 사제관과 공세리 풍경>

 

 

<성 에밀리오 일론 신부 공덕비와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순교 백주년 기념비>

 

 

 

 

<공세리 성당 성가정像>

다른 곳은 일반적으로 '성가족'으로 지칭하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성가정'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성당 언덕에서 본 공세리 풍경>